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사라진 추장의 칼

개마두리 2014. 10. 9. 17:32

어느 마을에 추장이 살고 있었습니다. 추장에게는 집안 대대로 전해져 내려오는 칼이 한 자루 있었습니다. 그 칼은 손잡이가 구리와 보석으로 장식된 아름답고 훌륭한 보물이었습니다.

 

추장은 그 칼을 매우 소중히 여겼습니다. 추장은 아침마다 칼을 꺼내 반짝반짝 빛이 나게 닦아 두곤 했습니다.

 

어느 날, 마을에서 추장의 생일잔치가 벌어졌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한데 어울려 밤새도록 덩실덩실 춤도 추고 즐겁게 놀았습니다. 추장은 자기 생일 잔치에 온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고 선물도 듬뿍 주었습니다.

 

잔치가 끝난 다음 날 아침이었습니다. 그 날도 추장은 여느 날처럼 칼을 닦으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칼이 보이지 않았습니다. 온 방 안을 뒤져 보아도 칼이 나오지 않자, 추장은 하인들을 불러 집 안 구석구석을 뒤지게 했습니다. 그러나 칼은 아무 데에도 없었습니다.

 

화가 난 추장은 마을 사람들을 모두 불러모았습니다.

 

“그 칼은 나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우리 부족 모두의 보물이다. 그런데 어제까지만 해도 내 방에 있던 칼이 사라져 버렸다. 생일잔치를 하는 동안 누군가 내 칼을 훔쳐간 게 분명해. 온 마을을 뒤져서라도 그 칼을 반드시 찾고야 말겠다. 그리고 칼을 훔쳐 간 도둑은 절대로 그냥 두지 않겠다.”

 

추장의 말을 들은 마을 사람들이 수군거렸습니다.

 

“누가 감히 추장님 칼을 훔쳐 갔을까?”

 

“누구건 간에 이제 죽은 목숨이야.”

 

잔치에 참석했던 사람들은 서로를 수상한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다가 마을 사람들은 한 젊은 사냥꾼을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자네, 추장의 생일잔치에 갔었나?”

 

“물론 갔었지요. 음식도 실컷 먹고, 춤도 추고 놀았는 걸요.”

 

젊은 사냥꾼은 태연하게 대답했습니다.

 

“사냥하려면 좋은 칼이 필요하겠군. 그렇지?”

 

젊은 사냥꾼은 그제야 마을 사람들이 자기를 의심하고 있다는 걸 눈치챘습니다. 사냥꾼은 몹시 화를 냈습니다.

 

“난 내 칼이 있어요. 짐승 가죽을 벗기는 데 추장님 칼은 아무 쓸모가 없다고요.”

 

마을 사람들은 젊은 사냥꾼이 더욱 의심스러워졌습니다.

 

“너무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 게 수상해. 우리한테 그렇게 화를 낼 필요가 없을 텐데 말이야.”

 

“맞아, 자기한테 죄가 없다면 그렇게 흥분할 이유가 없지.”

 

그러나 젊은 사냥꾼은 더 이상 마을 사람들을 상대하지 않고 서둘러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그렇게 흥분하는 것도 이상하지만, 저렇게 도망치듯 가 버리는 것도 수상해. 아무래도 저놈이 칼을 훔쳐 간 것 같아.”

 

마을 사람들은 이렇게 쑥덕거렸습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났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젊은 사냥꾼의 행동을 유심히 관찰했습니다.

 

젊은 사냥꾼이 잡은 짐승을 어깨에 메고 지나가면 사람들은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저것 보라고. 걷는 모습이 수상하잖아.”

 

“맞아. 뭔가 숨기고 있는 게 분명해.”

 

젊은 사냥꾼이 가는 곳마다 사람들은 모여서 이렇게 수군거렸습니다. 어쩌다 사냥꾼이 말을 걸어 와도 슬슬 피했습니다. 심지어는 젊은 사냥꾼이 잡아온 짐승 가죽은 사려고도 하지 않았습니다.

