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두루미와 게 이야기

개마두리 2013. 9. 18. 17:13

두루미 한 마리가 시냇가에 살고 있었지. 그 시내엔 물고기가 많아서 두루미는 먹이 걱정 없이 잘 지내고 있었어. 그러나 점점 나이가 들면서 기력이 떨어지자 예전처럼 물고기 사냥을 할 수 없게 되었지. 심한 굶주림에 시달리는 날이 계속되자 두루미는 묘책을 강구했어. 그리고 어느 날 수심이 가득 찬 모습으로 시냇가에 앉아 있었지. 그때 마침 지나가던 게가 그 모습을 보더니 말을 걸었어.

 

“여보시오, 두루미 양반, 대체 무슨 일이오? 당신이 그렇게 비통한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은 처음 본다오.”

 

그러자 두루미가 대답했어.

 

“엄청난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오. 오늘 낚시꾼 두 명이 이곳을 지나가며 나누는 대화를 들었다오. 낚시꾼 중 한 사람이 그의 친구에게 ‘여기에 물고기가 아주 많은데 낚시하지 않을래?’라고 물었더니, 친구는 ‘여기보다 물고기가 더 많은 곳이 있다구. 그곳에 가서 먼저 낚시를 한 다음 여기로 돌아와 모조리 잡아버리자구.’라고 했소. 그 낚시꾼들이 돌아오면 이곳에 사는 물고기는 한 마리도 남지 않을 거요. 물고기들을 먹고 사는 나로서 어찌 슬프지 않겠소? (물고기를 먹지 못하고 굶어서 - 인용자) 내 인생도 끝나게 될 거니 말이오.”

 

이 소식을 들은 게는 곧장 물고기들한테 가서 사실을 알렸고, 당황한 물고기들은 두루미를 찾아와 의논했어.

 

“두루미 양반, 당신의 자문을 구하러 왔습니다. 현명한 사람은 적의 자문도 무시하지 않는답니다. 더군다나 당신의 생존이 우리네 물고기들의 생존에 달려 있는 상황에선 더욱 말할 나위 없지요.”

 

두루미가 진지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어.

 

“낚시꾼들의 횡포에는 나도 어쩔 도리가 없소. 다만 여기서 가까운 다른 시냇물로 이사 가는 방법만 남아 있소. 거기엔 물도 많고 수초도 무성해서 물고기들이 많이 살고 있다오. 당신네들이 그곳으로 갈 수만 있다면 안전하고 풍족하게 지낼 수 있소.”

 

이 말을 듣고 물고기들은 이구동성으로 말했어.

 

“두루미 양반, 우리네 물고기들을 도와줄 분은 당신뿐입니다.”

 

그리하여 두루미는 매일 물고기 두 마리씩을 다른 시내로 나르는 척하며 멀리 떨어진 언덕에 갖다 놓고 맛있게 먹어치웠어.

 

그러던 어느 날 두루미가 물고기 두 마리를 또 나르려던 참에 게가 와서 부탁했어.

 

“왠지 여기에 남아 있기가 두렵고 외롭다오. 나도 다른 시내로 데려다주오.”

 

그래서 두루미는 게를 데리고 날아올랐지. 얼마쯤 날았을까, 언덕 위에 수북이 쌓인 물고기 뼈가 게의 시야에 들어왔어. 게는 그것이 두루미의 소행임을 단번에 알아차렸고, 자기도 곧 물고기들과 같은 운명이 될 것임을 깨닫고는 마음속으로 다짐을 했지.

 

‘위태롭다고 몸을 도사리다간 꼼짝없이 죽게 된다구. 모든 전략을 동원해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해! 그 길이 목숨도 지키고 용맹도 떨칠 수 있는 방법이지.’

 

그러면서 게는 양쪽 집게발로 두루미의 목을 잡아 죄었지. 두루미는 죽었고 게는 남아 있는 물고기들에게 돌아와서 이 사실을 알렸어.

 

* 출처 :『칼릴라와 딤나』(바이다바 지음, 이동은 옮김, ‘강’ 펴냄, 서기 1998년)

#『칼릴라와 딤나』:『이솝 우화집』처럼 짐승과 새들이 나오는 우화집. 서기전 2세기(2100년 전)에서 서기 5세기(1600년 전) 사이에 바라트(인도의 정식 국호) 사람들이 우화들을 산스크리트어로 적어 한 권의 책으로 정리했고, 이를『판차탄트라』라고 불렀다. 이 책은 서기 570년 사산조 페르시아 제국으로 넘어가 파흘라위어(중세 이란어)로 번역되었고, 서기 750년대에는 ‘이븐 알 무캇파’가 『판차탄트라』를 아랍어로 옮기면서『칼릴라와 딤나』라는 새 이름을 붙이고 내용을 이슬람교 문화에 맞게 번안/개작했다.

 

▶ 인용자의 말 : 이븐 알 무캇파(아니면 바르자위나 바이다바)는 이 이야기를 “함부로 헛된 꾀를 쓰다가 들키면 오히려 당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풀이했지만, 나는 오히려 게의 생각과 행동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우리 모두는 이 우화에 나오는 게를 본받아야 한다. 그래야 현실에, 힘센 나라에, 가진 자들에게, 거짓말쟁이들에게 당하지(잡아먹히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고, 나아가 그 ‘두루미’들을 죽여 나뿐 아니라 다른 물고기들(내 이웃이나 동무나 다른 사람들)을 구할 수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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