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임금님과 농부의 이야기내기

개마두리 2015. 6. 25. 00:39

 

* 농부(農夫) : 순우리말로는 여름지기’.

 

이야기 듣는 것을 밥 먹는 것보다 더 좋아하는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틈만 나면 이야기꾼을 불러 이야기를 시켰습니다. 불려 온 이야기꾼은 임금님이 그만 하라고 할 때까지 쉼 없이 이야기를 해야 했습니다. 임금님은 하루도 빠짐없이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어느덧 나라 안에는 임금님이 듣지 않은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이야기꾼이 한 사람도 남지 않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은 새로운 이야기가 듣고 싶어 안달이 났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이렇게 알렸습니다.

 

이야기를 해서 내가 충분해, 그만 해!’ 하고 외치게 하는 사람에게는 넓은 땅과 벼슬자리를 주겠노라.”

 

이 소식을 듣고 수많은 사람들이 찾아왔습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열심히 이야기를 했습니다. 하지만 임금님이 충분해, 그만 해!’ 하고 외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 농부가 찾아왔습니다.

 

임금님께서 이야기에 물려 소리를 지르실 때까지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임금님은 껄껄 웃었습니다.

 

하하하. 우리 나라에서 가장 훌륭한 이야기꾼도 내게서 충분하다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돌아갔네. 그런데 어떻게 자네 같은 농부가 내게서 그런 말을 들으려 하는가?”

 

임금님, 저는 할 수 있습니다.”

 

넓은 땅과 벼슬자리를 얻을 욕심으로 찾아왔겠지만 어림없을걸. 아무튼 이야기를 시작해 보게.”

 

농부는 양탄자에 편히 앉아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옛날에 한 농부가 밀을 심었습니다. 밀이 다 자라자, 농부는 밀을 베어 타작을 했습니다. 그리고 낟알을 모두 곳간에 넣어 두었지요. 그 해에는 큰 풍년이 들어 곳간이 가득 찼답니다. 그런데 그 곳간에는 조그마한 흠이 있었습니다. 지푸라기 하나가 겨우 들어갈 만큼 작은 구멍이었지요. 어느 날, 개미 한 마리가 그 구멍으로 들어왔습니다. 개미는 밀더미를 보고 기뻐 어쩔 줄 몰랐습니다. 개미는 낟알 하나를 물고 갔습니다.”

 

아하!”

 

임금님은 농부의 이야기에 감탄을 했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들어 보지 못한 새로운 이야기였던 것입니다.

 

농부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이튿날, 다른 개미가 구멍으로 들어와서 낟알 하나를 물어 갔습니다.”

 

아하!”

 

임금님이 좋아서 또 감탄을 했습니다. 농부는 계속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그 이튿날이었습니다. 다른 개미가 와서 낟알 하나를 물어 갔지요.”

 

아하!”

 

이튿날, 또 다른 개미가 와서 낟알을 물어 갔습니다.”

 

그래 그래, 알았어. 이제 그 다음에 어떻게 되었는지 이야기해 보라고.”

 

임금님은 농부를 다그쳤습니다. 하지만 농부는 같은 말만 되풀이했습니다.

 

이튿날, 다른 개미가 와서 낟알 하나를 물어 갔습니다. 그리고 그 이튿날, 다른 개미가 와서 낟알 하나를 물어 갔습니다.”

 

임금님은 버럭 짜증을 냈습니다.

 

그런 시시콜콜한 이야기는 그만 하고, 빨리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임금님이 그러거나 말거나 농부는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이튿날, 다른 개미가 와서 다른 낟알 하나를 물어 갔습니다. 그리고 …….”

 

이제 개미가 낟알을 물어 갔따는 얘긴 알겠다니까.”

 

임금님은 농부에게 사정했습니다.

 

임금님, 이 이야기에는 개미가 아주 많이 나온답니다.”

 

농부는 이렇게 말하고 이야기를 계속했습니다.

 

이튿날, 다른 개미가 와서 낟알 하나를 물어 갔습니다. 그리고 …….”

 

안 돼, 그만 하라니까! 개미가 낟알을 물어 가서 어떻게 되었단 말인가?”

 

임금님이 벌컥 화를 냈습니다.

 

하지만 이 이야기에서는 개미가 낟알을 물어 가는 게 가장 중요하답니다.”

 

농부는 이렇게 말하고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이튿날 다른 개미가 와서 낟알을 물어 갔습니다. 그 이튿날 …….”

 

여보게. 제발 다음으로 넘어가자고.”

 

하지만 농부는 들은 체도 하지 않았습니다.

 

이튿날 다른 개미가 와서 낟알 하나를 .”

 

그만둬!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아!”

 

임금님이 귀를 막고 소리쳤습니다.

 

임금님. 그 곳간에는 아직도 밀이 가득 차 있습니다. 그 밀을 다 옮겨야만 다음 이야기로 넘어갈 수 있답니다. 이튿날 다른 개미가 와서 …….”

 

이제 제발 그만 해! 충분하니까 그만 하라고!”

 

임금님이 벌떡 일어서며 소리쳤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농부는 이야기를 이어 나갔습니다.

 

이튿날 다른 개미가 와서 낟알을 …….”

 

충분해, 그만 하라고! 너에게 넓은 땅과 벼슬자리를 주겠다.”

 

임금님은 방에서 뛰쳐나가면서 소리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농부는 넓은 땅과 벼슬을 얻었습니다.

 

- 에티오피아의 옛날이야기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15 - 슬기로운 처녀(작은 제목 지혜로운 사람들 이야기’, 조호상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잉걸의 말 :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 그리고 이 이야기가 적힌 글을 옮겨 적으면서 - 낄낄거렸음을 털어놔야겠다. 정말이지 이 이야기에 나오는 여름지기는 대단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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