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단편]동료

개마두리 2013. 8. 18. 15:43

- 알제리의 소설가 ‘모하메드 딥(Mohammed Dib)’의 단편소설

 

여러분 모두에게 신(神)의 은총이 내리기를! 이곳에는 유쾌한 기분이 가득 차 있다. 우리는 인생의 절정에 있고 몸과 마음이 건강하지 않은가? 그러니 뭘 더 바라겠는가? 지구는 넓고 크다. 그래서 누구나 그 한 모퉁이를 차지하고 살 수 있다. 누구나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바라는 대로 살 수 있다. 위대한 우리 조국 알제리에 축복 있으라! 그리고 우리와 같은 종(種), 즉 인간들은 대개 우리를 잘 대우해준다. 우리는 이 사실을 목숨이 붙어있는 한 영원히 온 우주 앞에서 엄숙히 선포할 것이다.

 

우리 형제들은 눈앞에 있는 피조물이 굶어죽도록 결코 내버려두지 않았다. 그렇다! 전 세계가 우리를 알고 있다. 우리는 샘의 물을 마시고 지붕 위에 둥지를 트는 새들과 같다. 어떤 사람들, 즉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리를 ‘제하(*아랍 세계의 흔한 남자 이름인 ’나스르‘의 알제리 식 이름이다.『나스레딘(혹은 제하) 이야기』는 이슬람 세계에서 전해 내려오는 제하(혹은 나스르)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모아 놓은 것이다. 이 소설은 이『나스레딘(혹은 제하) 이야기』의 형식을 차용하여 서술되었다 - 이봉지 배재대학교 프랑스어문화학과 교수의 주석)’라고 부르고 그 밖의 사람들, 즉 친구와 지인(知人. 아는 사람 - 잉걸)들은 우리를 ‘자드주’라고 부른다.

 

아, 우리들에 대해서 얼마나 수많은 얘기가 전해지는지! 모두들 우리 얘기를 익히 알고 있다. 필남필녀(匹男匹女 : 보통 남녀 - 잉걸) 뿐만 아니라 지식인들도 모두 우리 이야기를 좋아하였으며 유랑극단 사람들은 한껏 상상력을 발휘하여 우리가 겪은 시련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지어냈다. 물론 그 시련은 내가 스스로 불러들인 것이었다. 필요할 때 입을 다물지 못한 까닭이다.

 

사실 나는 진실을 알고 싶어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억지로 진실을 말했다. 상인이나 배때기에 기름 낀 자들, 고결한 척 하는 자들, 가짜 신앙인, 하늘이 자기보다 밑에 있다고 생각하는 위대한 자들, 엉터리 학자들, 노예의 영혼을 가진 저열한 자들 말이다. 나는 결코 가난한 사람들을 공격하지 않았다. 그렇지 않아도 이미 충분히 짓밟힌 사람들이니까. 심판의 날, 죄 많은 이 몸이 심판받는 날, 이 점이 감안되기를 바란다! 물론 나는 공연히 소동을 부리고 허풍을 떨기도 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내가 지독한 바보이기 때문이다.

 

각설하고, 내가 진짜로 얘기하고 싶은 것은 불쌍한 제하가 최근에 겪은 불운에 관한 이야기이다.

 

아직도 그 사람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다. 그의 옷차림은 우리나라에 맞지 않았다. 옷을 너무 많이 껴입고 있었으니까. 게다가 빛깔도 아주 칙칙했다. 어느 날 오후 평소처럼 동네를 한 바퀴 돌고 있는데 그가 내게로 다가와서 말을 붙였다.

 

“아니, 제하 아니세요?”

 

“맞습니다. 내가 바로 제하입니다.”

 

이렇게 말하며 나는 이 낯선 자를 어떤 식으로 대해야할까 곰곰 생각했다.

 

“저는 선생님을 알고 있습니다.”

 

그가 말했다.

 

“젊은이, 이 세상천지에 제하를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겠소!”

 

“하지만 저는 진짜로 선생님을 알아요.”

 

이 말을 하면서 그는 한쪽 눈을 찡긋하였다.

 

“그래요, 어떻게 …….”

 

“예전에 선생님께서 우리 마을에 오신 적이 있어요. …… 그때 저는 아직 어린애였죠.”

 

“여보게, 내가 안 가본 데가 어디 있나. …… 내 발이 말을 할 수 있다면 정말이지! …….”

 

그렇지만 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하였다.

 

“도대체 무슨 말이 나올까?”하고 속으로 염려하며 그의 얼굴을 똑바로 바라보았다. 삼십 세쯤 되었을까? 작은 키에 왜소한 몸집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우 강인한 정신력을 가지고 있는 것 같았으며 눈동자는 마치 불타는 석탄처럼 강렬하게 빛나고 있었다. 내게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잘생긴 얼굴에 즐거운 미소가 스쳤으며 단단하고 좁은 이마에는 주름살이 물결쳤다.

 

그는 내가 그렇게 빤히 쳐다보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계속 말을 이어갔다.

“선생님은 우리 동네 사람들을 모아놓고 이야기를 들려주셨어요. 모두들 재미있어 했죠. 살렘 아저씨는 감사의 표시로 멋진 수탉 한 마리를 가져왔죠. 산 채로 말이죠.”

 

이야기를 하는 동안 그는 계속해서 눈을 깜빡였다. 나는 여전히 그에게 데면데면하게 굴었다. 왠지 그 친구에게 호감이 갔고 또 친근하게 느껴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고집스럽게 마음의 문을 굳게 닫고 있었다. 파렴치한 익살꾼이 틀림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는 결국 방어를 풀고 말았다. 그 이유는 분명치 않다. 어쩌면 그의 눈에서 반짝이는 순진한 미소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으면 이 우연한 만남이 도대체 어떤 결과를 초래할 것인지 알고 싶은 호기심 때문이었을 수도 있다. 어쩌면 더 그럴듯한 이유가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어쨌든 나는 그의 이야기에 호의적으로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이런 속내를 들키지 않기 위해 짐짓 냉담을 가장하며 대답했다.

