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한국군의 베트남전 학살을 아시나요?” 용기 낸 생존자들

개마두리 2023. 10. 27. 21:59

< 앵커 >

 

15년이나 계속된 베트남 전쟁에서는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습니다. 30만 명의 군인을 파병한 우리나라도 이런 학살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요, 당시 생존자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해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안상우기자가 (그 생존자들을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만났습니다.

 

< 기자 >

 

이른 아침, 인천공항 입국장으로 두 여성이 걸어 나옵니다.

 

이들은 베트남(올바른 발음은 비엣남[Vietnam]’ - 옮긴이) 전쟁 당시 군대의 학살로 가족과 친구를 잃었습니다.

 

[응우옌 티 탄/퐁니 마을과 퐁넛 마을 생존자 : 진실을 말하기 위해 왔습니다. 우리 마을에서 있었던 사실을 증언하기 위해 왔습니다.]

 

(서기 옮긴이) 1965(양력 옮긴이) 10월 베트남 전쟁에 처음 파병된 청룡부대는 베트남 깜라인에 상륙한 뒤, ‘다낭까지 북진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군의 이동 경로에는 학살이 일어난 작은 마을들이 모여 있습니다.

 

베트남전쟁 당시 한국군에 의한 민간인 학살 희생자는 무려 9천 명이 넘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응우옌 티 탄/퐁니 마을과 퐁넛 마을 생존자 : 1968년 그날, 저는 여덟 살이었습니다. 한국군의 학살로 어머니, 언니, 남동생, 이모, 사촌 동생까지 모두 다섯 명의 가족(식구 옮긴이)을 잃었습니다.]

 

피해자의 아픔을 털어놓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이었습니다.

 

(그가 옮긴이) 3년 전(서기 2015옮긴이) 처음 한국을 방문했을 때는 환영받지 못했습니다.

 

[응우옌 티 탄/퐁니 마을과 퐁넛 마을의 생존자 : 첫 방문과 지금 방문은 많이 다릅니다. 첫 방문 때는 군복을 입고 다시 나타난 (한국의 옮긴이) 참전군인들 때문에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습니다(이른바 나라를 사랑하는 사람이자, ‘반공 용사를 자처하는 순혈한국인 남성들이여, 참전군인들을 감싸고 싶은가? ‘씨를 비난하고 공격하고 싶은가? 만약 그렇다면, 2차 동학혁명과 의병전쟁과 간도 경신참변 때 일어난 학살을 증언하려고 피해자의 후손인 한국인/조선 공화국 공민/코리아[Corea]계 민족이 왜국에 왔을 때, 서기 19세기 말의 근대 왜군 군복이나 서기 1920년대/1930년대의 근대 왜군 군복을 입고 일장기와 욱일기를 든 채 한쪽 손으로는 총이나 칼을 쥐고 나타나 앞길을 막을 왜국 우익을 욕하지 마라! - 옮긴이).]

 

하지만 다시 용기를 냈습니다.

 

이번엔 자신과 같은 상처를 가진 다른 생존자와 동행했습니다.

 

둘은 오늘(21) 대한민국 정부를 피고로 세운 시민평화 법정에서 한국군의 민간인 학살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하민홍 교수/호치민시 인문사회과학대학 역사학과 : 많은 한국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싶어하고, 이미 많은 사람들은 진실을 알고 있다고 느꼈습니다. 일부의 사람들만 진실을 거부하고 있을 뿐입니다.]

 

이번 판결은 구속력이 없지만, 우리의 책임을 인식하고, 논의의 장을 여는 출발점으로 여겨집니다.

 

(영상취재 : 공진구/김남성/배문산, 영상편집 : 김준희, VJ : 김종갑, 화면제공 : 한베평화재단)

 

- 안상우 기자 ideavator@sbs.co.kr

 

- 서울방송(SBS) 뉴스

 

- 입력 : 서기 2018년 양력 421

 

- 기사 원문 :

 

http://v.media.daum.net/v/20180421212403600?rcmd=rn

 

"한국군의 베트남전 학살을 아시나요?" 용기 낸 생존자들

<앵커> 15년이나 계속된 베트남 전쟁에서는 수많은 민간인이 희생됐습니다. 30만 명의 군인을 파병한 우리나라도 이런 학살의 역사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데요, 당시 생존자들이 진실을 밝히기 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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