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단편]길을 건너간 남자

개마두리 2016. 4. 22. 18:36


- ‘바스마 엘 - 느소우르(Basma El - Nsour)'의 단편소설


어느 가을날 저녁때였거나 아침이었을 것이다. 그 일이 언제 일어났는가를 정확하게 아는 것은 중요치 않다.


그들은 친한 친구사이였으므로, 그 젊은 작가가 원할 때면 언제든 자신의 친구(親舊. 동무 - 인용자 잉걸. 아래 인용자)인 나이가 좀 있는 작가의 아파트로 달려갈 수 있을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나이가 좀 든 작가는 그날 저녁 시간을 온전히 조용하게 쉬면서 보낼 생각이었다. 그는 전화선을 뽑아 놓고, 커튼을 쳤다. 녹음기를 틀어 부드러운 음악을 듣고 있었다. 소파 위에 길게 누워 휴식이 주는 안락함을 음미하고 있었다.


기분 좋은 나른함이 몰려와 잠에 막 빠져들려고 할 참에 방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크게 났다. 그는 나른한 발걸음을 천천히 문 쪽으로 옮겼다. 입에서 욕이 튀어 나왔다.


안으로 급히 들어온 사람은 젊은 작가였다. 그는 몹시 흥분해 있었다. 의자를 보자마자 앉더니, 발을 탁자 위에 올려놓고 큰 소리로 말했다.


“전화선 뽑아 놓지 말라고 내가 몇 번이나 말했어요? 정말 짜증나요.”


이 말을 마치자, 그 젊은 작가는 자리에서 일어나 서재로 가서 서가에 꽂혀 있는 책들을 자세히 살펴보았다. 얼굴에는 짜증이 가득했다. 책 한 권을 꺼내 페이지(장 - 인용자)를 대충 넘겨보다가, 탁자에 던져 놓고는 중얼거렸다.


“다 헛소리야! 모두 쓰레기야! 우리는 겨우 이런 쓰레기나 쓰려고 평생을 바치고 있는 거예요!”


그는 나이 든 작가를 쳐다보면서 물었다.


“제발 대답 좀 해봐요. 세상에는 자신들의 손가락으로 대담하게 있는 그대로의 진실을 직접 만지면서 진정한 삶을 경험하는(겪는 - 인용자) 사람들이 있는 반면, 평생 자신과 관계없는 사건들을 구경만 하면서 살아온, 오래전에 과부(寡婦. 홀어미 - 인용자)가 된 나이 든 여자들도 있어요. 우리가 이들 과부와 다른 게 도대체 무엇일까요?


우리는 물에 젖는 것이 두려워 바다에 가까이 가는 것을 주저하고 있지만, 이들은 바다로 직접 뛰어들어 뼛속까지 물에 흠뻑 젖지요. 우리의 삶은 가망 없이 순결하기만 할 뿐이에요.


우리는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그저 구경만 하고, 이를 바보처럼 종이 위에 적기만 하죠. 우리는 우리가 쓴 글과 함께 지옥에나 갈 거예요!”


그는 부엌으로 가서 주전자를 꽝 내려치면서 설탕이 어디 있냐고 소리를 질렀다. 나이 든 작가는 조금 화가 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며칠 전에 다 떨어졌네.”


젊은 작가는 방으로 다시 와서는 창 쪽으로 가 커튼(장막 - 인용자)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나이가 든 작가는 체념한 듯 그의 곁으로 가서는, 그의 어깨를 두드리며 마치 아버지 같은 목소리로 물었다.


“뭐 좀 들겠나?”


그의 목소리는 괄괄했다.


“아무것도 먹고 싶지 않아요.”


두 남자는 창틀에 기대어 서서 말없이 거리를 내려다보았다. 젊은 작가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저기 길을 건너려는 남자의 생김새를 자세히 보세요.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죠? 장담컨대 저 남자는 체홉이라는 작가의 이름도 들어본 적이 없을 테지만, 잘 살고 있어요. 또한 자기 아내에게 주려고 무언가를 샀을 거예요. 바로 이 순간, 저 남자의 아내는 집에서 무릎 상처가 다 드러나는 반바지를 입은, 살이 통통하게 오른 아이를 안고 저 남자를 기다리고 있겠지요. 아이는 아빠가 왜 안 오느냐고 엄마에게 계속 묻고 있을 것이고요.”


나이 든 작가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그는 어깨를 한번 들썩하더니 무심하게 물었다.


“저 사람의 직업이 뭐일 것 같나?”


“공무원이요.”


라고 젊은 작가가 대답했다.


“규율이 몸에 밴 사람 같아요. 저 사람은 비밀보고서 같은 것이 필요 없는 사람인 것 같은데요. 또한 시간관념이 철저한 사람 같기도 하고요.”


나이 든 작가가 젊은 작가의 말을 중간에서 끊었다. 화가 좀 난 듯했다.


