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반장 마을의 석수장이

개마두리 2015. 7. 6. 11:51

 

인도네시아의 마라피 산기슭에는 아름다운 호수가 있습니다. 호숫가의 작은 오두막집에 한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의 이름은 이스마엘 벤 알랑이었습니다(아랍어로 알랑이라는 사람의 아들[]인 이스마엘이라는 뜻. 인도네시아는 무슬림이 다수인 나라고, 따라서 사람들은 아랍식 이름을 쓴다 - 옮긴이). 사람들이 알랑 노인이라고 부르는 그는 돌을 다듬어 내다 파는 석수장이였습니다.

 

노인은 매일 아침 해가 떠오르면 연장을 나귀에 싣고 마라피 산으로 올라갔습니다.

그리고는 산 위에 흩어져 있는 바위를 곡괭이로 파내어 망치로 알맞게 부수었습니

. 일이 끝나면 나귀 잔등에 돌을 가득 싣고 반장이라는 마을로 갔습니다. 사람들

은 집을 짓거나 길을 닦을 때 돌이 필요했으므로, 알랑 노인에게서 돌을 샀습니다.

알랑 노인은 하루도 빠짐없이 돌을 팔러 마을로 내려왔기 때문에, 반장 마을에서는

그를 모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알랑 노인은 그 날도 다른 날과 마찬가지로 잘게 부순 돌을 나귀에 싣고 마을로 내려갔습니다. 해는 쨍쨍 내리쬐고, 땅은 이글이글 타올랐습니다. 지치고 목이 마른 알랑 노인은 잠시 쉬었다 가려고 망고나무 밑으로 갔습니다.

 

가까이 가 보니, 망고나무 밑에 웬 젊은이가 앉아 있었습니다. 그는 칼과 도끼를 만드는 대장장이였습니다. 알랑 노인이 땀을 흘리며 오는 것을 본 그가 말을 걸었습니다.

 

할아버지, 이제 그런 일을 하시기앤 연세가 너무 많지 않으세요? 돌을 깨고 부수어 나르는 일은 무척이나 힘이 들 텐데요.”

 

알랑 노인은 나귀를 매어 두고, 이마에 흐르는 땀을 닦으면서 대답했습니다.

 

하지만 석수(石手. 석공石工이라고도 한다. ‘돌을 다루어 물건을 만드는 사람이라는 뜻이다. 순우리말로는 돌장이라고 한다 - 인용자)일은 이 세상에서 제일 멋진 일인걸! 석수장이야말로 뭐니뭐니 해도 가장 힘센 사람이지.”

 

하하하. 전 아직 대장장이보다 더 힘센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없는데요. 저는 단단한 쇠를 뜨거운 불에 달구고 두드려서 온갖 연장을 다 만들어 내니까 말입니다.”

 

젊은이가 팔뚝에 힘을 주어 알통을 만들어 보이며 뽐냈습니다. 하지만 거기에 물러설 알랑 노인이 아니었습니다.

 

아니야. 뭐니뭐니해도 석수장이보다 더 힘센 사람은 없어. 왜 그런지 내 말 좀 들어 보겠나?”

 

늙은 석수장이 알랑 노인은 젊은 대장장이에게 옛날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옛날 마라피 산기슭의 아름다운 호숫가에 젊은 석수장이가 살았다네. 그는 아주 부지런한데다가 꿈도 많아서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일을 하면서 살고 싶어했지. 그 젊은이도 나처럼 돌을 파내어 나귀에 싣고 마을로 팔러 다니곤 했다네.

 

그런데 그 마을에는 왕이 살고 있는 궁전이 있었지 뭐야. 어느 날, 그 석수장이가 왕의 궁전 밑을 지나게 되었지. 우뚝 치솟은 궁전의 탑 위에는 왕과 왕비가 앉아 있었어. 호화로운 옷을 입고 보석으로 치장한 두 사람이 마주 앉아 한가로이 장기를 두고 있는 거야.

 

, 참 멋지구나. 왕보다 더 힘세고 멋진 사람이 세상에 또 있을까?’

 

석수장이는 연방 감탄하면서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어.

 

당신이 둘 차례요.”

 

왕이 말하니까 왕비가 고운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어.

 

호호호, 아니에요. 당신이 두실 차례예요.”

 

석수장이는 그 모습이 너무 부러워서 속으로 생각했지.

 

만일 내가 저기 앉아 있는 왕이 된다면 더 이상 바랄 게 없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어라, 이게 어찌 된 일이람! 그가 갑자기 왕이 되어 있는 게 아니겠어! 그의 앞에는 아까 보았던 아름다운 왕비가 앉아 있는 거야. 그녀는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으면서 왕이 된 석수장이에게 이렇게 말하는 거야.

 

호호호, 뭘 하고 계세요? 당신이 두실 차례예요.”

 

그런데 갑자기 그들이 앉아 있는 궁전의 탑으로 뜨거운 햇빛이 쏟아지는 거야. 햇빛이 너무 뜨거워서 참다 못한 그가 속으로 투덜거렸어.

 

난 왕이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세다고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아니군 그래. 왕인 나까지 못 살게 구는 저 햇빛이 더 힘이 센 게 틀림없어. , 내가 해가 될 수만 있다면 세상의 모든 왕들에게 뜨거운 빛을 퍼부어 그들을 덥게 만들 텐데!’

 

그렇게 생각한 순간, 갑자기 그가 해로 변하는 거야. 해가 된 석수장이는 자기의 뜨거운 빛을 땅으로, 궁전으로 마구 비춰 댔지. 그러자 왕들이 더워서 어쩔 줄을 모르는 거야.

