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단편]아주 무서운 농담

개마두리 2013. 11. 5. 22:15

첩보원으로 들끓는 나라가 있었다. 시민 세 사람 가운데 한 사람 꼴로 프로 첩보원이었고, 그들을 뺀 나머지 인구의 절반(그러니까 온 인구의 33.5% - 인용자 잉걸)은 아마추어 첩보원이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프로 첩보원과 아마추어 첩보원 말고도 자원한 첩보원까지 있었다. 프로, 아마추어, 자원 첩보원들을 뺀 나머지 사람들은 대부분 취미로 첩보활동을 했다.

 

그것으로도 충분치 않았는지, 정부에서는 다른 나라에서 첩보활동 전문가와 고문을 모셔왔다. 이렇게 첩보원이 넘쳐나자, 첩보원들은 첩보원이 아닌 사람들을 무작정 고발하기 시작했다.

 

버릇처럼 첩보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판을 치자, 정작 첩보원들이 자기 직급과 월급에 걸맞게 임무를 수행할 만한 일거리가 턱없이 모자랐다.

 

결국 첩보원들은 남은 시간을 채우려고 자기 자신을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그들은 자기 꼬리를 잡으려고 기를 쓰는 새끼 고양이처럼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연방 뒤를 돌아보며 자기 발자국을 은밀하게 살폈다. 심지어 어둠 속에서 자기 소맷자락을 붙잡거나 바짓가랑이를 부여잡는 첩보원도 있었다.

 

자다 말고 자기가 낸 소리에 흠칫 놀라 잠을 깨서는 누군가 총이나 대포 따위를 쐈다며 고발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자기 그림자 뒤를 쫓다가 벽에 머리를 부딪치는 사람들도 갈수록 늘어났다. 반질반질한 거울이나 반짝이는 수면에 비친 자신을 고발하는 사람들도 생겨났다.

 

이제 나라 안에서는 첩보원이 아닌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아주 드물었지만, 그래도 남은 몇몇 사람들은 그 많은 프로 첩보원, 아마추어 첩보원, 자원 첩보원, 취미가 첩보활동인 사람들과 해외 첩보원 전문가 집단에 맞서 싸웠다. 물론 대포나 총으로 대치한 것은 아니었다. 시위나 집회로 맞선 것도 당연히 아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저항했을까? 첩보원이 아닌 아주 적은 수의 사람들은, 그들이 좋아하지 않는 통치자의 바보짓을 소재로 조롱기 가득한 농담을 만들어 나갔다. 우스꽝스러운 이야기로 통치자에게 맞서 저항한 것이었다. 그 조롱기 가득한 농담은 사람들에게 너무나 잘 먹혀 들어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그만큼 입에서 입으로 널리 전해졌다. 심지어 나라 안을 벗어나 온 누리로 퍼져 나갔다. 첩보원들조차도 웃음을 참지 못하고 적들이 만든 농담을 서로에게 소개해 주곤 했다.

 

누군가가 통치자의 어리석음을 까발리는 새로운 농담을 만들어 내면 낼수록 통치자의 ‘가치’는 달라져 갔다. 통치자가 그때까지 쓴 모든 돈, 즉 월급, 차량 유지비, 품위 유지비, 여행 경비 따위를 포함한 각종 경비를 모두 더한 다음, 통치자를 주인공으로 삼은 이야기의 개수로 나누었을 때 나오는 값이 바로 그 가치였다.

 

사람들은 지배자의 가치를 낮추려고 자꾸만 새로운 이야기들을 만들어 냈다. 그래도 그의 가치는 몇 백만 리라(튀르키예 - 터키의 정식 국호 - 의 돈 단위 : 인용자)나 되었다. 시민들은 그들의 통치자를 그런대로 만족스러워했다. 못해도 시민들을 웃겨 줄 수 있는 이야깃거리는 되었으니까. 예전의 통치자들은 이러한 쓸모조차 없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통치자의 어리석음을 들추어내는 조롱 섞인 이야기가 얼마나 늘었던지, 각종 구호나 대자보, 가두 시위대, 비밀 결사대, 무장 시위대 등이 미처 하지 못했던 일들을 모두 대신할 정도였다. 배꼽 빠지게 웃기는 이 농담들은 - 마치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이 몸을 갉아먹어 썩게 만드는 것처럼 - 통치자를 조롱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물론 첩보원들은 이러한 상황에서도 자신들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조롱기 가득한 이 농담들이 통치자에게 알려지지 않았던 데에는 말 못할 속사정이 있었다. 농담 속 인물의 어리석은 모습들이 통치자를 모델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차마 제 입으로 전하기가 어려워서였다. (통치자에게 - 인용자) 그 사실을 어떻게 알릴 수 있겠는가?

