갈마(역사)

[근세조선사]바람을 피우는 남편이었던 성종

개마두리 2023. 10. 28. 22:15

한명회의 딸인 첫 번째 왕비 공혜왕후(恭惠王后. 성은 한씨다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서기 옮긴이) 1474(성종 5) 죽자, 후궁들 가운데 가장 서열이 앞섰던 윤숙의가 왕비로 책봉되었다, 그가 뒷날 연산군을 낳은 폐비 윤씨이다.

 

후궁 시절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지만, 폐비 윤씨는 왕비의 자리에 앉자, 강한 성정(性情. 성질과 심정 옮긴이)과 노골적인 질투를 밖으로 드러냈다고 전한다.

 

(이는 옮긴이) 유난히 여색을 밝혔던 성종 탓도 있다.

 

성종은 왕후 세 명과 후궁 아홉, 곧 공식적으로만 열두 명의 여인에게서 1612녀를 얻었을 뿐 아니라, 야사(野史)에 전하는 바에 따르면 수시로 대궐 밖을 나가 여염집(閭閻. ‘마을 문[: 그러니까, 마을]과 번화한 거리[: 그러니까, 길거리]에 있는 집일반 백성의 살림집 백성의 집 : 옮긴이) 여인과도 관계했다고 한다.

 

윤희진, 제왕의 책 , 92

 

옮긴이(개마두리)의 말 :

 

내가 소년 시절에 갈마(‘역사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를 배울 때, 그러니까 서른한 해 전에 어지신 임금님으로 배웠던 성종이 알고 봤더니 여색을 지나치게 밝히는 사내이자, 바람을 피우기까지 한 남편이었다니, 정말 실망스럽다.

 

솔직히 말하라면, 이 사실을 알고 나니 왕비였던 폐비 윤씨가 성종이 관계를 맺은 여인들을 질투한 게 이해가 되고(안 그러는 게 더 이상하지 않은가?), (비록 폭군이기는 했지만) 성종의 아들이었던 연산군이 어머니의 죽음과 관련된 이야기를 듣고 잔인해지고 비뚤어진 것도 이해가 된다. 세상에 바람을 피우는 아버지와 남편이 관계를 맺은 여인들을 질투/비방하다가 왕비 자리에서 쫓겨나고 처형당하기 한 어머니를 두고도 곱고, 아름다우며, 착한 마음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 테니까.

 

내가 이 아름답지 못한 사실을 굳이 여러분에게 소개하는 까닭은 다음과 같다.

 

첫째, 얼핏 보면 100% 완벽해 보이는 사람도 알고 보면 약점이나 문제점이나 결점이나 잘못한 일이 있다는 것, 그러므로 우리는 한 사람을 무작정 우상화하거나 이상화해서 떠받들지 말고, 잘한 것은 잘한 것대로, 못 한 것은 못 한 것대로 따로 나눠서 평가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함이고(성종이 바람둥이에 여색을 밝히는 임금이기는 했으나, 나라는 잘 다스렸고 학문을 닦는 데 힘쓴 건 사실이니까),

 

둘째, 한국의역사 교과서에 이 사실이 실리지 않는 현실(나는 내가 사서 가지고 있는 서기 2011년의 고등학교 교과서인한국사 를 읽고, 그 책에 성종의 잘못, 그러니까 이 글에서 설명하는 일이 없음을 확인했다)을 보고, (근세조선의 왕실과 대한제국의 황실을 낳은 집안인) 전주 이씨 집안과 그 집안의 신하였던 사대부 집안들의 보이지 않는 검열/압력을 의심해야 함을, 한 집안이나 압력단체나 한 지역의 검열을 하면서까지 숨기려고 드는 것이 과연 무엇인지를 따져봐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싶어서며(종교단체나 특정 인종의 단체나 군대나 경찰이나 검찰의 검열도 예외는 아님을 말하고 싶다),

 

셋째, 나쁜 일이나 잘못된 일을 전부 여성 탓’, ‘자식 탓으로 돌리는, 아직도 강하게 남아있는 잘못된 사관(史觀)에서 벗어나, 여성남성과 여성의 자식이 비뚤어지는(또는 어긋나는) 까닭을 제공한 남성이나 시대사회구조환경이나 관행을 문제 삼는 사관을 고르자는 제안을 하고 싶어서다.

 

부디 이 글이 여러분에게 내가 말한 세 가지를 일깨우는 데 도움이 되기를 빈다.

 

단기 4356년 음력 914일에, ‘이 세상에 완벽한 윗사람이란 없고, “흠 없는 위인도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하는 사실을 다시 한 번 깨달은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