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바다 사나이 신드바드 이야기 - 네 번째 여행

개마두리 2013. 5. 15. 21:00

 

세 번째 여행 이후의 안전하고 즐거운 삶도 바다 여행에 대한 나의 욕구를 완전히 억누르지는 못했습니다. 또다시 교역을 하고 새로운 것들을 보고 싶은 열정에 사로잡혔던 것입니다.

 

나는 주변을 정리하고, 가려 하는 지역에서 잘 팔릴 만한 상품을 구매한 뒤 출발했습니다. 우선 페르시아(오늘날의 이란 - 옮긴이)의 여러 도시를 거치고 바닷가의 어떤 항구에 이르러 배를 탔습니다. 우리는 돛을 올리고 항해를 시작하여 대륙의 여러 항구와 동방(남아시아인지 동남아시아인지가 분명하지 않음. 서[西]아시아인 바그다드에서 보면 둘 다 ‘동쪽 땅’이기 때문이다 - 옮긴이)의 몇몇 섬들을 들렀습니다.

 

그러나 어느 날 난바다(뱃사람이 배를 타고 ‘멀리 나온 바다’라고 해서 이렇게 부름. 뭍에서 멀리 떨어진 넓은 바다를 일컫는 말이다 - 옮긴이)를 지나고 있는데 갑자기 거센 폭풍이 불어왔습니다. 선장은 위험을 피하기 위해 필요한 모든 명령을 내렸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신중한 조치들도 아무 소용없었습니다. 돛들은 갈기갈기 찢어지고, 통제 불능 상태가 된 배는 암초에 부딪혀 박살이 나버렸습니다. 거기 탄 수많은 상인들과 선원들은 익사했고, 짐들은 물에 가라앉아 버렸죠 …….

 

날이 밝아 오는 것을 본 셰에라자드는 여기에서 이야기를 중단했고, 샤리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다음 날 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신드바드의 네 번째 여행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일흔아홉 번째 밤

 

다행스럽게도 나는 널빤지에 매달려 목숨을 구할 수 있었습니다. 나 말고도 여러 명의 상인들과 선원들이 같은 방식으로 살아남았습니다. 우리 모두는 해류에 떠밀려 앞에 보이는 섬으로 실려 갔고, 거기서 열매들과 샘물을 찾아내어 기력을 회복했습니다. 그리고 어둠이 깔리자, 앞으로의 대책을 세워 볼 생각도 못하고 그저 망연자실한 채 해변에 쓰러져 밤을 보냈습니다. 갑자기 밀어닥친 불행에 아무런 생각도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다음 날, 해가 뜨자 우리는 해변을 떠났습니다. 섬 안쪽으로 들어가니 마을이 보여서 우리는 기뻐하며 그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도착한 우리를 맞은 것은 엄청난 수의 흑인(실제로는 아프리카인이나 남아시아인이 아니라 오늘날의 파푸아 섬에 사는 멜라네시아 인으로 보인다. 멜라네시아 인도 피부와 머리카락이 검다. 인류학자들의 보고에 따르면 파푸아 섬에 살던 민족들은 수십 년 전까지 사람을 잡아먹었다 - 옮긴이)들이었습니다. 놈들은 우리를 에워싸 사로잡고, 자기네들끼리 몇 명씩 나누어서는 그들의 집으로 데려갔습니다.

 

나는 다섯 명의 동료와 한 집에 끌려갔습니다. 그들은 우선 우리를 앉히고 어떤 약초를 내놓으면서 먹으라고 몸짓으로 권했습니다. 흑인들 자신은 그것을 먹지 않았지만 이를 알아차리지 못한 동료들은 오직 배 속에서 아우성치는 배고픔에만 이끌려 탐욕스레 먹어 댔습니다. 하지만 나는 뭔가 수상쩍은 기미를 눈치채고 맛보는 것조차 거절했습니다. 그러고 잠시 후, 이런 나의 신중한 행동이 옳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을 먹고 정신이 이상해진 동료들이 그들 자신도 이해하지 못하는 헛소리를 지껄여 댔기 때문입니다.

