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바다 사나이 신드바드 이야기 - 세 번째 여행

개마두리 2013. 5. 15. 21:07

 

안락한 삶은 나로 하여금 이전의 두 여행에서 겪었던 그 모든 위험들을 잊게 해주었습니다. 팔팔한 청춘이었던 나는 이처럼 편안하기만 한 삶이 곧 지루해졌습니다. 새로운 위험들이 기다리고 있으리라는 생각은 오히려 피를 끓게 했습니다.

 

그래서 나는 상품을 사서 바그다드를 떠나 발소라로 갔고, 거기서 다른 상인들과 함께 또다시 배에 올랐습니다. 항해는 오랫동안 계속되었습니다. 우리는 여러 항구에 들르면서 활발한 교역 활동을 펼쳤습니다.

 

어느 날, 바다 한복판을 항해하던 우리는 무시무시한 폭풍을 만났습니다. 여러 날 동안 계속된 폭풍에 길을 잃은 배는 어느 섬의 항구 앞으로 떠밀려 오게 되었습니다. 선장은 그 항구에 들어가는 것을 몹시 꺼렸지만 어쩔 수 없이 정박해야 했습니다. 닻을 내리고 돛을 접자 선장은 우리에게 말했습니다.

 

“이 섬을 비롯한 인근의 섬들에는 털복숭이 야만인들이 살고 있는데, 놈들은 필시 우리를 공격하러 올 것이오. 놈들은 모두 난쟁이들이지만 불행히도 우리는 맞서 싸울 수 없소. 그들의 숫자가 메뚜기 떼보다도 많은 데다가, 만일 잘못하여 그 가운데 하나라도 죽이면 달려들어 우리 모두를 죽여 버릴 것이기 때문이오.”

 

아침이 되어 샤리아의 궁실이 밝아지자 셰에라자드는 더 이상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다음 날 밤, 그녀는 다음과 같이 계속했다.

 

일흔다섯 번째 밤

 

선장의 이 말에 배에 탄 모든 사람은 경악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의 말이 너무나도 옳았음을 곧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키는 두 자 남짓하고 온몸이 빨간 털로 뒤덮인 흉측한 야만인들이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것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바다에 풍덩풍덩 뛰어들어 헤엄을 쳐오더니 순식간에 우리 배를 에워쌌습니다. 다가오면서 놈들은 뭐라고 말했지만 우리는 놈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놈들은 선체에 달라붙고 밧줄에 매달리더니 사방으로 기어 올라와 갑판에 내려섰습니다. 그 동작이 얼마나 민첩하고 빨랐던지 발이 바닥에 닿는 것이 보이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우리가 놈들의 이러한 행동 앞에서 얼마나 겁에 질려 있었는지는 가히 상상이 되실 것입니다. 놈들에게는 분명 어떤 흉악한 계획이 있는 듯했지만, 우리로서는 감히 손 하나 까딱할 수 없었고 만류하기 위해 말 한마디 내뱉을 수 없었습니다. 과연 놈들은 돛을 접어 버리더니, 닻을 끌어 올리는 수고도 귀찮은 듯 그냥 줄을 잘라 버렸습니다. 그들은 배를 끌어다 육지에 댄 후, 우리 모두를 내리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그들이 왔던 곳으로 배를 가져가 버렸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내리게 된 섬은, 앞으로 이야기하겠지만, 거기 도사리고 있는 위험 때문에 모든 여행자들이 무슨 일이 있어도 피하려 하는 장소였습니다. 하지만 우리로서는 이 불운을 견뎌 내는 수밖에 없었죠.

 

우리는 바닷가를 떠나 섬 안쪽으로 들어갔습니다. 거기에는 먹을 수 있는 열매와 풀들이 있어서 그럭저럭 배를 채울 수 있었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생명을 조금이나마 연장해 보고자 함이었죠. 사실 그때 우리 모두는 죽음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걷고 있는데 저 멀리 어떤 큰 건물이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보니 아주 훌륭하게 지어진 높다란 궁전이었습니다.

