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개인의 역사]최악의 상황에서도 독서에 몰입하라

개마두리 2024. 2. 12. 22:04

(서기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2004(양력 옮긴이) 7, (글쓴이인 이지성선생 옮긴이)는 경기도립 성남도서관 밑으로 이사했다. 그곳에서 20095월까지 살았다. 비록 달동네였지만 행복했다. 성남도서관에서 도보로 15분 거리에 수정도서관이 또 있었기 때문이다.

 

나의 하루는 눈뜨자마자 책을 손에 잡는 것으로 시작했다. 매일(날마다 옮긴이) 두 시간 정도 새벽 독서(책 읽기 옮긴이)를 했다. 독서를 마치면 성남도서관 옆에 있는 희망대공원으로 가서, 내 기억으로 407개에 달하는, 계단 왕복달리기를 네 번 정도 했다. 운동을 마치고 집에 오면 보통 6시였다.

 

샤워를 하고, 다시 책을 읽고, 글을 쓰다가, 8시쯤 되면 아침을 먹고 출근을 했다.

 

오후 3시에 아이들을 보내고, 교실 청소를 하고, 상담 활동을 하고, 밀린 업무를 처리하면, 어느덧 퇴근 시간이었다. 학교에서 집으로 가려면 숲을 세 개나 가로질러야 했다.

 

수정도서관은 두 번째 숲 옆에 있었고, 성남도서관은 세 번째 숲 끝자락에 있었다. 나는 거의 매일 도서관 두 곳에 들러서 읽은 책들을 반납하고 새로운 책들을 빌렸다.

 

글은 보통 저녁 식사를 마치고 한 시간쯤 뒤부터 쓰기 시작해서 자정까지 썼다. 일주일(1옮긴이)에 두세 번 정도는 새벽 2~3시까지 글을 쓰곤 했는데, 그땐 아침 6시에 일어났다. 거의 수도승과 다름없는 그 생활을 전업 작가가 되기 전까지, 마치 기계처럼, 하루도 빠짐없이 했다.

 

지금 생각하면 거짓말 같다. 어떻게 그런 삶을 살 수 있었는지, 다른 사람이 내 인생을 대신 산 것 같은 기분이 들 정도다.

 

그때 내게는 하루에 한 권 이상의 책을 읽지 않으면 자신에게 밥과 잠을 허락하지 않는 규칙이 있었다. 스물여덟 살의 어느 날, 하루에 밥은 세 번 먹으면서 책은 세 권을 읽지 못하고, 잠은 네 시간 넘게 자면서 책은 네 시간 이상 읽지 못하는 나 자신을 발견하고 이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서 만든 규칙이었다.

 

그런데 필사(必死. 죽도록 힘을 씀 옮긴이)의 각오를 한 나를 방해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옆집에 사는 알코올중독 아저씨와 앞집에 사는 슈퍼 주인아저씨와 내 집에서 대각선 방향으로 약 20미터 거리에 있는 집에 사는 정신장애 아줌마가 그들이었다.

 

알코올중독 아저씨와 정신장애 아줌마는 서로 죽이 잘 맞았는데, 2시경부터 저녁 7시경까지 슈퍼 앞 파라솔 아래서 거의 살다시피 했다. 두 사람이 하는 일은 주로 지나가는 사람에게 행패를 부리거나 울면서 노래를 부르거나 악을 쓰는 것이었다.

 

저녁 8시경이 되면, 두 사람은 거처(?)를 파라솔에서 내 방 바로 밑에 위치한 이삿집센터 사무실 앞으로 옮겼다. 그때쯤이면 동네 아저씨들이 하나 둘 파라솔로 모여들어 소주 몇 병에 과자나 오징어 따위를 시켜 놓고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나누었기 때문이다.

 

아저씨들의, 정말이지 너무 시끄러운 수다는 보통 새벽 1~2시가 되어서야 끝났다. 정신장애 아줌마와 알코올중독 아저씨는 동네 아저씨들의 수다가 끝날 때까지, 소리를 지르고 욕을 하고 이상한 노래를 불렀다.

 

그러다가 새벽 2~3시쯤 되면 둘 중(가운데 옮긴이) 하나는 길 한복판에 뻗어 있기 일쑤였다.

 

그러면 슈퍼 아저씨가 112를 눌렀고, 5분도 안 돼서 경찰차가 도착했고, 집에 들어가기 싫어서 길에서 자겠다는 사람과 차가 다니는 길 위에서 이러면 안 된다고 하는 경찰관들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졌고, 그 실랑이는 보통 한 시간 가까이 계속됐다. 그런 일이 거의 매일 벌어졌다.

 

(그래서 옮긴이) 이사를 하려고 몇 번 시도했었다. 하지만 돈이 부족했다(모자랐다 옮긴이). 사실 집이라기보다는 옥상에 임시로 설치한 창고 비슷한 무엇이라는 표현이 적절한 곳에서 36개월 넘게 살다가, 그토록 꿈꾸던 도서관 밑에 위치한(자리한 옮긴이) 벽돌로 만들어진 진짜 집으로 이사 간 것만 해도 기적이었다.

