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바람의 판결

개마두리 2015. 8. 23. 15:18

 

커다란 뱀 한 마리가 숲 속에 숨어 있다가 지나가는 짐승들을 잡아먹었습니다. 때때로 부근에 있는 마을의 염소와 소를 잡아먹기도 했습니다.

 

마침내 마을의 사냥꾼들이 가축들을 지키기 위해 뱀을 잡으러 나섰습니다. 사냥꾼들은 날카로운 창과 칼을 들고 숲으로 몰려왔습니다.

 

뱀은 사냥꾼들이 다가오는 소리를 듣고 도망쳤습니다. 이리저리 헤매던 뱀은 한 농부가 일하고 있는 목화밭으로 들어갔습니다.

 

농부가 놀라서 달아나려고 하자, 뱀이 말했습니다.

 

사냥꾼들이 나를 죽이려고 쫓아오고 있어요. 제발 나를 숨겨 주세요.”

 

농부는 그 자리에 서서 잠깐 생각하더니 말했습니다.

 

사람들이 다 너를 싫어하긴 하지만, 지금은 네가 쫓기는 처지니 동정심이 생기는구나.”

 

농부는 뱀을 목화더미 밑에 숨겨 주었습니다. 얼마 안 있어 사냥꾼들이 몰려왔습니다.

 

우리 가축들을 잡아먹은 뱀을 혹시 못 봤습니까?”

 

못 봤는데요.”

 

농부가 고개를 흔들자, 사냥꾼들은 바삐 가 버렸습니다. 사냥꾼들이 가고 나자, 뱀이 목화더미 아래에서 나왔습니다.

 

농부가 말했습니다.

 

, 이제 사냥꾼들이 갔으니, 너도 네 갈 길로 가거라.”

 

 

그러나 뱀은 떠나지 않고 농부를 쳐다보더니, 갑자기 농부를 친친 감아 버렸습니다.

 

, 지금 이게 무슨 짓이냐?”

 

놀란 농부가 물었습니다. 그러자 뱀이 말했습니다.

 

나는 지금 몹시 배가 고파요. 그러니 당신을 잡아먹어야겠어요.”

 

뭐라고? 네 목숨을 구해 주었는데 나를 잡아먹겠다고?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너는 참으로 배은망덕하구나.”

 

농부가 뱀을 나무랐습니다.

 

배은망덕이라고요? 목숨을 구해줬으니 은혜를 갚아야 한다는 건 당신 생각이고, 나로서는 지금 몹시 배가 고프니 당신을 잡아먹는 게 당연하죠.”

 

당연하다고? 그렇다면 누가 옳은가 재판에 붙여보자.”

 

농부가 제의했습니다.

 

좋아요. 그렇다면 저기 있는 나무에게 물어 봐요.”

 

뱀과 농부는 길가에 있는 커다란 단풍나무에게 갔습니다.

 

단풍나무는 잠자코 양쪽의 말을 다 듣고 나더니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여기 길가에서 그늘을 만들어 줍니다. 일하던 농부나 지친 나그네들이 내 그늘에서 쉬곤 하지요. 하지만 사람들은 휴식이 끝나면 도끼 손잡이와 쟁기 자루를 만들려고 내 나뭇가지를 마구 자르지요. 사람들은 이런 식으로 내가 베푼 은혜를 배반하곤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당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뱀은 당신을 잡아먹을 자격이 있습니다.”

 

 

농부가 그 판결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우겼기 때문에, 이번에는 강에게 가서 물어 보았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강은 농부에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물을 줍니다. 내가 없으면 사람들은 먹을 물이 없어서 고통을 겪지요. 비가 오지 않으면 사람들은 내 바닥에 구멍을 뚫고 물을 구하기 위해 안간힘을 씁니다. 그런데 비가 너무 많이 오면 나는 그 많은 물을 다 담을 수 없어서 일부분을 사람들의 밭으로 토해냅니다. 그러면 사람들은 나를 저주하고 마구 화를 내지요. 그럴 때면 사람들은 내가 그들에게 해 준 고마운 일은 까맣게 잊어버립니다. 그러니 나는 당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수 없군요. 뱀은 당신을 잡아먹어도 좋습니다.”

 

두 번을 계속 지고 나자, 농부는 다급해졌습니다. 농부는 이번에는 들판에 있는 풀에게 물어보았습니다.

 

풀은 농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사람들에게 소 떼를 먹이게 해 줍니다. 또 집의 지붕이 되기도 하고, 부엌에서 쓰는 바구니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가 늙으면 나를 아궁이에 던져 태워 버립니다. 그리고 쟁기로 나를 갈아엎고, 내 자리에 다른 씨앗을 뿌립니다. 내가 간신히 살아남는다 해도, 사람들은 나를 잡초라고 뽑아 버립니다. 사람들은 이처럼 나를 못살게 구는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당신에게 유리한 판결을 내릴 수 없습니다. 뱀이 당신을 잡아먹어도 좋습니다.”

 

의기양양해진 뱀은 농부를 잡아먹기 위해 입을 크게 벌렸습니다.

 

그 때, 그들 곁으로 바람이 지나갔습니다. 농부는 마지막 희망을 걸고 바람에게 한 번만 더 물어 보자고 했습니다.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바람이 말했습니다.

 

 

만물은 자기 본성에 따라 삽니다. 풀은 살기 위해 자라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풀을 태웁니다(그래야 풀이 있던 자리에 곡식과 푸성귀와 과일의 씨를 뿌릴 수 있고, 풀이 타고 남은 재를 거름삼아 밭에 뿌릴 수 있기 때문이다 - 옮긴이).

 

강은 흐르다가 (물이 - 옮긴이) 많으면 넘치는 게 그 본성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밭이 물에 잠기면 슬퍼합니다. 밭은 사람들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나무의 아름다움은 가지에 있기 때문에, 나무는 가지를 소중히 여기지만 사람들은 또 그 가지로 필요한 연장을 만듭니다.

 

그리고 뱀은 살기 위해서 무엇이든 잡아먹습니다. 그것이 뱀의 본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나무나 풀, 강이 자기 주관대로 판결을 내렸다고 탓할 수는 없습니다. 또 뱀이 배고파서 당신을 잡아먹는 것을 탓할 수도 없습니다.”

 

바람의 말을 들은 농부는 이젠 정말 꼼짝없이 죽는구나 싶었습니다.

 

바람이 계속해서 말했습니다.

 

만물의 본성은 재판을 할 문제가 아닙니다. 그러니 만물이 제자리에 있다는 것을 고맙게 여기면서 춤추고 노래를 부릅시다.”

 

그러면서 바람은 농부와 뱀에게 각각 북을 하나씩 주었습니다. 뱀은 북을 잡기 위해 농부를 풀어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바람이 뱀을 향해 노래했습니다.

 

뱀의 본성은 무엇이든 잡아먹는 것이니, 농부를 잡아먹어요!”

 

그러더니 이번에는 농부를 향해 노래했습니다.

 

당신의 본성은 잡아먹히지 않는 것이니, 잡아먹히지 말아요!”

 

살았다!”

 

농부는 감격해서 외쳤습니다. 농부는 북을 던져 버리고 재빨리 마을로 달아났습니다.

 

- 에티오피아의 옛날이야기

 

* 출처 :웅진메르헨월드 13 - 도둑을 잡은 조각상(박영규 엮음, 웅진출판주식회사 펴냄, 서기 19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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