 

“그랬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어쨌든 지금은 전혀 생각이 안 나는군.”

 

“그 사람들은 모두 돌아갔죠.”

 

젊은이는 내 말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얘기를 계속했다.

 

“결국 저 혼자 선생님 곁에 서 있었어요. 저는 경외의 감정으로 선생님을 바라보았어요. 속으로 이렇게 말했죠. ‘이 분이 바로 제하야.’ 하고 말이죠. 만일 그때 선생님께서 갑자기 저를 쳐다보시지 않았다면 언제까지나 그렇게 서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선생님께서 제게 가까이 오라고 손짓을 하시더니 제 귀에 대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얘야, 이 닭을 가지고 가거라. 어머니께 쿠스쿠스(북아프리카 사람들의 요리 - 잉걸)를 만들어 달라고 하여라.’ 선생님께서는 제 손에 닭을 쥐어주시고 그대로 돌아서서 성큼성큼 걸어가 버리셨어요.”

 

나는 더욱 흥미를 가지고 이 친구를 바라보았다. 이윽고 우리는 서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는 곧 자기 신상에 관해 모두 털어놓았다. 그는 바로 그날 귀국하였다. 프랑스에서 살다 돌아온 것이다. 사 년 만에 겨우 휴가를 얻어 고국 방문 길에 나선 참이었다. 이제 곧 가족을 만날 것이었다. 아내와 세 아들을 말이다. 이 말을 하면서 그의 눈에는 자랑스러운 빛이 가득했다. 하지만 집에 돌아오는 것은 쉽지 않았다. 하도 오랜만이라 혹시 자식들을 못 알아볼까 걱정이 되었다. “사 년이에요. 생각 좀 해보세요! 가슴이 두근거려요. 이제 곧 아이들을 본다고 생각하니 정말 겁이 나요.”

 

나의 모든 의혹이 단번에 풀렸다. 그런 심정이 너무나 잘 이해되었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아내 얘기는 꺼내지 못했다. 머릿속이 아내 생각으로 가득 차 있더라도 결코 아내 얘기는 입 밖에 내서는 안 되는 것이 우리의 관습이니까. 하지만 얼마나 바보 같은 생각인가! 아름답고 사랑스런 아내를 가진 것이 죄란 말인가? 이런 멍청이들 같으니라고!

 

편히 대화를 나누려면 갓 우려낸 차(茶) 한 잔을 앞에 놓고 의자에 걸터앉는 것이 제일이다. 그렇지 않은가? 그래서 나는 그 친구에게 카페에 가자고 했다. 그러자 그는 매우 언짢아하며 절대로 나를 따라가지 않겠다고 했다. 그는 카페에 초대할 사람은 내가 아니라 자기라고 하면서 자기 초대에 응해주면 크나큰 영광이라고 했다. 또한 자기가 먼저 그 생각을 못한 것이 정말 유감이라고도 했다.

 

“그렇게 하세. 정히 자네 소원이 그렇다면.”

 

내가 대답했다.

 

그러자 그는 곧 진정이 되었다. 물론 그는 나의 초대가 그냥 예의상 해본 소리라는 것을 알지 못했다. 사실 나는 그때 주머니에 땡전 한 푼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를 초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만큼 그에 대해 친근감을 느껴서 내 자신이 무슨 짓을 하고 있는지 깨닫지도 못한 채 그만 일을 저질러 버렸던 것이다. 물론 내 장담하건데 어떤 경우에도 찻값은 그가 냈을 것이다. 매우 경우바른 사람이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또 다른 요인도 있었다. 행복에 겨워 마음이 날듯이 가벼울 때면 누군가에게라도 감사의 마음을 표시하고 싶어진다. 이 젊은이의 경우가 바로 그랬다.

우리는 어느 오래된 여인숙의 마당에 앉아 향기로운 차를 마셨다. 11월 말의 어느 날이었다. 날씨는 아직 따뜻했다. 장인(匠人 : 기술자 - 잉걸)들의 공방(工房)이 들어있는 건물 곳곳에서 온갖 소리들이 들려왔다. 신발 장인들의 공방에서는 노래 소리,『꾸란』읽는 소리, 종교적인 영창(詠唱 : [경전 구절을] 읊어서[詠] [노래로] 부름[唱] - 잉걸) 소리가, 방직 공장에서는 직조기의 북이 왔다 갔다 하는 소리가 들려왔으며 마당을 오가는 가죽 상인들의 콧노래 소리도 들렸다. 새장 속의 새들이 짹짹거리자 거기에 화답하듯 마당가 석류나무 위에서 다른 새들의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갑자기 마음이 턱 놓였다. 때로 우리는 부산스럽게 돌아가는 주위 환경 속에서 더욱 큰 마음의 평화를 맛보기도 한다.

 

그 때까지 잠자코 있던 내 동료가 불쑥 내게 물었다.

 

“이곳 사정은 정말 괜찮은 건가요?”

 

나는 화들짝 놀랐다. 전혀 예상치 못한 질문이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그것은 조금 전까지 편안한 주위 환경 속에서 내가 느끼던 행복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질문이기도 했다. 젊은이는 (그의 이름은 ‘주비르’라고 했다.) 곱슬머리를 흔들며 내 쪽으로 몸을 기울였다. 나는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의 활기찬 표정으로 보아 진심으로 하는 말인 것 같았다. 그러나 나로서는 그가 왜 뜬금없이 그런 질문을 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어찌되었건 이곳 사정이 괜찮지 않다는 것쯤은 나도 알고 있었다. 사실 사정은 점점 나빠지고 있었다.

 

그는 내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선언하듯 말했다.

 

“이곳 사정은 말입니다, 법은 있지만, 법은 정말 많이 있지만 정의는 없고, 진실도 없어요 …….”

