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

영리한 앵무새

개마두리 2020. 5. 3. 14:12

옛날, 푸성귀(‘채소[菜蔬]’를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 인용자 잉걸. 아래 ‘인용자’) 장수가 살았는데, 그는 영리한 앵무새를 한 마리 길렀다. 앵무새는 푸성귀 가게 구석에 마련된 걸상에 앉아서 손님들과 농담도 하고, 가끔 물건을 팔기도 했다. 어쩌다가 푸성귀 장수가 일이 있어 외출할 때에는 앵무새에게 가게를 맡길 정도였다.


하루는 마침 가게 주인이 자리를 비운 사이에, 앵무새가 이리저리 까불며 날아다니다가, 실수로 장미향 기름이 가득 들어 있는 병을 쓰러뜨렸다. 당연히 병은 깨졌고, 그 병에 들어있던 향유(香油. 향기로운 냄새가 나는 화장용 기름 - 인용자)가 쏟아졌다.


외출에서 돌아온 주인이 아까운 향유가 모두 쏟아져 못 쓰게 된 것을 알고는, 화가 나서 앵무새를 힘껏 갈겼다. 그 바람에 앵무새는 머리 깃털이 모두 빠져 대머리가 되었다.


가게 주인은 곧 자신의 행동을 뉘우쳤다. 영리한 앵무새는 충격을 받았는지 그만 말을 잃어버렸다. 하루 이틀 지났지만, 주인은 그에게서 한 마디 말도 들을 수가 없었다.


푸성귀 장수는 수염을 깎고 앵무새에게 용서를 빌었다.


“내 이 손목을 잘라버리고 싶구나. 어떻게 너한테 그토록 끔찍한 짓을 했더란 말이냐?”


하지만 앵무새는 계속 침묵을 지켰다. 푸성귀 장수는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 앵무새를 다시 말할 수 있게 할 무슨 방법이 없겠느냐고 물어봤지만, 아무도 그 방법을 일러주는 사람이 없었다.


사흘이 지나자, 푸성귀 장수는 절망에 빠져 자리에서 일어날 줄을 몰랐다. 생각나는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해봤지만, 앵무새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바로 그 때, 한 걸인이 넝마를 걸치고 가게 앞을 지나는데, 그는 머리가 모두 벗겨진 대머리였다.


그를 본 앵무새가 갑자기 생기를 띠더니, 날개를 퍼덕거리며 입을 열었다.


“여보, 대머리 양반! 당신도 기름병 엎질렀소?


→ 『루미의 우화 모음집』(루미 지음, 아서 숄리 엮음, 이현주 옮김, ‘도서출판 아침이슬’ 펴냄, 서기 2010년)에서


(일부 낱말은 뜻이 같은 다른 낱말로 바꾸었고, 덧붙인 부분도 있으나, 글의 내용 자체는 바꾸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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