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파를 심고 죽은 사람

개마두리 2011. 12. 12. 17:48

 

 

아주 오랜 옛날에는 사람들이 서로 만났을 때, 이따금 상대방이 사람이 아니라 소로 보였다고 한다.

 

그래서 사람을 소인 줄 알고 잡아먹는 일이 자주 일어났다.

 

소인 줄 알고 죽인 사람이 자기 어머니였고, 자기 아버지였고, 자기 자식이었고, 자신의 형제였던 것이다.

 

한 번은 어떤 사람이 밭을 매다가 가랑비를 피해 처마 밑에 서 있으려니, 소 한 마리가 거기로 들어왔다. 그 사람은 소를 돌로 때려서 잡아먹었다. 그런데 잡아먹고 나서 보니 자신의 동생이 아닌가. 그는 너무 끔찍해서 “아이쿠, 세상에 이런 끔찍스러운 일이 어디 있는가!”라고 소리치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는 ‘세상에 이런 끔찍한 나라가 어디 있나? 사람들끼리 서로 짐승인 줄 알고 잡아먹는 나라가 어디 있다고?’라고 생각하고 자신이 살던 나라를 떠나기로 했다.

 

그는 나그네가 되어 이 세상을 두루 돌아보기로 했는데, 이 세상 어딘가에는 사람들이 서로 아끼고 사랑하며 서로 잡아먹지 않는 나라가 있으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나그네는 넓고 넓은 세상을 갖은 고생을 겪으며 헤매고 다녔다. 어떤 때는 굶어 죽을 뻔했고, 어떤 때는 얼어 죽을 뻔했고, 어떤 때는 목이 말라 죽을 뻔했고, 어떤 때는 전쟁터에서 헤매기도 했다.

 

세월은 그러는 동안 빠르게 흘러, 어느새 나그네의 얼굴에는 주름살이 잡히고 머리는 하얗게 세었다.

 

나그네는 세상을 헤매다가 파란 바람이 부는 한 나라에 당도했는데, 바람은 향긋하고 공기는 거칠지 않아 그가 평생동안 찾은 나라다웠다.

 

그는 그 나라의 마을 어귀에 서 있는 한 노인에게 “여보시오, 말 좀 물어 봅시다. 이 나라 사람들은 사람과 소를 구별하여 보는데, 무슨 비결이라도 있나요?”라고 물어보았고, 노인은 크게 웃고 나서 “웬걸요. 옛날에는 이 나라에서도 사람들이 사람을 소로 봤어요. 심지어 미루나무 위에 올라가서 가지를 치는 사람도 소로 보여서 생사람을 죽인 일도 있지요. 그렇지만 사람들이 파를 먹고 난 다음부터는 사람은 사람으로, 소는 소로 보여서 평화로운 나라가 되었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는 노인에게 “생전 처음 듣는 이야긴데, 도대체 파라는 게 뭐지요?”라고 물어보았고, 노인은 그를 파밭으로 데리고 가서 파가 어떻게 생겼는지를 보여주었다. 나그네는 노인에게서 파 씨를 얻어서 젊었을 때 떠난 자기 나라로 돌아갔다.

 

나그네는 노인이 가르쳐준 대로 옛 자기 집 텃밭에 파 씨를 심고나서 옛 벗들을 찾아갔다. 그가 벗들에게 반가운 목소리로 “여보게, 내가 보고 겪은 먼 나라 이야기를 들려주겠네!”라고 말하자, 그들은 “이 소가 참 이상하게 우네!”라고 말하면서 도끼를 들고 모여들었다. 그가 깜짝 놀라 “아니야, 나는 소가 아니야. 나는 자네들의 옛 동무야!”라고 소리쳤지만, 그들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도끼로 그를 때려죽인 뒤 잡아먹었다.

 

그러나 파 씨는 그의 텃밭에서 향기를 뿜으며 파랗게 자랐고, 사람들은 파 밭을 지나가다가 파 향기에 이끌려 파를 조금씩 뜯어먹었다.

 

그 뒤 온 나라 사람들이 파를 먹게 되었다. 사람들은 파를 먹고 난 다음부터 사람을 사람으로 보기 시작했다. 그 때부터 사람을 소로 알고 잡아먹는 일이 사라졌다고 한다.

 

― 우리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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