 

그는 찌르는 듯한 시선을 던졌다. 그것은 칼처럼 날카롭게 번뜩였다. 그의 말은 소박했지만 확신을 담고 있었다. 그러니 그를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나는 잠자코 그의 말을 들었다. 그러나 점점 불안해져서 마침내 참을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잠시 뜸을 들인 후, 그는 침울한 얼굴로 말했다.

 

“외국으로 도망가는 것은 나빠요. 나도 압니다. 나는 조국을 버렸어요. 하지만 난들 좋아서 그런 줄 아세요? 다른 방도가 없었기 때문이에요. 나는 몸도 튼튼하고 손재주도 좋아요. 하지만 여기서는 일자리를 구할 수가 없었어요.”

 

그는 웃기 시작했다. 신이시여, 감사합니다! 나는 그가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서 너무나도 기뻤다. 조금 전까지 매우 심각하던 그의 눈이 이제 선량한 빛으로 가득 찼다.

 

그러나 그는 곧 다시 말을 시작했다.

 

“적당한 일을 찾을 수가 없었어요. 물론 이런저런 잡다한 일을 했지만 뭔가 보람을 느낄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어요. 전혀 없었죠. 그래서 외국으로 갔어요. 그때부터 우리 아이들을 배부르게 먹이게 되었어요. 아버지는 못 봤지만 그래도 굶지는 않게 되었죠. 게다가 저축도 좀 했어요.”

 

이 말을 하면서 그는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사실 몇 푼 안 돼요!”

 

그는 툴툴거렸다.

 

“하지만 … 어쨌든 없는 것보단 낫죠.”

 

처음에 나는 왜 그의 웃음소리가 그렇게 이상하게 들리는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젊었다. 그 나이에는 조금만 즐거워도 마음속에 있는 선량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러니까 일을 해서 가족에게 양식을 사주고 또 조금이나마 저축도 할 수 있는 사람은 대단한 존재다.

 

이런 생각이 들어 나는 동료에게 미소를 지었다. 그 사람 역시 나와 시선이 마주칠 때면 미소를 지었다.

 

마침내 나는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참 대단해. 물론 자네는 아직 젊어. 하지만 자네는 심지가 굳으니까 꼭 성공할 거야.”

 

“그건 확실치 않아요.”

 

그가 대답했다.

 

“무엇보다 이웃을 사랑하게. 하지만 그 사람들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게. 그러면 그들도 나쁜 마음을 먹지 못할 테니까.”

 

“저는 대체로 사람들과 사이가 좋아요. 우리 장인어른하고 공무원들만 빼고요.”

 

나는 놀라서 내 동료의 얼굴을 다시 한 번 쳐다보았다. 그리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 젊다는 게 그런 거지. 젊은이들은 자존심이 세고 자기가 뭘 원하는지 알고 있어. 제하 너만 해도 그래. 모든 일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놓고 어찌할 바를 몰라 쩔쩔맸잖아.’

 

그의 존재로 인해 나의 늙은 가슴이 훈훈해지는 것 같았다. 그런 사람이 내 곁에 앉아 있다니! 그것은 전혀 예상치 못한, 그리고 너무도 과분한 행복이었다. 내가 젊었을 때 우리는 이런 식으로 말하지 않았다. 그때 젊은이들은 좁은 세상에서 지루하게 살았다. 정말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삶이었다.

 

그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하다. 그의 모습은 절대로 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을 것이다. 그의 초록색 망토가 눈에 보이는 것 같다. 그것은 곧바로 무릎까지 내려오지 않고 넓은 허리띠로 조여져 있었다. 소년 같은 그의 얼굴은 이목구비(耳目口鼻. 귀[耳]와 눈[目]과 입[口]과 코[鼻] - 잉걸)가 뚜렷했고 숱이 많은 검은 곱슬머리 위에는 모자도 셰샤(*머리에 딱 맞는 원통형의 장식술이 달린 모자 - 이봉지 교수의 주석)도 쓰지 않았다. 그의 빛나는 눈은 온 사방에 편안한 빛을 발하고 있었다.

 

슬프다! 기쁨과 슬픔이 같은 지붕아래 함께 살고 있다니! 주비르는 몇 분 정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잠자코 있었다. 아마도 과거를 곰곰이 되짚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그는 머리를 긁적이고 한숨을 내쉬더니 먼 산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계속했다.

 

“이 나라에는 너무도 비참한 일이 많아요. 그래서 도대체 어디부터 얘기를 시작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저처럼 외국에서 갓 돌아온 사람은 그걸 더 심하게 느껴요. 거기서는 모두들 일을 하고, 돈을 벌고, 인생을 즐기니까요.”

 

나는 또 다시 불안해졌다. 그의 비판에는 확신이 있었다. 아마도 이미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것 같았다. 그래서 매우 설득력이 있었다. 그러나 그 말을 하는 동안 그의 얼굴에는 견딜 수 없는 긴장감이 감돌았고 그래서 나는 돌연 불안감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이런저런 얘기 끝에 그는 자기 아버지에 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그의 아버지는 커피콩 가는 일을 했다. 주비르 자신은 이제 운이 트였지만 자기 아버지는 끔찍한 인생을 살았다고 했다.

 

“요즘은 커피 가는 기계가 있어서 몇 초 만에 커피를 갈아내요. 하지만 제가 어렸을 때는 그렇지 않았어요. 사람 힘으로 커피콩을 갈아야 했어요. 밀가루보다 더 고운 분말을 만들기 위해서는 정말 힘들여 갈아야 했어요. 우리 아버지가 그 일을 했어요.”

