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임금님의 세 아들

개마두리 2015. 7. 16. 11:37

 

아주 용맹한 임금님이 있었습니다. 임금님은 수없이 많은 싸움을 승리로 이끌었으며, 여행을 좋아해 이곳저곳 안 가 본 데가 없었습니다.

 

임금님한테는 절친한 친구가 한 명 있었는데, 그도 한 나라의 왕이었습니다. 젊은 시절 두 사람은 어딜 가든지 함께 다녔습니다.

 

그 뒤, 결혼할 나이가 된 두 사람은 둘 다 아름다운 아가씨를 신부로 맞아 각자 자기 나라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임금님은 하루빨리 아들이 태어나기를 바랐습니다. 그런데 일 년이 지나고 이 년이 지나도 아이가 생기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은 그 때문에 무척이나 애가 탔습니다.

 

왕비는 왕비대로 걱정이 되어 유명한 의사는 다 찾아다녔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약을 쓰고 기도를 해도 아이는 생기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님과 왕비가 마차를 타고 가는데, 로마니 족 노파가 다가와 구걸을 했습니다. 임금님은 노파에게 금화를 던져 주었습니다. 그러자 노파가 왕비를 향해 말했습니다.

 

아름다운 왕비님이시여, 손을 내밀어 보세요. 운명을 점쳐 드리겠습니다.”

 

왕비가 노파에게 손을 펴 보였습니다.

 

걱정하시는 게 있군요. 금화 한 닢만 더 주시면 도와드릴 수 있는데 .”

 

임금님이 금화를 한 닢 더 주자, 노파가 말했습니다.

 

전하, 내일 아침, 해가 떠오르기 전에 강에 가서 고기를 낚으십시오. 고기가 잡히면 처음에 잡은 두 마리는 다시 놓아 주시고, 세 번째로 잡은 고기만 가지고 돌아와서 왕비님께 주세요. 고기를 구워서 왕비님이 전부 드시되, 반드시 통째로 혼자 다 드셔야 합니다. 내장도 버려선 안 되고, 다른 사람과 함께 드셔도 안 됩니다. 제가 일러 드린 대로만 하면 반드시 두 분께서 원하시는 일이 이루어질 거예요.”

 

다음 날 아침, 임금님은 해 뜨기 전에 낚싯대를 가지고 강으로 갔습니다.

 

임금님이 낚싯줄을 늘어뜨리자, 낚싯대가 휘청하더니 고기가 물렸습니다. 당겨 올려 보니 무척 큰 물고기였습니다. 임금님은 그 물고기를 놓아 주기가 싫었지만, 노파의 말을 떠올리고는 다시 강으로 돌려보냈습니다.

 

다시 낚싯줄을 늘어뜨리자, 금방 두 번째 고기가 물렸습니다. 당겨 올려보니 처음보다 더 큰 고기였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두 번째 고기도 강으로 돌려보내고 또다시 낚싯줄을 드리웠습니다.

 

이번에는 한참 동안 기다렸는데도 고기가 물리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은 두 마리를 강에 놓아 준 것을 후회하기 시작했습니다.

 

바로 그 때, 낚싯대가 휘청했습니다. 가까스로 낚싯대를 당겨 올려 보니 이게 웬일입니까? 이제까지 본 적이 없는 커다란 고기가 걸려든 것입니다. 그 고기는 크기가 새끼돼지 만했습니다.

 

임금님은 이 커다란 물고기를 가지고 돌아와 왕비에게 주었습니다. 고기를 받아든 왕비가 요리사를 불렀습니다.

 

이 고기를 잘 구워 오너라. 내장과 비늘도 손대지 말고, 통째로 구워서 가지고 와야 한다. 조금도 버려서는 안 된다는 걸 명심하고.”

 

요리사는 왕비의 요구가 못마땅했습니다.

 

내가 10년 이상 요리를 해 왔지만, 오늘처럼 이상한 요구는 처음이네. 내장을 빼지 말고 생선을 구우라니, 그렇게 하는 생선 요리가 어디 있담?’

