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시]숨 쉬게 하라!

개마두리 2016. 4. 24. 13:10


내 입을 막으려면 막아보라! 나를 괴롭히는 것이
무엇인지 말하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다음에 말하겠다 어쩌면 집에 가는 길에 말할지도
크나큰 어둠이 벨벳처럼
잔디밭을 덮고
마른 잎이 학대받는 고아들
발밑에서 바삭거린다



나무들은 마을 언저리
바람마저 닿지 않는 곳에
웅크리고
모래알은 벙어리처럼
가로등만 빤히 쳐다보는데
오리들은 울며 울며 헤엄쳐 간다



여기는 아주 외진 곳
무언가 나를 덮칠 것 같다
문득 어떤 사람이 어깨를 부딪치고는
말없이 지나간다
나는 뒤돌아본다
그는 내가 가진 것을 약탈했을 수도 있겠지만
나는 싸울 힘이 없다
없다 없어



그들은 내가 누구와 언제 왜 통화하는지
내 전화통화 내역을 추적한다
내 꿈의 사본을 가지고 있다
그 꿈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누구에 의한 꿈인지 기록하고 있다
나의 최근 기록이 어떠한지는 나도 모르지만
그들은 조만간 행동을 취하고
나의 권리를 침해할 것이다
어머니가 사는 마을처럼
산재한 마을에
정의는 낙엽처럼
무수히 쓸려 폐기되었다



시대를 거듭하며 쌓인 녹(綠)에 고통 받는 마을들
먼지를 휘날리는 바람처럼
그들은 흐느껴 신음한다



나의 정의감은
그런 것과는 좀 다르다
부패한 자들이 항상 뜻을 이룬다는 말
나는 그 말을 거부한다
의인들이여 무엇이 두려워
투표하지 않고
눈을 내리뜨는가 바보들이로다
그들은 장례식장에 서는 편이 더 편하다



그것은 나의 정의감과 다르다
나는 어려서 매를 맞기도 했다
아무런 이유도 없이
친절한 말 한마디에 선뜻 응했을 텐데도
하지만 어머니는 먼 곳에 있었고
나는 고아가 되었고
그들은 친절하지 않았다



나는 이제 성인이 되었다
생명 없는
금속이 치아를 붙들고 있고
수많은 죽음으로 가슴은 굳어졌다
나는 나의 권리를 안다 나는 죽은 나무가 아니다
이 살가죽이 무어라고 몸을 사릴까
나는 방관하지 않고 마음속에 든 말을 내뱉으리라
나는 자유로워지리라
마음이 부르는 음성을 들으리라
우리는 짐승이 아니다 우리에게는 이성이 있다
우리는 귀먹지 않았다 벙어리도 아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충만한 삶이지
가득 채워진 기록이 아니다



우리는 자유로워질 것이다
하고 싶은 말을 할 것이다!
어린이들에게 자유를 가르치고,
그들을 놀게 하리라, 마음껏 놀게 하리라.
어린이들을 마음껏 놀게 하리라.



- 요제프 아틸라 시인의 시



(헝가리의 마자르 족인 시인은 성이 ‘요제프’고 이름이 ‘아틸라’다. 마자르 족은 동아시아인이나 베트남의 비엣 족과 마찬가지로 성을 앞에 내세우고 이름은 나중에 말한다)



* 퍼온 곳(나온 곳) :



『아틸라 요제프 시선 : 일곱 번째 사람』(공진호 옮김, 아티초크 펴냄, 서기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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