 

말하는 동안 그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마치 보이지 않는 적의 멱살이라도 잡는 것 같았다.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묵묵히 앉아 있었다. 그가 자기 기억을 되살리려고 애쓰는 데 공연한 방해가 될까 저어되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아버지는 더러운 막다른 골목에 있는 얕은 도랑 같은 깊고 캄캄한 구멍 속에서 일했어요. 육중한 문이 항상 닫혀 있었어요. 웬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그 문이 꼭 감옥 문처럼 느껴졌어요. 그 속에서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았어요. 마치 생매장을 당한 것 같았죠. 쇠로 만든 절굿공이는 내 키보다 컸고 무게도 아마 이십 킬로그램 이상 나갔을 거예요. 아버지는 하루 종일 쉬지 않고 그것을 들어 올려 커피를 찧었어요. 뼈가 부서져라 일하면서 잠시도 쉬지 않았죠. 숨이 차서 헉헉대며 찧고 또 찧었어요. 자기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르게 될 때까지 말이죠. 얼굴에서 땀이 뚝뚝 흘러내리고 바짝 마른 이마와 뺨과 목도 시커먼 땀으로 범벅이 되었어요. 아버지는 그 때 꽤 나이가 많았어요. 시력도 점점 나빠져 눈도 잘 보이지 않았어요. 그 눈에도 땀이 가득했어요. 어쩌면 눈물이었는지도 몰라요. 어쨌든 시커맸어요. 아버지는 항상 침울했지만 그래도 계속 숨을 몰아쉬며 커피를 찧었어요. 절굿공이가 절구에 부딪치면 그 충격 때문에 당신 몸도 함께 떨렸어요.”

 

너무도 끔찍한 얘기에 나는 견딜 수 없어 몸서리 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귀를 쫑긋 세우고 그의 얘기를 들었다. 장인들의 공방이 있는 장소가 아니었다면, 그렇게 사람들이 많이 오가는 장소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가 불쌍해서 통곡을 하고 말았을 것이다. 그 젊은이는 내 오장육부를 갈가리 찢어 놓았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이게 우리네 인생이야. 그게 우리 형제들이 살아야 할 인생이야!’

 

그러자 가슴이 먹먹해지면서 억지로 참고 있던 울음이 교수대(사형수의 목을 매다는 장치 - 잉걸)의 동아줄처럼 목구멍에 걸렸다.

 

젊은이가 얘기를 계속했다.

 

“때때로 아버지는 너무 지쳐서 그만 코를 땅에 박고 쓰러지셨어요. 내심(內心. 속마음 - 잉걸)으로는 그렇게라도 좀 쉬는 것이 좋았을 거예요. 하지만 그런 때를 대비해서 하루 종일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감시하고 있었어요. 주인이 그런 모습을 보면 큰일 나기 때문에 나는 아버지를 닦달해서 바로 일어나시게 했어요. 물론 속으로 울었죠. ‘불쌍한 아버지, 너무 지치셨어요. 좀 쉬지 않으면 돌아가시고 말 거예요.’ 하지만 나는 그런 측은한 생각을 떨쳐 버려야했어요. 쑤시는 팔다리를 땅에 대고 좀 쉬시게 할 수가 없었어요. 만일 그랬다가는 나중에 아버지한테 혼날 테니까요. 그래서 나는 더러운 천 조각으로 아버지 얼굴을 닦아드리고 나서 있는 힘을 다해 아버지를 일으켜 세우고 절굿공이를 손에 들려 드렸어요. 아버지는 내게 ‘고맙다, 얘야.’라고 말씀하시고는 다시 일하기 시작하셨어요.”

 

“아버지는 곧 다시 기운을 차렸어요. 쿵쿵 울리는 규칙적인 절굿공이 소리에 근처의 낡은 집들이 기둥뿌리부터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때로 아버지는 내게 말을 걸기도 하셨어요. 사실 아버지는 원래 침울한 성격이 아니었어요. 말이야 아주 씁쓸하게 하셨지만 딱히 슬퍼서 그런 것은 아니었어요 …….”

 

여기서 젊은이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그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나는 그를 재촉했다.

 

“자, 전부 털어놔 봐요.”

 

그러자 그는 천천히, 아주 천천히 생각을 끌어 모았다. 툭 튀어나온 눈썹자리 밑에서 검게 빛나는 두 눈동자는 똑바로 정면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 모습이 어찌나 측은했던지! 그런데 그의 나직한 목소리를 듣는 동안 나는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젊은이의 이야기에 관해 찬찬히 생각해봐야 할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평생 그런 일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어찌되었건 지금은 그런 생각을 할 게재가 아니었다. 그래서 나는 나중에 다시 생각해보기로 했다. 젊은이는 착 가라앉은 목소리로 이야기를 이어나갔다.

 

“주인은 하루에도 몇 번씩 커피 가루를 가지러 왔어요. 그때마다 주인은 마치 즐거운 농담이라도 되는 것처럼 이렇게 말했어요. ‘아흐메드, 당신은 너무 늙었어. 아무래도 젊은 사람을 구해야할 것 같아!’ 처음 그 소리를 들었을 때 아버지는 극구 부인을 했어요. 젊을 때보다 지금이 힘이 더 좋다고 말이죠. 하지만 아버지는 점차 자기 운명을 받아들이는 것 같았어요. 그래서 주인이 왔다가고 나면 언제나 혼잣말을 했어요. ‘장님이 되면 구걸을 하겠어. 그럼 더 행복할 거야.’ 그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아버지가 빨리 시력을 잃기를 빌었어요. 아버지를 인도하여 이 고장 저 고장 떠돌아다니는 내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그것을 생각하면 가슴이 마구 뛰었어요. 어느 날 내가 아버지께 그 얘기를 했더니 아버지는 빙그레 웃으시며 대답하셨어요. ‘그래, 좋아. 우리 함께 손을 잡고 신의 가호 아래 길을 떠나자꾸나.’ 하지만 그건 이루어지지 않았어요. 아버지는 결국 절굿공이를 손에 쥔 채 돌아가셨으니까요.”

 

젊은이는 입을 다물었다. 눈에 보이지 않는 뭔가 때문에 겁을 집어먹은 것처럼 몸서리를 쳤다. 얼굴이 화석처럼 굳어졌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꼼짝도 하지 않았다. 뭔가 조용히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얼마 후, 갑자기 고개를 들더니 한달음에 얘기를 끝냈다.

