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다리

개마두리 2014. 3. 19. 20:35

도시의 절반을 나머지 절반에 잇기 위해 앗시 강이 바다와 만나는 지점인 안티오크에 다리가 세워지고 있었습니다. 안티오크에 있는 노새의 등에 실려 산으로부터 날라진 커다란 돌들로 다리가 놓였습니다.

 

다리가 다 만들어졌을 때, 그 기둥에는 헬라스(그리스의 정식 국호 - 인용자 잉걸) 말과 아랍 말로 ‘안티오쿠스 2세 왕이 이 다리를 세우다.’라고 새겨졌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그 훌륭한 다리를 통해 커다랗고 아름다운 앗시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저녁, 한 젊은이가 왕의 뜻을 새긴 기둥 쪽으로 내려가 숯으로 새긴 글을 지워버리고 다음과 같이 썼습니다.

 

‘이 다리의 돌들은 산꼭대기에서 노새에 의해 날라져 온 것이다. 이 다리를 오가는 당신은 이 다리를 세운 짐승인 안티오크 노새의 등을 타고 있는 것이다.’

 

젊은이가 써놓은 것을 읽으며 어떤 이는 웃고 어떤 이는 경탄했습니다. 또 몇몇 사람은 말했습니다.

 

“오, 그래. 우리는 누가 이 짓을 했는지 알지. 그 미친놈일 거야.”

 

그러자 한 노새가 웃으며 다른 노새에게 말했습니다.

 

“우리가 저 돌을 옮기던 일이 생각나지 않아? 그런데 지금까지도 사람들은 이 다리를 안티오쿠스왕이 세웠다고 말하고 있으니 …….”

 

- 칼릴 지브란의 우화

 

-『Tea time 그리고 Message』(칼릴 지브란 지음, 이수민 옮김, 도서출판 선영사 펴냄, 서기 2013년 3판 1쇄 발행)

 

* 인용자의 말 : 역사를 통해 기억해야 하는 사람들은 이 우화에 나오는 안티오쿠스 2세가 아니라 그의 생각 - 다리를 놓아야겠다는 생각 - 을 몸으로 실천한 “노새”라는 이름의 씨알(민중을 일컫는 순우리말)들이다. 우리는 지휘관이나 지도자나 윗사람들에게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들의 뒤를 따르고, 그들을 믿고, 그들을 도와서 함께 일한 보통사람들을 잊어버리기 일쑤다. 후자가 없었다면 아무리 전자가 뛰어났더라도 역사적인 일을 이룰 수 있었겠는가? (예를 들어보자. 살수대첩에서 을지문덕 장군의 공로를 강조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그를 믿고, 그의 작전을 실행하고, 그와 함께 목숨을 걸고 싸웠던 고구려의 이름 없는 병사들이 아니었다면 을지 장군이 이길 수 있었을까?) 그러니 좀 더 사려 깊은 역사가라면 후자가 한 일을 반드시 전자가 한 일과 함께 역사책에 적어야 한다.

 

역사가는 - 그리고 역사를 배우는 사람이나 역사를 가르치는 사람은 - 다리에 노새들의 이야기를 적는 젊은이가 되어야지 노새들을 부리면서 정작 자기는 궁전 안에 편하게 앉아 있었던 왕에게 아첨하는 글을 새기는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된다. 특히 당신이 그 노새들 가운데 한 마리라면 더욱 그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우화'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강  (0) 2015.11.01
▷◁나무들과 도끼  (0) 2014.08.10
▩사람과 사자  (0) 2014.02.24
▩늑대가 된 아기 양  (0) 2014.02.22
▩용(龍)을 잡는 사냥꾼  (0) 2013.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