 

우리는 두 짝으로 된 흑단 대문을 밀어 열고서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자 널찍한 실내로 통하는 현관홀이 나타났는데, 한쪽에는 사람 뼈들이 산더미같이 쌓여 있었고, 다른 한쪽에는 고기를 구워 먹는 데 쓰는 꼬챙이들이 잔뜩 널려 있었습니다. 우리의 몸은 이 광경에 사시나무처럼 떨렸습니다. 게다가 온종일 걸어 녹초가 되어 있던 우리는 다리에 맥이 풀려 그대로 풀썩풀썩 쓰러져 버렸습니다. 그렇게 끔찍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오랫동안 마치 시체들마냥 널브러져 있었죠.

 

해가 저물었습니다. 말씀드렸다시피 우리 모두 가련한 몰골로 누워 있는데, 쾅 하는 소리와 함께 궁실의 문이 활짝 열리더니 거기서 키가 종려나무만 한 어떤 시커먼 사람의 무시무시한 모습이 나타났습니다. 이마에 박힌 외눈이 불붙은 숯처럼 시뻘겋게 이글거리고 있었습니다. 말 주둥이처럼 커다란 입에서는 길고 날카로운 이들이 튀어나와 있었으며, 늘어진 아랫입술은 가슴에까지 닿을 정도였습니다. 또 코끼리의 그것 같은 커다란 귀는 두 어깨를 덮고 있었고, 길고 구부러진 손톱은 커다란 맹금(猛禽. 사납고 굳센 날짐승. 주로 매를 가리킨다 - 옮긴이)의 발톱을 연상시켰습니다.

 

이토록 무서운 거인의 모습을 본 우리는 그대로 기절하여 한동안 죽은 듯 의식을 잃고 있었습니다.

 

잠시 후에 정신을 차려 보니, 거인은 현관홀 한쪽에 앉아서 외눈을 뒤룩거리며 우리를 살펴보고 있었습니다. 한동안 그렇게 쳐다보던 그는 우리에게 다가와 내 쪽으로 팔을 뻗쳤습니다. 이어 목덜미 옷깃을 잡아 번쩍 들어 올리고는, 마치 푸주한이 양 대가리를 다루듯 내 몸을 이리저리 살펴보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뼈와 가죽 밖에 없을 정도로 바짝 말라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내려놓았습니다.

 

그러고는 다른 사람들을 차례로 들어 같은 식으로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다가 우리 가운데 가장 뚱뚱한 선장을 들어 올린 거인은, 마치 참새를 쥐듯 한 손으로 그를 잡고는 꼬챙이를 들어 몸 한가운데를 꿰뚫었습니다. 이어 불을 피워 정성껏 굽더니 궁실(宮室)로 가지고 들어가 야참으로 먹어 치우는 것이었습니다.

 

식사를 마치고 다시 현관홀에 나온 거인은 자리에 눕더니 우렛소리보다 요란하게 코를 골면서 잠에 빠졌습니다. 그는 그렇게 다음 날 아침까지 계속 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와 달리 밤새도록 끔찍한 불안감에 몸을 떨어야 했습니다. 동이 트자 잠이 깬 거인은 우리를 궁전 안에 남겨놓고 밖으로 나가 버렸습니다.

 

우리는 그가 멀리 떠난 것을 확인하자, 밤새 이어졌던 그 슬픈 침묵을 깨고 앞다투어 한탄하기 시작했고, 곧이어 궁전 안은 우리가 내는 한숨과 신음으로 진동했습니다. 비록 우리 쪽 숫자는 많았고 적은 한 명 뿐이었지만, 그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그를 죽여야겠다는 생각은 꿈도 꾸지 못했습니다. 사실, 지극히 실행하기 힘든 이 방법이야말로 우리가 골라야 할 하나밖에 없는 길이었지요.

 

우리는 여러 가지 다른 방법들을 논의해 보았습니다만 뾰족한 수가 생각나지 않았습니다. 결국 체념하고 우리의 운명을 신의 뜻에 맡기는 수밖에 없었죠. 밖으로 나온 우리는 전날처럼 섬의 여기저기를 돌아다니고 열매와 식물들을 따먹으며 그날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어 누울 곳을 찾아보았으나 발견하지 못했고, 어쩔 수 없이 다시 궁전에 돌아와야만 했습니다.

 

거인 또한 돌아와 우리 동료 가운데 하나를 잡아 먹어치운 뒤 잠이 들었고, 그렇게 코를 골면서 다음 날 아침까지 잔 그는 다시 일어나 전날처럼 우리를 놔두고 나가 버렸습니다.

