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강

개마두리 2015. 11. 1. 21:21

 

웅장한 강물이 흐르는 ‘카디샤’ 계곡에서 작은 시냇물 둘이 만났다. 한 시내가 말했다.


“내 친구여,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가? 오는 길은 어땠는가?”


다른 시내가 대답했다.


“나의 행로에는 역경이 많았다네. 물레방아는 바퀴가 부러졌고, 나를 자기 곡식밭으로 끌어가곤 하던 농장주는 죽었네. 나는 햇빛 아래 앉아서 아무것도 안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들의 불결함에 진저리를 치면서 겨우겨우 내려왔네. 그런데 형제, 자네가 온 길은 어땠나?”


다른 시내가 대답했다.


“내 길은 달랐지. 나는 향기로운 꽃들과 수줍어하는 버드나무들 가운데 있는 언덕을 따라 내려왔네. 남자들과 여자들이 은으로 된 잔으로 나를 마셨고, 어린아이들은 기슭에 앉아 장밋빛 발로 물장구를 쳤고, 내 주위에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어. 그리고 달콤한 노래도 있었지. 자네가 지나온 길이 행복하지 못했다니 참 안 됐네.”


그 순간 강물이 높은 목소리로 말했다.


“들어오라, 들어와. 우리는 바다로 간다. 들어오라, 들어와. 이야기는 그만하고, 이젠 나하고 함께 있자. 우리는 바다로 간다. 내게로 들어오면 너희들은 지금까지 헤맨 것을 모두 잊을 것이다. 슬펐든 우울했든, 어머니인 바다의 심장에 도착할 때면 너희들과 나는 우리가 지나온 길을 모두 잊을 것이다.”


- 칼릴 지브란의 우화


* 출처 :『예언자』(칼릴 지브란 지음, ‘펀앤런북스’ 펴냄, 서기 1996년)에 실린 지브란의 우화집인『방랑자』


# 인용자의 말 :


우리의 삶도 결국은 이 우화와 마찬가지가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우리들 하나하나는 “시내”고, “강물”은 죽음이며, “바다”는 저 세상이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시내가 강물에 합류하기까지 흘러온 과정은 인생이며, 강물이 ‘지금까지 흘러오면서 겪었던 일들은 잊어라. 우리가 바다로 가면 모든 것을 잊을 것이다.’라는 말은 어떤 삶을 살았건 상관없이, 죽으면 더 이상은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건 아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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