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우화]저절로 되는 것

개마두리 2013. 10. 23. 12:28

한 수도승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신께 빌고 있는 사람을 만났다. 그런데 그 사람의 기도소리가 뭔가 이상했다. 그래서 그는 걸음을 멈추고 귀를 기울였다. 역시 그 사람의 기도는 영 엉터리였다. 신을 모독하는 짓거리임이 분명했다. 그 사람은 이렇게 중얼거리고 있었다.

 

“신이시여, 제발 당신 곁에 가까이 가게 해주십시오. 그렇게만 해 주시면 맹세코 당신의 몸을 깨끗이 닦아 드리겠습니다. 더럽다면요. 또 몸에 이라도 있으면 그놈들을 모조리 잡아 없애 드리겠어요. 그리고 전 훌륭한 구두장이니까 당신께 꼭 맞는 구두를 만들어 드릴게요. 아무도 당신을 보살피지 않잖아요. 제가 당신을 보살피겠어요. 당신이 병이라도 나시면 제가 돌보고 병원으로 모시겠어요. 그리고 또 저는 훌륭한 요리 솜씨를 갖고 있거든요 …….”

 

듣고 있던 수도승이 더는 못 참겠다고 생각하고 소리쳤다.

 

“그만두쇼! 그런 엉터리 기도는 그만두라고! 당신, 지금 뭐라고 했는가? 신께 이가 들끓는다고? 신의 옷이 더럽다면 그걸 빨아드리겠다고? 대체 누구한테서 그런 엉터리 기도를 배웠는가?”

 

그 사람이 말했다.

 

“그런 거 배운 적 없어요. 전 가난한 무식쟁이죠. 제가 빌 줄 모른다는 건 저도 알아요. 그냥 제 나름대로 하는 거예요. …… . 제가 아는 건 이런 것뿐이예요. 제겐 이가 아주 많이 들끓는데, 신께도 이가 있다면 분명 속상하실 거예요. 또 제가 먹는 음식은 아주 형편없는 거라서 때때로 배가 몹시 아픈데 어쩌면 신께서도 그러실지 모르거든요. 이건 진짜 제가 겪은 일이고, 제가 아는 것들이예요. 전 제가 아는 대로 신께 빌 뿐이예요. 당신이 정말 올바른 기도를 아신다면 제게도 좀 가르쳐 주세요.”

 

그리하여 수도승은 그 사람에게 올바른 기도를 가르쳐 주었다. 그 사람은 넙죽 절하며 깊은 감사의 눈물을 흘렸다. 수도승은 그를 보내고 나서 마음이 아주 흡족했다. 그는 매우 뜻 깊은 일을 했노라 생각하며 하늘을 우러러보았다.

 

그 때 하늘에서 매우 노한 말소리가 들렸다.

 

“사람들을 내게 가까이 데려오도록 그대를 보냈거늘, 그대는 도리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만들었구나!”

 

- 출처 :『동냥그릇』(박상준 엮음, 장원 펴냄, 서기 199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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