 

“저녁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일과가 끝날 때가 되면 아버지는 몸이 너무 아파서 고통의 신음소리를 토해냈어요. 정말 괴로워서 견딜 수가 없을 지경이었어요. 날은 벌써 어둑어둑했죠. 나는 한달음에 집으로 달려가 어머니를 모시고 와 둘이서 양쪽에서 아버지를 끼고 질질 끌다시피 해서 집으로 돌아갔죠.”

 

나도 비참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우리는 너무도 따분했다. 마치 독가스처럼 권태가 우리를 사로잡아 영혼을 갉아먹었다. 너무도 따분해서 질식할 것만 같았고 가슴 위에 납덩이가 얹혀있는 것 같았다. 그리 먼 옛날도 아닌 그 과거를 생각하면 그것이 실재했다는 것이 믿기 힘들 정도다. 우리는 그처럼 무지와 공포의 외피(外皮. 겉껍질 - 잉걸) 속에 싸여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고개를 숙이고 조신하게 살았다. 감히 세상에 자기를 드러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은? 이제 우리는 자존심을 배웠고, 모욕을 거부한다. 우리는 가슴에 둘러쳐놓은 검은 상장을 걷었다. 신은 우리 모두에게 장수를 허락하셨고 우리는 앞으로 좋은 날이 올 것을 기대한다. 제하가 장담하건대 꼭 그렇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이 오면 몇몇 사람들은 양심의 가책을 느낄 것이다.

 

내 동료 얘기로 돌아가자면 이제 그는 행복하다. 세 아들의 아버지에다 버젓한 일자리도 있으니까 …….

 

우리 두 사람은 그렇게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동안 그는 긴 악몽 같은 과거를 다시 한 번 사는 것 같았다. 그는 눈을 감고 후회하는 것처럼 물었다.

 

“그런 삼대 구십년 묵은 얘기를 뭣하러 끄집어냈을까요? 도대체 왜 그런 쓸데없는 생각을 했을까요?”

 

그는 얼빠진 표정으로 앉아 있었다. 이윽고 그가 눈을 떴다. 그의 얼굴이 자비로운 미소로 빛났다.

 

바로 그때였다. 검은 옷을 입은 경찰들이 여인숙 안으로 우르르 쏟아져 들어오더니 까마귀 떼처럼 우리들에게 달려들었다. 친구들이여, 내가 도대체 무슨 말을 할 수 있겠는가? 이 모든 것이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나는 도대체 어찌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다. 아, 형제들이여, 이 무슨 날벼락이란 말인가! 그들은 주먹과 경찰봉으로 우리를 사정없이 후려쳤다. 귀밑까지 금속 헬멧을 눌러 쓴 그놈들이 느닷없이 우리를 공격한 것이다. 우리는 이유도 모츤 채 매찜질을 당했다. 주먹으로 배를 얻어맞고 다리, 등 할 것 없이 온몸을 경찰봉으로 흠씬 두들겨 맞았다. 그 와중에 몇몇 사람들은 입가가 찢어지고 머리가 터진 채 달아나려고 했다. 점잖은 시민들 머리에서 터번이 벗겨지고 얌전한 장인들이 가게에서 끌려나와 장화 발에 짓밟혔다. 그리고 얼마 후, 나와 내 동료를 비롯한 모든 사람들은 체포되어 범죄자처럼 오랏줄에 묶였다. 그런데 무슨 이유로? 전능하신 신이시여, 도대체 무슨 죄목이란 말입니까? 나는 한참 후, 즉 내가 감옥에서 출소하고(나오고 - 잉걸) 나서야 비로소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주비르는 곧바로 정신을 차렸다. 그 개 같은 경찰놈들에게 그렇게 얻어맞은 다음에 정신을 잃지 않고 말을 제대로 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인데 말이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반쯤 얼이 빠져 있었다. 그러나 용감한 젊은이는 별다른 기색 없이 담담하게 나를 불렀다. “어디 계세요? 아, 거기 계시는군요! 걱정하지 마세요. 다 끝났으니까요 …….”

 

다 끝났다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직도 안심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가슴이 두근거리는 것이 뭔가 나쁜 일이 닥칠 것만 같았다. 분명치는 않았지만 뭔가 이상한 낌새가 있었던 것이다. 그래도 나는 기뻤다. 어찌되었건 동료를 다시 찾았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친구의 얼굴을 다시 보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직접 당해 보지 않은 사람은 결코 알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차차 자신감을 되찾았다. 하지만 신이시여, 얼마나 지독한 몰골이었는지! 너무 놀라서 그랬는지 아니면 겁이 나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내 등은 온통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어쩌면 공포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더 곤란한 것은 마을의 모든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그런 꼴로 걸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아, 이런 창피가 어디 있을까! 나는 등을 구부리고 잠자코 걷기 시작했다. 나와 똑같은 처지의 사람들이 앞뒤로 길게 대열을 이루어 걸어가고 있었다. 주비르는 의기소침한 내 모습을 보고 조용히 물었다.

 

“무서우세요?”

 

“아닐세.”

 

“별 것 아닐 거예요.”

 

그 순간 나는 뜬금없이 카페 주인 생각이 났다.

 

“그 친구는 이런 일이 일어날 줄은 꿈에도 몰랐겠지. 우리 찻값은 누가 지불하며, 또 깨진 컵과 부서진 의자와 탁자는 누가 변상하지?”

 

이제 쓰레기 더미가 된 장사 밑천을 바라보며 한탄하고 있을 그 친구의 모습이 머리에 떠오르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신이시여, 저를 용서하소서! 그런데 무엇이 그리 우스웠을까? 이유는 잘 설명할 수 없다. 하지만 어쨌든 나는 온몸을 흔들어대며 이른바 ‘눈물이 날 때까지’ 웃어 젖혔다.

 

그런데 그 순간 나는 우리 대열 맨 앞쪽에 카페 주인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다. 난투극의 와중에서 터번을 잃어버렸는지 맨머리 바람이었다. 그는 마치 결혼식 행렬에라도 참가하는 것처럼 기품 있는 모습으로 걸어가고 있었다. 도도하게 턱을 치켜든 모습은 마치 경찰들에게 올바른 길을 제시함으로써 한 수 가르쳐주는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제하야! 너도 저 사람처럼 기품이 있어야지.”