 

그러고 나서 흑인들은 우리에게 야자 기름으로 요리한 쌀밥을 주었는데, 이미 이성을 잃은 동료들은 엄청나게 먹어댔습니다. 나도 먹었습니다만 아주 적은 양으로 만족했습니다. 흑인들이 약초를 먼저 준 까닭은 그것을 먹여 정신을 흐리게 함으로써 우리가 처한 서글픈 현실을 잊게 하고자 함이었습니다. 그 다음에는 쌀밥을 먹여 우리를 살찌우려는 속셈이었죠. 사실 그들은 식인종이었고, 우리가 피둥피둥해지면 잡아먹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 일은 내 동료들에게 실제로 일어났습니다. 풀을 먹고 분별력을 잃어버린 그들은 어떤 운명이 자신을 기다리고 있는지 몰랐던 거죠.

 

하지만 여러분도 짐작하셨겠지만, 이성을 잃지 않고 있던 나는 다른 이들처럼 살이 찌기는커녕 나날이 더 야위어만 갔습니다. 이걸 먹으면 죽는다 생각하니 음식물은 쳐다보기도 싫었고, 그렇게 나는 갈수록 쇠약해져 갔습니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나는 목숨을 건질 수 있었죠. 왜냐하면 동료들을 다 잡아먹은 흑인들이 나만은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네는 내가 바짝 마르고 병든 것을 보고는 나중에 죽이기로 했던 거죠.

 

그때 나는 많은 자유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흑인들은 내가 무얼 하든지 별로 신경 쓰지 않았으니까요. 그 덕에 나는 도망칠 기회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어느 날 슬금슬금 마을에서 벗어나고 있으려니까 어떤 늙은이가 나를 보고서 돌아오라고 고래고래 소리치더군요. 하지만 나는 그 말을 듣는 대신 발걸음을 더 재촉하여 그가 보이지 않는 곳까지 달아났습니다. 평소대로 다른 흑인들은 모두 날이 저물 무렵에나 돌아오게 되어 있었죠. 그때쯤이면 내가 도망친 것을 알게 된다 하더라도 뒤쫓아 올 수 없으리라 생각하면서 저녁때까지 쉬지 않고 걸었습니다.

그리고 잠시 멈춰 서서 미리 장만해 둔 약간의 음식을 먹으며 휴식을 취한 다음, 다시 출발하여 사람이 살 만한 곳을 피해 가며 이레 동안 줄곧 걷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나는 야자열매로 연명했습니다. 그것은 먹을 것과 마실 것을 동시에 공급해 주었죠.

 

여드레째 되는 날, 바닷가에 다다른 나는 저쪽에서 나와 같은 백인들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거기 지천으로 자라고 있는 후추나무에서 후추 열매를 따고 있었습니다(인도네시아는 예나 지금이나 후추를 포함한 향신료가 많이 난다 - 옮긴이). 후추를 먹는 사람들이 야만인일 리 없었으므로 저는 안심하고 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

 

이날 밤 셰에라자드는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그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여든 번째 밤

 

후추를 따던 사람들은 내게 다가왔습니다. 그리고 아랍어로 내가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지를 물었습니다. 나는 같은 말을 쓰는 사람들을 만난 것이 너무도 기뻐 기꺼이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 주었습니다. 어떻게 배가 난파되어 이 섬에 왔으며, 또 어떻게 흑인들에게 모두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아니, 사람을 잡아먹는 그 검둥이들 말이오? 대체 어떤 기적이 일어났기에 당신은 그 잔인한 놈들에게서 도망쳐 나올 수 있었단 말이오?”

 

내가 경과를 설명해 주자, 그들은 크게 놀랐습니다.

 

나는 그들이 바라는 만큼 후추를 딸 때까지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이 가져온 배에 함께 올라 다른 섬으로 갔습니다. 나는 거기서 그들의 왕에게 소개되었고, 이 훌륭한 군주는 내 이야기를 끝까지 경청해 주셨습니다. 사연의 기이함에 몹시 놀란 왕은 내게 새 옷을 입히고 잘 보살펴 줄 것을 분부했습니다.

