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살로모 황제와 고슴도치

개마두리 2013. 10. 23. 14:40

살로모 황제가 천하를 다스리고 있을 때의 이야기다. 하루는 천사 지브릴(원문에는 ‘가브리엘’로 나오나, 이 이야기는 근세 서아시아에서 유행하던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는 아랍/이슬람 세계의 이름인 ‘지브릴’일 가능성이 높다 - 인용자)이 영원한 삶을 주는 생명의 물이 담긴 병을 들고 와서는 머리를 조아리며 말했다.

 

“슬기로운 황제시여, 하늘과 땅의 모든 피조물을 대신해 인사를 올립니다. 모두가 폐하를 기리고 있습니다. 폐하의 덕을 찬양하기 위해 이 생명수를 드립니다. 만일 폐하의 바람이 영원한 삶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할지라도, 영원히 사시게 되면 언젠가는 모든 위대하신 분들의 슬기(지혜)를 얻으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황제는 이 선물을 받을 것인지 말 것인지를 놓고 심각하게 고민한 끝에, 슬기로운 선지자들을 모두 불러 참된 충고를 얻기에 이르렀다.

 

선지자들은 입을 모아 “이 생명의 물을 마시고 영원한 삶을 얻으십시오.”라고 말했다.

 

황제는 이번에는 모든 짐승을 모았다. 짐승들 또한 그에게 생명의 물을 마시라고 권했다. 다만 한 짐승, 고슴도치만 빼고는.

 

고슴도치가 황제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머리를 조아렸다.

 

“다른 이들은 모두 저 혼자 다른 견해를 갖고 있어서 제가 잘못 생각한 것이라고 할 것이옵니다. 그러나 황제시여, 허락하신다면 기꺼이 제 의견을 말씀드리겠습니다.”

 

"훌륭한 고슴도치여, 지금은 크든 작든, 또 부자든 가난뱅이든 누구나 자신의 의견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어전회의중일세. 만일 자네가 바다의 모래 속에 섞인 단 하나의 콩알과 같은 미미한 존재라도 좋으니 자네 의견을 말해보게.“

 

“총명하시고 슬기로운 황제시여.” 하고 고슴도치가 천천히 말을 꺼냈다.

 

“생각해 보십시오. 신(神)의 은총으로 폐하께 영원한 생명의 물이 내려졌지만, 폐하의 자제분들이나 혹은 친척에게도 주어진 것은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그 물이 식구나 다른 사람들에게도 주어져서 모두 함께 영원히 살 수 있다면 - 신의 은총대로 - 그렇게만 될 수 있다면 좋겠지요. 모두 다 똑같이 신의 은총을 받는 것이니까요.

 

그렇지만 폐하 혼자서만 그걸 마시신다는 건 그다지 현명하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혼자서 영원한 삶을 얻는다면 그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사랑하는 아드님이나 동무(친구)분들은 나이가 들어서 오늘은 이 사람, 내일은 저 사람, 그렇게 하나둘씩 폐하 곁을 떠나실 텐데, 폐하 혼자 남아서 어떻게 그 헤어짐을 다 달게 받아들이시렵니까? 그 생명의 물을 마시신다면 영원한 삶은 얻을지 몰라도 아마 삶에 대한 의욕은 사라져버릴 것입니다.

 

그러자 황제가 대답했다.

 

“자네의 현명한 통찰력이 놀랍군. 미처 그런 생각까지는 하지 못했네. 짐은 자네의 충고를 따르겠노라.”

 

- 출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채운정 옮김, 정신세계사 펴냄, 서기 1998년)

 

* 인용자(잉걸)의 말 : <하이랜더 1>의 주인공인 ‘코너 맥클라우드’나 <진용(秦俑)>의 주인공인 ‘몽천방’이라면 이 이야기에 나오는 고슴도치의 말에 적극적으로 찬성할 것이다. 그들은 고슴도치가 경고한 바로 그 삶을 직접 살았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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