 

요리사는 늘 자기가 하던 대로 생선을 다듬었습니다. 비늘을 벗긴 뒤, 대가리와 꼬리를 자르고, 내장을 꺼내어 개에게 던져 주었습니다. 그 다음에 생선을 소금에 절였다가, 버터를 둘러 노릇노릇하게 구웠습니다. 그러고는 잘 구워졌나 보려고, 살점을 조금 떼어 맛을 보았습니다.

 

드디어 요리사는 알맞게 구워진 생선을 왕비에게 가져갔습니다.

 

아니, 통째로 구워 오라고 했는데 이게 뭐냐? 대가리와 꼬리는 어디로 갔지? 또 내장은 어디로 간 거냐?”

 

왕비는 요리사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요리사는 명령을 어긴 것이 탄로날까봐 거짓말로 둘러댔습니다.

 

너무 오래 구워서 몸뚱이가 바스러졌나 봐요. 그래서 어디가 대가린지 어디가 꼬린지 구분할 수 없게 된 겁니다.”

 

왕비는 요리사의 말을 믿고 생선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생선이 어찌나 큰지, 도저히 한 번에 다 먹을 수가 없었습니다. 왕비는 아침에도, 점심에도, 저녁에도 생선을 먹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남김없이 먹는 데 사흘이 걸렸습니다. 마지막 한 입을 먹고 나자, 이제 생선이라면 두 번 다시 먹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다음 날, 왕비는 임금님에게 아기를 가졌다고 알렸습니다. 임금님은 뛸 듯이 기뻐했습니다.

 

잠시 후에 요리사가 흑흑 흐느끼며 왕비에게 달려와 자기도 아기를 가졌다고 말했습니다. 왕비는 요리사를 달랬습니다.

 

울지 말거라. 아기를 가졌다고 부끄러워할 것은 없다. 네가 아기를 낳으면 궁궐에서 잘 보살펴 줄 테니 걱정하지 말아라.”

 

요리사는 눈물을 거두고, 왕비의 손에 입을 맞추고는 다시 일하러 돌아갔습니다.

 

같은 날, 정원에 있던 개 스파니엘도 새끼를 뱄습니다.

 

이윽고 열 달이 지나서, 왕비는 귀여운 사내아이를 낳았습니다. 같은 시각에 요리사도 아기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요리사의 아들이 왕자와 꼭 닮아 있었습니다.

 

그뿐이 아니었습니다. 정원사가 헐레벌떡 달려오더니, 스파니엘이 강아지가 아니라 사내아이를 낳았다고 알렸습니다.

 

같은 날, 같은 시각에 태어난 사내아이 셋은 너무나 똑같이 생겨서 누가 누구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습니다. 임금님은 세 아기를 모두 자기 아들로 키우기로 했습니다.

 

임금님은 똑같은 요람을 세 개 만들어 아이들을 뉘었습니다. 이렇게 되니 누가 왕비의 아들인지, 누가 요리사의 아들이고 개의 아들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되자 임금님은 내심 당황스러웠습니다.

 

세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습니다. 그런데 세 아이는 생김새는 똑같았지만 성격은 제각기 달랐습니다. 한 아이는 반항적인데다가 게으르고, 다른 아이는 먹보인데다가 멍청이였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나머지 한 아이는 슬기롭고 정직했습니다.

 

세 아이 중 슬기롭고 정직한 아이가 임금님을 가장 따랐습니다. 임금님 역시 그 아이를 가장 사랑했으며, 그 아이가 분명 자기 아들이라고 믿었습니다. 임금님은 자신의 후계자로 그 아이를 내세울 생각이었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그 아이가 확실히 자기 아들인지 아닌지 의심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어쩌면 요리사의 아들일지도 모르고, 어쩌면 개가 낳은 아이일지도 몰랐습니다. 임금님은 어떻게 하면 왕비가 낳은 진짜 아들을 가려내 후계자로 삼을 수 있을까 걱정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임금님은 숲으로 사냥을 나갔다가 예전에 점을 쳐 준 로마니 노파를 다시 만났습니다. 임금님은 반가운 마음에 말에서 뛰어내려 그 노파에게 다가가 물었습니다.

