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매의 지혜

개마두리 2017. 5. 5. 20:25

봉황과 난새(鸞새. 봉황과 비슷한, 전설 속의 새.『산해경(山海經)』 「서산경(西山經)」에 따르면 이 새는 여상산(女床山)에 살고 있으며, 생김새는 꿩을 닮았고 오색 무늬가 있는데, 이 새가 나타나면 세상이 편안해진다고 했다. - 옮긴이 잉걸. 아래 ‘옮긴이’)의 덕은 화려한 무늬 덕분이요, 학의 덕은 맑음 때문이지만, 매의 덕은 공격성 때문이다.


(원래 같으면 - 옮긴이) 공격성이 덕이 될 게 아니지만, 이왕 봉황도, 난새도, 학도 되지 못하고 매가 된 바에야, 영롱한 깃털도, 아름다운 울음소리도 갖지 못하는 대신 부리와 발톱을 지녔다. 이것은 잘 공격할 수 있도록 만든 것이다. 공격하게 만들어졌는데도 공격하지 않는다면 봉황도, 난새도, 학도 되지 못한데다, 매도 될 수 없는 것이다.


마을에 한 사람이 매를 잡아 이(李) 선생(先生)에게 바쳤다. 이 선생은 그놈을 부려 사냥을 하려고 언덕에 올라 망을 보았다. 매는 막 날아올라 머리를 들고 날개를 펴고는, 날렵하게 주변을 돌아보는데 매우 사나워 보였다.


얼마 있다가 꿩이 (매의 - 옮긴이) 눈앞에서 튕겨 나왔다. 매는 날개를 펼치며 따라가서 막 잡으려다가, 갑자기 눈을 흘기며 머뭇거리다 물러났다. 그러는 사이에 꿩은 재빠르게 날아서 달아났다. 조금 지나 토끼가 옆에서 튀어나왔지만, 매는 다시 날개를 떨쳐 (토끼를 - 옮긴이) 쫓아가지도 않았다. 오히려 데면데면(성질이 꼼꼼하지 않아 행동이 신중하거나 조심스럽지 않은 모양. 대충대충 - 옮긴이) 바라보며 더욱 뒤로 물러서는 게 마치 두려움이 있는 듯했고, 토끼는 어슬렁어슬렁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 이 선생이 - 옮긴이) 종일 사냥을 해도 결국에는 하나도 잡은 게 없었다.  


“이런 매를 어디다 쓰겠느냐?”


이 선생은 그렇게 말하며 매를 놓아주었다.


누군가 그 매를 두고 말했다.


“이 매는 어질고도 슬기롭도다. (사냥감을 - 옮긴이) 칠 수 있는데도 치지 않으니 어질지 않은가? 사람이 자기가 (사냥감을 - 옮긴이) 치지 않으면 반드시 놓아줄 것을 알았으니, 슬기롭지 않은가?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여기에 매어 있었을 것이다.”


- 이건창(李建昌)의『명미당집(明美堂集)』에 실린 우언


* 이건창 : 서기 1852년(조선 후기)에 태어나 서기 1898년(대한제국 시대)에 세상을 떠난 조선의 문신이자 학자. 서양과 일본의 침략을 철저히 배격하였으며, 양명학자로서 심학의 의미를 강조하여 정치/경제도 그것에 기반을 두고 허명을 배격하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명미당집』: 이건창 선생의 시와 글을 모은 책. 서기 1917년 중화민국에서 한국인 망명객인 김택영 등이 이 선생의 시와 글들을 모아서 인쇄하였다.


-『한국의 우언』(김 영 엮음, 이우일 그림, 현암사 펴냄, 서기 2004년)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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