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불행한 소년

개마두리 2013. 9. 10. 20:34

불행한 집에서 태어난 불행한 소년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불행해서 더럽고 냄새나는 그 소년을 놀리고 괴롭혔습니다. 불행한 소년은 복수하고 싶어도 싸워 이길 자신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커다란 몽둥이로 아이들을 때려 주려 했습니다.

 

그 때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천사는 소년에게 “네가 그 아이들을 때리면 그 애들은 더더욱 너를 괴롭힐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소년은 천사에게 “그럼 나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천사는 “네가 먼저 참고 용서하렴. 그럼 언젠가 그 아이들도 자기 잘못을 뉘우칠 거야.”라고 대답했습니다. 불행한 소년은 천사의 말이 잘 납득(納得. 받아들여짐 - 옮긴이)되지 않았지만 천사의 따뜻한 목소리에 조금 행복해졌습니다.

 

불행한 소년은 자라서 불행한 청년이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여전히 그를 괴롭혔지만 청년은 늘 참고 견디며 열심히 일했습니다. 하지만 때때로 참을 수 없는 분노와 절망이 찾아오기도 했습니다. 천사는 청년에게 “힘을 내세요. 그 사람들도 제각각 괴로움이 있답니다. 모두가 불쌍한 사람들이에요. 그래도 당신에겐 제가 있잖아요.”라고 말했고, 청년은 천사의 말을 잘 납득할 수 없었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조금 불쌍하다고 느꼈습니다.

 

청년은 어느덧 늙고 병든 노인이 되었습니다. 보살펴 주는 사람 하나 없이 노인은 죽어 가고 있었습니다. 오직 천사만이 노인의 곁을 지켰습니다. 노인은 천사에게 “천사님이 시키는 대로 참고 용서하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아무도 없는 곳에서 비참하게 죽어가고 있네요.”라고 말했습니다. 천사는 노인에게 “비참하다고 말하지 마세요. 당신의 삶은 가치 있는 삶이었어요. 그리고 아직 제가 옆에 있잖아요.”라고 대답했고, 노인은 천사의 말에 조금 안심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잠시 후 이유를 알 수 없는 분노와 슬픔이 그를 덮쳤습니다. 그리고 분노와 슬픔의 소용돌이 속에서 번개처럼 하나의 깨달음이 그의 머릿속을 스쳤습니다. 그는 천사를 움켜쥐고 온 힘을 짜내, 뼈가 으스러지도록 꽉 쥐기 시작했고, ‘천사’는 “왜 … 왜 이러세요?”라고 말하며 비명을 질렀습니다. 노인은 분노한 목소리로, “네가 … 네가!”라고 외치면서 ‘천사’의 뼈가 부러질 때까지 허리를 꽉 졸랐고, 마지막에는 “평생 동안 나를 …… 속인 거야!”라고 외치고 ‘천사’를 죽인 뒤 숨을 거두었습니다.

 

노인의 집 위에 있는 하늘에는 노인이 죽인 ‘천사’와 똑같이 생긴 ‘천사’들이 날개를 펄럭이면서 날고 있었습니다.

 

- 최규석 화백의 우화

 

* 최규석 : 한국의 만화가. 서기 1977년에 태어났다. 작품으로는『공룡 둘리에 대한 슬픈 오마주』/『습지생태보고서』/『대한민국 원주민』/『100℃』/『울기엔 좀 애매한』이 있다. 현실적이고 사실적인 그림체로 만화를 그리며 사회의 모순이나 문제점을 지적/비판하는 이야기를 즐겨 다룬다.

 

- 출처 :『지금은 없는 이야기』(최규석 지음, 사계절 펴냄, 서기 2011년)

 

# 옮긴이의 말 :

 

당신에게 충고하는 ‘천사’(처럼 보이는 사람이나 기관)이 사실은 ‘천사인 척 하는 악마’가 아닌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악마나 악당이 ‘선(善)’을 권할 수도 있고, 그것이 ‘치료제인 척 하는 독약’이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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