 

할멈. 할멈이 얘기한 대로 과인에게는 아들이 생겼소. 그런데 난처하게도 똑같은 아이가 셋이나 태어났소. 하나는 왕비가 낳았지만, 나머지 둘은 아니라오. 하나는 요리사가, 또 하나는 스파니엘이라는 개가 낳았지요. 그런데 진짜 과인의 아들을 찾을 수 없어 고민이라오. 진짜 과인의 아들을 찾아 준다면 큰 선물을 주리다.”

 

그거야 쉬운 일이지요.”

 

노파가 대답했습니다.

 

궁궐로 돌아가시거든, 세 아이를 모아놓고 회초리로 힘껏 때리세요. 얌전히 맞으면서 전하의 손에 입을 맞추는 아이는 개가 낳은 아이입니다. 울면서 불평하는 아이는 요리사의 아들이지요. 몸을 피하면서 전하의 손을 붙잡으려는 아이가 바로 전하의 아드님입니다.”

 

임금님은 노파에게 감사하며 선물을 듬뿍 안겨 주고, 황급히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임금님은 궁궐로 돌아오자마자 세 아이를 부르더니, 다짜고짜 회초리로 때리기 시작했습니다.

 

한 아이는 말 한마디 없이 맞고만 있었습니다. 다른 아이는 소리를 지르며 앙앙 울어 댔습니다. 또 다른 아이는 회초리를 피하면서 임금님의 손을 붙잡으려고 했습니다.

 

말없이 맞고만 있던 아이가 자꾸 피하기만 하는 아이를 못마땅한 듯이 바라보더니, 임금님에게 다가와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임금님은 깜짝 놀랐습니다. 그 아이는 바로 임금님이 제일 마음에 든다고 생각했던 아이였습니다. 하지만 노파의 말대로라면, 그 아이는 자기 아들이 아니고 개가 낳은 아이인 것입니다. 임금님의 아들, 그러니까 진짜 왕자는 반항적이고 게으른 아이였습니다. 임금님은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어쨌든 진짜 아들을 가려 낸 임금님은 세 아이를 구별하기 위해 머리에 띠를 매게 했습니다. 임금님의 아들은 파란 띠를, 요리사의 아들은 하얀 띠를, 스파니엘이 낳은 아이는 빨간 띠를 둘렀습니다.

 

임금님은 세 아이에게 이름을 붙여 주었습니다. 파란 띠를 두른 왕자는 알파드’, 하얀 띠를 두른 요리사의 아들은 자노스’, 빨간 띠를 두른 아이는 고자바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처럼 그 셋을 똑같이 아들로 대우해 주었습니다. 세 아이는 어느덧 젊은이로 자라났습니다.

 

어느 날, 임금님이 세 아들을 불러 말했습니다.

 

너희들도 이제 제법 컸으니까 세상에 나가서 수양을 쌓도록 하여라. 너희들 가운데 가장 먼 데까지 가서 과인이 보지 못한 물건을 가지고 오는 사람에게 왕위를 물려주겠노라. 지금 곧바로 떠나거라.”

 

알파드와 자노스는 임금님의 명령을 듣고 내키지 않는 듯 투덜거렸습니다. 그 때 고자바가 나서서 말했습니다.

 

우리, 아바마마의 분부를 따르도록 하자. 세상에 나가 새로운 것도 보고, 경험을 쌓는 일이 나쁠 것은 없잖아?”

 

그리하여 세 왕자는 마구간에서 말을 골라 타고 궁궐을 나섰습니다.

 

한참을 가다가, 그들은 이상한 과수원에 다다르게 되었습니다. 과수원에는 자두나무가 있었는데, 그 열매가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은()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알파드는 즉시 은자두를 비틀어 땄습니다.

 

하하하! 아바마마께서도 아직까지 은자두는 보지 못하셨을 거야. 나는 이걸 가지고 돌아가겠어. 그러면 분명 나를 후계자로 삼으실 거야!”

 

알파드는 이렇게 외치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궁궐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나는 이제 어떡하지? 알파드가 선수를 쳤으니 말이야. 내가 먼저 땄어야 하는 건데 …….”

 

시무룩해진 자노스가 푸념을 했습니다.