 

그 섬은 인구가 아주 많고 각종 산물이 풍부한 곳이었으며, 왕이 사는 고을에서는 교역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나는 이 유쾌한 도시에 머물면서 지난 불행을 어느 정도 잊을 수 있었고, 더욱이 내게 항상 친절을 베푸시는 너그러운 왕까지 계시니 행복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사실 그분이 마음속으로 가장 아끼는 사람은 바로 나였습니다. 당연히 궁정과 이 고을의 모든 사람들도 내게 잘 보이려고 애썼습니다. 이렇게 해서 곧 이곳 사람들은 나를 이방인이 아닌, 이 섬에서 태어난 사람처럼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나는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왕을 포함한 모든 사람이 안장과 고삐와 발걸이 없이 말을 타고 다니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어느 날 나는 왜 전하께서는 이 편리한 것들을 쓰지 않으시느냐고 왕에게 물어보았습니다. 이에 왕께서는 그런 것들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했다고 대답하셨습니다.

 

나는 즉시 어떤 장인(匠人)의 집에 가서 도면을 보여 주고는 그대로 나무를 깎아 안장틀을 하나 만들게 했습니다. 그리고 내가 직접 그 위에다 금실로 수놓은 가죽을 씌우고 빵빵하게 속을 채웠습니다. 또 자물쇠 제조가에게 가서 내가 보여 주는 본대로 재갈과 발걸이를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이 모든 것들을 완벽히 갖추어 왕에게 바치자, 그분은 이 마구들을 자기 말 가운데 하나에 씌워 직접 시험해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에 몹시 만족하여 내게 큰 선물을 하사했습니다. 나는 같은 것을 여러 벌 만들어야 했습니다. 대신들이며 궁중 관리들이 자기들 것도 만들어 달라고 앞다투어 부탁해 왔기 때문입니다. 그들 역시 마구를 받고 몹시 좋아하며 제각기 선물을 주어, 나의 재산은 갈수록 불어만 갔습니다. 나는 이 고을의 유력 인사들에게도 그것들을 만들어 주었고, 이렇게 나는 이 섬에서 모든 사람들의 존경을 받는 유명 인사가 되었습니다.

 

나는 매일같이 궁정에 들어가 왕께 문안을 드렸는데, 하루는 그분이 이렇게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신드바드! 과인은 자네가 참 좋다네. 그리고 자네를 아는 과인의 신하들도 과인처럼 모두들 자네를 아끼고 있지. 그래서 오늘 과인이 자네에게 한 가지 부탁을 하려 하니, 꼭 좀 들어주길 바라네.”

 

“전하!” 내가 대답했습니다.

 

“전하에 대한 충성심을 증명하기 위해서라면 그 무엇이라도 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저는 다만 전하의 뜻을 받들 뿐입니다.”

 

“자네를 장가보내고 싶다네!” 그분이 말씀하셨습니다.

 

“자네는 혼인하면 더 이상 고국을 그리워하지 않고, 과인의 나라에 정붙이고 살게 되지 않겠는가?”

 

내가 감히 거부할 수 없어 잠잠히 있자, 그분은 한 아가씨를 신붓감으로 소개해 주셨습니다. 궁정에 드나드는 귀족 집안의 규수였는데, 아름답고 현명하고 부유한, 한마디로 나무랄 데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나는 혼인식을 마친 뒤 아내의 집으로 들어갔고, 우리는 이렇게 얼마 동안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부부로 지냈습니다. 하지만 내가 이런 상태에 완전히 만족하고 있었던 건 아니었습니다. 비록 이곳에서 안정된 삶과 수많은 특혜를 누리고 있었지만, 기회만 된다면 즉시라도 내 고향 바그다드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나와 아주 친밀한 우정을 맺고 지내던 이웃집 사내의 아내가 병이 들어 죽었습니다. 조문을 가보았더니 그는 혼자서 몹시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가 말했습니다.

 

“신께서 선생님의 건강을 지켜 주사, 장수를 허락하시길 빕니다.”

 

“아이고!”

 

이에 그가 길게 탄식하며 대답했습니다.

 

“내가 어찌 그런 걸 바랄 수 있단 말이오? 내 살날이 한 시간밖에 안 남았거늘!”

