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 1941 ~ 1945, 태평양전쟁 - (3)

개마두리 2024. 10. 9. 23:15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과 레이테 해전 그리고 가미카제

 

드디어 1차 최종 목표인 사이판 전투에 도달했다. (서기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19446월이다.

 

한편으로 일본군은 사이판 섬의 지형을 배경으로 단단한 진지를 구축했다. 더불어 총력을 기울인 일본 함대의 작전도 시작되었다. 미군도 이번엔 이 일본 함대와 싸워야 한다. 미드웨이와 과달카날을 둘러싼 전투 이후 다시 한 번 대규모 해상전투가 벌어졌다.

 

하지만 결과는 일방적이었으며 이는 예상된 바이기도 했다. 함대와 항공기의 규모와 성능, 무엇보다 병사들과 조종사들의 전투능력에 이르기까지 미군은 일본군을 모든 측면에서 압도하고 있었다.

 

먼저 일본군 항공기들이 몇 차례에 걸쳐 미 항공모함 함대를 향해 출격했다. 그러나 이들은 앞서 지키고 있는 미군 전투기들에 의해 속속들이 격추되었고 일부가 이 방어선을 지나 미 함대에 도달했어도 그 함대에서 몰아치는 대공포에 의해 거의 남김없이 파괴되었다. 격추된 일본군 항공기는 거의 400대에 달한 반면, 미군 항공기의 피해는 수십 대에 불과했다(지나지 않았다 옮긴이)

 

미 함대의 손상도 경미했다. 반대로 일본 함대를 찾아나선 미 항공기들은 일본 함대에 치명적인 타격을 주었다. 이 전투를 미군은 마리아나의 위대한 칠면조 사냥이라 불렀다. 얼마나 처참하고 일방적인 전투였는가를 전해주는 말이다.

 

반면 육지인 사이판 섬에서의 전투는 처절했다. 일본 육군이 작정하고 진지를 구축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 이후 일본군 함대와 항공기의 지원이 사라진 이상 점령 자체는 기정사실이었다. 사이판은 마침내 미군의 손에 떨어졌고, 곧바로 비행장이 건설되었다. (이로써 옮긴이) 일본 본토는 미 폭격기의 사정거리 안에 확실하게 포착되었다.

 

일본이 전쟁을 중지하고 강화를 할 수 있었던 첫 번째 시점이 여기일 것이다. 강화조건은 중국(중화민국 옮긴이)과 동남아에 주둔한 모든 군대를 철수시키고, (2차 대전 때 손에 넣은 옮긴이) 점령지에 대한 권한을 포기하는 것이다. 이렇게 했으면 원폭에 따른 무조건 항복과 미군의 본토 점령을 면할 수 있었다. 적어도 일본 본토는 다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일본은 상상에서조차 이런 생각을 하지 않았다. 아직 남은 병력과 전력이 있으므로 어떤 국가(나라 옮긴이)라도 이런 상황에서 전쟁 중지를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그래도 불가능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일본의 경우는 이와 같은 일반론을 훨씬 뛰어넘는다.

 

일본은 본질적으로 전쟁을 중지할(멈출 옮긴이) 수 없는 나라다. 왜냐하면 전쟁을 중지할 경우(중지하면/멈추면 옮긴이) 해당 정부나 정권만 무너지는 게 아니라 일본 지배계급 전체가 무너지고 사회구조 자체가 변하기(바뀌기 옮긴이) 때문이다. 바로 이 점이 히틀러의 나치(이른바 도이칠란트 제 3 제국’ - 옮긴이)와 일본의 차이다.

 

나치 정부는 독일(도이칠란트 옮긴이) 역사가 경험한(겪은 옮긴이) 여러 정치체제 중의(가운데 옮긴이) 하나, 그것도 특수한 예에 불과하다(지나지 않는다 옮긴이). 전쟁에 패배하거나 중간에 불리한 강화를 하면 히틀러와 나치당과 그들을 둘러싼 무리들만 사라지면 된다. 그래도 새로운 형태의 정부와 사회체제를 구성할 수 있는 사람과 여건이 얼마든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일의 일부 장군들은 히틀러를 암살하려고 했다. 전쟁(2차 세계대전 - 옮긴이) 후반 불리한 전황 속에서 히틀러가 무모한 희생을 강요하자 장군들이 들고 일어선 것인데, 비록 실패했지만 그들로서는 자신들과 나치만 물러나면 그만이었던 것이다. 그렇게 되면 병사와 국민의 희생이 더 이상 없을 것이고 나머지는 다른 세력이나 사람들이 처리하고 이끌어가면 된다. 운이 좋으면 강화를 체결한 자신들이 새 정부를 이끌어 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일본엔 이런 대안이 없다. 일본은 봉건시대의 무사정권(그러니까, 가마쿠라 막부나 무로마치 막부나 에도 막부 같은 막부 옮긴이) 이래 당시(2차 세계대전 때 옮긴이)까지도 사실상 무사들이 지배하는 정권이다(이에 대해서는 뒤에서 논한다). 모든 지배계급과 사회구조가 이 체제에 얽혀 있으므로, 전쟁을 중지했을 경우 누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그러니 옮긴이) 히틀러처럼 특정인을 암살한다고 (문제가 옮긴이) 해결되지 않는다. 천황(왜왕[倭王] - 옮긴이)을 포함해 다 똑같은 자들이라서, 쉽게 말하면 일본은 지배계급 전체가 작은 히틀러들의 집합이었기 때문이다.