 

자노스, 걱정 마. 세상에는 은자두보다 더 신기하고 좋은 것이 많이 있을 거야. 기운 내서 더 가 보자고.”

 

고자바가 자노스의 어깨를 두드리며 힘을 북돋워 주었습니다. 고자바와 자노스는 계속 길을 갔습니다.

 

두 사람은 이번에도 과수원에 이르렀습니다. 그런데 과수원이 눈부신 황금빛으로 빛나고 있었습니다. 그 과수원에 있는 사과나무에는 금사과가 주렁주렁 열려 있었습니다.

 

자노스는 재빨리 금사과를 비틀어 땄습니다.

 

! 이것은 은자두보다 더 귀한 금사과로구나! 아바마마께서도 분명 이런 사과는 보신 적이 없을 거야.”

 

자노스는 고자바를 돌아보지도 않고 말을 달려 가 버렸습니다.

 

혼자 남게 된 고자바는 쓸쓸히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한참을 가던 고자바는 이상한 숲에 이르렀습니다. 나무도, 덤불도, 꽃도, 풀도 모두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는 숲이었습니다. 다이아몬드 꽃들은 햇빛을 받아 눈부신 무지갯빛을 쏟아냈습니다.

 

고자바가 가만히 살펴보니, 숲 한가운데 웅장한 성이 솟아 있었습니다. 성은 온통 보석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수정으로 된 성문 바로 앞에 괴상한 노파가 앉아 있었습니다. 노파는 빙글빙글 돌아가는 의자에 앉아 있었는데 한 손에는 칼을, 다른 손에는 금()나팔을 들고 있었습니다. 그의 머리카락은 어깨까지 내려왔고, 머리에는 다이아몬드를 박은 왕관을 쓰고 있었습니다.

 

고자바는 그 노파의 눈에 뜨이지 않도록 나무 그늘에 몸을 숨겼습니다.

 

아바마마께서도 분명 다이아몬드 꽃은 못 보셨을 거야.’

 

고자바는 이렇게 생각하며 옆에 있는 다이아몬드 꽃을 꺾으려 했습니다. 그 순간, 꽃이 비명을 질렀습니다.

 

나를 꺾지 말아요! 그럼 내가 죽게 돼요.”

 

고자바는 얼른 손을 뗐습니다. 주위를 둘러보던 고자바는 이번에는 다이아몬드 나뭇가지를 꺾으려고 했습니다. 그러자 나무가 울면서 애원했습니다.

 

제발, 꺾지 말아요! 내 팔이 부러져요.”

 

고자바는 나무를 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아버지인 임금님에게 다이아몬드 숲을 알리려면 무언가 증거가 되는 것을 가져가야 했습니다. 고자바는 다이아몬드 풀잎을 한 장 뜯으려고 몸을 구부렸습니다. 고자바가 풀잎을 향해 손을 뻗자, 풀잎이 애절한 목소리로 부탁했습니다.

 

고자바, 제발 뜯지 말아 줘요.”

 

고자바는 풀잎이 자기 이름을 부르자, 깜짝 놀라 손을 멈추었습니다. 풀잎이 낮은 소리로 고자바에게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내 말을 잘 들어요. 돌아가서 절대로 이 숲에서 본 것을 말하면 안 돼요. 다만 임금님께 부탁해서, 그 분이 젊은 시절 싸움터로 나갈 때 입으시던 옷을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그 때 쓰시던 칼과 말도 같이 달라고 하세요. 그리고 다시 여기에 오세요. 그러면 왕자님은 행운을 얻으실 거예요.”

 

고자바는 풀잎의 말을 믿어 보기로 했습니다. 고자바는 별수없이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임금님은 돌아온 차례대로 세 아들을 만나 보았습니다.

 

임금님은 맨 먼저 알파드가 가지고 온 은자두를 보더니 크게 웃었습니다.

 

알파드, 넌 별로 멀리 가지 않았구나. 과인이 너만했을 땐 매일 아침마다 친구랑 은자두 과수원까지 달려갔다 오곤 했단다.”

 

두 번째로 자노스가 금사과를 바치자, 임금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넓은 세상을 보고 왔다고? 하지만 금사과 과수원은 우리나라 국경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단다. 과인이 너만했을 때, 매일 오후에 친구랑 말 타고 놀러 간 곳이었지.”