 

몇몇 사람은 우리가 처한 이 끔찍한 현실에 절망하여 이처럼 기이한 죽음을 기다리고 있느니 차라리 바다에 몸을 던져 죽어 버리려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그들의 의견을 따르라고 충고했습니다. 그러나 어떤 분이 입을 열어 말했습니다.

 

“자신의 목숨을 끊는 일은 우리 종교(이슬람교 - 옮긴이)의 법에 의해 금지되어 있소. 설사 이것이 허용되었다 하더라도, 우리를 잔혹하게 죽이는 이 야만인에게서 벗어날 방도를 적극적으로 찾아보는 것이 훨씬 사리에 맞지 않겠소?”

 

이때 내 머릿속에는 좋은 계책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이를 동료들에게 말했더니 모두들 좋다고 찬성했습니다. 이에 나는 말했습니다.

 

“형제들이여! 여러분도 알다시피 이 섬의 바닷가에는 목재들이 숱하게 널려 있습니다. 그것으로 뗏목을 여러 개 만들고, 모두 완성되면 나중에 쓸 때까지 바닷가 한쪽에다 놔둡시다. 그리고 돌아와 내가 여러분께 제안했던 그 계획을 실행하는 겁니다. 만일 이 계획이 성공하면, 우리는 구해줄 배가 지나갈 때까지 시간을 갖고 기다릴 수 있을 것입니다. 반대로 실패할 경우, 재빨리 뗏목을 타고 바다로 들어갑시다. 물론 나도 이런 허술한 뗏목에 몸을 의지하고 거센 파도 속에 뛰어드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를 압니다. 하지만 어차피 죽어야 할 몸이라면, 벌써 우리 동료 둘을 잡아먹은 이 괴물의 배 속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부드러운 바닷물 속에 잠겨 드는 편이 훨씬 낫지 않겠습니까?”

 

모든 사람들이 내 의견에 동의하여, 우리는 각각 세 사람씩 탈 수 있는 뗏목들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날이 저물 무렵 궁으로 돌아갔고, 얼마 후에는 거인도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다시 동료 가운데 하나가 잡혀서 구워 먹히는 걸 속수무책으로 보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다음에 우리가 어떻게 이 잔인무도한 거인 놈을 응징했는지 잘 들어 보십시오! 놈은 이 가증스러운 식사를 마친 뒤 벌렁 드러누워 잠이 들었습니다. 놈이 평소처럼 코를 골기 시작하자, 우리 가운데 가장 용감한 사람 아홉 명이 각자 꼬챙이를 하나씩 들고 불 속에 넣어 시뻘게질 때까지 달구었습니다. 그러고는 일제히 달려들어 거인의 눈에다 쑤셔 넣어 눈알을 터뜨려 버렸습니다(아랍 작가는 이 이야기를 호메로스의『오디세이』에서 가져온 듯하다 - 갈랑의 주석).

 

고통을 느낀 거인은 무시무시한 비명을 질렀습니다. 놈은 벌떡 일어나더니 격렬한 분노에 못 이겨 우리 가운데 아무라도 붙잡으려고 두 팔을 사방으로 휘저었습니다. 하지만 이미 우리는 모두 놈으로부터 떨어져서 그의 발이 닿지 않는 안전한 장소들에 몸을 숨긴 뒤였죠. 이렇게 헛물을 켜자, 놈은 발꿈치로 대문을 차 열고는 무시무시한 소리로 울부짖으며 밖으로 나갔습니다.

 

이날 밤 셰에라자드는 더 이상 계속하지 못했다. 하지만 다음 날 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이어 갔다.

 

일흔여섯 번째 밤

 

우리도 거인을 따라 밖으로 나와서 뗏목이 있는 바닷가로 달려갔습니다. 일단은 뗏목을 물 위에 띄워 놓고 날이 밝기를 기다렸습니다. 만일 거인이 동족들의 인도를 받아 달려온다면 잽싸게 뗏목에 올라 도망칠 심산이었죠.

 

하지만 해가 떠올랐을 때까지도 놈이 나타나지 않고 지금도 계속 들려오는 저 울부짖는 소리가 그친다면 그것은 놈이 죽었다는 뜻일 터이고, 그때는 뗏목에 목숨을 거는 일 없이 그냥 섬에 남아 있을 수 있으리라는 일말의 기대감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날이 밝기가 무섭게 우리의 잔혹한 원수는 놈과 덩치가 비슷한 다른 두 거인의 인도를 받으며 나타났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들 앞에는 수많은 거인들이 우리를 향해 급히 뛰어오고 있었습니다.