 

젊은 사냥꾼은 이제 짐승 가죽을 팔려면 멀리 떨어진 다른 마을까지 가야만 했습니다. 마침내는 마을 사람들 모두가 그 사냥꾼을 나쁜 도둑으로 굳게 믿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수상해. 꼭두새벽에 마을을 빠져 나가더라고.”

 

“맞아. 법을 어기지 않았다면 모두들 잠든 새벽에 마을을 빠져 나갈 이유가 없지.”

 

“요사이엔 한밤중에야 오더라고.”

 

“그 녀석을 잡아다가 혼을 내 주자고. 그런 도둑을 그냥 내버려 두었다가는 나중에 우리까지 벌을 받을지도 몰라.”

 

마을 사람들이 모두 자기를 의심했기 때문에 젊은 사냥꾼은 무척 외로웠습니다. 마을에 있기가 싫어서 밤이 되어도 집에 돌아오지 않고 숲 속에 머물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추장의 칼을 찾았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추장이 창틀 위에 올려 두고는 손님 접대를 하느라 깜빡 잊었는데, 어쩌다가 칼이 창 밖 풀숲으로 떨어졌던 것입니다.

 

그 얘기를 들은 마을 사람들은 다들 당연하다는 듯이 이렇게 이야기했습니다.

 

“내 그럴 줄 알았어. 우리 마을에 도둑이 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거든.”

 

“그럼, 나도 그렇게 생각했다고.”

 

이제 더 이상 젊은 사냥꾼의 행동이 수상하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사냥꾼이 이른 새벽에 마을을 나서면 사람들은 오히려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걸 봐. 저 친구, 정말 열심히 일해. 하루 종일 사냥을 하느라 숲에서 살다시피 하잖아? 정말 착실한 청년이라고.”

 

그리고 사냥꾼이 밤늦게 돌아오면,

 

“남보다 일찍 나가고서도 남보다 더 늦게 돌아오다니, 저 친구 정말 부지런하지? 저녁이면 저렇게 짐승을 메고 돌아오는 모습이 얼마나 늠름한지 몰라.”

 

하면서 침을 튀겨 가며 칭찬했습니다. 그리고 젊은 사냥꾼에게 일부러 다가와 말을 걸곤 했습니다.

 

그러나 젊은 사냥꾼은 마을 사람들이 아무리 친한 척해도 꼭 필요한 말만 짧게 하고는 더 이상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이제까지 자기를 도둑으로 의심하던 사람들과 길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사냥꾼의 이런 태도까지 칭찬했습니다.

 

“남들처럼 수다를 떨지도 않으니 얼마나 믿음직스러운가. 사냥꾼이란 보통 말 많은 허풍쟁이들인데, 저 청년은 다르단 말야.”

 

마을 사람들은 이제 사냥꾼의 행동 하나하나를 칭찬하기에 바빴습니다. 사냥꾼을 도둑으로 몰았던 일은 까맣게 잊어버렸다는 듯이 말입니다.

 

이런 일이 있은 후 마을에서는 언제부턴가 이런 노래가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을 꾸짖는 이 노래는 아이들의 입을 타고 멀리멀리 퍼져 나갔답니다.

 

추장의 칼이 없어졌을 때

사냥꾼의 걸음은 도둑놈의 걸음걸이였다네.

추장이 칼을 다시 찾자

사냥꾼은 마을의 자랑이 되었지.

 

- 나이지리아의 옛날 이야기

 

- 출처 : 웅진 메르헨 월드『사라진 추장의 칼』(김성희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년)

 

* 옮긴이의 말 : 22년 전『파라독스 중국 우화』를 우리말로 옮긴 어느 번역가(‘이효림’ 씨)가 말했듯이, “눈은 마음이 보는 것을 볼 뿐이다.” 이 이야기가 나와 당신에게 그 진리를 다시 한 번 가르쳐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