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산토끼의 꼬리

개마두리 2011. 12. 13. 19:16

 

아주 오랜 옛날 동물들은 꼬리가 없었다. 개들도 꼬리가 없었고, 고양이들도 말도 모두 꼬리를 갖고 있지 않았다. 소와 당나귀, 돼지와 산토끼, 사자와 코끼리도 꼬리가 없었다. 모든 동물과 가축이 꼬리가 없었다.

 

창조주가 보니 그 모습이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창조주는 수많은 꼬리를 만들었다. 긴 꼬리도 만들고 짧은 꼬리도 만들고, 큰 꼬리도 만들고 작은 꼬리도 만들었다. 꼬리를 다 만들자 창조주는 동물들에게 모두 와서 꼬리를 하나씩 가져가라고 했다.

 

그 소식을 가장 먼저 들은 말이 창조주의 집을 향해 출발했다. 말은 털이 북슬북슬한 꼬리가 맘에 들어서 말총을 선택했다. 말총으로 파리를 쫓으면 좋을 것 같았다.

 

‘파리가 오기만 하면 채찍을 가하리라.’

 

말은 매우 행복했다. 말과 함께 창조주의 전갈을 들은 돼지도 뒤늦게 창조주의 집에 도착했다. 돼지는 동그랗게 말리는 꼬리가 마음에 들었다. 돼지 생각에 큰 꼬리는 무겁고 더울 것 같았다.

 

다른 동물들도 꼬리를 얻으려고 창조주의 집으로 갔다. 동물들이 꼬리를 얻으러 가는 길목에는 산토끼의 집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그 당시 산토끼는 매우 게으른 동물이었다.

 

산토끼는 바위 위에 걸터앉아 하루 종일 햇볕을 쬐다가 사촌뻘 되는 다른 종류의 토끼가 다가오는 것을 보고 소리쳐 불렀다.

 

“사촌, 안녕하신가?”

 

“안녕하신가, 사촌?”

 

“사촌, 나를 좀 도와줘야겠는걸.”

 

산토끼는 곧 눈물이라도 떨어뜨릴 듯이 흐느끼며 말했다. 토끼가 물었다.

 

“어떻게 도와주면 되는데?”

 

“내 아이가……, 아이가 말이야. 아이가 무척 아파. 그래서 간호하느라 밤새 한숨도 잘 수 없었어. 잠이란 것을 잊은 지 오래야. 내가 이렇게 쉴 틈도 없이 아이를 돌봐야 하니 꼬리를 가지러 갈 수가 있어야지. 사촌, 내 꼬리를 좀 가져다 줄 수 없을까?”

 

산토끼는 거짓말을 하고 있었다. 사실 아이는 멀쩡한데 꼬리를 가지러 가기가 귀찮아서 핑계를 대고 있었던 것이다. 사촌 토끼가 대답했다.

 

“물론이지. 나중에 다시 보자. 아이가 어서 완쾌되길 바라.”

 

사촌 토끼는 다시 길을 떠났다.

 

사촌 토끼가 가고 나서 당나귀가 왔다. 당나귀는 걸어오면서 풀을 뜯고 있었다. 산토끼는 혹시라도 사촌 토끼가 자신의 꼬리를 가져오는 것을 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고 당나귀에게도 부탁해 두기로 했다.

 

“안녕하세요? 귀 큰 아저씨, 흑흑.”

 

산토끼는 훌쩍훌쩍 흐느꼈다.

 

“안녕, 무슨 일로 그렇게 울고 있는 거니?”

 

“이리 좀 와 보세요. 제가 드릴 말씀이 있어요.”

 

“미안하구나. 내가 좀 급하거든. 여기에서도 들을 수 있으니 말해 보렴. 무슨 문제지?”

 

“아저씨, 제발 안 된다고 말하지 마세요. 사실 제 아이가 무척 아파요. 저는 잠을 잔 게 언제인지 생각이 나지 않을 정도로 밤을 새워 가며 아이 곁에 앉아 간호를 하고 있어요. 지난밤에도 잠을 자지 못했어요. 잠은커녕 눈 깜박일 정신도 없었지요. 그래서 제가 꼬리를 가지러 갈 수가 없거든요. 아이 곁을 떠날 수가 있어야지요.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 제 꼬리를 좀 가져다 주세요.”

 

흔들거리던 당나귀의 귀가 번쩍 섰다.

 

“그거 어려운 문제도 아니로군. 너는 그냥 여기에서 아이를 돌보고 있어라. 아픈 아이를 혼자 둔다는 것은 안 될 말이지. 내가 꼬리를 가져다 주마. 네 아이가 빨리 나았으면 좋겠구나.”

 

“아저씨, 고마워요. 나도 정말 꼬리를 갖고 싶어요. 아저씨가 제 꼬리를 가져오기를 기다릴게요. 사실은 제 사촌 토끼에게도 부탁을 해 놓았거든요.”

 

많은 동물들이 산토끼의 집을 지나갔고, 그때마다 산토끼는 자기 꼬리를 대신 가져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동물들은 먼 길을 걷느라고 헉헉거리며 꾸역꾸역 창조주의 집으로 밀려들었다. 창조주의 집에 도착하자마자 동물들은 각자 자신에게 맞는 꼬리를 골라 엉덩이에 멋지게 붙였다. 당나귀는 길고 날씬하며 끝 부분에 털이 부스스한 것을 골랐고, 개코원숭이와 코끼리, 표범과 사자, 개와 고양이들도 각자 좋아하는 꼬리를 골랐다. 동물들은 저마다 아주 만족해 했다.