 

더 이상 꾸물대고 있을 수 없었습니다. 우리는 일제히 뗏목에 올라타고, 바닷가에서 멀어지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노를 저었습니다. 이를 본 거인들은 제각기 커다란 바윗덩어리를 집어 들고 바다에 뛰어들더니, 물이 허리춤에 차는 곳까지 따라왔습니다. 그러고는 바윗덩어리들을 던져 대는데, 그 솜씨가 얼마나 기막히던지 내가 탄 것을 뺀 모든 뗏목이 박살나 사람들은 모두 물에 빠져 죽었습니다. 나와 다른 두 사람은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노를 저어 댄 덕에 간신히 바위가 미치지 못하는 곳에 이를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난바다에 이르자 뗏목을 이리저리 던지며 장난치는 바람과 파도의 노리개가 되어, 그날 내내 알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렸습니다. 하지만 다음 날 다행히도 뗏목은 어떤 섬으로 밀려갔고, 우리는 크게 기뻐하며 뭍에 올라섰습니다. 그곳에서는 훌륭한 과실들까지 찾을 수 있어서 그동안 잃었던 힘을 회복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저녁이 되어 우리는 바닷가에서 잠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이상한 소리에 깨어나 주위를 살펴보니, 그것은 종려나무만큼이나 기다란 뱀의 비늘이 땅바닥을 스치며 내는 소리였습니다. 이미 우리에게 바짝 다가와 있던 뱀은 내 동료 가운데 하나를 덥석 물었습니다. 그는 벗어나려고 비명을 지르면서 몸부림쳤지만, 뱀은 그를 몇 차례 흔들고 땅바닥에 패대기쳐 박살을 낸 뒤 꿀꺽 삼켜 버렸습니다. 나와 또 한 동료는 죽어라 달아났습니다.

 

그렇게 뱀으로부터 상당히 먼 곳까지 달아났을 때 우리 귀에 다시 뭔가 섬뜩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그것은 의심할 바 없이 놈이 불쌍한 친구의 뼈를 뱉어 내는 소리였습니다. 다음 날, 우리는 실제로 그의 뼈가 땅바닥에 흩어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나는 공포에 사로잡혀 외쳤습니다.

 

“오, 신이시여! 우리는 그 어떤 위험 속에 왔단 말입니까? 어제 우리는 잔인한 거인과 성난 파도를 피해 왔노라고 좋아했습니다. 하지만 그것들 못지않게 끔찍한 사지에 또다시 떨어지다니요!”

 

우리는 섬을 돌아다니다가 아주 굵고 높다란 나무 하나를 발견하고 밤이 오면 그 위에 올라가서 뱀을 피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전날처럼 과실들로 배를 채운 뒤, 해 질 무렵에 나무에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얼마 되지 않아 뱀이 우리가 있는 나무 발치로 기어오면서 쉭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 들려 왔습니다. 놈은 둥치를 타고 기어오르더니 나보다 아래쪽에 있던 내 동료를 한입에 삼켜 버린 후 다시 물러갔습니다.

 

밤새도록 나무 위에 머물러 있다가 날이 밝아서야 내려온 나는 거반(居半. 거의 절반, 거의 - 옮긴이) 죽어 있는 상태였습니다. 조만간 나도 비참하게 죽어 간 두 동료와 똑같은 운명을 맞이할 게 뻔했으니까요. 이런 무서운 생각에 몸을 떨다가, 차라리 죽는 게 낫겠다 싶어 바다 쪽으로 몇 걸음 옮겨 보았습니다. 하지만 역시 가장 좋은 것은 될 수 있는 한 오래 사는 일 아니겠습니까? 나는 마음속에 이는 절망의 유혹을 물리치고, 모든 것을 우리의 삶을 책임지고 맡아서 관리하시는 신의 뜻에 맡기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손가락만 빨고 앉아 있지는 않았습니다. 잔가지, 가시덤불 같은 것들을 잔뜩 긁어모아 그것들을 한데 묶어 여러 개의 다발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이 다발들을 오늘 밤 피신할 나무 주위에 빙 둘러 놓고 그중 몇 개는 내 머리를 지키기 위해 위쪽 가지에다 묶어 놓았습니다.