 

나는 가슴을 펴고 눈썹을 찡그리고, 팔을 내저으며 카페 주인처럼 점잖게 걷기 시작했다. 갑자기 키가 커진 것 같았다. 원래 내 키 보다도 더 커진 느낌이 들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감옥에 가겠지. 하지만 그게 뭐 대순가? …… 남자란 한 번쯤 감옥구경도 해 봐야 하는 거야.’

 

나는 기분이 좋아졌다. 그렇게 마음을 먹으니 절로 기운이 나서 걷는 것이 전혀 힘들지 않았다. 우리 행렬 양쪽에 도열한 사람들은 인간 띠를 이루고 존경과 연민이 섞인 눈길로 우리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유럽인(프랑스 백인 - 잉걸) 한 명이 사람들을 제치고 뛰어나와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입에 거품을 물고, 머리 위로 주먹을 치켜들며 우리에게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서라 … 거기 서지 못해!”

 

그 짐승은 미친 듯이 소리를 지르며 우리를 마구 두들겨 팼다. 특히 내 옆의 젊은 친구에게 구타가 집중되었다. 우리는 그가 왜 그러는지 알 수 없었다. 젊은 친구는 구타를 피하기 위해 옆으로 비켜서며 맞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수갑을 차고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방어를 할 수 없었다. 나는 소리를 질렀다.

 

“저 사람 좀 잡아요! 제발 저 사람 좀 체포하라니까!”

 

하지만 경찰들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군중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저 미치광이를 제지해줄 것인가? 그러자 경찰들은 권총을 뽑아들고 우리와 군중들에게 총을 겨누었다. 갑자기 주위가 물을 끼얹은 듯 조용해졌다. 군중들은 그대로 얼어붙어 버렸다. 나는 겁이 더럭 났다. 영문을 알 수 없는 공포에 몸이 얼어붙는 것 같았다. 경찰의 호위를 받게 되자 유럽인은 더욱 신이 나서 내 동료를 닥치는 대로 구타하였다. 나는 모든 것을 관찰하였다. 나 자신의 모습까지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마치 내 자신이 둘로 나뉜 것 같았다. 그러나 나는 내가 정말 냉정을 잃지 않았는지 확신할 수 없다. 돌연 주비르가 신음 소리를 냈다. 나뭇가지가 부러지는 것처럼 둔탁하고 끔찍한 낮은 소리였다. 그는 수갑 찬 손을 허공에 내저으며 비틀비틀 뒤로 물러나더니 땅바닥에 털썩 쓰러졌다. 그 바람에 같이 묶여있던 나도 함께 쓰러지고 말았다. 그의 몸이 덜덜 떨렸다. 그러나 그의 입에서는 아무런 소리도 새어나오지 않았다. 그는 등을 동그랗게 오그리며 간신히 목을 들어 나를 바라보았다. 넋이 나간 듯한 그의 눈은 얼마나 참혹하였는지! 인간의 입으로는 그 참상을 결코 표현하지 못할 것이다. 이윽고 그의 몸에서 힘이 빠졌다. 간신히 들고 있던 그의 머리가 땅바닥에 떨어졌다. 나 역시 그 옆에 쭉 뻗고 말았다.

 

유럽인은 여전히 구타를 계속했다. 그는 입에 침을 튀기며 소리쳤다.

 

“이 나쁜 놈, 어디 내가 널 살려줄 줄 알아!”

 

형제여! 나는 인간의 마음속에 그토록 큰 증오가 담겨 있으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 그날 내가 본 장면을 여러분이 보았다면 아마 여러분의 눈을 믿기 어려웠을 것이다. 신이시여, 제발 그런 미치광이가 되지 않게 해주소서! 그런 나쁜 마음일랑 갖지 않게 해주소서!

 

그 뒤의 여정을 우리가 어떻게 끝까지 마쳤는지 내가 안다고 한다면 그건 거짓말이다. 그 순간부터 모든 것이 흐릿해졌고 기억조차 희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몇몇 장면만은 내 기억 속에 칼로 새긴 것처럼 뚜렷이 남아있다. 물론 다른 대부분의 것들은 안개처럼 희미할 뿐이다. 예를 들어 나는 우리가 어떻게 다시 일어나 애면글면(몹시 힘에 겨운 일을 이루려고 갖은 애를 쓰는 모양 - 옮긴이) 길을 갔는지 어렴풋하게 밖에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감옥으로 가는 길이었다. 맹수에게 물린 것처럼 어깨가 아팠다. 그래서 실성한 사람처럼 멍청히 다리를 질질 끌며 걸어갔다. 갑자기 옆에서 둔탁한 소리가 들려서 나는 기겁을 했다. 내 동료의 뼈가 우드득하며 부서지는 소리였다. 그의 옷 또한 흙투성이에다 심하게 구겨져 옷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낡은 부대자루 같았다. 나 또한 잠깐 사이에 딴 사람이 된 것 같았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나는 이 세상에 대해 끝없이 형제애를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 불꽃은 이제 완전히 꺼져버렸고 나는 이제 바닥을 알 길 없는 깊고 어두운 심연 속에서 방황하고 있었다. 주비르의 머리는 내 가슴에서 덜렁거리고, 그의 등은 반으로 꺾이고, 그의 팔은 힘없이 덜렁거렸다. 이제 그의 다리는 걷고 있지 않았다. 그냥 우리가 그를 들어 옮기고 있었을 뿐이다.

