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바다 사나이 신드바드 이야기 - 도입부

개마두리 2013. 5. 15. 21:21

 

※서기 18세기 초 프랑스 백인인 ‘앙투안 갈랑’이 수리야(시리아) 알레포 시(市)의 마론파(派) 아랍인 여성인 ‘한나’가 들려준 아랍세계의 옛날이야기들과 서기 14세기(서기 1300년대)의 아랍어 이야기책을 합쳐서 프랑스어로 옮김. 이것이 세상에 널리 알려진『천일야화(千一夜話. ‘1001밤의 이야기’라는 뜻. 영어권에서는 ‘아라비안나이트 Arabian Nights'로 알려져 있다)』다. 이 이야기는『천일야화』에 실린 것이다 : 옮긴이 잉걸

 

예순아홉 번째 밤

 

폐하! 이전 이야기에서 말씀드린 칼리프 하룬 알 라시드(서기 786년부터 서기 809년까지 이슬람 제국인 아바스 왕조를 다스린 칼리파. 그가 죽은 뒤 그를 둘러싼 야사[野史]가 많이 만들어졌다.『천일야화』에는 어진 임금으로 나오지만, 실제 역사에서는 그의 잘못된 다스림 때문에 제국이 쇠퇴했다. 단, 그가 다스리던 시절 바그다드가 영화를 누리고 번성했던 건 사실이다 - 옮긴이)가 세상을 다스리고 있던 시절, 바그다드에 힌드바드라는 이름의 가난한 짐꾼이 살고 있었습니다.

 

몹시 무더운 어느 여름날, 그는 허리가 휘도록 무거운 짐을 도성(당시 아바스 왕조의 수도였던 바그다드 시 - 옮긴이) 한끝에서 반대편 끝으로 나르고 있었습니다. 지금까지 걸어온 고된 길에 벌써 녹초가 되었건만, 아직도 갈 길이 한참 남아 있어 막막하기만 했던 힌드바드는 서늘한 산들바람이 불고 포석에 장미수(薔薇水. 장미의 꽃잎을 증류해서 얻은 향수 - 옮긴이)를 시원하게 뿌려 놓은 어떤 거리에 이르렀습니다. 잠시 쉬면서 힘을 재충전하기에는 더없이 좋은 장소였죠. 그는 커다란 저택 근처 땅바닥에 짐을 내려놓고는 그 위에 걸터앉았습니다.

 

그는 쉴 곳으로 이곳을 고르기를 잘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택의 창문들 틈으로 새어 나오는 알로에와 유향의 은은한 향기가 장미수 냄새와 섞여, 주위의 공기가 몹시 상쾌했던 것입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저택 안에서는 꾀꼬리 등 바그다드 특유의 갖가지 새들이 고운 목소리로 지저귀고 있었고, 여러 악기들이 연주하는 흥겨운 음악 소리도 들렸습니다. 여기에 여러 종류의 고기가 익는 냄새까지 맡은 힌드바드는 안에서 큰 잔치가 벌어지고 있나 보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있자니, 그다지 자주 다니는 길이 아니어서 이제야 처음 본 이 으리으리한 저택에는 과연 어떤 사람이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 궁금증을 풀려고 화려한 옷을 입고 대문 앞에 서 있는 하인들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이 저택의 주인이 누구인지 물어보았습니다.

 

“뭐라고요?”

 

하인이 대답했습니다.

 

“아니, 당신은 바그다드에 산다면서 여기가 신드바드 선생의 저택이라는 사실도 모른단 말이오? 해가 비치는 이 세상 모든 바다를 다 여행했다는 그 유명한 바다 사나이 말이오!”

 

신드바드의 어마어마한 재산에 대한 소문을 익히 들은 바 있었던 힌드바드로서는 너무도 부럽기만 한 이 행복한 사나이와 한심한 자신의 꼬락서니를 견주어 보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이런 생각에 울분이 치민 그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크게 소리쳤습니다.

 

“모든 것을 지으신 전능한 창조주님(신[神] - 옮긴이)! 신드바드와 저 사이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한번 내려다보십시오! 저는 매일같이 등골이 빠지도록 일을 하건만, 저와 저의 식구들은 형편없는 검은 빵으로 목숨을 잇기도 힘듭니다. 그런데 이 운 좋은 신드바드는 엄청난 재산을 펑펑 쓰며 이런 신나는 삶을 즐기고 있지 않습니까? 대체 그자가 무슨 일을 했기에 이처럼 늘어지는 팔자를 허락하신 건가요? 그리고 제가 대체 어찌했기에 삶이 이리도 고달프단 말입니까?”

 

그는 마치 괴로움과 절망의 화신과도 같은 모습으로 땅바닥을 발로 쾅 하고 굴렀습니다.

 

이렇게 처량한 생각에 빠져 있는데 저택 문이 열리더니 종복(從僕. 사내종 - 옮긴이) 하나가 나와 그의 팔을 잡으며 말했습니다.