 

하지만 날이 갈수록 농담이 퍼지고 퍼져 더 이상 모르는 체 덮고 지나갈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첩보원들은 더 이상 알리는 일을 미룰 수 없었다. 혹시라도 통치자가 먼저 듣게 된다면 불같이 화를 내며 무시무시한 벌을 내릴 것이 뻔하기 때문이었다. 그 때에도 그런 종류의 농담을 만들어 퍼뜨리는 일은 법으로 엄격히 금지되어 있었으니까.

 

첩보 조직의 맨 밑에 있는 첩보원들은 사람들 사이에서 모은 농담들을 직속 상사에게 알렸다. 그러면 직속 상사는 그 위의 직속 상사에게, 또 그 위의 직속 상사는 또다시 그 위의 직속 상사에게 알렸다.

 

첩보원들의 우두머리가 그 농담을 윗선에 알리기 위해 적당한 기회를 엿보던 어느 날이었다. 고위직 사람들이 모여서 웃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첩보원들의 우두머리는 자신이 알고 있는 농담 한 가지를 그들에게 슬쩍 들려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통치자가 박장대소(손뼉을 치며 크게 웃음 - 인용자)를 하자, 주위에 있던 사람들도 덩달아 폭소했다.

 

절대 권력자가 그렇게도 아량이 넓은 사람이었단 말인가? 자기를 비웃는 말에도 거리낌없이 웃을 수 있다니! 첩보원들의 우두머리는 뜻밖의 반응이 놀랍기만 했다. 통치자는 한바탕 웃음이라는 회오리가 걷히고 나자, 뜻밖에도 이렇게 말했다.

 

“다른 이야기도 알고 있나?”

 

“네, 알고 있습니다 …….”

 

첩보원들의 우두머리는 연달아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통치자는 지나치게 웃은 나머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그는 배를 잡고 한참을 뒹굴더니 거의 실신 상태에 이르렀다. 잠시 후에야 겨우 진정하고는 첩보원들의 우두머리에게 말했다.

 

“하하하! 자네가 해 준 이야기들은 정말 재미있어. 우리 경호실장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꼬집고 있군그래. 하지만 그 사람 귀에는 들어가면 안될 것 같네. 그 사람이 좀 멍청하기는 해도 내 경호실장이잖나? 혹시라도 이 이야기를 듣고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네.”

 

말은 그렇게 해 놓고도 통치자는 틈만 나면 그 이야기를 듣고 싶어 했다. 그는 경호실장의 어리석음을 실컷 비웃으며 즐거워했다.

 

순간 첩보원들의 우두머리는 만든이를 알 수 없는 이 위험한 이야기가 나중에는 나라 안의 각종 기관과 그 안의 사람들을 모두 망가뜨릴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이 모든 것들을 경호실장에게 털어놓기로 마음먹었다. 경호실장이 그 농담들을 들은 뒤 자신을 놀림거리로 삼았다는 것을 알아차리고 더 이상 이런 우스갯소리가 생겨나지 않도록 엄격하게 금지해 줄 것으로 기대했기 때문이다. 그는 적절한 시기를 골라 자신의 결심을 실행에 옮겼다. 그런데 이야기를 전해 듣던 경호실장이 어찌나 크게 웃던지, 그곳에 있는 사람들도 같이 웃음을 터뜨렸다.

 

“다른 이야기도 있나?”

 

“아주 많습니다.”

 

경호실장은 첩보원들의 우두머리가 소개한 다른 이야기들을 들으며 파안대소했다. 어찌나 웃어 댔던지 두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혔다.

 

“진짜 웃기는 이야기구나. 어쩌면 우리 총리의 어리석음을 그렇듯 잘 표현했을까? 그래도 총리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되지 않겠나? 다소 멍청하긴 해도 우리 총리니까. 총리가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하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으면 하네.”

