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헛소리의 결과

개마두리 2017. 5. 2. 02:20

나무꾼들이 깊은 산중 여기저기 흩어져서 나무를 하고 있는데, 그 중 한 사람이 버마재비(사마귀 과에 속하는 벌레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를 보았다. 이 사람은 버마재비를 보고 큰 소리를 지르면서 죽는 소리를 했다.


“아이고, 무서운 것 나왔다. 아이고, 죽겠네. 사람 살려!”


나무를 하던 나무꾼들이 그 소리를 듣고 모두 모여들었다. 막상 와 보니 거기에는 무서운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뭣 때문에 그렇게 죽는 소리를 했느냐고 물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은 버마재비를 가리키며 웃어댔다.


“아, 범(호랑이를 순수한 배달말로 ‘범’이나 ‘줄범’이라고 부른다. ‘줄범’은 ‘몸에 줄무늬가 있는 범’이라는 뜻이다. 참고로 표범[豹범]은 순수한 배달말로 ‘불범’이라고 부른다. 그러니까 ‘범’은 배달민족이 고양이 과인 맹수를 일컫는 말이다 - 옮긴이)도 무서운데 범의 아재비가 나타났으니 얼마나 무서운가?”  


(‘아재비’는 ‘아저씨’의 낮춤말이다. 이 말은 아버지의 남동생, 그러니까 친삼촌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단, 평안도에서는 [핏줄과 상관없이] ‘아저씨’를 ‘아재비’로 부르며, 함경도에서는 고모부나 이모부를 ‘아재비’라고 부르기도 한다.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옛날 사람들은 원래 순수한 배달말인 ‘아재’를 썼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사람들이 ‘아재’에 한자말인 ‘씨氏’를 덧붙여서 ‘아저씨氏’라는 낱말을 만들어냈다고 한다 - 옮긴이)


“에이, 싱거운 녀석! 이놈의 허망한 소리 때문에 우리는 나무도 못했네.”


모여든 나무꾼들은 투덜투덜하면서 흩어져 다시 나무를 했다.


(나무꾼들은 - 옮긴이) 다음 날 또 나무하러 갔다. (그들이 - 옮긴이) 나무를 하고 있는데, 이 날은 참말로 범이 나타났다. 이 사람은 그만 놀라서 큰소리를 질렀다.


“사람 살려! 나 죽는다!”


그런데 다른 나무꾼들은 그 소리를 듣고도 아무도 그 사람 있는 데로 달려가지 않았다. 어저께 아무것도 아닌 버마재비를 보고 지른 소리에 달려갔다가 허망한 꼴만 당하고 왔으므로, ‘저놈이 오늘도 별 것 아닌 것을 갖고 법석을 떠는구나.’하고 생각하면서 아무도 가지 않았다. (결국 - 옮긴이) 이 사람은 그만 범한테 잡아먹히고 말았다.


-『한국구전설화』(임석재 선생이 모은 설화들을 실은 책)에 실린 배달민족의 옛날이야기


-『한국의 우언』(김 영 엮음, 이우일 그림, 현암사 펴냄, 서기 2004년)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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