“틀렸네! 저 남자의 얼굴을 보게나. 무표정이지 않은가? 저 얼굴은 살인자의 얼굴일세. 나는 저 사람이 조금 전에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다고 생각하네. 자신의 아내를 살해했을 걸세. 그 여자는 미인이고, 머리가 엄청나게 좋고, 아주 착한 여자였네.


저 남자가 평소보다 집에 일찍 들어갔는데, 집안 곳곳에서 다른 남자의 향수 냄새가 났고, 담배꽁초가 여러 개 재떨이에 쌓여 있는 것을 보았네.


그는 곧장 부엌으로 갔지. 부엌에서는 음식이 한창 끓고 있었네. 그는 부엌에서 큰 칼을 들고 나와 아내의 가슴을 찔렀네. ‘배신자’라고 외치면서 말이야.”


젊은 작가는 웃음이 나오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너무 심하게 웃어대서 눈에 눈물이 다 맺힐 지경이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려고 했다. 그가 말했다.


“그 이야기는 여태껏 제가 들어 본 이야기 중에서 최악인데요. 너무 고리타분하네요.”


그 사이 길을 건너려던 남자는 길을 다 건너 인도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 두 작가는 그 남자를 매우 흥미롭게 지켜봤다. 그 남자는 움직이지 않고 그 자리에 선 채로 주위를 살피면서 안절부절못했다. 나이 든 작가가 속삭이듯 조심스럽게 말했다.


“저 남자는 지금 생각이란 걸 할 수가 없을 걸세.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있거든. 상충되는 감정으로 괴로워하고 있는 걸세. 분별력을 완전히 상실했네(잃어버렸네 - 인용자) …….”


젊은 작가가 나이 든 작가의 말을 끊고 불쑥 이야기를 꺼냈다.


“아니에요. 만나기로 한 친구가 아직 오지 않아서 초조해 하고 있을 뿐이에요. 저곳에서 그를 만나 직장 상사 문병을 같이 가기로 했거든요. 직장 상사는 일전에 수술을 받은 적이 있는데, 얼마 전 옆구리에 극심한 통증이 있어서 직장에서 구급차에 실려 갔었거든요. 이 두 친구는 직장 상사의 통증의 원인에 관해서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요(‘이 두 친구는 직장 상사가 아픈 까닭을 다르게 생각하고 있어요.’ - 인용자). 응급실에 같이 갔던 그 두 사람의 직장 동료가 사무실로 돌아와서 원인은 맹장염이었다고 말해 주었지요.”


택시 한 대가 가까이 오자, 그 남자는 택시를 불렀다. 택시가 서자, 그 남자는 몸을 굽혀 차창을 통해 택시 기사에게 몇 마디 하는 듯했다. 택시 기사는 잘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 남자는 차 문을 열고 택시에 타더니, 택시 기사 옆에 앉았다. 택시는 먼지바람을 남긴 채 그곳을 떠났다.


두 작가는 몹시 실망했다. 이 두 작가의 얼굴에는 길을 건넌 그 남자를 향한 깊은 분노가 드러나 있었다. 그들은 슬픈 표정을 지으며 한동안 그 자리에 그대로 서 있었다. 두 작가가 알지 못하는 목적지를 향해 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는 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거리를 불만에 차서 응시하면서.


- 강문순 옮김


* 바스마 엘 - 느소우르(Basma El - Nsour) :


요르단의 여성 작가. 단편소설을 주로 쓴다. 서기 2012년 현재 요르단에서 여성문학을 전문으로 하는 문학잡지『타이키』의 주간으로 일하고 있다. 서기 1991년 첫 단편집을 낸 뒤, 5권의 단편집을 펴냈다.


* 강문순 :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하고, 미국 케이스 웨스턴 리저브 대학에서 18세기 영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기 2012년 현재 한남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로 일하고 있다. 한국어로 옮긴 책으로는『문화코드 어떻게 읽을 것인가』(함께 옮김),『경계선 넘기 : 새로운 문학연구의 모색』(함께 옮김),『베트남 단편소설선』(함께 옮김) 등이 있으며, 주요 관심사는 풍자 문학이다.


#퍼온 곳(나온 곳) :


『아랍 여성 단편소설선』(샤뮤엘 시몽 엮음, 하이파 비타르/사하 토피그/와파 마리흐/조카 알 하르티/라비아 라이하네/나디아 알코카바니/후자마 하바예브/갈리아 카바니/나지와 빈샤트완/하디야 후세인/라치다 엘 차르니/마리암 알 - 사에디/라니아 마문/만수라 에즈 - 엘딘/르네 하이예크/에브티삼 알 무알라/로와다 알 베루쉬/라일라 알 - 오트만/바스마 엘 - 느소우르/라티파 바카 지음, 조애리/박종성/강문순/김진옥/유정화/윤교찬/이봉지/최인환/한애경 옮김, 글누림 출판사 펴냄, 서기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