 

임금님의 대답을 들은 두 아들은 몹시 실망했습니다. 두 아들은 이제 고자바가 무엇을 가지고 올지 무척 궁금했습니다.

 

드디어 고자바가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고자바는 빈손이었습니다. 그것을 본 알파드와 자노스는 매우 기뻐했습니다. 고자바는 임금님에게 나아가 이렇게 아뢰었습니다.

 

아바마마, 아바마마께서는 젊었을 적에 여기저기 다니셨으니까 모르시는 곳이 없을 줄 압니다. 하지만 소자는 아바마마보다 더 멀리 가 보고 싶사옵니다. 그러니 소자에게 아바마마께서 싸움터에 나갈 때 입으셨던 옷과 칼, 그리고 그 때 타셨던 말을 좀 빌려 주시옵소서.”

 

임금님은 깜짝 놀라며 고자바의 청을 거절했습니다. 옷은 이미 누더기가 되어 있었고, 칼은 녹슬었고, 말은 늙어서 달릴 수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고자바는 끈질기게 졸랐습니다. 임금님은 할 수 없이 허락했습니다.

 

고자바는 서둘러 창고로 갔습니다. 창고에 가 보니, 역시 옷은 낡아서 누더기가 다 되었고, 칼은 녹이 슬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옷은 고자바가 입어 보니 꼭 맞았습니다.

 

녹슨 칼을 닦아 허리에 찬 고자바는 그 길로 마구간으로 달려갔습니다. 눈도, 걸음걸이도 시원찮은 늙은 말은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습니다. 생각다 못한 고자바가 말을 등에 메고 떠나려는데, 말이 갑자기 사람의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왕자님, 불을 피워서 그 불꽃을 제게 먹여 주세요.”

 

고자바는 약간 놀랐지만, 말이 원하는 대로 불을 피워 주었습니다. 그런데 말이 불을 먹지 않았습니다.

 

왜 먹지 않는 거지?”

 

나뭇가지에 불을 붙여서 제 입 안에 넣어 주세요.”

 

고자바가 불꽃을 먹이자, 늙은 말이 갑자기 네 발로 우뚝 섰습니다. 그러더니 발굽도 튼튼하고, 눈도 좋고,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검은 갈기를 가진 훌륭한 말로 바뀌었습니다.

 

말은 눈을 빛내더니, 푸르르 갈기를 흔들고는 땅을 힘차게 걷어차며 펄펄 뛰었습니다.

 

왕자님, 제 등에 올라타세요. 바람같이 세차게 달릴 테니까 꼭 붙드셔야 해요.”

 

고자바가 등에 오르자마자, 말은 쏜살같이 달려나갔습니다. 말은 순식간에 은자두 과수원과 금사과 과수원을 지났습니다. 고자바가 정신을 차려 보니, 어느 새 다이아몬드 숲이었습니다.

 

말이 멈춰 서더니 고자바에게 말했습니다.

 

왕자님, 지금부터 정신을 바짝 차리세요. 성문 앞 회전의자에 앉아 있는 노파는 나쁜 마녀예요. 다이아몬드 성에 마술을 걸어 임금님과 공주님은 말할 것도 없고, 신하들까지 나무와 풀로 만들어 버렸어요. 이 성의 임금님은 바로 전하의 절친한 친구분이십니다. 전하는 친구분이 이렇게 불행해졌다는 것을 모르고 계세요. 그러니 왕자님이 도와주셔야 합니다. 먼저 저 마녀를 죽여야 하는데, 의자가 돌면서 마녀가 등을 보일 때 덤벼들어서 칼과 나팔을 빼앗으세요. 가능한 한 빨리 빼앗으셔야 해요. 마녀가 칼을 뽑거나 나팔을 불 시간을 주시면 안 돼요. 그렇게 되면 모든 일이 틀린 거예요. 칼과 나팔을 빼앗자마자 바로 마녀의 목을 쳐서 떨어뜨리세요. 하실 수 있겠어요?”

 

하고말고. 문제없어!”

