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단편]형편없는 수프!

개마두리 2016. 7. 4. 15:14


- 라티파 바카(Latifa Baqa)의 단편소설


어제 저녁 수프는 정말 형편없었다. 집을 나서기 전에 파티마에게 다음번에는 좀 더 맛있게 만들어 주었으면 한다고 말할 작정이었다. 그러다가 나는 황급히 코트를 걸쳐 입고는 문을 나선다. 서두르다가 자칫 애를 밟을 뻔 했다. 문을 꽝 닫고 나설 때 등뒤로 애 우는 소리가 들려온다.


밖으로 나서자 햇살에 눈이 따갑다. 버스 정류장에 이르자 햇살이 서서히 내 얼굴을 애무해온다. 이윽고 버스가 도착한다. 어느 가문인지 집안 식구들로 붐빈 버스가 그 무게 때문에 기어가는 듯하다. 모두들 오늘이 월요일이라는 사실에 동의한다. 한 주를 시작하는 첫날이라는 것이다.


“아야!” 내가 외마디 비명을 지른다. 누군가 내 발을 밟은 것이다. 아침부터 재수 없기는! 오늘은 전자기구 가게 사장부터 시작해 볼 것이다. 그녀는 내 말을 듣고는 아침 아홉 시경에 날 만나겠다고 했다. (내 가짜 명품시계는 정확하게 아홉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퉁퉁하게 생긴 수위가 짜증나는 투로 내게 말했다.


“사장님 아직 출근 안 하셨어요.”


“저를 도와주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아홉 시에 만나자고 …….”


“한 시간 후에 와 봐요.”


내 말을 자르면서 그가 대꾸한다.


문득 아침 시간에 도시 구경이나 하면서 걸어 다녀보자는 생각이 떠오른다. 별안간 웃음이 터진다. 재수 없는 저녁에 재수 없는 아침이더니! 이젠 재수 없는 하루가 시작되네!


별안간 프랑스의 ‘릴’지역에 사는 사촌 생각이 난다. 그는 “제파”(zeffat) (*"tar"즉 도로포장용 시커먼 타르를 의미한다. 여기서는 사촌의 남루한 모습을 빗대어 한 표현이다. - 역자 주)라고 불리는데, 그 이유는 여름이면 낡은 옷을 걸치곤 모로코로 돌아오기 때문이다.


그는 프랑스인 주인이 입던 옷이라는 흔적을 감추기 위해 말끔하게 다림질해 입고는, 가족에게 줄 싸구려 선물을 가져온다.


그는 연신 프랑스에 대해 떠들어대면서, 천국 같다느니, 거기 살면 꿈이 현실이 된다느니 하며 지껄여 댔다.


“일할 자리가 너무 많고 ……,” “일한 만큼 돈을 받는데, 일할 데가 천지에 깔려있다니까. 자기만 원하면(바라면 - 인용자) 하루에 스무 시간도 일할 수 있고 마지막 1분까지도 돈을 받는다니까. 한번 상상이나 해 봐 …….”


대체 나의 아침 산보를 가로막는 자가 누군가 하는 생각이 들어, 문득 고개를 들어 쳐다보니 멍청한 듯 웃음을 띤 표정으로 앞에서 제파가 희죽대고 있다. 나는 걸음을 멈추곤 다른 길로 들어선다.


(중략)


산보를 계속 하다가 내가 읽지 않은 책들이 진열되어 있는 서점 진열대를 지나게 된다. 문득『렌즈콩의 시절』(Days of Lentils)에 등장했던 한 인물이 생각난다. 그는 책방에 들어가서는 원하는 책을 몽땅 산 후 책방을 나서곤 했다.


나도 그렇게 해 볼까? 나는 곧장 역사서적, 소설, 과학서적, 종교서적 등등이 진열되어 있는 오른편 책장으로 직행한다. 다시 반대편으로 걸어간다. 과학서적은 책방 모든 곳에 있었다. 바르트(『기호의 제국』을 쓴 학자인 롤랑 바르트? - 인용자 잉걸. 아래 인용자)의 저서 한 권을 집어 든다. 언젠가 책방 창문으로 본 적이 있는 서적이었다. 나는 책 뒤표지를 훑어본다. 큼직한 내 핸드백은 열려 있는 상태다.


가만히 핸드백 속으로 책을 밀어 넣어볼까. 힐끗 점원을 쳐다보니, 고객과 씨름하느라 정신이 없어 보인다. 아무런 문제도 없을 것 같다. 호기(好機. 좋은[好] 기회[機] - 인용자)다! 근데, 위층이 있었네! 어떤 자가 내려다보고 있다. 게다가 빙긋 웃고 있는 게 아닌가.


혹시 쳐다보다가 지겨워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릴까 해서 나 나름대로 바쁜 척 해 본다. 그 순간 책방 점원이 내게 다가오더니 책을 살 거냐고 묻는다. 나는 고개를 들어 위층 남자에게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는 책을 원래 위치에 돌려놓고 책방을 뛰쳐나온다.


“사장님 돌아오셨나요?”


수위는 마치 자기가 주인인 듯 비웃는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면서, 아직 안 왔다고 말한다.


“아니, 열시 반인데 안 왔어요?”


내가 한마디 한다.


“사장님이 안 계신다고 말했지요. 아예 안 오실 수도 있어요. 그리고 여긴 빈자리가 없어요. 매일 청소하는 사람이 둘이나 있어요.”


