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詩)

▷◁감옥에서 맞는 새해

개마두리 2016. 9. 10. 13:30

상중에 새해 인사를 다닐 수 있으랴
새해야, 감옥을 찾아오던 네 발길을 어서 되돌리거라
우리에게 명절 따윈 없다


새장 속 앵무새가 건네는 신년 인사
현명한 자라면 단번에 안다
그저 흉내 내기에 불과하단 것을


자허크의 폭정 탓에 비통스런 새해 명절
즐거워하는 자 있다면 잠시드 후손이 아니다


나 지금 날개에 고개 파묻고 있는 건
사랑 노래를 불러주던 그 새가
내 곁에 더 이상 없는 탓이다


죄 없이 감옥에서 억울하게 죽는 이 있지만
무고한 이를 죽인 자 역시 영원하지는 못하리라


옷을 벗을수록 햇볕이 따스하구나
태양보다 살가운 벗은 없는 것 같다


올곧은 백성들이 나라로부터 받는 보상이란 게
투옥과 유배와 처형밖에 없는 이 도시
아,


들리는 대사면 소식이 참이든 거짓이든
파로히의 고된 인생길
좌절하지 않으리


- 파로히 야즈디 시인의 시


* 자허크 : 고대 페르시아 설화를 바탕으로 페르도우시가 쓴 이란의 대서사시『셔너메(파르시로 왕서王書, 그러니까 ‘임금의 책’이라는 뜻)』에 나오는 폭군. 악마가 그의 어깨에 입을 맞춘 뒤, 자허크의 두 어깨에서는 뱀 두 마리가 생겨났다. 그는 뱀에게 물리지 않으려고 날마다 건장한 젊은이 두 사람을 죽여 그들의 뇌를 뱀의 먹이로 주어야만 했다. 무려 1000년 동안 폭정을 일삼으며 페르시아 백성을 괴롭히던 자허크는 결국 ‘잠시드’ 왕의 후손인 ‘페레이둔’과의 전쟁에서 져서 다머반드 산(이란에서 가장 높은 뫼)에 갇힌다.


* 잠시드 :『셔너메』에 나오는 페르시아 설화 속의 임금. 무기를 만들어냈고, 배 만드는 법과 항해술을 만들어냈고, 옷감을 짜는 방법과 옷 그 자체를 만들어냈고, 벽돌 만드는 법과 건물을 짓는 방법을 생각해냈으며, 백성들을 그들이 하는 일에 따라 나누고, 각종 보물과 향기를 찾아냈다. 700년 동안 선정을 베풀었지만 자만심 때문에 신의 신임을 잃어 자허크에게 왕좌를 빼앗긴다. 그러니까 “잠시드 후손”이라는 말은 - 배달민족을 ‘단군의 자손’이라고 부르듯이 - 이란인을 일컫는 말이다.


* 파로히 : 물론 이 시를 쓴 야즈디 시인 자신이다.


※파로히 야즈디(Farrokhi Yazdi) :


이란의 남성 시인. 서기 1889년에 태어나 서기 1939년에 세상을 떠났다. 하층민 출신으로 이란 입현 혁명기에 활동했다.『투펀(Tufan)』이라는 신문을 펴낸 언론인이기도 하고, 정치인으로도 활동했다. 정치적인 이유로 투옥되었다가 감옥에서 의문사 당하였다.


- 퍼온 곳(나온 곳) :『백 년의 시간 천 개의 꽃송이』(에스머일 셔루디 외 지음, 최인화 옮김, 문학세계사 펴냄, 서기 201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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