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역사

개마두리 2013. 10. 21. 21:20

 

 

언젠가 두 갈래의 길이 나란히 나 있는 도시가 있었다. 한 수도승이 한쪽 길에서 다른 쪽 길로 건너갔다. 그는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어떤 사람이 이렇게 외쳤다.

 

 

“저쪽 길에서 누가 죽었다!”

 

 

그러자 이웃의 모든 아이들이 울음을 터뜨렸다.

 

 

사실 그 수도승은 양파껍질을 벗기다가 눈물이 나왔을 뿐이었다.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건너편 길까지 들렸다. 그러자 양쪽 길의 어른들은 너무나 걱정되고 두려워서 감히 이 난리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슬기로운 이가 양쪽 길의 사람들을 만나 어째서 서로 이 일의 원인을 묻지 않느냐고 물었다. 사실을 아는 것이 너무나 두려운 어떤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아는 것은 저쪽 길에 죽음의 재앙이 내렸다는 거요.”

 

 

다시 삽시간에 이 헛소문이 번져나가, 양쪽 길의 사람들은 제각기 건너편 길이 이젠 운이 다했노라고 생각했다.

 

 

질서가 좀 잡히자, 양쪽 사람들은 각자 살 길을 찾아 (다른 곳으로 - 인용자) 옮겨 살기로 했다. 모두 달아나기로 한 것이다. 결국 그 도시는 텅 비어 버렸다.

 

 

세월은 흘러 빈 도시는 황폐해졌다. 사람들이 그 도시를 떠난 일은 이제 먼 옛날 이야기가 되어 있었다. 그들이 새로 이주해서 개척한 두 마을은 그리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았다. 두 마을은 자신들이 옛날에 어떻게 크나큰 재앙으로부터 피신하여 새로운 마을을 개척했는지를 설명하는 각자의 전설을 갖게 되었다.

 

 

- 출처 : 『동냥그릇』(박상준 엮음, 장원 펴냄, 서기 1991년)

 

 

* 엮은이의 말 :

 

 

그대는 무슨 전설을 갖고 있는가? 뭘 중얼거리고 있는가? 참으로 터무니없는 일이다. 그러나 재미있는 일이다. 그대가 늘 중얼거리는 것이 바로 이렇게 터무니없이 재미있는 이야기들 아닌가. 그대는 이런 이야기들을 중얼거리며 산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이야기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전해지겠는가?

 

 

# 인용자(잉걸)의 말 :

 

 

역사에 오해와 선입견과 부풀림과 덧붙임이 없다면 그게 더 이상할 것이다. 적어도 전근대사회의 역사는 그렇다.

 

 

큰 멧돼지 한 마리를 사냥한 사냥꾼의 이야기가 후대(後代)에는 ‘집채만 하고, 머리가 여러 개 달렸으며, 사람을 잡아먹는 괴물을 죽인 영웅의 이야기’로 탈바꿈하며, 단순히 약탈자나 산적이나 해적일 뿐인 자들이 ‘뿔 달린 악마’나 ‘사람을 잡아먹는 귀신’으로 알려지고, 싸움을 잘 하고 사람을 많이 죽인 유목민족의 군인들이 ‘지옥(타르타로스)에서 솟아나온 자들’로 탈바꿈하기도 한다. 한 나라의 임금이 ‘적’을 늘릴 수 없어서 이웃나라에 외교사절을 보내 자신의 정권을 인정해달라고 부탁한 일이 그 ‘이웃나라’의 역사서에 ‘제 발로 찾아와서 신하가 되기로 마음먹은 일’로 바뀌는 건 차라리 ‘애교’로 봐 주어야 할 판이다.

 

 

나는 이 때문에 전근대사회의 역사서나 글자로 적히지 않고 말로 전해 내려온 역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말고, 언제나 다른 것(예컨대 같은 시대/같은 나라/같은 일을 다룬 다른 나라의 역사서나 전설)과 견주어보고, 의심할 수 있는 데까지 의심해서 그 ‘의심’을 푸는 데 성공한 사실(史實)만 진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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