 

“자, 저를 따라 오십시오! 우리 주인이신 신드바드 선생님께서 당신을 보고 싶어 하십니다.”

 

이 대목에서 날이 밝아와 셰에라자드는 이야기를 계속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다음 날 그녀는 다음과 같이 이어 나갔다.

 

일흔 번째 밤

 

폐하! 하인이 이렇듯 깎듯이 말해 오자 힌드바드가 얼마나 놀랐을지 가히 상상이 되지 않습니까? 조금 전에 자신이 한 말을 기억한 그는 신드바드가 자기를 혼내 주기 위해 부르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길 한가운데 짐을 놔두고 들어갈 수는 없으니 양해해 달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신드바드의 종복이 짐은 알아서 맡아 줄 터이니 걱정 말고 어서 들어가자고 하도 간청하는 바람에 힌드바드는 더 이상 거절할 수가 없었습니다.

 

종복이 인도한 큰 방에는 산해진미가 차려진 밥상이 있었고 그 주위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가운데의 주빈석(主賓席. 귀한 손님[主賓]을 모시는 자리[席] - 옮긴이)에는 흰 수염을 길게 늘어뜨린, 풍채가 당당한 노인이 앉아 있었는데, 그 뒤에서는 수많은 벼슬아치들이며 하인들이 시중을 들고 있었습니다. 이 인물이 바로 신드바드였습니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과 호화로운 연회를 보고 더욱 당황한 힌드바드는 떨리는 목소리로 앉은 사람들에게 인사를 했습니다. 신드바드는 그를 다가오게 하여 자기의 오른편에 앉힌 뒤 손수 먹을 것을 덜어 주는가 하면, 옆의 서빙 테이블에 가득 실린 최상품의 포도주를 따라 주며 권했습니다.

 

식사가 끝나 갈 즈음, 신드바드는 더 이상 아무도 (밥을 - 옮긴이) 먹지 않는 것을 보고 입을 열었습니다. 그는 힌드바드를 아랍에서 친밀한 사람끼리 쓰는 호칭인 ‘형제’라고 부르면서(“아랍에서”부터 “호칭인”까지의 구절은 갈랑이 덧붙인 부분인 듯하다 - 옮긴이), 그의 이름은 무엇이며 무슨 일을 하고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선생님!”

 

그가 대답했습니다.

 

“소인의 이름은 힌드바드라 하옵니다.”

 

“그대를 만나게 되어 참으로 반갑소.”

 

신드바드가 말했습니다.

 

“그리고 여기 계신 분들도 그대가 여기 있어 다들 즐거워하시는 것 같소. 한데 한 가지 알고 싶은 것은, 아까 길거리에 혼자 계실 때 뭐라고 말하였소?”

 

신드바드는 식탁에 자리를 잡기 전에 창문을 통해 밖에서 힌드바드가 하는 말을 다 들었고, 그래서 그를 이 자리에 불렀던 것입니다.

 

힌드바드는 이 질문에 크게 당황하여 고개를 푹 숙이고 대답했습니다.

 

“선생님! 아까 제가 좀 피곤하여 기분이 언짢았나 봅니다. 그 바람에 쓸데없는 말을 몇 마디 지껄인 것뿐이니 용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니, 오해는 마시오!”

 

신드바드가 손을 저으며 말했습니다.

 

“나는 앙심을 품을 만큼 그렇게 속 좁은 사람이 아니오. 나는 그대의 처지를 이해하오. 그대가 중얼거린 말을 책망하기는커녕 오히려 동정하고 있단 말이오. 하지만 그대는 나에 대해 뭔가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 같소. 그대는 내가 즐기고 있는 이 부유하고 안락한 삶이 아무런 고생과 노력 없이 저절로 얻어졌다고 생각하고 있는 듯하오. 그런 착각에서 깨어나시오! 나는 현재의 행복한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 인간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힘든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오랜 세월 동안 겪어야 했소 ……. 그렇소, 여러분!”

 

그는 좌중을 둘러보며 덧붙였습니다.

 

“내가 겪은 괴로운 일들은 너무도 엄청난 것이어서, 그 이야기를 한 번만 듣는다면 아무리 부(富)에 대한 욕망이 강렬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를 얻으려고 모험을 떠날 생각은 싹 사라져 버릴 것이오. 아마도 여러분들은 내가 겪은 기이한 모험들과, 또 내가 일곱 번의 여행 중에 바다에서 겪은 위험들에 대한 이야기를 얼핏 풍문으로 들은 적이 있을 것이오. 그런데 오늘 마침 기회가 주어졌으니, 내 그 이야기를 소상히 들려드리리다. 그리고 그다지 따분한 이야기만은 아닐 것이외다.”

 

신드바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주된 목적은 짐꾼을 (설득하기 - 옮긴이) 위한 것이었으므로, 그는 이야기를 시작하기 전에 길에다 두고 온 짐을 힌드바드가 원하는 곳에다 갖다 놓게 했습니다. 그런 뒤에 신드바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