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차돌 먹는 줄범 - 우리 옛이야기

개마두리 2011. 12. 9. 20:36

 

 

▣우리 선조들의 슬기를 알 수 있는 이야기라 이곳에 올립니다 : 옮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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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고을에 열 살 난 어린 아들과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어느날 승려 한 사람이 찾아와 문간에서 목탁을 치고 있었다. 어머니는 쌀을 바가지에 담아주며, 아들에게 그것을 공손히 갖다 드리라고 일렀다.

 

승려는 아들이 바가지를 들고 나오자 그의 얼굴을 한참동안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러더니 쌀을 받아 걸망(:걸머지는 바랑 - 옮긴이)에 부으면서 “얘야, 어머님 좀 뵙자고 전하련.”하고 말했다.

 

“우리 어머니요?”

 

“오냐. 내가 잠깐 말씀드릴 것이 있다고 여쭈어라.”

 

아들이 들어갔다가 곧 어머니와 함께 나오자, 그 승려는 합장을 하고 이렇게 말했다.

 

“빈승(貧僧 : 불교 승려가 스스로를 낮추어 일컫는 말 - 옮긴이)이 댁의 아드님을 보니, 상(:관상 - 옮긴이)이 좋지 않아 그냥 돌아설 수 없어서 아주머니를 뵙자고 했습니다.”

 

“스님, 우리 아이가 왜요?”

 

“스님, 어서 말씀해 주세요. 제겐 오직 하나뿐인 아입니다.”

 

승려는 좀 망설이다가, 천천히 말했다.

 

“아드님은 열두 살이 되면 줄범(: 호랑이를 일컫는 순우리말. 몸에 ‘줄’이 난 범이라고 해서 ‘줄범’이라고 부른다. 호랑이는 순우리말로 ‘담보’라고도 부른다 - 옮긴이)한테 잡혀먹힐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어머니는 승려의 말을 듣고 눈앞이 아찔하고 온몸이 떨렸다.

 

“스님, 그게 정말입니까?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제발 부탁이오니, 제 아들을 살려 주십시오.”

 

승려는 이렇게 말했다.

 

“아드님이 열두 살 되는 해의 생일이 되면 줄범이 올 것입니다. 그러니 빈승이 말씀드리는 대로만 하면, 그 나쁜 운명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겁니다.”

 

“스님, 어서 방법을 가르쳐 주세요. 부탁드립니다.”

 

“생일이 되면 찰떡을 찌십시오. 그리고 그 찰떡과 똑같이 생긴 차돌을 많이 모으세요. 그 다음 그것을 아이에게 줘서, 집 뒤란(:집채 뒤의 울안, 뒷뜰 - 옮긴이)의 바위 위에서 줄범을 기다리게 하십시오.”

 

듣고 보니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 다음에 일어날 일이 알고 싶어서 승려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스님, 그 다음엔요. 줄범이 나타나면요.”

 

“네. 줄범이 오면 줄범이 보는 앞에서 아이에게 찰떡을 맛있게 먹으라고 하십시오. 그러면 줄범도 먹고 싶어서 좀 달랠 것 아닙니까?”

 

“네 스님, 그래서요?”

 

“그러거든 줄범에게 찰떡을 주지 말고 찰떡과 똑같이 생긴 차돌을 주라고 하십시오. 그러면서 아이더러는 진짜 찰떡을 자꾸 맛있게 먹으라 하시고요.”

 

승려는 이 말을 마치자마자 어디론가 휙 사라져버렸다. 문득 정신을 차린 어머니는 ‘정말 이상한 일도 다 있다.’고 생각하며 한참을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어머니는 그 일이 있은 뒤, 틈만 나면 개울가로 가 찰떡과 비슷하게 생긴 차돌을 열심히 주워 모았다.

 

마침내 그 아이의 열두 번째 생일이 다가왔다. 어머니는 승려의 말대로 아들에게 찰떡과 차돌을 손에 쥐어주고, 집 뒤란의 바위에 앉아 있게 했다. 아이는 줄범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러자 잠시 후 골짜기에 온통 으르렁대는 소리가 울리더니 커다란 줄범 한 마리가 나타났다. 아이는 줄범을 보자 무서워서 기절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아이는 간신히 용기를 내 정신을 가다듬고, 어머니가 시킨대로 호주머니에서 찰떡을 꺼내 맛있게 먹기 시작했다. 줄범은 혓바닥을 꺼내 휘두르며 입맛을 다시면서 아이에게 덤벼들려고 했다.

 

“줄범아, 줄범아. 이 찰떡 참 맛있다. 이거 줄게 너도 먹어봐.”

 

아이는 호주머니에서 단단한 차돌을 꺼내 줄범한테 던져주었다. 줄범은 그것을 받아 낼름 입으로 가져가더니 억세게 깨물었다. 아이는 찰떡을 계속 맛있게 먹고 있었으며 그것을 본 줄범도 이빨에 힘을 주어 차돌을 열심히 깨물었다. 그러나 너무 힘을 주어서 그만 이빨이 다 부러지고 말았다.

 

줄범은 더럭(: ‘덜컥’과 같은 말임 - 옮긴이) 겁이 났다.

 

‘아니 이럴 수가! 나는 이빨이 부러져 먹을 수가 없는데, 저 아이는 아주 맛있게 먹네! 힘이 센 놈이구나! 이러다가 내가 잡혀 먹히겠는걸.’

 

줄범은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달아나고 말았다. 아이는 승려의 슬기로 무서운 범을 물리쳤던 것이다.

 

― 고은 시인이 엮으신『세상에서 가장 슬기로운 이야기』(동쪽나라 펴냄)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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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옮긴이의 말 : 힘 없는 이들은 꾀로 겁을 줄 수도 있어야 한다. 꾀와 슬기는 운명도 바꿀 수 있는 힘을 주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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