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해와 달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개마두리 2013. 10. 14. 17:00

 

우리 조상들이 몸의 균형을 잡지 못하고 피를 흘리며 비틀비틀 걸어 다녔을 때, 지금처럼 모닥불조차 없었을 때, 열흘 밤, 100일 밤, 1000일 밤, 100만 밤 전에 사슴도 없고 차가운 비 때문에 추위만이 어슬렁거리고 있을 때, 누구도 헤아릴 수 없이 그렇게 아득히 먼 옛날,

 

세상은 물로 가득 차고 어두컴컴했다네. 모든 것이 물이었고, 모든 것이 밤이었지. 신(神)들과 사람들은 미치광이처럼 돌아다녔고, 늙은 술주정뱅이처럼 균형을 잃고 넘어지곤 했다네. 어디로 가는지 살필 수 있게 도와줄 빛도 없었고, 피곤하면 눕고 사랑하기 위해 잠을 청할 수 있는 땅조차도 없었다네. 땅도 빛도 없었으니 세상이 온전했을 리 없었지.

 

그때 신들은 끝이 없는 밤에 물속에서 서로 부딪치고 화를 내면서 거친 말들을 내뱉기 시작했다네. 위대한 신들이었으므로 그들의 분노 또한 엄청났다네. 그때 남자와 여자들은 오직 귀만 제구실을 했다네. 사람들은 모두 박쥐와 같았다네. 신들이 엄청난 분노로 고래고래 소리 지르고 성질을 부리자 그 소음에 놀란 나머지 모두 숨어버렸다네.

 

그렇게 해서 신들은 홀로 남게 되었네. 어느 정도 화가 누그러지자 신들은 자신들이 (인간 없이 - 잉걸) 홀로 남게 되었음을 깨달았지. 신들은 홀로 있다는 사실 때문에 무척 상심했고, 비탄에 젖었다네. 그들은 사람들의 행동이 몹시 서운해서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네. 눈물이 하염없이 쏟아졌다네. 여자들도 없고, 남자들도 안 보이고, 세상에 홀로 남겨졌기 때문이었네.

 

펑펑 눈물이 쏟아지고 흐르자 온통 물뿐인 세상에 더 많은 물이 더해졌다네. 도저히 이 상황을 바꿀 만한 뾰족한 방법이 없었지. 칠흑 같은 밤이 계속되었다네. 물은 계속 불어났고, 신들은 비탄에 젖어 밤새 오열했다네.

 

신들은 추위에 바들바들 떨기 시작했다네. 그들은 오직 물 천지였던 밤보다 더 추위를 느꼈다네. 세상에 홀로 남았기 때문이었지. 신들은 좋은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했네. 신들은 자신들만 세상에 남고 싶지 않았기에 박쥐 남자들과 여자들을 동굴에서 나오게 하고, 어디로 가고 있는지 밝혀줄 빛을 만들기로 했다네. 사랑하고 피로를 풀기 위해 누울 땅을 만들기 위해 서로 의견을 주고받았다네.

 

신들은 함께 꿈을 꾸자고 의견을 모았다네. 빛과 땅을 함께 꿈꾸자고 다짐했다네. 신들은 불빛을 꿈꾸기 위해 그 주위를 떠돌고 있던 ‘침묵’을 사로잡아서 그곳에 놓아두었다네. 그러면서 함께 불빛을 꿈꾸기 시작했다네.

 

사방이 침묵 속에 착 가라앉았네. 모든 것이 물로 가득 찬 밤 속에서 이윽고 신들 사이에 ‘아린 상처’가 모습을 드러냈다네. 그러더니 물의 밤 위로 가느다랗고 긴 틈이 생겨났다네. 바로 그 순간 아주 작은 ‘낱말’이 춤을 추기 시작했지. 커졌다가 작아졌다가, 길어졌다가 짧아졌다가, 두꺼워졌다가 가늘어졌다 하면서 신들이 모여 있는 한가운데서 춤을 추기 시작했다네. 그때 모인 신들은 모두 일곱 명이었지. 이들은 가장 위대한 최초의 신이었다네.

 

신들은 침묵 속에 춤을 추고 있는 그 작은 ‘낱말’에게 조그만 집을 지어주기 위해 부산을 떨었다네. 신들은 꿈속에서 만나게 된 다른 낱말들을 떠올렸고, 그것들을 조합해서 그 작은 ‘낱말’의 이름으로 삼았다네.

 

‘불’.

 

신들은 이야기를 주고받을 때 사용하는 말들을 ‘불’이라고 불렀네. 그 말들이 함께 춤을 추고 있었다네. 땅이 나타나기 시작했으며, 빛이 불 주위로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어.

 

박쥐 남녀들이 동굴 밖으로 나오기 시작했다네. 그들은 밖으로 나와서는 서로 마주보고 만지며 사랑했다네. 이제 빛이 생기고 땅이 나타났으므로, 박쥐 남녀들은 자신들이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있게 되었다네. 또한 사랑을 하고 피곤을 풀기 위해 빛 속에서 땅 위에 누워 잠들 수 있게 되었네. 그 동안 박쥐 남녀들은 누울 땅이 없어서 제대로 잠들 수 없었다네.