 

동물들은 기쁨에 들떠 하나 둘 집으로 돌아가기 시작했다. 모두들 자신들의 꼬리에 만족하고 도취되어 산토끼가 부탁한 일은 까맣게 잊었다. 동물들은 길을 걸으면서도 꼬리를 돌아보며 스스로 감탄했다. 당나귀는 풀을 뜯어먹는 것을 잊었고, 카멜레온은 산딸기를 까맣게 잊었고, 개와 고양이는 서로 싸우는 것을 잊었다. 이윽고 당나귀가 산토끼 집 앞을 지나가게 되었다.

 

“귀 큰 아저씨, 꼬리가 참 멋지네요.”

 

“나도 그렇게 생각해.”

 

산토끼는 자기에게 맞는 멋진 꼬리를 기대하면서 당나귀에게 물었다.

 

“그럼 내 꼬리는 어디에 있나요?”

 

“아 참, 네 꼬리는 지금 오고 있단다. 네 사촌 토끼가 가져오고 있는 것 같던데. 아마 바로 뒤에서 따라오고 있을 거야. 걱정하지 마. 네 꼬리를 받게 될 테니. 그런데 네 아이는 좀 어떠니?”

 

“예, 조금씩 좋아지고 있어요.”

 

산토끼는 당나귀가 자신의 꼬리를 가져오지 않았다는 사실에 조금 실망했지만 누군가가 자기 꼬리를 가져오고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되어 기뻤다. 산토끼는 귀 큰 당나귀 아저씨가 꼬리를 흔들며 아주 느릿느릿 걸어가는 모습을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바라보았다.

 

산토끼는 저 멀리서 사촌 토끼가 깡충거리며 뛰어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사촌, 잘 다녀왔어?”

 

“응, 이제 돌아왔어.”

 

산토끼가 감탄했다.

 

“꼬리가 아주 멋진데. 정말 좋겠다.”

 

사촌 토끼는 자기 꼬리를 자랑했다.

 

“내 꼬리 정말 멋있지? 내 꼬리가 보기 좋다니 기분이 좋은데. 네 꼬리도 금방 도착할 거야. 네 꼬리는 정말 멋지던데. 내 뒤를 따라오는 하이에나 아저씨가 가져오고 있어. 조금만 기다려.”

 

사촌은 산토끼에게 대답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깡충깡충 길을 떠났다. 산토끼는 사촌이 저 멀리 사라질 때까지 그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하이에나 아저씨는 나를 좋아하시지. 그래, 아저씨는 내 꼬리를 꼭 가져오실 거야.”

 

이윽고 하이에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어서 오세요, 아저씨. 아저씨가 내 꼬리를 가져온다고 사촌이 말해 주더군요. 내 꼬리는 어디에 있지요? 아저씨마저 내 꼬리를 두고 왔다고 말하지는 않겠지요?”

 

하이에나가 말했다.

 

“네 사촌이 너를 놀린 거야. 나는 네 꼬리를 가지고 있지 않은데. 누군가 네 꼬리를 가져오고 있겠지. 기다려 봐라. 다른 동물들이 뒤에 오고 있거든. 아이는 어떠니?”

 

“아……많이 좋아졌어요.”

 

산토끼는 동물들이 아이의 건강에 대해서만 묻는 데 넌더리가 났다.

 

“모두들 내 아이의 건강에만 관심이 있구나. 내 꼬리에 대해서는 관심들이 없어.”

 

뒤이어 수많은 동물들이 하나 둘 산토끼의 집을 지나쳤다. 모두들 꼬리를 달고 행복해 보였다. 동물들은 한결같이 누군가가 산토끼의 꼬리를 가져올 거라는 막연한 대답을 하고 지나가 버렸다. 마지막 동물이 도착했다. 산토끼는 가슴이 철렁했다.

 

산토끼가 카멜레온에게 빈정대는 투로 말을 걸었다.

 

“어이, 흔들거리는 친구.”

 

카멜레온이 웃으며 답했다.

 

“아, 너로구나, 꼬리를 가져오라고 했던 친구가.”

 

산토끼는 이 말을 듣고 카멜레온에게 화를 냈다.

 

“누구에게 그런 말을 하는 거지? 내 꼬리는 어디에 있어? 모두들 네가 내 꼬리를 가져오고 있다고 하던데?”

 

카멜레온이 웃으며 말했다.

 

“미안해. 꼬리가 하나도 남지 않았더라고. 아주 작은 꼬리까지도 동이 났어.”

 

산토끼는 잔뜩 실망해서는 터덜터덜 동굴로 돌아갔다. 그 후로 산토끼는 직접 가서 꼬리를 가져올 걸 하고 두고두고 후회했다고 한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동물들 중 유독 산토끼만 꼬리가 없는 이유다.

 

― 남아프리카의 줄루족 민담

 

*출처 :『세계 민담 전집 4 - 남아프리카 편』(장용규 엮음, 황금가지 펴냄)

 

※옮긴이의 말 : 그 산토끼는 처음부터 자기가 직접 창조주에게 가서 자기 꼬리를 받아 왔어야 했다. 만약 그랬다면 꼬리를 얻지 못해 후회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우리는 이 산토끼와 같은 작자들을 자주 보게 된다.

 

한 나라를 ‘민주화하려고’ 침략했기 때문에 침략한 나라는 잘못이 없으며, 오히려 침략당한 나라가 스스로 민주화하지 못했기 때문에 ‘당해도 싸다’는 말을 곧이곧대로 받아들이는 사람이나, 개인은 일정한 나이가 되면 부모나 집안의 동의 없이 배우자를 고를 수 있어야 한다는 말에 펄펄 뛰는 사람이 바로 오늘날 산토끼가 꼬리를 얻을 때 남에게 부탁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의 후손들인 것이다.

 

대체 산토끼가 아니면 누가 나서서 산토끼의 꼬리를 구한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아니면 누가 나의 권리를 챙겨준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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