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노욕을 조롱한 시골 처녀

개마두리 2012. 8. 28. 16:01

 

 

* 노욕 : 노인의 욕심.

 

옛날 어느 가난한 집의 처녀가 천상의 선녀처럼 자랐다. 그는 마음도 착했고, 게다가 똑똑했다. 그의 아름다움과 똑똑함은 황제의 귀에까지 들어갔고, 황제는 매파(媒婆. 중매쟁이 - 옮긴이)인 노파를 그에게 보냈다.

 

노파는 황제의 명을 따라 “네가 바라는 것은 뭐든지 들어주마.”라고 말하며 처녀의 마음을 잡기 위해 애를 썼다.

 

처녀는 노파에게 “황제께서는 올해 나이가 몇이며, 처첩은 몇이나 됩니까?”라고 물었고, 노파는 의기양양하게 “올해 일흔이시며 처첩은 헤아리기 힘들 정도로 많지.”라고 대답했다.

 

그러자 처녀는 노파의 얼굴을 잠시 쳐다보더니, “그렇다면 제게 예단(혼인 예물 - 옮긴이)으로 이리 스무 마리, 불범(표범) 서른 마리, 사자 마흔 마리, 노새 예순 마리, 면화 일흔 근(斤. 중국에서 한 근은 500g임. 그러므로 일흔 근은 35kg 이다 - 옮긴이), 나무판자 여든 장을 주십시오.”라고 말했다.

 

노파는 황제에게 돌아가 그의 말을 전했고, 황제는 의아해하며 노파에게 그 말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지만, 신통한 대답을 들을 순 없었다.

 

이때 곁에 있던 한 대신(大臣)이 “그런 것들은 사냥꾼, 목동, 농부, 목수에게 구해 오라고 시키시면 그만이옵니다.”라고 말하자, 황제를 가까이서 모시는 시종 하나가 그 말을 듣고 살며시 입을 가린 뒤 고개를 돌리면서 키득키득 웃었다.

 

황제는 시종을 불러 “왜 웃었느냐?”고 물었고, 시종은 잠시 머뭇거리다가 차분한 목소리로 이렇게 대답했다.

 

“폐하, 소인(小人)이 웃은 까닭은 대신의 말씀이 틀려서이옵니다. 그 처녀가 요구한 예물들에 담긴 뜻은 이러합니다. 사람이 스무 살이 되면 마치 이리처럼 용감하고 민첩해지며, 서른이 되면 불범처럼 몸과 힘이 세지며, 마흔이 되면 사자처럼 위풍당당하게 굽니다. 하지만 예순 살까지 살면 나이든 노새처럼 힘이 빠지고, 일흔 살이 되면 (몸이 - 옮긴이) 솜처럼 물렁물렁해집니다. 그리고 여든까지 살면 다른 건 다 필요없고 널빤지만 있으면 그만이란 겁니다. 곧 죽으면 돌아갈 관(棺)을 짤 나무가 필요하단 말이지요.

 

그러니까 똑똑한 그 처녀는 지금 폐하께 필요한 것이 자신이 아니라 시신이 들어갈 나무 판자라고 말한 것입니다. 소인은 폐하께서 그런 것을 모르고 정색을 하면서 그 예물들을 준비하려고 하셔서 웃었사옵니다.”

 

황제는 시골 처녀의 신랄한 비웃음에 넋이 나가고 말았다.

 

- 김영수 선생(중국 전문가)이 들려준 옛날이야기

 

(『경향신문』서기 2012년 8월 27일자 기사에서 인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