 

고자바는 자신 있게 대답했습니다.

 

고자바는 마녀가 돌아앉을 때까지 기다렸습니다. 드디어 회전의자가 돌면서 마녀가 등을 보였습니다.

 

으랏차!”

 

고자바는 그 순간을 놓치지 않고, 마녀에게 덤벼들어 칼과 나팔을 낚아챘습니다. 그리고 마녀가 정신 차릴 틈을 주지 않고 목을 잘라 버렸습니다. 마녀의 머리는 다이아몬드 왕관을 쓴 채 데굴데굴 굴러서, 수정으로 된 성문 아래에서 멈췄습니다.

 

바로 그 순간, 다이아몬드 숲의 꽃과 나무와 풀들이 모두 사람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요리사와 시종장과 마부들이 기지개를 켜며 일어나 환성을 질렀습니다.

 

그 때 성의 창문이 열리더니, 임금님과 어여쁜 공주가 나타났습니다.

 

누가 과인의 다이아몬드 왕관을 가져와 주겠느냐?”

 

그러나 선뜻 나서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마녀의 머리에 손대기가 두려웠기 때문입니다. 그 때 고자바가 말에서 내려 마녀의 머리에서 왕관을 벗겨 임금님에게 갖다 바쳤습니다.

 

임금님은 공주를 데리고 고자바 곁으로 내려왔습니다.

 

용감한 젊은이, 자네 이름이 뭔가? 오랫동안 마술에 걸려 있던 우리를 구해 주어 고맙네.”

 

전하, 혹시 제가 입고 있는 이 옷과 칼을 보신 적이 없으십니까?”

 

아니, 이건 내 친구의 옷과 칼이 아닌가? 그럼 자네가 과인의 친구의 아들이란 말인가?”

 

, 그렇습니다. 저는 고자바라고 합니다.”

 

그러고 보니 이 말은 그 때 친구가 타던 말이군. 어째서 진작 알아보지 못했을까? 고자바, 여기 이 애가 과인의 딸이라네. 이 애를 자네 아내로 삼아 주지 않겠나?”

 

고자바는 공주가 마음에 들긴 했지만, 아버지의 허락을 받은 뒤에 결혼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고자바의 마음을 알아챘는지, 공주의 아버지인 임금님은 고자바에게 큼직한 보석이 달린 금반지를 주며 말했습니다.

 

돌아가거든 자네 아버님에게 이 반지를 보이게. 그리고 이 반지 주인의 딸과 결혼하고 싶다고 하게나. 그러면 즉시 허락해 주실 걸세.”

 

고자바는 그 반지를 소중히 받아 들고 말에 올라탔습니다.

 

궁궐에 가까이 오자, 말이 발을 멈추었습니다.

 

저는 이제 옛날 모습으로 돌아가야 해요. 그 전에 제 꼬리털을 하나 뽑으세요. 왕자님이 언제든지 제가 필요할 때 그 털을 손가락으로 만지시면, 제가 곧장 나타나겠어요.”

 

고자바가 말의 꼬리털을 한 올 뽑자, 늠름하던 말은 다시 늙은 말로 돌아가 버렸습니다. 말이 제대로 서지도 못했으므로, 고자바는 그 말을 등에 지고 들어갔습니다.

 

창가에서 그 모습을 본 알파드와 자노스는 낄낄거리면서 임금님에게 고자바가 온다고 알렸습니다.

 

임금님 앞에 나아간 고자바는 공손하게 절을 올렸습니다.

 

아바마마, 이번에도 아바마마께서 바라시는 것을 가져오진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한 가지 보여 드릴 것이 있습니다.”

 

고자바가 반지를 꺼내 임금님에게 보여 주었습니다.

 

아니, 이것은 옛 친구의 반지가 아니더냐! 네가 정말로 과인의 옛 친구를 만났단 말이냐?”

 

고자바는 자기가 겪은 모험담을 낱낱이 이야기했습니다.

 

임금님은 열심히 듣고 있었지만, 별로 기분이 좋지는 않았습니다.

 

개가 낳은 아이가 과인의 친구의 딸과 결혼하다니 ……. 그럴 수는 없지. 진짜 내 아들을 결혼시켜야 해.’

