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동화

▩노예

개마두리 2011. 12. 10. 15:09

 

어떤 사람이 노예를 부렸습니다. 노예는 그 사람을 위해 모든 일을 다 해야 했죠. 노예는 자기 주인을 씻겨주고, 머리를 빗어주고, 음식을 잘게 잘라서 주인의 입에 넣어주었습니다. 노예는 주인의 편지를 대신 써주고, 구두를 닦아주고, 양말을 기워주고, 장작을 패주고, 난롯불을 피워주었습니다. 노예는 주인이 산책하다가 산딸기를 보면 그것을 따서 주인 입에 넣어주어야 했습니다.

 

주인은 노예가 달아나지 못하도록 언제나 그에게 사슬을 채워두었습니다. 그는 노예를 밤낮으로 묶어두어 노예가 사슬을 질질 끌고 다니게 해야 했습니다. 안 그랬다가는 노예가 달아날 테니까요. 또 그는 늘 한 손에 채찍을 들고 다녔습니다. 노예가 사슬을 잡아끌거나 끊어뜨렸을 때 채찍질을 해야 했기 때문이죠. 그러다가 주인의 손이 아프고, 노예를 채찍질하다 자신이 완전히 탈진하게 되면, 그는 노예와 노예에게 채워진 사슬 등 노예의 모든 것에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주인은 가끔가다 자신이 젊었을 때, 그러니까 노예를 가지지 않았던 시절을 남몰래 돌아보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숲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계속 이렇게 사슬을 잡아당기지 않고서도 산딸기를 딸 수 있었죠.

 

이제 그는 혼자서는 화장실조차 갈 수 없었습니다.

 

첫째, 그랬다가는 노예가 달아날 테고, 둘째는 누가 대신 주인의 뒤를 닦아준단 말입니까? 그 자신은 한가롭게 그런 일을 할 손이 전혀 달려있지 않았으니까요.

 

한 번은 그가 노예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는데, 누군가가 다가와서 “좋아, 그렇게 끔찍하면 왜 노예를 풀어주지 않는 거지?”라고 물었습니다. 그는 “그랬다가는 녀석이 날 목 졸라 죽일걸요!”라고 대답했죠.

 

하지만 주인은 남몰래 (노예로부터의 - 옮긴이) 자유를 꿈꾸었습니다.

 

그리고 노예는요, 노예도 자유를 꿈꾸었을까요?

 

아니오. 노예는 자유를 포기한 지 오랩니다. 노예는 오로지 자기 자신이 주인이 되어 주인을 사슬로 묶은 다음 끌고 다니면서 채찍질을 하고 그에게 자신의 뒤를 닦게 하는 일만을 꿈꾸었습니다. 그걸 꿈꿨다고요!

 

― 마르틴 아우어의『이상한 전쟁』에서 (문법에 맞지 않는 표현은 고쳤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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