 

당시 나는, 물론(勿論. 말할[] 것도 없이[] - 옮긴이) 베스트셀러 작가가 된 뒤 순식간에 다 갚긴 했지만, 수억 원에 달하는 보증 빚을 지고 있었고, IMF(국제통화기금. 여기서는 국제통화기금이 관여한, 서기 1997년 한국에서 일어난 한국 정부의 구제금융신청과 그 때문에 일어난 국가 부도의 날을 일컫는 말로 쓰였다 옮긴이) 직격탄을 맞아 전(옮긴이) 재산을 경매(競賣. 법원 또는 집행관이 동산이나 부동산을 일반에게 공개하여 팔아치우는 일 옮긴이)당하고 몰락해버린 우리 집의 생활비를 대고 있었다. 나는 거지나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나의 이사 시도란 것도 근처 부동산을 찾아가서 하소연을 늘어놓다가, 지금 가진 돈으로는 어렵겠다는 말을 듣고 체념한 얼굴로 다시 그분들(알코올중독 아저씨/슈퍼 주인아저씨/정신장애 아줌마 - 옮긴이)이 계신 그 골목으로 돌아오는 게 전부였다.

 

최악의 독서 환경 아래서 힘들어하던 나에게 힘을 준 것은 천재들이었다. (근세조선의 실학자인 옮긴이) 정약용은 하루아침에 죄인으로 몰려 강진으로 유배됐다. 감옥과도 같은 그곳에서 그는 복사뼈에 구멍이 세 번이나 날 정도로 치열하게 독서했다. (근세조선 후기의 임금인 옮긴이) 정조는 끝도 없이 밀려드는 정무(政務. 정치[]상의 사무[]/행정 사무. 그러니까 나랏일 옮긴이)와 당파싸움(붕당정치가 과열되어 나타난 정치투쟁 옮긴이) 그리고 암살 위협에 시달리면서도 책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들에게 인문고전 독서는 피난처이자 휴식처였다.

 

피렌체에서 화형 선고를 받았던 단테는 추격자들(쫓아오는 사람들 옮긴이)을 피해 도망 다니던(달아나던 옮긴이) 와중에도 인문고전을 읽고 글을 썼다. 당시 그는 기본적인 의식주조차 제공받지 못했다고 한다.

 

병약한 몸이었던 파스칼은 잠을 이루지 못할 정도의 치통, 머리가 빠개질 듯한 두통, 위와 기관지에 생긴 질병, 뇌의 심각한 장애 등으로 고생하면서도 인문고전 독서에 몰두했다.

 

노벨 평화상을 받은 슈바이처는 아프리카의 살인적인 더위 속에서도 매일 인문고전을 읽고 연구했으며, 후일(後日. 뒷날 옮긴이) 포로수용소에 수감되었을 때조차 아리스토텔레스의정치학 을 몰래 반입해서 읽었다.

 

물론 천재들 중에는 참으로 좋은 환경에서 독서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하지만 상상하기도 힘든 가혹한 환경 아래서 뜨겁게 독서한 사람들도 많다.

 

한편으로 나는 좋은 환경에서 독서했던 데카르트나 베이컨(프란시스 베이컨 옮긴이) 같은 사람들도 만일 정약용이나 파스칼 또는 슈바이처 같은 환경에 처했다면, 좋은 환경에서 책을 읽던 것과 똑같은 열정으로 뜨겁게 독서했으리라고 믿는다. 그들은 인문고전 독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환경이 아니라 마음의 열정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사람들이었으니까 말이다.

 

아무튼 나는 최악의 환경 속에서도 마음의 중심을 잃지 않고 인문고전 독서에 몰입해서 위대한 업적을 이룬 천재들을 만난 뒤, 나의 열악한 독서 환경을 도리어 감사하는(고마워하는 옮긴이) 쪽으로 돌아섰다.

 

나도 비정상적인 환경 아래서 독서하고 있으니까 평범한 나에게도 뭔가 비정상적인 일, 그러니까 천재들만큼은 아니더라도 그에 준하는 수준의 어떤 변화, 즉 두뇌의 변화로 인한 새로운 차원의 지적 깨달음 같은 것을 얻게 되는 일이 일어나려나 보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 생각이 점차 깊어지다 보니 나중에는 정신장애 그분과 알코올중독 그분 그리고 슈퍼의 그분은 어쩌면 나를 도와주기 위해서 내려온 천사일지도 몰라, 이런 생각마저 하게 되었다.

 

그런 비현실적인 마음가짐 덕분일까. 나는 그 동네에서 굉장히 비현실적인 독서, 그러니까 독서가 주가 되고 다른 모든 것 심지어는 나 자신조차도 부록으로 밀려나는 독서를 할 수 있었고 비현실적인 성장을 할 수 있었다.

 

- 이지성, 리딩으로 리드하라 , 217 ~ 221

 

- 리딩으로 리드하라 ( 작은 제목 세상을 지배하는 0.1 퍼센트의 인문고전 독서법 . ‘이지성지음, ‘차이정원펴냄, 서기 2016)에서

 

- 단기 4357년 음력 13일에, 개마두리가 이 글을 인용/소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