 

그 뒤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내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온몸이 욱신욱신 쑤셨다. 그 때 나는 땅바닥에 누워 있었는데 내 주위에는 더럽고 냄새나는 물이 흥건했다. 아마도 물을 몇 동이나 끼얹었는지도 모른다. 머리는 온통 부어 묵직했다. 혈관이 불뚝불뚝 뛰고 머릿속이 윙윙거렸다. 그냥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아무것도 보지 않기만 바랐다. 모든 것이 너무 끔찍했다. 길고 좁은 방속에는 우리 외에도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모두들 금방 자른 나무둥치처럼 꼼짝하지 않고 서로 포개어 누워있었다. 몇몇은 아직도 기운이 남았는지 신음소리를 내고 있었다. 나는 가만히 누워 기다렸다. 멀지 않은 곳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천천히 주변을 살펴보았다. 그러나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머릿 속에는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생각만이 오갔다. 몇 분 후, 나는 몇몇 얼굴들을 알아볼 수 있었다. 텁수룩한 회색 머리들이 시멘트 바닥에 붙여놓은 것처럼 나뒹굴고 있었다.

 

어딘가 먼 구석에서, 혹은 벽 뒤에서, (그런데 그곳이 어디란 말인가!) 누군가가 우리를 지켜보고 있었다. 하지만 그곳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다만 누군가가 어두침침한 그늘에 숨어 나를 향해 눈알을 굴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일어나서 그 얼굴을 제대로 살펴보고 싶었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기운이 하나도 없었다. 마치 그 자리에 들러붙은 것처럼 옴짝달싹할 수 없었고 심지어는 손가락 까딱할 힘조차 없었다. 그러고 있으려니까 어떤 수를 쓰더라도 도망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얼마나 큰 궁지에 빠져있는지 기억이 나기 시작했던 것이다. 갑자기 의식이 또렷해졌다. 나는 생각했다.

 

‘제하, 제하, 어찌 이런 일이? 어쩌다 이런 지경을 당한 거야? 불쌍한 제하놈 같으니라고! …….’

 

나는 안간힘을 써서 몸을 일으켜 자리에 앉았다. 그 순간, 누군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와서 나는 기겁을 하였다. 재빨리 주위를 둘러보니 그 소리는 내가 있는 방에서 나는 소리가 아니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하지만 나는 너무 놀라서 다시 뒤로 쓰러졌다. 전신의 기운이 쭉 빠지고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런 상태로 얼마나 지났을까? 비몽사몽 가운데서 나는 벽 뒤에 또 다른 죄수들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였다. 어디선가 쾅하고 문이 닫히고 그 바람에 어둡고 육중한 건물 전체가 진동을 했다. 어딘가 복도에서 발걸음 소리가 나고, 죽어가는 자의 목구멍에서 나는 가래 끓는 소리가 감옥의 고요를 뚫고 들려왔다. 나는 구석에서 몸을 오그렸다. 아까와 같은 소리들이 건물 전체를 울리며 다시 들려왔다. 얼마 후, 죽음이 임박한 자의 가래 끓는 소리 위로 구슬프게 헐떡이는 신음소리가 한동안 들려오더니 이윽고 천천히 잦아들었다. 나는 엎드린 채로 숨을 헐떡이며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러다 문득 고개를 든 나는 눈앞의 참상에 까무러칠 뻔 했다.

 

눈앞 땅바닥에 주비르가 누워있었던 것이다. 그의 가슴 위에는 엄지손가락을 안으로 하여 꼭 움켜 쥔 그의 두 주먹이 나란히 놓여 있었다. 총기를 잃어버린 그의 눈은 굳은 비계 덩어리 같았다. 그 눈은 참 이상했다. 빛이 꺼진 것 같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고집스럽게 천장을 노려보고 있는 것 같았다. 높이 구부러진 그의 눈썹은 마치 보이지 않는 그 누구에게 자기 아버지의 비극적인 삶을 얘기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 아래로 벌려진 입이 보였다. 시커먼 입술로부터 핏줄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그것은 조그만 시내를 이루어 그의 뺨과 목을 타고 흘렀다. 그의 머리 주위에는 시커먼 피 웅덩이가 생겨나 있었다. 주비르는 꼼짝도 하지 않았다. 입에서는 쉬지 않고 피가 흘러나오고 있었다. 내 동료의 전(全) 존재가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갑자기 방안에 냉기가 돌았다. 나는 이상하게 섬뜩한 느낌이 들었다. 나도 모르게 아래 위 턱을 앙다물었다. 차츰 온 몸의 감각이 없어지기 시작했다.

 

한참 후(내 생각엔 꽤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는 딴 곳에 누눠있었고 땅바닥에도 핏자국 같은 건 전혀 없었다.

 

그(주비르 - 잉걸)는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근처의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그러나 아무도 그것을 알지 못했다. 개중에는 내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는 사람들도 있었다. 어쩌면 그들은 내가 충격 때문에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른다. 얼굴 표정으로 미루어보아 그들은 나를 측은하게 생각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이제부터 심문이 시작된다는 것이었다. 우리가 묶여온 것은 바로 그 때문이었다. 돌연 큰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의 이름이 호명되고 있었다. 먼저 불려나갈 사람들의 이름이었다.

 

드디어 내 차례가 왔다. 취조실에 들어가자 큰 책상 뒤에 앉아있던 남자가 머리를 절레절레 흔들며 뭐라고 투덜대더니 이어 큰소리로 외쳤다.

 

“제하! 제하! 무슨 이름이 이래? 이 바보가 여기서 뭘 하고 있는거야? 이놈도 미친놈이야? 자, 어서 꺼져!”

 

그 남자는 이렇게 씩씩대더니 다음 순간, 눈을 들어 나를 쳐다보았다. 그 얼굴이라니! 그 눈길이라니! …… 그 자 역시 우리와 같은 인간이라고 여러분은 말할지 모른다. 하지만 세상 사람이 전부 그자 같다면 정말 끔찍한 일일 것이다. 전 인류를 위해서도 정말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우울한 생각에 골몰한 나머지 나는 법과 질서를 대변한다는 그자의 존재마저도 깜빡 잊어버렸다. 그래서 누군가 우악스럽게 내 멱살을 잡았을 때 나는 깜짝 놀랐다. 나는 눈 깜빡할 사이에 문 밖으로 내팽겨쳐졌다. 게다가 엉덩이에 발길질까지 당했다. 그 경찰은 아마도 동료 인간을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다루는데 이력이 난 사람이었음에 틀림없다.