 

이 모든 일을 마치자 밤이 찾아왔고, 나는 나를 위협하는 잔인한 운명으로부터 자신을 지키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다했노라고 서글프게 자위하면서 이 원 안에 숨어들었습니다.

 

잠시 후 어김없이 돌아온 뱀은 호시탐탐 나를 삼킬 기회를 엿보며 나무 주위를 빙빙 돌았습니다만, 내가 만들어 놓은 방벽에 막혀 내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놈은 아침이 될 때까지 마치 안전한 은신처에 숨은 생쥐를 지키고 앉은 고양이 꼴로 서성대고 있었습니다. 드디어 새벽이 되자 놈은 단념하고 물러갔습니다. 하지만 나는 해가 완전히 떠오를 때까지 감히 ‘요새’ 밖으로 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밤새 뱀과 벌인 신경전으로 극도로 피곤한데다가 놈이 뿜어대는 독이 있는 숨결이 너무도 괴로워, 이런 끔찍한 삶보다는 차라리 죽음이 낫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여 나무에서 내려와, 모든 것을 신의 뜻에 맡기겠다고 다짐한 어제의 결심을 잊어버린 채, 머리를 거꾸로 처박고 물속에 뛰어들어 버리자는 심정으로 바다로 달려갔습니다 …….

 

날이 밝은 것을 본 셰에라자드는 여기서 이야기를 멈추었다. 다음 날 그녀는 이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술탄에게 이렇게 말했다.

 

일흔일곱 번째 밤

 

폐하! 신드바드는 그의 세 번째 여행담을 계속 들려주었습니다.

 

신께서 내 절망을 보고 나를 불쌍히 여기셨나 봅니다. 막 바다에 몸을 던지려 하는데, 바닷가에서 멀리 떨어진 저쪽에 배 한 척이 지나가는 게 아니겠습니까? 나는 목소리가 들리게끔 있는 힘을 다해 소리치며 터번을 풀어 마구 흔들어 댔습니다.

 

이 모든 노력은 헛되지 않아서 배에 탄 사람들이 나를 보았고, 선장은 내게 거룻배를 보내 주었습니다. 마침내 배에 오르자 상인들과 선원들이 주위에 몰려들어 대체 무슨 사연으로 이 무인도에 있게 되었냐고 물어 왔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설명해 주자, 그중에서 가장 나이 많은 사람들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섬에 거인들이 살고 있다는 소문은 우리도 여러 차례 들은 바 있소. 사람들이 말하기를 그들은 식인종인데, 사람을 구워 먹기도 하고 날로 먹기도 한다더군.”

 

또 뱀에 대해서도 덧붙였습니다.

 

“그렇소! 그 섬은 뱀들이 우글대는 곳이지. 놈들은 낮에는 몸을 감추고 있다가 밤에 나와 돌아다닌다오. 아무튼 당신이 그 숱한 위험을 뚫고 살아났다니 너무도 기쁜 일이오!”

 

그러고 나서 사람들은 내가 몹시 배고플 것이라 생각하고는, 그들이 가진 가장 좋은 음식을 가져와 실컷 먹게 해주었습니다. 또 너덜너덜해진 내 옷을 본 선장은 너그럽게도 자기 옷 한 벌을 선사했습니다.

 

우리는 얼마 동안 바다를 돌아다니며 여러 섬을 방문했습니다. 마지막에 들른 곳은 살라하트 섬인데 약(藥)으로 많이 쓰이는 나무인 단향이 재배되는 지역이었습니다. 우리는 항구에 들어가 거기에 정박했습니다. 상인들은 팔거나 교환하기 위해 그들의 물건을 배에서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선장은 나를 불러서 말했습니다.

 

“형제여! 배의 창고에 상품이 좀 있는데, 그것은 얼마 동안 우리와 함께 항해했던 어떤 상인의 것이오. 그런데 이 상인이 죽고 말아서 내가 그를 대신하여 그 상품을 굴려 이문을 남기려고 한다오. 혹시 그의 상속자를 만나게 되면 장사한 결과를 돌려주려고 말이오.”

 

그가 말한 짐 꾸러미들은 이미 갑판 위에 나와 있었습니다. 그는 내게 그것들을 보여 주면서 말했습니다.

 

“자, 저게 문제의 상품들이오. 나는 당신이 저것들을 맡아 장사를 좀 해주었으면 하오. 물론 수고한 대가는 규정대로 드리기로 하겠소.”

