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동화

▩현대인

개마두리 2012. 1. 13. 17:29

 

한 젊은이가 사막을 건너가다가 길을 잃게 되었습니다. 가도 가도 끝없는 사막의 모래 언덕만 나올 뿐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습니다. 뜨거운 모래 바람은 잠시도 쉬지 않고 계속 불어왔습니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걸음을 옮길 때마다 젊은이의 발걸음은 천근과도 같았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젊은이의 몸과 마음은 마른 낙타풀처럼 바짝 말라갔습니다.

 

“아, 엄마가 보고 싶구나.”

 

젊은이는 고향에 계신 어머니를 떠올렸습니다. 그리고 더 이상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고 모래 언덕에 쓰러져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낙타 한 마리가 지나가다가 젊은이 앞에 무릎을 굽히며 말했습니다.

 

“젊은이여! 힘을 내서 일어나 내 등에 타게.”

 

젊은이는 낙타 등에 타려고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애를 써도 낙타 등에 탈 수가 없었습니다. 겨우 일어나 한 걸음 내딛다가 그대로 쓰러질 뿐이었습니다.

 

“젊은이여, 어서 일어나 내 등에 타게.”

 

낙타는 젊은이에게 어서 타라고 재촉했습니다. 그러나 젊은이는 더 이상 꼼짝할 수도 없었습니다.

 

낙타는 이제 더 이상 젊은이를 기다려줄 수가 없었습니다. 낙타는 젊은이를 그 자리에 둔 채 길을 떠났습니다. 젊은이가 떠나가는 낙타를 안타까운 눈빛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자 낙타가 또 말했습니다.

 

“젊은이여, 저기 멀지 않는 곳에 오아시스가 있네. 거기로 가게.”

 

젊은이는 눈을 들어 낙타가 말한 곳을 바라보았습니다. 낙타의 말대로 정말 멀리 푸른 숲이 보이고 사람인 듯 검은 점들이 움직이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젊은이는 그곳을 향해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다해 거의 기어가다시피 한 걸음 한 걸음 발걸음을 떼었습니다. 다가가면 갈수록 그곳은 오아시스임이 분명해 보였습니다. 젊은이는 이제 살았다 싶었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젊은이의 마음 한구석에 의구심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이 사막 한복판에 오아시스가 있을까. 낙타가 괜히 한 말이 아니었을까. 이 황막한 사막 어디에 샘이 있고 숲이 있을 수 있단 말인가. 이건 분명 내가 신기루를 보고 있는 걸 거야.’

 

한 번 그런 생각이 들자 젊은이는 다시 뜨거운 모래밭에 쓰러져 한 발자국도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차차 시간이 지나자 젊은이는 혹시 자기가 잘못 생각할 수도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게 혹시 진짜 오아시스인지도 몰라. 낙타가 왜 나한테 그런 거짓말을 했겠어. 아마 내가 잘못 생각한 걸 거야. 빨리 일어나서 가야 해.’

 

젊은이는 비록 기진맥진한 몸이었지만 고향의 어머니를 생각하며 마지막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다시 그곳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그렇게 얼마쯤 걸어갔을까요. 드디어 커다란 야자수 잎과 푸른 풀들이 보이기 시작했고 샘도 보였습니다. 낙타가 말한 오아시스가 바로 눈앞의 현실 속에 전개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젊은이는 마음속에 한번 일기 시작한 의구심을 쉽게 떨쳐버릴 수가 없었습니다. 이 메마른 사막 한가운데에 어떻게 맑은 샘물이 솟아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자신이 헛것을 보고 있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이건 분명 환상이야. 빨리 이 환상에서 깨어나야 해.’

 

젊은이는 환상에서 깨어나려고 머리를 뒤흔들고 눈을 비볐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맑고 시원한 물소리까지 들려왔습니다.

 

‘아, 이번에는 환청까지!’

 

젊은이는 환청의 물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양손으로 귀를 틀어막았습니다.

 

그래도 물소리는 계속 들려왔습니다. 젊은이는 아예 자신의 머리를 모래 구덩이 속에 힘껏 처박아버렸습니다.

 

그 뒤 낙타를 끌고 온 두 명의 상인이 낙타에게 물을 먹이려고 샘터에 왔다가 양손을 샘가에 축 늘어뜨린 채 죽어 있는 한 젊은이를 발견했습니다.

 

“아니, 이 젊은이가 왜 여기에 와서 죽어 있나? 여기까지 와서 목이 말라 죽어 있다니! 정말 이해할 수 없는 일이야.”

 

상인 중 한 명이 참으로 알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가로저었습니다. 그러자 또 한 사람의 상인이 혀를 끌끌 차면서 말했습니다.

 

“이보게, 그건 말이야, 이 젊은이가 현대인이기 때문이야.”

 

― 정호승 시인의 동화

 

* 출처 :『의자』(정호승 지음, 열림원 펴냄, 서기 201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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