 

그 작은 히틀러 중의 하나, 예를 들면 천황(당시에는 히로히토. 이 자는 오늘날의 왜왕인 나루히토의 할아버지다 옮긴이)이나 당시 수상이던 도조 히데키를 제거한다고 해서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실제로 도조 히데키는 마리아나 해전 이후 해임되었다).

 

무엇보다 전쟁의 중지는 지배계급 일부가 아닌 전체가 통째로 사라지는 것이므로 그들로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상황이다. 자신들 외에(자신들을 뺀 옮긴이) (나머지 옮긴이) 국민들 전부를 죽이는 한이 있어도 버텨야 하며, 무사정권이란 본래 이 무자비한 논리를 전제한 정권이다. 따라서 결과가 무엇이든 이 전쟁은 중지될 수 없다. 이 역시 일본의 역사(歷史. 순수한 배달말로는 갈마’ - 옮긴이)를 겨냥하는 결정적 징후의(징후들 가운데 옮긴이) 하나다.

 

이것이 얼마나 근원적인 문제인가는 마리아나의 칠면조 사냥과 사이판 점령 이후 곧바로 벌어진 필리핀의 레이테 섬 상륙작전과 그 주변에서 벌어진 레이테 해전, 그리고 거기에서 처음으로 등장한 공포의 가미가제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레이테 섬에 미군이 상륙하여 필리핀에 주둔한 일본군을 공격할 준비를 하자, 일본은 남아 있는 모든 해군을 모아 최후의 해상전투를 벌인다. 복잡한 작전을 구상하여 일부 성공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영웅적인 미 해군의 항전과 일본군의 우매함으로 무화된다(‘없던 것이 된다’? - 옮긴이). 결과적으로 일본군은 아무것도 해내지 못한다.

 

미군의 주력 함대를 유인하기 위해 출동한 일본의 항공모함들에는 마땅히 탑재되어야 할 전투기조차 없었다. 전투기는 있었어도 조종사가 없었다는 것이 이유(까닭 옮긴이) (가운데 옮긴이) 하나일 것이다. 이 항공모함들은 다 침몰했다.

 

일본이 국력을 모아 만든 사상 최대의 전함 무사시야마토(오키나와 전투에서 격침됨)’도 변변한 전투 한 번 못하고 벌떼처럼 달려드는 수십, 수백 대의 미 항공기에 의해 속절없이 무너진다. 그러자 악마의 바람 같은 가미카제가 등장했다.

 

잘 알다시피 가미카제는 항공자살공격을 가리킨다. 섬 전투에서 일본 보병의 자살돌격과 달리 가미카제는 미군 함대에 적잖은 공포를 주었다. 이런 자살 항공기를 격추시키려고(격추하려고 옮긴이) 함상(艦上. ‘싸움배[]의 위[]’ 군함의 위 : 옮긴이)에서 대공포(對空砲. 하늘[]에 대고[] 쏘는 포[] 땅 위나 배 위에서 포탄을 쏴서 공중의 목표물인 미사일이나 전투기나 헬리콥터를 공격하는 포 : 옮긴이)를 쏘는 미군 병사들은 몹시도 괴로웠을 것이다. 명중시켰는데도 한가득 폭탄을 싣고 검은 연기를 뿜으며 자신들의 뱃전으로 날아드는 항공기의 모습은 참으로 끔찍했다. 성과도 없지 않았다. 가미카제는 수십 대의 미 항공모함과 전함을 침몰시켰으며(가라앉혔으며 옮긴이) 수백 대의 대소(大小. 크고 작은 옮긴이) 함정에 손상을 가했다. 또 태평양해역 사령관 니미츠를 포함한 미군 제독들의 심기를 어지간히 괴롭혔다.

 

그러나 전체 전황(戰況. 전쟁의 실제 상황 옮긴이)에는 영향을 주지 못했다. 수천 대가 날아올랐지만 대부분 중간에 격추되었으며, 그들의 전과는 미국의 막강한 함대 전력에 비추면 별 의미가 없었다. 가미카제에 익숙해지자, 어떤 미군들은 가미카제에 대해 공포 대신 블랙 코미디를 연상하기까지(떠올리기까지 옮긴이) 했다. 그들에겐 가미카제가 아예 전쟁 같지도 않았다.