 

마음 속으로 이렇게 생각한 임금님은 반지를 자기 주머니에 넣으려 했습니다. 그러자 고자바가 말했습니다.

 

아바마마. 반지는 돌려주십시오. 반지는 다시 그분께 갖다 드려야 합니다.”

 

임금님은 반지를 고자바에게 돌려주었습니다. 그러나 고자바와 공주의 결혼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임금님은 머리가 아프다고 하면서 고자바를 내보냈습니다.

 

고자바는 임금님에게 다른 것은 다 말했지만, 늙은 말에게 불꽃을 먹였다는 사실만은 숨겼습니다. 그러나 임금님도 그 옛날 싸움터에 나갈 때 항상 데리고 다녔던 말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습니다.

 

마침내 임금님은 친아들인 알파드를 몰래 불렀습니다.

 

아들아, 마구간에 가 보면 고자바가 타고 갔던 늙은 말이 있을 거다. 그 말을 잘 달래서 먹이를 실컷 먹여라. 그리고 말이 힘을 내거든 그 말을 타고 말이 달리는 대로 가 보아라.”

 

고자바가 등에 짊어지고 온 늙은 말 말입니까?”

 

알파드가 놀라서 물었습니다.

 

그렇다. 그 말이 고자바를 너희들보다 더 먼 곳으로 데리고 갔으니 과인이 시키는 대로 하려무나.”

 

알파드는 내키진 않았지만 임금님이 시키는 대로 따랐습니다. 마구간에 가 보니, 늙은 말은 지쳐서 자고 있었습니다. 알파드가 깨웠지만 말은 똑바로 서 있지도 못했습니다. 화가 난 알파드가 채찍으로 때리려고 하는데, 마침 고자바가 마구간 곁을 지나갔습니다.

 

알파드, 어째서 그 말을 때리려는 거야?”

 

이 녀석이 일어서질 않잖아. 아바마마께서 이 말을 달래서 먹이를 먹인 뒤에 타 보라고 하셨는데 말이야.”

 

그 말을 들은 고자바는 임금님이 자기 대신 알파드를 다이아몬드 성으로 보낼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고자바는 무척 슬펐지만, 아버지인 임금님의 뜻을 따르기로 했습니다.

 

그 말을 일으키는 방법을 알려줄까? 그 말한테는 짚을 먹이지 말고 불꽃을 먹여야 해.”

 

지금 나한테 장난하는 거야?”

 

내가 말하는 대로 해 봐. 이 말은 불꽃을 먹여야만 아바마마가 바라시는 대로 너를 데려다 줄 수 있어.”

 

말을 마친 고자바는 알파드를 남겨 두고 그 자리를 떠났습니다.

 

알파드는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에 고자바가 말한 대로 해 보기로 했습니다. 알파드는 불꽃이 일렁이는 나뭇가지를 늙은 말에게 먹였습니다. 그러자 비슬비슬하던 말이 갑자기 힘찬 울음소리를 내며 벌떡 일어서는 것이었습니다. 알파드가 말에 올라타자, 말은 바람처럼 빠르게 내달렸습니다.

 

얼마 안 가 알파드를 태운 말은 다이아몬드 성에 다다랐습니다. 창가에서 말이 달려오는 것을 보고 임금님과 공주가 뛰어나왔습니다. 드디어 고자바가 결혼 승낙을 받아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지요.

 

말에서 내린 알파드는 공주를 보자마자 첫눈에 반해 버렸습니다. 그렇게 예쁜 아가씨는 아직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잘 왔네. 자네 아버지가 결혼을 승낙하셨겠지?”

 

알파드는 어리둥절했지만 무조건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곧바로 결혼식을 올리세. 아 참, 과인의 반지는 돌려주게나.”

 

반지라뇨?”

 

알파드가 반지를 알 리 없었습니다. 그러자 다이아몬드 성의 임금님이 얼굴을 찌푸렸습니다.

 

아버님께 보여 드리라고 자네에게 빌려 주지 않았나?”

 

아니오. 저는 전하의 반지를 본 적이 없는데요.”

 

임금님은 화가 났습니다.