 

“아니, 선생님! 왜 그런 불길한 생각을 하십니까? 걱정 마세요! 그런 일은 결코 없을 겁니다. 제가 볼 때 선생께서는 아주 오래오래 사실 텐데요.”

 

이에 그가 다시 대답했습니다.

 

“당신이나 오래 살 수 있기를 빌겠소. 하지만 나는 이미 끝난 목숨이오. 오늘 내가 죽은 아내와 함께 땅에 묻혀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시오? 이것은 이 섬에서 조상 대대로 지켜 오는 관습이라오. 산 남편은 죽은 아내와, 그리고 산 아내는 죽은 남편과 함께 매장되어야 하는 것이오. 아무것도 나를 구해 줄 수 없소. 모든 사람이 이 법을 따르고 있으니까.”

 

사내로부터 이 야만스럽고도 기이한 풍속에 대하여 들은 나는 몸이 오싹해지는 것을 느꼈습니다. 이때 이 집의 친척들과 동무들과 이웃들이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모두 도착했습니다. 그들은 마치 시집이라도 보내려는 듯 고인의 시신을 가장 화려한 옷으로 입히고 갖가지 보석들로 치장했습니다.

 

시신은 뚜껑이 열린 관에 넣어졌고, 운구 행렬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남편은 행렬의 맨 앞에 서서 아내의 관을 따랐습니다. 사람들은 높은 산 위에 위치한 장지에 도착하자 우물처럼 깊은 구덩이의 입구를 막은 바위를 들어 올린 뒤, 그 아래로 줄을 묶은 관을 내려보냈습니다. 시신의 옷과 보석들은 조금도 건드리지 않고 그대로 놔둔 채였습니다. 그러고 나서 남편은 친척들과 친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눈 뒤에, 아무런 저항도 하지 않고 관 속에 들어가 눕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옆에는 물 주전자 하나와 조그만 빵 일곱 개가 놓였지요. 사람들은 여인의 관을 내린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남편의 관을 내렸습니다. 산은 해변을 따라 병풍처럼 이어져 있었고, 우물은 아주 깊었습니다. 사람들은 장례식이 끝나자 구멍을 바위로 다시 막았습니다.

 

이 장례식을 본 내 마음이 얼마나 울적했는지 여러분께서도 충분히 상상하시리라 믿습니다. 하지만 거기 참석한 다른 사람들은 이런 걸 하도 많이 봐와서인지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이었습니다. 나는 이에 대한 생각을 왕에게 말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전하! 산 사람을 죽은 사람과 함께 묻는 이곳의 기이한 풍습을 보고 저는 기절할 듯 놀랐습니다. 저는 지금까지 많은 곳을 여행했고 무수한 민족들을 만나 보았지만, 이렇게 잔인한 법은 어디에서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신드바드, 그래서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건가?” 왕이 대답했습니다.

 

“그건 이곳의 모든 사람에게 적용되는 법이야. 설사 과인이라 할지라도 예외는 아니지. 만일 왕비가 먼저 죽으면, 과인 또한 왕비와 함께 묻힐 걸세.”

 

“하지만, 전하! 전하께 한 가지 여쭙고 싶은 것은 …… 이방인들도 이 관습을 지켜야 하옵니까?”

 

“그래야겠지!”

 

내 질문의 의도를 눈치챈 왕은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습니다.

 

“만일 이 섬에서 혼인했다면 그들도 예외가 될 수는 없겠지.”

 

이 대답을 듣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 마음은 더없이 우울했습니다. 혹시 아내가 먼저 죽는다면 나 역시 산 채로 아내와 함께 묻혀야 한다고 생각하니 무서워서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저 모든 것을 체념하고 운명을 신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그날 이후, 아내의 몸이 조금 불편하기만 해도 내 가슴은 덜컥덜컥 내려앉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우려했던 일이 현실로 나타났습니다. 아내가 정말로 병이 들어 자리에 눕더니, 얼마 안 되어 죽어 버렸던 것입니다 …….

 

이 말을 마친 셰에라자드는 그날 밤은 더 이상 이야기하지 않았다. 이튿날 그녀는 다음과 같이 계속했다.