 

역시 해가 제일 힘이 세군. 난 이제 이 세상의 어떤 것보다 힘이 세다!”

 

그가 이렇게 흐뭇해하고 있는데, 마침 그 아래로 작은 조각구름이 하나 지나가는 거였어. 그는 작은 구름에게도 빛을 내리쬐었지. 아니, 그런데 이 작은 구름이 세상에서 제일 센 해가 보내는 빛을 막아 버리는 거야. 그리고 사람들은 그 구름 때문에 어어, 시원하다.” 하는 거야.

 

오호라, 해보다 더 힘센 것이 저 작은 구름이었구나. 내가 구름이 될 수만 있다면 이 세상에서 제일 힘센 자가 되고, 그러면 나는 정말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그가 이렇게 중얼거리는 동안, 그는 벌써 구름이 되어 있었어. 그는 땅을 내려다보면서 높은 하늘을 둥실둥실 떠다녔지. 그러다가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면 자기 몸으로 빛을 가렸어. 사람들은 모두들 구름에게 고마워했어. 그는 자기가 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다고 생각하며 만족해했지.

 

그런데 갑자기 어디선가 거센 바람이 불어오는 거야. 그는 바람에 밀려서,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하면서 바람이 부는 대로 끌려 다니는 수밖에 없었지.

 

, 바람이 제일 힘이 세구나. 아직까지 그걸 모르고 있었다니! 이젠 왕도 싫고, 태양도 싫고, 구름도 싫어. 바람이 될 수만 있다면 나는 이 세상에서 제일 힘센 자가 될 텐데!”

 

이렇게 한탄하다 보니 그는 어느 새 바람이 되어 있었어. 그리고는 떠다니는 구름에게 신나게 입김을 불어 댔어. 구름은 그가 부는 대로 앞으로 가고, 뒤로 가고, 모였다 흐트러졌다 하면서 야단법석을 피우는 거야. 그는 이번에는 잔잔한 바다로 가서 물결을 일으켰지. 그러자 바다가 사나워져서 배들이 뒤집혔어. 그는 또 비를 몰고 다니면서 땅 위에 뿌리기도 하고, 나무의 뿌리를 통째로 뽑기도 하고, 논에 있는 곡식들을 몽땅 쓰러뜨리기도 했어.

 

재미가 난 그는 세상 곳곳을 돌아다니기에 바빴지.

 

이제 누가 뭐래도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세다고!”

 

그는 이렇게 뽐내며 세상을 돌아다니다가 마침내 마라피 산까지 오게 되었지. 그는 다른 곳에서 했던 것처럼 마라피 산을 향해서 훅 입김을 불었지. 그런데 마라피 산은 꿈쩍도 않는 거야. 화가 난 그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서 입김을 불었어. 그런데도 역시 마라피 산은 끄떡없었어. 그는 힘이 다 빠져서 지칠 대로 지쳤어. 아무리 화를 내도 마라피 산을 부수기는커녕 움직일 수조차 없는 거야. 그는 할 수 없이 산을 비켜서 지나가야 했지. 그러면서 생각했어.

 

 

이제 알았어. 이 세상에서 제일 힘이 센 것은 바로 이 마라피 산이야. 내가 마라피 산이 될 수 있다면 정말 행복할 텐데!’

 

그래서 그는 바라던 대로 마라피 산이 되었지 뭐야. 그는 당당하게 버티고 서서 골짜기마다 그의 그림자를 드리워 주곤 했지. 거센 바람도 그 앞에선 꼼짝 못하고 비켜 갔지.

 

그런데 한 사람이 매일 아침 그에게 와서는 곡괭이로 산을 두들기고 망치로 바위를 부수는 거야. 그리고 그것을 마을로 가지고 가서 파는 거였어. 그걸 본 마라피 산은 이렇게 말했어.

 

, 난 정말 몰랐어! 저렇게 작은 사람 하나가 바람도 이겨 내는 나를 부수다니! 나는 이제 석수장이가 되고 싶어. 이 세상에서 제일 힘센 것은 석수장이야!”

 

그래서 그는 다시 석수장이가 되었지 뭐야. 그는 예전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마라피 산으로 가서는, 돌을 캐낸 뒤 잘게 부수어 마을에 내다 팔았지. 마을에는 왕과 왕비가 살고 있었는데, 석수장이는 이제 그들을 봐도 전혀 부럽지 않았어. 이 세상에서 제일 힘센 것이 무엇인지 알았기 때문이지.

 

알랑 노인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났습니다. 그는 다시 옆에 있는 젊은 대장장이에게 말했습니다.

 

젊은이 말대로 나는 이렇게 늙었다네. 그리고 돌을 캐내고 부수는 힘든 일을 하지. 하지만 석수장이는 이 세상 어느 누구보다도 힘이 세다네.”

 

말을 마치고 일어난 노인은 나무에 매어 두었던 나귀를 끌고 다시 길을 떠났습니다.

 

 

- 인도네시아의 옛날이야기

 

* 출처 :웅진메르헨 월드 37 - 레몬 소녀(박숙희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 인용자(잉걸/김박사)의 말 :

 

당신이 지금 여기서 하고 있는 일이 세상의 그 어떤 일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 그리고 당신이 하는 일이 가장 가치 있는 일이라는 사실도 잊지 말라. 이 이야기에 나오는 석수장이가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듯이, 이 이야기를 읽는 당신도 다른 누군가에게는 이 세상에서 가장 힘이 센 사람이다. 그러니 자부심을 품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