 

이 거짓말쟁이, 사기꾼 같으니라고! 너 같은 놈에게 내 딸을 줄 순 없다. 여봐라! 이 자를 당장 감옥에 처넣어라!”

 

이렇게 해서 알파드는 영문도 모른 채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한편, 알파드의 아버지인 임금님은 며칠이 지나도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걱정이 되었습니다. 안절부절하던 임금님은 마침내 고자바를 불렀습니다.

 

얘야, 늙은 말을 타고 떠난 알파드가 돌아오질 않는구나. 뭔가 나쁜 일이 생긴 것만 같아 걱정이 된다. 실은 너희 셋 가운데 과인의 진짜 아들은 알파드뿐이란다. 너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과인은 알파드를 과인의 친구의 딸과 결혼시키려 했다. 그런데 알파드가 행방불명이 돼 버렸으니 이 일을 어쩌면 좋겠느냐? 네가 알파드를 찾아다오. 스파니엘의 아들인 너를 지금까지 키워 준 데 대한 보답으로 과인을 도와다오!”

 

아니, 스파니엘의 아들이라니요? 그럼 제가 개의 자식이란 말입니까?”

 

깜짝 놀란 고자바가 소리쳤습니다.

 

임금님은 고자바에게 그 동안의 일들을 들려주었습니다. 고자바는 말없이 듣고 있다가, 임금님의 손에 입을 맞추었습니다.

 

오랫동안 저를 전하의 아들로 키워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알파드 왕자님을 찾아서 무사히 모셔오겠습니다.”

 

고자바는 밖으로 뛰쳐나갔습니다. 고자바는 말의 꼬리털을 꺼내 손으로 비볐습니다. 그러자 순식간에 늠름한 말이 눈앞에 나타났습니다. 말 등에 훌쩍 올라탄 고자바는 있는 힘껏 달렸습니다.

 

드디어 다이아몬드 성에 도착한 고자바는 임금님을 만나러 갔습니다. 그러나 임금님은 고자바를 보자마자 큰 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

 

아니, 네가 어떻게 감옥에서 나왔단 말이냐?”

 

전하께 반지를 돌려드리러 왔습니다.”

 

너는 반지를 본 적도 없다고 하지 않았느냐? 네가 거짓말을 했기 때문에 감옥에 갇힌 것 아니냐?”

 

고자바는 그제야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았습니다.

 

그 사람은 제 형제 알파드입니다. 저와 얼굴이 똑같아서 전하께서 혼동하신 겁니다. 알파드는 반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합니다. 그러니 부디 알파드를 감옥에서 꺼내 아버님께 돌아가게 해 주십시오.”

 

임금님은 당장 알파드를 풀어 주라고 명령했습니다. 고자바에게서 반지를 돌려받은 임금님은 공주와 고자바의 결혼식을 준비하라고 명령했습니다.

 

풀려난 알파드는 하루라도 빨리 돌아가고 싶어했습니다. 알파드는 고자바의 말을 빌려 타고 궁궐로 돌아갔습니다.

 

알파드의 아버지인 임금님도 이젠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지 고자바의 결혼을 축하해 주었습니다.

 

그리하여 개의 아들 고자바는 다이아몬드 나라의 공주와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로마니 족의 옛날이야기

 

* 로마니 :

 

Romany. ‘집시Gipsy’라고 불리는 민족의 정식 명칭. ‘산티Rom이라고도 한다. ‘집시는 중세 말 근세 초 잉글랜드에 건너온 로마니 족을 잉글랜드 사람들이 이집트인이라는 뜻을 지닌 이집션Egyptian'이라고 부른 데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이집션이 줄어들어서 집시가 됐다. 로마니족은 미스르[이집트의 공식 국호]가 아니라 파키스탄과 바라트[인도의 공식 국호] 서북쪽에서 왔으므로, ‘집시라는 말은 올바른 이름이 아니다. ‘로마니사람이라는 뜻이고, 로마Roma 제국이나 루마니아인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이들은 다른 민족이나 인종을 야만인이라는 뜻을 지닌 가제’/‘가드조라고 부른다.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25 - 조카에게 물려준 재산(박숙희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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