 

가미카제에 대한 평가는 지금도 진행 중이다. 일본 우익과 그에 동조하는 사람들은 가미카제를 칭송하고 자랑스러워한다. 다른 사람들은 분노하고 역겨워한다. 그에 대해서는 더 말하지 않겠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가미카제는 극단의 인류학적 주제라는 것이다. 식인 풍습을 가진 부족처럼 가미카제도 그런 연구 대상 중(가운데 옮긴이) 하나다. 가미카제 논쟁은 일본의 현재 정치, 사회, 외교와 관련된 것이지만 그것이 지속되는 진정한(참된 옮긴이) 이유(까닭 옮긴이)는 이러한 인류학적 관심 때문이다.

 

나치의 유태인(유대인 옮긴이) 학살이나 일본 731부대의 생체실험처럼 가미카제는 인류가 잊을 수도 없고 잊어서도 안 되는 사건이다. 삶이 지속되는 한 인간은 이 괴상한 인간성의 측면을 좌시(坐視. 아무 일도 하지 않고서[] [] 옆에 앉아 보기만 하고 참견하지 않음 : 옮긴이)할 수 없다. 인간은 자기 안에 있는 이 괴물을 직시하고 이해해야 한다. 이것이 가미카제의 진정한 의미(참뜻 옮긴이).

 

대관절(大關節. 여러 말 할 것 없이 요점만 말하건대 도대체 : 옮긴이) 일본(근대 왜국[倭國] - 옮긴이)은 뭘 위해 이런 작전을 구상했을까? 정말 효과가 있을 거라 생각했던 걸까? 나는 그렇게 생각지 않는다. 실은 일본군사령부도 이 사실을 모르지 않았다.

 

그럼 이 작전의 실체는 무엇인가? 이 작전(가미카제 특공대로 미군을 공격하는 작전 옮긴이)의 본질은 ‘1억 옥쇄를 주장하는 일본 지배계급이 국민들을 다 죽여도 전쟁을 중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가미카제의 희극 또는 비극의 본질이자 일본 우익이 떠드는 일본 혼과 천황론의 핵심이다.

 

(그러니까 옮긴이) ‘일본 지배계급을 위해 모든 국민이 먼저 죽으라.’는 것인데, 바로 이것이 일본식 충/효 사상의 실질적 내용이다. 또 그들의 진심이자 명문화된(明文化[]로 뚜렷하게[] 밝힌[] - 옮긴이) 신념이다.

 

천황(왜왕[倭王] - 옮긴이)을 위해 백성이 존재하지 그 반대가 아니라는 것으로 당시 일본 헌법에 명시(明示. 분명하게 드러내 보임 옮긴이)된 문구(글귀 옮긴이)들이 실제로 의미하는(뜻하는 옮긴이) 것이다. 더 나아가 이것은 백성을 우선하여 왕도정치를 내세운 (동아시아 옮긴이) 대륙의 정통 유교 전통과 구분되는 결정적인 지점이기도 하다.

 

사이판보다 일본에 더 근접한 이오지마 섬(한자 이름은 유황도’. 일본열도에서 동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다 옮긴이)이 함락되고 일본 본토인 오키나와(이 표현에는 동의하지 않는다. 유구[琉球]일본 본토가 아니기 때문이다. 그냥 이오지마 섬보다 일본에서 더 가까운 곳에 있는 섬들인 유구라고 썼다면 더 정확했을 텐데! 옮긴이)가 점령되어도 이 본질은 변하지 않았다.

 

도대체 일본 지배계급은 언제 전쟁을 멈추는 걸까?

 

(옮긴이) 답은 국민이 아닌, 지배계급 자신들이 죽게 되는 상황에 임박할 때이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떨어지고 만주에서 소련이 공격을 시작하자 일본은 항복했다. 이 두 가지가 아니었으면 일본은 더 오래 싸웠을 것이다. 아직은 지배계급이 벙커에 숨어 국민들을 총알받이로 쓸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원자폭탄과 소련의 개전(開戰. 전쟁을 시작함 옮긴이)은 이 기회가 더 이상 없다는 것이 분명해졌음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들은 전쟁을 멈추었다.

 

이 본질적인 공식이 얼마나 확고한가는 맥아더가 일본을 점령했을 때 보여준 일본 지배계급의 태도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자신들의 목줄을 당장 조일 수 있는 권력이 등장하자(나타나자 옮긴이), 일본 지배계급은 마치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맥아더를 숭배했다. 그중에서도 선두에 있던 자가 다름 아닌 천황(히로히토 왜왕 옮긴이)이다.

 

과거에는 어땠냐고? 마찬가지다. 전쟁과 평화를 규정하는 일본의 공식은 고금(古今. 옛날과 오늘날 옮긴이)을 통해서 하나뿐이다. 지배계급 자신의 안위(安危. 안전함[]과 위태로움[] - 옮긴이)가 어디에 있느냐는 것이다. 물론(勿論. 말할[] 것도 없는[]<일이지만> - 옮긴이) 어느 나라의 지배계급도 자신의 안위를 중심으로 전쟁과 평화를 가름한다. 그러나 어떤 곳에도 일본 무사 정권만큼 극단적인 지배계급은 없었다.

 

( 4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