 

여든한 번째 밤

 

그때 내가 얼마나 괴로웠을지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산채로 묻힌다는 것은 식인종들에게 잡아먹히는 것 못지않게 끔찍한 일이 아닙니까? 하지만 이제는 피할 수 없었습니다. 왕은 대신들을 거느리고 친히 장례식에 와주셨습니다. 그리고 수도의 모든 유력 인사들도 참석하여 내 장례식을 빛내 주었죠.

 

의식을 위한 준비가 모두 끝나자, 사람들은 화려한 옷을 입힌 아내의 시신을 그녀의 모든 보석과 함께 관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행렬은 장지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졸지에 이 말도 안 되는 비극의 조연이 된 나는 얼굴이 온통 눈물에 젖어 내 불행한 운명을 한탄하면서 아내의 관 뒤를 따라갔습니다.

 

장지에 도착하기 전, 나는 마지막으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려 시도해 보았습니다. 우선 왕에게 말씀드려 보고 다음에는 주위의 모든 사람들에게 하소연해 보았습니다. 나는 땅에 무릎을 꿇고 그들의 옷자락에 입을 맞추면서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고 애원했습니다.

 

“여러분, 저는 외국인 아닙니까? 왜 이런 혹독한 법이 저에게 적용되어야 하는 겁니까? 저는 고국에 다른 아내와 아이들도 있는 몸입니다(신드바드는 이슬람교도이며, 이슬람교도들은 여러 명의 아내를 취한다 - 갈랑의 주석)!”

 

하지만 아무리 애절한 목소리로 외쳐 보아도 그들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습니다. 도리어 서둘러 아내의 관을 구덩이 속에 내리고, 잠시 후에는 나 역시 관에 넣어 물병 하나와 빵 일곱 덩어리와 함께 그 밑에 내려놨습니다. 마침내 이 지독한 의식은 막을 내렸고, 구덩이 입구는 다시 바윗돌로 봉쇄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의 고통과 애절한 비명을 뒤로 하고 모두들 떠나 버렸습니다.

 

관이 구덩이 바닥에 다가감에 따라, 나는 위쪽에서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 때문에 이 지하 장소의 윤곽을 흐릿하게나마 분간할 수 있었습니다. 그곳은 깊이가 약 50여 큐빗 정도 되는 아주 넓은 동굴이었습니다.

 

우선 내 코를 찌른 것은 견딜 수 없을 만큼 고약한 악취였습니다. 좌우에 쌓여 있는 무수한 시체들이 뿜어 대는 냄새였죠. 또 산 채로 매장된 사람들이 내뱉는 마지막 한숨 소리도 희미하게 들려오는 것 같았습니다. 나는 관이 밑바닥에 닿자마자 재빨리 관에서 빠져나와 코를 틀어막고 시체들이 없는 쪽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거기 땅바닥에 엎드려 오랫동안 흐느껴 울었습니다.

 

나는 내 처량한 팔자를 곱씹으면서 한탄했습니다.

 

“그래, 우리의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신의 법칙이지! 하지만 불쌍한 신드바드야! 오늘 네가 이렇게 괴상하고 이상한 죽음을 맞게 된 건 모두 네 탓이 아니더냐? 지금까지 숱한 난파(難破. 폭풍우로 배가 부서짐 - 옮긴이)를 겪으면서도 끈질기게 살아남았지만, 차라리 그때 죽는 편이 훨씬 나았을 것을! 그랬다면 이렇게 천천히, 이렇게 고통스럽게 죽어 가는 일은 없었을 것 아닌가? 하지만 네 탐욕이 모든 것을 자초한 거야! 아, 불쌍한 놈! 그냥 집에 남아서 지금까지 벌어 놓은 것이나 편안히 즐기고 있으면 얼마나 좋았을 것이냐?”