 

그러나 신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다네. 신들이 회합을 위해 그곳을 떠나 오두막집으로 들어갔기 때문이라네. 신들이 회의를 할 때는 아무도 끼어들 수 없었지.

그들은 이제 합의점을 찾고자 애쓰고 있었다네.

 

신들은 오두막집에서 불을 꺼뜨리지 않기 위한 대책을 마련하느라 열띤 토론을 벌였네. 세상은 여전히 밤이 장악하고 온통 물 천지인 데 반해, 빛은 아주 약하고 땅 또한 조금밖에 없었기 때문이었네. 드디어 신들은 불을 하늘로 가져가자고 의견을 모았다네. 하늘까지는 물이 차지 않았기 때문이었지. 신들은 동굴 안에 있을 박쥐 남녀들에게 하늘에도 불을 일으킬 것이라는 사실을 알려야 한다고 생각했네.

 

신들은 불 주위에 둘러앉아 누가 저 하늘에서 살기 위해 이 땅에서 죽을 것인지 토론하기 시작했네. 그러나 좀처럼 결론을 내지 못하고 있었지. 누구도 지상에서 죽기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이야. 논의 끝에 신들은 가장 하얀 신이 가는 것이 좋겠다고 결론을 내렸네. 하얀 신이 가장 아름답기에 불 또한 저 하늘 위에서 아름답게 빛날 거라고 생각한 거야. 그러나 하얀 신은 겁쟁이여서 하늘에서 살기 위해 땅에서 죽고 싶지 않았다네.

 

그때 신들 가운데 가장 새까맣고 못생긴 신 ‘익(Ik)’이 불을 하늘로 가져가겠다고 말했다네. ‘익’은 불을 잡으려고 애쓰는 바람에 온몸이 까맣게 타들어가고 말았다네. 그 뒤 ‘익’은 잿빛으로 바뀌었고, 하얀색, 노란색, 오렌지색으로 바뀌어가더니 빨강색, 드디어 불이 되었다네. ‘익’은 뭐라고 중얼거리며 하늘에서 일어나더니 둥글게 바뀌었다네. 거기서 어느 때는 노랑, 어느 때는 오렌지색으로 바뀌다가 빨간색, 잿빛, 하얀색, 검정색으로도 바뀌게 되었다네.

 

‘해’.

 

신들이 그의 이름을 ‘해’라고 지었다네. 더 많은 빛이 세상을 비추었으므로 세상을 더 잘 볼 수 있게 되었고, 더 많은 땅이 생겨났으며, 물이 한쪽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면서 뫼(山)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네. 그때 하얀 신은 너무 부끄러운 나머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네. 그런데 눈물을 너무 많이 흘리는 바람에 자신이 어디로 향하는지 제대로 볼 수 없었어. 그러다가 몸의 균형을 잃고 그만 불 속으로 넘어졌다가 다시 일어났다네. 그러나 그에게서 나오는 불빛은 사뭇 슬퍼 보였다네. 자신이 겁쟁이라는 생각으로 너무 많이 울었기 때문이네. 그렇게 가장 하얀 신의 얼굴빛을 닮아 창백하고 우울한 둥근 불의 공이 생겨나서는 ‘해’ 바로 옆에 자리를 잡았다네.

 

‘달’.

 

신들은 그 하얀 공의 이름을 ‘달’이라고 지었다네. 그런데 ‘해’와 ‘달’은 움직이지 못하고 그 자리에 멈춰 서 있었다네. 걸을 수가 없었지. 신들은 이 사실에 가슴 아파하며 서로를 바라보았다네. 자신들을 돌아보면서 심한 부끄러움을 느낀 신들은 곧 모두들 불 속으로 뛰어들었다네. 그러자 ‘해’가 마침내 걷기(움직이기 - 잉걸) 시작했고, 그 뒤를 따라 ‘달’도 걷기 시작했다네. 사람들은 ‘달’이 ‘해’에게 용서를 빌기 위하여 그 뒤를 따른다고 말한다네.

 

이렇게 해서 낮과 밤이 생겼고, 박쥐 남녀들(문맥상 ‘박쥐처럼 어두운 동굴에 틀어박혀 있던 인간들’이라는 뜻인 듯하다 - 잉걸)은 동굴 밖으로 나왔지. 사람들은 불 근처에 오두막집을 지었고, 낮에도 밤에도 신들과 함께 있게 되었다네.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그들과 함께했네. 그 뒤에 벌어진 일들은 신들의 뜻이 아니었다네. 이제 신들은 모두 땅에서 죽었다네. 하늘에서 살기 위하여 …….

 

- 메히코의 마야인인 ‘돈 안토니오’가 사빠띠스따의 부사령관인 ‘마르코스’에게 들려준 마야의 옛날 이야기. 마르코스는 서기 1984년 12월에 이 이야기를 들었다고 증언한다.

 

* 출처 :『마르코스와 안토니오 할아버지』(마르코스 지음, 박정훈 옮김, 현실문화 펴냄, 서기 2008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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