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이심이 이야기

개마두리 2015. 7. 10. 21:45

 

인간이 빚어낸 상상의 동물 중, (. 순우리말로는 미르꽝철이’ - 옮긴이)과 비슷한 부류에는 '이무기''이심이'가 있다. '이무기'는 용이 되다 만 찌꺼기이므로 '이심이'와는 전혀 다른 것인데, 우리들에게 이심이 이야기는 거의 맥이 끊겨 버렸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용은, 어느 날 갑자기 하늘로 날아오르거나 개천에서 용 나듯이 여의주 하나만 얻으면 만사가 형통되는 비현실적이고 비약적인 꿈이었다.

 

허나 이심이 이야기는 이와 전혀 다르다. 이심이 얘기를 기억하시는 노인 분들이 농촌에는 아직도 종종 계신 모양인데, 그 얘기들을 두루 살펴보면 이심이는 주로 사람이 어려운 지경을 당했을 때 나타나 도와주는 역할을 했던 모양이다.

하여튼 이심이는 그 내력이 기가 찬데, 원래 이심이는 아주 보잘 것 없는 물고기 출신이었다.

 

헌데 성품이 착하기까지 하니 주변에 큰 물고기들이 깔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심이 족속들을 잡아먹기 시작했는데, 고조할아버지, 고조할머니, 증조할머니, 증조할아버지,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 대대로 줄줄이 잡아먹히기 시작해 나중엔 그만 멸종당할 위기에 처했다. 이심이 족속들은 소위 '무조건 인내'를 하며 평생을 살아온 것이었다.

 

이에 살아남은 놈들은 크게 깨닫지 않을 수 없었는데, 즉 무조건 인내하다간 멸종되고 만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의 목숨은 스스로 지켜야 한다는 것, 그러기 위해선 힘을 길러야 한다는 것, 그래서 이심이에겐 개인적으론 삶과 죽음이 걸리고, 역사적으론 '약한 자'의 생존의 권리가 걸린, 생의 전환점에 서게 되는 것이다. 그러한 '시대적 상황' 속에서 이심이는 크게 깨닫고 새로운 각오를 하게 된다.

 

그리하여 이심이를 잡아먹겠다고 덤비는 놈과 한 판 싸움이 붙게 되는데, '종족보존의 역사적 의무'를 지고 목숨을 걸고 싸우는 놈과, 남을 '깔보고 짓누르려고' 싸우는 놈이 붙었으니 누가 이기겠는가? 한 판 싸움에 이길 때마다 이심이의 몸에는 무쇠비늘이 하나씩 돋아나는 것이었다. 헌데 그것이 어찌나 단단한지 아무리 센 놈과 싸워도 잡아 뜯기거나 부서지지 않았다.

 

이제 이심이는 속으로만 삭히던 원한을 도리어 용기의 근원으로 삼아 계속하여 새로운 놈들과 싸워갔는데, 크고 힘겨운 상대와 싸워 이기고 나면 아주 큰 무쇠비늘이 돋고, 작은 상대와 싸우면 작은 무쇠비늘이 돋고, 이렇게 싸우기를 수천 년, 마침내 이심이는 물속에서 그 누구도 당할 자가 없는 천하무적이 되었다.

 

온 몸엔 무쇠비늘이 덮이고, 대가리는 옥돌처럼 되었으며, 눈은 만 리()를 꿰뚫어 보고, 입가엔 승자의 미소가 맺혔으며, 수염은 활동적으로 고르게 쭉 뻗혀,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용의 모습처럼 되었으며, 용이 소비적인 양반의 모습을 반영한 것에 비해, 이심이는 생산적이고 건강한 서민대중들의 모습이 반영된 형상이라 하겠다.

 

이렇게 물속에서 천하무적이 된 이심이는 용처럼 맥없이 하늘로 올라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뭍(‘이나 육지陸地를 일컫는 순우리말 - 옮긴이)으로 나온다.

 

그리하여 이 땅에서 냅다 갈라지는 역할을 하는데, 옳은 것과 그른 것이 섞여 뒤죽박죽일 때, 우리의 민족정기가 외국 잡것에 섞여 뒤죽박죽일 때, 그럴 때 냅다 갈라지는 것이다. 헌데 이심이를 얻으면 천하를 얻는다고 했는데, 이심이는 지혜로운 자에게는 머리만, 용감한 자에게는 꼬리만, 마음이 착한 자에게는 꼬리만 보인다고 한다.

 

그러므로 이 모든 것에다가 대대로 쌓여온 원한풀이를 하려는 의지가 가세될 때 그때만이 이심이의 전체 모습이 보인다고 한다.

 

- 배달민족(한국 시민/조선 공민)의 옛날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