 

이렇게 나는 격렬한 분노와 절망에 사로잡혀 머리와 가슴을 치면서 소리를 질러 댔고, 그 쓰라린 울부짖음은 동굴 안에 공허하게 메아리쳤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비참한 상황에 떨어졌다 해도, 나는 결코 이것을 벗어나기 위해 죽음을 택하지는 않았습니다. 내 안에는 아직 삶에 대한 사랑이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나로 하여금 하루라도 더 살아 보려고 몸부림치게 만든 것은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나는 한 손으로는 코를 틀어쥐고 다른 손으로는 땅바닥을 더듬었습니다. 관 속에 있는 빵과 물을 찾아내려 함이었습니다.

 

동굴 속은 너무도 어두워 낮과 밤조차 분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나는 결국 내 관을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동굴 안은 처음 생각한 것보다도 훨씬 더 컸고, 거기에 쌓여 있는 시체의 수도 훨씬 많았습니다. 며칠 동안 나는 내 관에 들어 있는 빵과 물로 연명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것마저 다 떨어져 버리자, 이제 남은 일은 죽음을 기다리는 것 뿐이었습니다 …….

 

이 말을 마치고 셰에라자드는 이야기를 멈추었다. 다음 날 밤, 그녀는 다시 입을 열어 다음과 같이 신드바드의 이야기를 계속했다.

 

여든두 번째 밤

 

이제 나는 앉아서 죽음이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입구가 열리더니, 사람들이 관 하나와 산 사람을 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죽은 사람은 남자였고 함께 내려진 산 사람은 그의 아내였습니다.

 

인간이 극한 상황에 처하면 극단적인 결심을 하게 되는 법입니다. 나는 사람들이 여인을 내려보내고 있을 때, 관이 내려올 장소로 갔습니다. 그리고 동굴 입구가 닫히는 것을 확인하고는, 옆에서 주워 든 큼직한 뼈다귀로 불쌍한 이 여인의 머리를 두세 차례 힘껏 내리쳤습니다. 그녀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내가 그녀를 죽인 것이었죠. 이런 잔혹한 짓을 한 까닭은 말할 것도 없이 관 속에 있는 물과 빵을 차지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나는 그것으로 며칠을 버틸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며칠이 지나자 이번에는 죽은 여인과 산 남자가 내려왔고, 나는 같은 식으로 남자를 죽였습니다. 그때 이 섬의 도읍에는 죽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나에게는 다행스러운 일이었는데, 그때마다 같은 잔인한 방법으로 식량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습니다. 그날도 어떤 여인을 막 죽이고 난 참인데, 어디선가 무언가가 숨을 쉬며 걸어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나는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보았습니다. 다가감에 따라 그 숨소리는 더욱 크게 들리더니, 갑자기 후다닥 하며 뭔가가 달아나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그림자처럼 보이는 이것을 뒤쫓았습니다. 그것은 이따금 멈추었다가, 내가 다가가면 다시 달아나기를 반복했습니다.

 

얼마나 그렇게 뒤를 쫓았을까요? 꽤 멀리 왔다고 생각했을 때, 저쪽에 희미한 빛이 별처럼 깜빡이는 것이 보였습니다. 나는 그 빛을 향해 계속 걸었습니다. 빛은 동굴 속의 지형에 따라 나타나는 장애물 때문에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기를 되풀이했습니다. 결국 나는 이 빛이 사람이 드나들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바위 틈을 통해 흘러 들어오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를 발견한 나는 북받치는 감격을 억누르지 못하고 한동안 그 자리에 서 있었습니다. 잠시 후 입구로 걸어가 밖으로 나와 보니, 앞에는 드넓은 바닷가와 널따란 바다가 펼쳐져 있었습니다. 그때 내가 느꼈던 기쁨을 상상해 보십시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것이 환각에 의한 것이 아닌지 의심이 들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이 분명한 현실이며, 내 모든 감각은 다 정상이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숨소리를 듣고 뒤쫓아 온 것은 시체를 먹으려고 동굴 속에 들어오는 버릇을 지닌 바다짐승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산을 둘러보았습니다. 그것은 고을과 바다 사이를 가로지르고 있었고, 너무도 험준하고 가팔라서 아무런 길도 나 있지 않았습니다. 나는 바닷가에 엎드려 은혜를 베풀어 주신 신께 감사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시 동굴로 들어가 빵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밝은 햇빛 아래 앉아 먹는 그 빵의 맛은 정말이지 이 어두운 굴속에 갇힌 이래 처음 느껴 보는 꿀맛이었습니다.