 

첩보원들의 우두머리는 자신의 임무를 착실히 수행하고 싶었다. 어느 날 우연히 총리의 저택에 초대를 받자 세상에 떠도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총리는 배를 잡고 웃더니 이렇게 말했다.

 

“정말 근사한 익살이구나. 내무부 장관의 어리석음을 제대로 꼬집어 내고 있어. 그래도 당사자의 귀에 들어가면 안 되지. 비록 바보 같은 사람이긴 하지만 함께 일하는 처지니, (장관이 - 인용자) 이 얘기를 듣지 않는 것이 좋겠네.”

 

며칠 후, 첩보원들의 우두머리는 내무부 장관과 마주쳤다. 그는 이런 저런 이야기 끝에 그 농담들을 들려주었다. 장관은 큰 소리로 웃으면서 그 농담이 재무부 장관의 어리석음을 비꼬고 있다고 말했다. 나중에 그 농담들을 전해 들은 재무부 장관은 너무 웃어서 거의 기절할 지경이었다.

 

“아이고, 우리 차관의 아둔함을 그야말로 날카롭게 지적했구나. 그렇지만 그 사람의 귀에는 들어가지 않는 게 좋겠네. 주의해 주게.”

 

재무부 차관은 첩보원들의 우두머리한테서 그 농담들을 듣는 내내 깔깔대며 웃느라 정신이 없었다.

 

“정말 재미있는 이야기구나. 우리 차관보(次官補)의 무지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어. 하지만 그 사람이 들으면 기분이 상할 테니 귀에 들어가지 않도록 주의하게나.”

 

첩보원들의 우두머리는 차관보에게 그 농담들을 들려주었다. 차관보 또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그 농담들이 자기 부서에 있는 국장의 멍청함을 조롱하고 있다며, 그의 귀에 들어가지 않기를 바랐다.

 

“그래도 명색이 우리 부서의 국장인데, 들으면 마음이 상하지 않겠나? 그 사람한테 알리는 건 예의가 아니지.”

 

첩보원들의 우두머리한테서 그 농담들을 들은 그 부서의 국장은, 이 이야기들이 자기가 관할하고 있는 기관의 부장을 조롱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 그 사람이 어리석긴 해. 그래도 우리 관할 구역 사람이니까 그가 듣지 않는 게 좋겠어.”

 

부장은 첩보원들의 우두머리한테서 그 농담들을 전해 듣고는 웃음을 터뜨리며, 자기 밑에서 일하는 하급 관리를 조롱하는 이야기라고 했다.

 

첩보원들의 우두머리가 바란 것은 이런 반응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전하는 농담을 듣고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을 향한 조롱이라는 것을 깨닫고 분노해 주기를 바랐다. 누구 한 사람만이라도 화를 낸다면 그 농담들의 주인공 자리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첩보원들의 우두머리는 너무너무 답답한 나머지 월급을 가장 적게 받고 일하는 자기 부서의 말단 첩보원에게 그 우스갯소리들을 들려주었다.

 

그런데 말단 첩보원은 이야기를 다 듣고 난 뒤에도 웃지를 않았다. 그 농담들을 듣고 웃지 않은 최초의 사람이었다. 그는 웃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첩보원들의 우두머리가 그런 이야기를 계속하자 낯빛이 하얗게 질리기까지 했다. 그는 사방을 조심스럽게 살피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애원했다.

 

“믿어 주세요. 저는 이 이야기를 오늘 처음 듣습니다.”

 

첩보원들의 우두머리는 세상이 꺼질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 조롱기 가득한 농담들이 누구를 겨냥한 비웃음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지만, 적어도 그 우스갯소리들을 지어낸 죄인은 제대로 붙잡은 것 같아서였다.

 

-『개가 남긴 한마디』(아지즈 네신 지음, 이난아 옮김, 이종균 그림, 푸른숲 펴냄, 서기 2008년)에서 인용

 

* 인용자(잉걸)의 말 : (내 생각이지만) 서기 1970년대, 그러니까 유신시대에도 이 이야기에 나오는 말단 첩보원 같은 사람들이 있었을 것이다. ‘말’이라는 무기를 써서 “노골적으로 대들기에는 너무 완고한” 유신정권을 ‘서서히/부지런히’ 갉아먹은 사람들 말이다. 오늘날에도 이런 사람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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