 

나는 그 제안을 받아들이며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했습니다.

 

배의 서기(書記)는 모든 짐 꾸러미 위에다 그것을 가진 상인의 이름을 적어 넣었습니다. 서기가 선장에게 내가 맡은 짐 꾸러미에 누구의 이름을 적어 넣어야 하느냐고 묻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바다 사나이 신드바드의 이름을 적어 넣게!”

 

뜻밖에 내 이름을 들은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하여 자세히 선장을 살펴보니, 아니 이게 누구입니까? 나의 두 번째 여행 당시, 어떤 섬의 시냇가에서 잠들었을 때 나만 혼자 남겨 놓고 떠나 버린 그 선장, 나를 기다리거나 찾아보려 하지 않고 닻을 올려 버린 바로 그 선장이 아니겠습니까? 그동안 그의 용모가 많이 바뀌었기 때문에 나는 처음에 그를 알아보지 못한 것입니다.

 

그 또한 내가 죽었다고 믿고 있었으므로 나를 알아보지 못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선장님!”

 

내가 말했습니다.

 

“이 짐들을 가졌던 사람의 이름이 신드바드라고요?”

 

“그렇소!”

 

그가 대답했습니다.

 

“신드바드가 물건 주인의 이름이오. 그는 바그다드 출신으로 발소라에서 내 배에 탔소. 어느 날 우리는 바람 좀 쐬려고 어떤 섬에 상륙했소. 그런데 내가 잠시 정신이 깜빡하여, 그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다시 배에 올랐는지 확인하지도 않은 채 돛을 올려 버린 거요. 우리는 이 사실을 출발한 지 네 시간 뒤에야 알게 되었소. 하지만 그때는 역풍이 너무 세차게 불어 대서 그를 찾으러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했던 것이오.”

 

“선장님은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십니까?”

 

내가 물었습니다.

 

“물론이오.”

 

그가 대답하자 나는 다시 말했습니다.

 

“자, 선장님! 눈을 크게 뜨고 저를 자세히 보십시오. 제가 바로 선장님이 무인도에다 버리고 가신 그 신드바드란 말입니다! 시냇가에서 자고 있다가 깨어 보니 아무도 보이지 않더군요.”

 

이 말에 선장은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

 

이 대목에서 날이 밝은 것을 본 셰에라자드는 입을 다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 그녀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를 이어 나갔다.

 

일흔여덟 번째 밤

 

선장은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결국 나를 알아보았습니다.

 

“신을 찬양할지어다!”

 

그는 나를 껴안으며 외쳤습니다.

 

“행운이 내게 실수를 만회할 기회를 주어 너무나 기쁘구나! 자, 여기 당신의 물건들이 있소! 나는 이것들을 잘 보관하여, 항구에 들를 때마다 장사를 하여 이문을 남기려고 애썼다오. 자, 내가 남긴 모든 이익금과 함께 이것들을 돌려주겠소!”

 

나는 그것을 받았고, 이렇게 정직하게 행동해 준 선장에게 깊이 감사했습니다.

 

우리는 살라하트 섬을 출발하여 다른 섬에 들렀고, 거기서 나는 정향과 계피를 비롯한 각종 향료를 구입했습니다. 다시 그 섬을 떠나 항해하던 우리는 길이와 폭이 각각 20큐빗이나 되는 커다란 거북이를 만났습니다. 또 암소처럼 젖이 나오고, 껍질이 너무도 단단하여 방패 재료로 사용된다는 물고기도 보았습니다. 모양과 빛깔이 꼭 낙타와 비슷한 물고기도 있었습니다.

 

결국 긴 항해 끝에 나는 발소라에 도착했고, 거기서 다시 이 바그다드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나 자신도 정확히 얼마나 되는지 모르는 엄청난 재산을 가지고서 말입니다. 나는 이번에도 그 가운데 상당 부분을 떼어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그리고 남은 돈으로는 땅을 많이 사서 기존에 갖고 있던 것에다 더했습니다.

 

신드바드는 이렇게 그의 세 번째 여행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그러고 나서 힌드바드에게 다시 100 세켕을 주면서, 이튿날 다시 들러 네 번째 여행 이야기를 들어 보라고 청했습니다. 힌드바드와 다른 손님들은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저녁 식사가 끝날 즈음, 신드바드는 입을 열어 그의 모험담을 계속 이야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