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서장

[인용]나라의 강함과 약함은 바뀔 수 있다는 고대 동아시아 사상가의 말

개마두리 2023. 7. 23. 21:26

나라는 영원히 강성할 수 없고, (반대로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영원히 허약할 수도 없다.”

 

― 『 한비자(韓非子) 』 「 유도(有度) 편의 글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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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비자 :

 

제하(諸夏)의 전국(戰國)시대에 활동한 사상가이자 철학자인 (그리고 한[]나라 공자[公子]이기도 한) ‘한비(韓非)’가 쓴 책. 전국시대에 여러 나라에서 따로 발전한 법가(法家)의 이론들을 하나로 모아서 정리한 책이기도 하다.

 

원래 이름은 지은이인 한비의 성씨인 ()’, 동아시아 한자문화권에서 훌륭한 스승/학자를 일컫는 말로또 쓰였던 ()’를 합쳐서 만든 -한자(韓子) 였으나(이는 본명이 묵적[墨翟]’인 사람의 제자들이 쓴, 묵적의 사상이자 묵가[墨家]의 사상을 담은 책의 이름이 묵자[墨子] , 본명이 맹가[孟軻]’인 사람이 쓴, 맹가의 사상을 담은 책의 이름이 맹자[孟子] , 본명이 장주[莊周]’인 사람의 사상과 일화를 정리한 책이자, 도가[道家]의 사상을 담은 책의 이름이 장자[莊子] 인 것과 같다),

 

2 ()왕조([개마두리]는 몇 해 전부터 서기 7세기 초에 이연[李淵]이 세운 나라를 1 당 왕조, 훗날 측천무후로 불리는 여성인 무조[武照. 나중에 얻은 이름은 무미랑(武眉娘)’]가 세운 나라는 무주[武周]’왕조로, 서기 705년 무조가 죽은 뒤 다시 세워진 당 왕조는 2 당 왕조로 구분해서 부르자고 제안했다.

 

유계[劉季. 한 제국을 세운 뒤, 이름을 <>[劉邦]’으로 바꾸었음]가 세운 나라를 전한[前漢]’으로, 전한의 외척이었던 왕망[王莽]이 전한을 없애고 세운 나라를 []’왕조로, 유계의 후손을 자처한 유수가 신나라를 무너뜨리고 세운 나라를 후한[後漢]’으로 부르는 것이 옳다면, 비록 한 대에서 그쳤지만, 엄연히 []’라는 이름이 있었고[이 나라를 무주(武周)’로 부르는 까닭은, 성이 무씨인 사람이 세운 나라임을 강조하고, 그럼으로써 서주[西周]나 동주[東周]나 남북조시대의 북주[北周]510국 시대의 나라인 후주[後周]와 구분하기 위해서다], 무조 본인이 황제로 즉위해 다스렸으며, 열다섯 해 동안 유지되었던 나라를 부정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왕망도 황족이 아니라 외척으로서 나라를 빼앗았고, 왕망이 죽은 뒤 나라가 무너지긴 했지만 이라는 나라가 있었다는 사실 자체는 부정되지 않는다면, 성별[性別]과 세워진 해를 빼고는 거의 모든 것이 신나라와 비슷한 무주 왕조를 부정하는 것은 잘못이다. 역사학자들은 무주를 신나라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독립된 왕조이자 나라이자 시대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이는 동아시아 전근대사회의 잘못된 문화이자 관습인 여성차별을 버리고, 사실[史實]과 사실[事實]을 있는 그대로 다루기 위해서라도 필요한 조치다.

 

내가 이렇게 말하면, 학자들과 독자 여러분은 내게 아니, 그럼 당[] 왕조는 어떻게 부르란 말이야? ‘전당[前唐]/후당[後唐]’으로 부르면, 510국 시대의 후당 왕조와는 구분이 안 되잖아?”하고 따지리라.

 

그래서 나는 대안으로, 이연이 맨 처음 세우고 무조가 무너뜨린 당 왕조는 1 당 왕조, 무조가 죽고 나서 다시 세워진 당 왕조는 2 당 왕조로 불러 후당 왕조와 구분하고자 한다)의 유학자인 한유(韓愈)’한자(韓子)’라는 존칭으로 불렸기 때문에, 서기 9세기 이후에는 혼동을 피하기 위해 한비가 쓴 책은 한자(韓子) 대신 한비자(韓非子) 로 부르게 되었다.

 

(참고로, 책의 원래 이름이 바뀌게 된 게 한비자 에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니다. 우리가 잘 아는 제하 역사책인 사기[史記] 도 원래 이름 그리고 사마천이 직접 붙인 이름 태사공서[太史公書] 였는데, 이는 사마천 집안이 대대로 태사[太史], 그러니까 사관 벼슬을 했기 때문이었고, ‘태사인 사람이 쓴 책이라는 뜻을 지닌 이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사마천이 죽은 지 오랜 시간이 흐른 후한 말기부터는 태사공서 태사공기[太史公記] 로 불리기 시작하였고, 그 뒤 그것을 줄인 말인 사기[史記] 가 책 이름으로 굳어졌다)

 

옮긴이(개마두리)의 말 :

 

내가 이 말을 인용/소개한 까닭은, “음지가 양지 되고, 양지가 음지 된다.”는 말은 나라나 겨레에도 적용될 수 있는 말임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지금은 힘이 센 나라라도 영원히 힘센 나라로 남을 순 없고, 반대로 지금은 약한 나라라도 영원히 약한 나라로 머무르지는 않는다는 점, 나라의 힘은 바뀔 수도 있어서, 힘센 나라가 약한 나라가 될 수 있고, 약했던 나라가 힘센 나라가 될 수도 있다는 점, 따라서 비록 지금 자신의 나라가 처한 상황이 유리하더라도 교만해서는 안 되며, 자신의 나라가 불리한 상황이더라도 좌절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로마제국은 힘이 센 나라였으나, 그 나라도 나중에는 힘이 약해져 동/서로 두 토막이 났고, 결국 서로마는 차츰차츰 약해졌다가 게르만족에게 망했다.

 

바라트 연방 공화국(‘인도의 정식 국호)은 서기 1947년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에는 가난한 나라였으나, 그로부터 일흔여섯 해가 지난 오늘날(서기 2023년 현재)에는 경제 대국이자, 성장하는 젊은 나라고, 국제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나라들 가운데 하나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한국도 나중에는 (지금의) 불리한 점을 이겨내고 지금보다 더 뛰어난 나라가 될 수도 있지 않은가? 아니면 그 반대가 될 수도 있고.

 

그러니 지금의 좋지 않은 상황이 영원할 것이라고 여기거나 막을 수 없는 것이라고 여겨 체념/포기하지는 말자.

 

- 단기 4356년 음력 66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