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독 굴리기

개마두리 2011. 12. 10. 15:13

 

 

옛날에 한 머슴이 큰 독을 깼는데, 마침 마님이 잔칫집에 가고 없었다. 그는 "애고, 애고, 마님 아시면 나 죽네!"라고 말하면서 땅을 치고 엉엉 울었다.

 

집안 하인들은 그를 불쌍히 여겨 모두 돈을 모아 그에게 주고, "얼른 장에 가서 사다 놓게나."라고 했다.

 

그는 부랴부랴 장에 가서 커다란 독을 샀는데, 독이 어찌나 크던지 혼자 힘으론 끄덕도 안 하는 게 아닌가?

 

머슴이 '이걸 어쩔까나?'라고 생각하며 걱정하는데 마침 한 동네에 사는 김 서방이 지나갔다. 그는 김 서방에게 "여보(시오) 여보 김 서방, 이 독 좀 굴려 보세."라고 말했고, 김 서방은 독을 보더니 "거, 재밌겠네."라고 말하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당장 덤벼들었다.

 

머슴과 김 서방이 독을 굴렸지만, 독이 어찌나 크던지 둘의 힘으로는 끄떡도 하지 않았다.

 

머슴이 걱정하고 있는데 마침 마을 도령들 열 사람이 우르르 지나갔다. 그는 도령들에게도 "여보, 여보 도령님들. 이 독 좀 굴려 보세."라고 말했고, 도령들은 독을 보더니 "거, 재밌겠네!" 라고 말하면서 소매를 걷어붙이고 당장 덤벼들었다.

 

그들이 힘을 합해 독을 굴렸지만, 독은 열두 사람이 힘을 써도 꿈쩍하지 않았다.

 

머슴이 걱정하고 있는데 마침 고을 군졸(軍卒 : 병사)들이 끝도 없이 지나가는 게 아닌가. 그래서 그는 군졸들에게도 똑같은 말을 했고, 그들은 독을 보자마자 - 김 서방이나 도령들처럼 - 두말 않고 소매를 걷어붙이면서 덤벼들었다.

 

그러나 그 독은 너무 커서 사람들이 아무리 많이 달려들어도 끄덕도 하지 않았다.

 

머슴이 걱정하고 있는데 아장아장 겨우 걷는 세 살바기가 다가왔다. 그는 아이를 본 체 만 체하고 힘센 장사만 찾았지만, 아이는 아장아장 걸어가서 독을 '툭'하고 건드렸다. 독은 그제서야 흔들거리기 시작하더니 머슴이 일하는 집까지 구르고 굴러 마님이 오기 전에 장독대에 올라갔다.

 

- 우리 옛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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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 그러니 아무리 작은 도움이라도 우습게보지 맙시다. 그 도움이 상황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다른 뜻으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얼핏 보면 쉬운 일도 알고 보면 여러 사람이 오랜 세월동안 힘들여 이뤄놓은 것이라는 뜻으로요. 만약 머슴, 김서방, 도령들, 군졸들이 모여들어 독을 밀지 않았다면 아이가 독을 건드렸을 때 독이 집으로 굴러갔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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