 

나는 다시 굴속에 들어갔습니다. 그 안에 있는 보물을 가져오기 위해서였죠. 관 속을 손으로 더듬어 다이아몬드, 루비, 진주, 금팔찌 등은 물론 화려한 직물(織物. 베틀로 짠[織] 물건[物]. 즉 옷감 - 옮긴이)들까지, 손에 걸리는 대로 다 긁어모아 바닷가에 옮겨다 놓았습니다. 그리고 그것들을 한데 묶어 여러 개의 꾸러미를 만들어 놓았습니다. 짐을 묶을 줄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관을 내리는 데 사용한 줄들이 굴속에 얼마든지 널려 있었으니까요. 이렇게 꾸린 짐들은 좋은 기회가 올 때까지 그냥 바닷가에 갖다놓았습니다. 때는 건기였으므로 비를 맞아 상할 염려도 없었죠.

 

2~3일 뒤에 나는 방금 항구를 떠난 배 한 척이 바닷가에서 그다지 멀지 않은 거리에 지나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나는 터번을 풀어 흔들면서 온 힘을 다해 소리쳤고, 그 소리를 들은 배에서는 거룻배(돛 없는 작은 배 - 옮긴이) 한 척을 보내 주었습니다. 거룻배에서 내린 선원들이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이런 외진 곳에 혼자 떨어졌느냐고 묻기에, 나는 열흘 전에 배가 난파되어 이 짐들과 함께 이곳에 떠밀려 왔노라고 대답했습니다. 다행히도 선원들은 나의 대답에 만족하여, 부근을 살펴보거나 내 말이 참말인지 아닌지를 확인하려 들지 않고 그냥 나와 짐들을 배에다 옮겨 주었습니다.

 

배 위에 오르자, 나를 구해 준 것만으로도 흐뭇해하던 데다가 배를 지휘하느라 정신이 없었던 선장 역시 난파당했다는 내 주장을 의심 없이 그냥 받아들였습니다. 나는 보석을 몇 가지 꺼내어 선물하려 했지만 그는 받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러 섬들을 지나쳤습니다. 그중에는 세렌디브 섬(이 섬은 우리에게 ‘실론Ceylan’이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다 - 갈랑의 주석/실론 섬은 오늘날의 스리랑카다 - 옮긴이)에서 정상적으로 항해하면 뱃길로 열흘 걸리며, 켈라 섬에서는 엿새 걸리는 ‘종(鐘)들의 섬’도 있었습니다. 우리가 상륙한 켈라 섬은 납과 인도 계피, 그리고 장뇌 등이 풍부하게 나오는 곳이었습니다.

 

켈라 섬의 왕은 매우 부유하고도 강력한 군주였으며, 그의 힘은 ‘종들의 섬’에까지 미쳤습니다. 걸어서 이틀 정도면 횡단할 수 있는 크기인 이 ‘종들의 섬’에는 아직도 사람고기를 먹는 야만인들이 살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는 켈라 섬에서 장사를 하여 큰 이문을 남긴 뒤 닻을 올려 여러 섬들을 돌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나는 엄청난 부와 함께 다시 바그다드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동안 신께서 내게 베풀어 주신 모든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 번 돈 가운데 상당한 액수를 떼어 여러 모스크에 기부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적선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모든 시간을 내 식구와 친척, 그리고 동무들과 더불어 안락하고 재미나게 즐기면서 보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이렇게 신드바드는 그의 네 번째 여행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청중들로 하여금 앞선 세 개의 이야기보다도 훨씬 더 감탄하게 한 놀라운 이야기였습니다. 신드바드는 다시 힌드바드에게 100 세켕을 선물로 주면서, 다음 날도 같은 시간에 와서 밥을 먹은 뒤 그의 다섯 번째 여행 이야기를 들어 보라고 권했습니다. 힌드바드와 다른 손님들은 작별 인사를 하고 각기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이튿날, 다시 사람들이 모여들어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 갈 즈음 신드바드는 다음과 같이 그의 다섯 번째 여행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