매일 청소한다고! 이런 망할 놈에게 설명을 할 필요가 있을까? 사장이 내게 한 말을 이 자에게 말해줄까? 새언니가 해준 스프에 넌더리가 나고, 오빠랑 언니(문맥상 화자의 새언니인 듯하다 - 인용자)가 지난 9년 동안 매년(해마다 - 인용자) 한 명씩 낳은 조카들의 악쓰는 소리에 질렸다고 말해줄까? 내가 청소부 자리 때문에 온 게 아니고 내가 지저분하지도 않다고 말해줄까? 그리고 더 이상 참을 수 없다고 말해주고는 내가 소위(所謂. 이른[謂]바[所] - 인용자) ‘사회학’이라는 분야의 학사자격을 가졌다고 말해줄까? 뚱뚱한 문지기(수위 - 인용자)는 다른 고객 때문에 바빠 보인다.


“내일 다시 와요.”


그가 대꾸한다.


“다시 오고말고요. 제과점 주인에게 말해서 하루 더 휴가를 얻을 테니까. 그리고 사장 사무실에서 직접 볼 수 있을 거예요.”


집으로 돌아왔다. 어제 저녁 수프 맛이 그녀(화자의 새언니인 파티마 - 인용자)가 만든 다른 스프 맛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고 말한다고 해놓고선 그만 까먹고 말았다.


하지만 수프를 맛있게 만들어야 한다는 그런 생각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그게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그녀가 수프를 맛있게 요리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었다. 오빠는 맛이 없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 하는데다가, 조카들은 더 심하게 악을 써대고 있다. 오빠의 담뱃값은 2년 새 세 배가 뛰었고, 벌써 오래 전부터 웃음을 잃은 채 살아왔다. 이 모든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파티마는 매일 저녁 스프에 쓸 당근과 무를 연신 깎아대고 있다.


도대체 내가 바라고 있는 변화란 무어며 이런 나는 무어란 말인가? 나 역시 한 달에 300 디르함(모로코의 화폐 단위 - 인용자)이라는 급여를 받으며 제과점에서 일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 순간 기억나는 게 있다. 제파라고 한 내 사촌이 파티마에게 나와 같이 살고 싶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나에 대해 떠도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나의 ‘남자다움’에 대해, 그리고 말도 안 되는 내 허영심에 대해 소문을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와 살고 싶어 하다니. 그는 이를 위해 영원히 고국으로 돌아와 집을 세얻어 살면서 나를 일에서 해방시키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이게 정답이야. 너는 다른 결혼한 여자들처럼 여주인이 되는 거야. 청소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애를 낳고(애를 낳는 것은 정말 중요한 일이고 그래야 다른 생각을 안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맛있는 요리도 하고.”


그는 이렇게 잘라 말했다.


요리를 한다고! 매일 밤 수프를 요리한다고! 파티마가 만드는 그런 요리를 한다는 것인가?


“파티마, 지난 저녁 수프는 너무 맛이 없었어!”


내가 외쳤다.


“그래요!”


그녀가 대답했다.


“그래서 어쩌라고. 네 오빠는 뭐든지 맛있게만 먹던데.”


내 사촌 역시 뭐든지 닥치는 대로 먹어댈 것이다. 수프, 오르기만 하는 설탕/빵/담뱃값, 그리고 자식새끼들이 악쓰는 소리 등등.


“앞뒤도 못 가리는 사촌이라면 아예 꺼져버리라고!”


나는 고함을 질렀다.


내 고함소리에 옆에 앉아 조카들 옷을 갈아입히던 파티마가 흠칫 놀랐다.


“아가씨, 뭐라고요? 방금 뭐라고 했어요?”


“아녜요. 아무 말도 안 했어요.”


- 윤교찬 옮김


* 라티파 바카 :


모로코의 여성 작가. 서기 1964년 모로코 살레에서 태어났다. 서기 1992년에 펴낸 첫 단편집『우리는 무엇을 해』로 모로코 작가회의에서 준 젊은 작가상을 받은 적이 있다. 서기 2005년에는 모로코 문화부에서 그의 두 번째 단편집『그 삶 이후』를 펴냈다.


* 윤교찬 :


서강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뒤 노스캐롤라이나 대학에서 석사학위를, 서강대학교에서 존 바스의 탈(脫)근대주의 소설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기 2012년 현재 한남대학교 영어교육과 교수다.

 
#소설에 대한 설명 :


“라티파 바카의「형편없는 수프!」는 시작부터 유별난 제목으로 주의를 끈다. 전날 저녁 새언니가 형편없는 수프를 준 이후로 주인공의 하루 동안 점점 더 나쁜 일이 계속 일어난다. 하지만 그녀는 끝까지 뭐가 문제인지를 새언니에게 절대로 말하지 않는다! 작가는 아주 빠른 속도로 묘사를 하고 급격하게 관점을 바꾸어가며, 자신의 운명에 대해 불만과 좌절감에 가득 찬 인물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행복한 결말은 전혀 찾을 길이 없다.”


- 샤뮤엘 시몽(Samuel Shimon) 선생의 평가


※퍼온 곳(나온 곳) :


『아랍 여성 단편소설선』(샤뮤엘 시몽 엮음, 라일라 알 - 오트만 외 지음, 조애리 외 옮김, 글누림출판사 펴냄, 서기 2012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