 

그리하여 나는 마치 마법처럼 다시 거리에 나오게 되었다. 주위에는 사람들이 부산하게 움직이고 있었다.이 거리 저 거리 다니며 물건을 파는 행상인의 외침이 길게 들려오고, 아이들이 참새처럼 콩콩거리며 뛰어다니고, 차들은 보행인은 안중에도 없는 듯 최고 속도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나는 곧 군중의 소용돌이 속에 휩쓸려 들어갔다. 와글와글 떠드는 목소리들, 끝없는 소음, 찌르릉거리는 자전거 소리, 카페의 축음기에서 쏟아져 나오는 섹시한 대중가요, “비켜요, 비켜!”하고 외치는 당나귀 몰이꾼의 째지는 고함소리, 노상 구두 수선공의 망치 소리 …… 이런 자유로운 일상의 소리들을 들으며 나는 인간의 세상에 섞여들어 갔다. 가슴을 활짝 열어 폐 속에 신선한 공기를 가득 채웠다. 그것도 공짜로 말이다. 또 신이 내려준 햇살을 등짝 가득히 받았다. 겨울이 멀지 않았지만 햇살은 아직도 따뜻했다. 그러나 내 고백하건데 전혀 행복하거나 만족스럽지 않았다.

 

내가 자유롭지 않단 말인가? 저기 길 위에서 폴짝폴짝 뛰는 비둘기처럼 자유롭지 않단 말인가? 그들은 여기저기서 모이를 쪼다가 돌연 겁을 집어 먹고 하늘로 날아오른다. 그리고는 우아하게 하늘을 선회했다. 그 모습을 보면서 땅 위의 인간들은 감탄을 금치 못한다. 그들은 “샘의 물을 마시고 지붕 위에 둥지를 튼다.” 나도 그들처럼 평소의 삶으로 돌아가 자유롭게 살면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나는 잘 알 수 없었다. 더 이상 아무 것도 확신할 수가 없었다.

 

무엇보다도 나는 예전의 삶을 그대로 이어갈 마음이 조금도 없었다. 그런 생각은 아예 해보지도 않았다. 그렇다. 나는 아직도 내가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때의 내 상태를 아직도 제대로 설명할 수 없다. 그러나 어쨌든 나는 내가 자유롭지 않다고 느꼈다. 여전히 어두운 감옥 속에서 불행한 동료들과 함께 포개지듯 갇혀있는 것만 같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는 등에 감옥을 짊어지고 나온 셈이다. 또 달리 말하자면 내 몸은 세상에 나와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있지만 나의 영혼은 여전히 감옥에 갇혀있었던 것이다. 나는 도시를 끝에서 끝까지 배회하였다. 머릿속에는 밑도 끝도 없는 어두운 생각들이 들끓었다. 어느새 골치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행인들 중에는 아직까지 그들의 오랜 친구 제하를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다. 그들은 내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었지만 나는 답례를 할 수 없었다. 그러자 머쓱해진 그들은 우울하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 중 한 명이 큰소리로 불평을 했다.

 

“감옥에 갔다 오더니 나사가 빠졌나!”

 

아! 내 처지를 그보다 더 잘 설명할 수는 없었을 것이다. 나는 오랫동안 그런 상태도 배회하였다. 대체 몇 시간이나? 그건 잘 알 수 없다.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가운데 11월의 숨 막히는 태양이 도시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다. 죽은 동료의 모습이 눈앞에 선하고 그 시커먼 피가 내 마음속에서 다시 흘러내리기 시작했다. 내 머리와 가슴 속에 뭔가가 뭉클 솟아올랐다 …….

 

감옥에서 밖으로 내팽겨쳐지기 몇 분 전에 나는 알게 되었다. 이 나라 어딘가에서 자기 땅을 지키기 위해 항거한 사람이 있었다는 것을. 우리가 당한 그 모든 것이 바로 그 이유 때문이었다는 것을. 그러자 이상하리만큼 마음이 차분해졌다. 머릿속 또한 차갑게 가라앉았다. 모든 것이 명료해지고 전에 없던 힘이 불끈 솟는 것을 느꼈다. 사나운 열정이 엄숙한 성가(聖歌)처럼 나의 영혼을 휩쌌다. 산 위에 있는 우리 형제들은 무기를 내려놓았을까? 애초에 그들은 우리 뇌수를 파먹는 버러지들을 퇴치하기 위해 무기를 들지 않았던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자명하다. 날이면 날마다 새로운 전사들이 그들과 합류하기 위해 산으로 올라갈 것이다!

 

- 이봉지 옮김

 

* 이봉지 : 배재대학교 프랑스어문학과 교수

 

* 잉걸의 보충설명 : 알제리는 서기 1871년부터 프랑스의 지배를 받았고, 서기 1954년부터 독립전쟁을 시작하여 8년 동안 프랑스군과 싸웠다. 서기 1962년에 독립했다(그러니까 알제리는 92년 동안 프랑스의 지배를 받은 것임). 이 소설은 서기 1954년 11월의 알제리를 배경으로 삼고 있다. 이 소설에 나오는 “산 위에 있는 우리 형제들”은 알제리 독립군인 ‘알제리 민족해방전선(FLN)’을 일컫는다.

 

― 출처 :『아랍 단편소설선』(살와 바크르 외 지음, 조애리 외 옮김, 글누림 펴냄, 서기 2011년)

 

'소설'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단편]진짜 도둑과 녹슨 주석  (0) 2013.11.11
▩[단편]아주 무서운 농담  (0) 2013.11.05
▩[단편]덜컹덜컹  (0) 2013.02.07
▩[단편]저항의 냄새  (0) 2013.01.05
▩[단편]뉴스 앵커가 한 말  (0) 2012.12.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