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 고조선 연구의 필요성 (4)

개마두리 2023. 10. 8. 23:15

(만약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고조선(아사달/‘단군조선’ - 옮긴이)에 대한 연구가 바로 되어 있지 않으면, 한국사(정확히는, 조선 공화국의 갈마와 나라 밖의 동포인 코리아[Corea]계 민족들[: 고려인]의 갈마도 포함하는 배달민족사[] - 옮긴이)의 서술체계에도 문제가 일어난다.

 

종래(서기 1994년 이전 옮긴이)에 일부 학자들은 고조선을 대동강 유역에 있었던 작은 정치집단이었을 것으로 보면서도, 扶餘(부여 옮긴이)/高句麗(고구리 옮긴이)/挹婁(읍루 옮긴이)/渤海(발해. 올바른 이름은 중기 고리[高麗]’ - 옮긴이) 등 만주에 있었거나 만주에서 건국된 나라들을 한국사에 포함시켜 서술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심한 모순인 것이다.

 

만약 고조선이 대동강 유역에 있었던 조그만 정치집단이었다는 것이 옳다면, 만주에 있었던 나라들이 한국사에 포함되어서는 안 되며, 한국사의 출발점은 新羅(신라 옮긴이)가 되어야 하고, 新羅 統一新羅(통일신라 옮긴이) 高麗(고리 옮긴이) 朝鮮(조선 옮긴이)이라는 체계로 서술되어야 한다(아니면, ‘[“삼한”]/동옥저/동예 사국[가야 포함] 통일신라 후삼국 후기 고리[高麗] 근세조선 대한제국 한국과 조선 공화국[수도 평양]’이라는 순서로 서술되거나 : 옮긴이).

 

왜냐하면 新羅高句麗百濟(백제 옮긴이)를 병합하기 이전에는 한반도(코리아[Corea]반도 옮긴이)의 거주민들이 한 번도 같은 나라 안에서 살아 본 적이 없었고(사실은, 딱 한 번 그랬던 적이 있다. 서기 297, 삼한[三韓]백제가 사로국을 무너뜨림으로써 코리아반도의 중부와 남부를 통일했기 때문이다. 통일은 서기 346년 강세[康世]가 군사를 이끌고 삼한백제의 일부였던 []”가 보낸 군사들을 깨뜨려 신라의 독립을 이룰 때까지 마흔아홉해 동안 지속되었다 옮긴이), 新羅高句麗百濟를 병합한(사실은, 무너뜨리고 점령한 옮긴이) 이후에야 겨우 대동강 이남의 거주민들이 같은 나라 안에서 살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이후 고려(후기 고리 옮긴이)나 근세조선도 만주를 통치영역으로 둔 적이 한 번도 없다(이는 윤 전 교수가 이 글을 쓸 때인 스물아홉 해 전에는, 후기 고리가 오늘날의 요동반도와 길림성과 연해주 남쪽 끝을 차지해 다스린 사실과, 근세조선의 후신[後身]인 대한제국이 간도를 공식으로 자신의 땅으로 선언하고 군대를 보내 청군[淸軍]과 싸운 사실이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에 생긴 오해다 옮긴이).

 

그러므로 만주에 있었던 나라들이 한국사에 들어와야 할 근거가 없다. 고구려도 만주에서 건국되었기 때문에(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간도가 아니라 오늘날의 요서지방 이북이나 내륙일 가능성이 크다 옮긴이), 한국사에 들어올 수 없겠지만, 굳이 주장을 하자면, 대동강 유역의 평양으로 천도한 이후에나 한국사에 포함시켜 서술이 가능할 것이다(그러나 열두 해 전부터 발표되기 시작한 새 연구에 따르면, 고구리, 아니 전기 고리[장수왕과 보장왕의 나라]평양성은 오늘날의 평양특별시가 아니라, 오늘날의 요하[遼河] 근처에 있던 성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늘날의 평양은 근세조선 시절이나 후기 고리 때부터야 평양성으로 불리기 시작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러니 만약 이 연구결과와 가설이 옳다면, 한국의 강단사학자들이나 제하[諸夏]한족[漢族]’학자들이나 왜국[倭國]의 역사학자들이나 서양 학자들이 코리아반도 안에서 펼쳐진 갈마만 한국인의 갈마다.’라고 주장하는 사관을 고집하는 한, 북부여나 동부여나 고구리나 전기 고리는 배달민족사에서 떨어져 나가야 할 판이다 옮긴이).

 

그러나 (만약 우리가 옮긴이) 고조선을 바르게 복원하고 보면, 만주 지역에 있었던 나라들이(나아가 연해주나, 몽골초원 동부/동남부나, 하북성/산동성/강소성에 있던 나라들도 옮긴이) 한국사에 들어와야 한다는 것이 명백해진다(나는 아사달 이전, 아니, 배달국이 세워지기 전에 화북 평원에 환웅족이 세운 신불[神市]이 있었다는 일부의 주장도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만약 이 주장이 옳다면, 상고[上古]시대에, 그러니까 황제[黃帝]인 헌원이 나타나기 전에 오늘날의 화북[華北] 평원에 있었던 나라나 문명권도 배달민족사에 들어가야 할 것이다. , 나는 헌원의 시대나, 이른바 /순 시대, 실제로는 부족장이 다스리던 시대부터는 화북 평원이 더 이상은 환웅족의 땅이 아니었다고 판단한다 옮긴이).

 

고조선은 한반도와 만주 전 지역(나아가 연해주와 몽골초원의 동남부와 하북성/산동성/강소성도 옮긴이)을 그 통치 영역으로 하고 있었던 국가였고, 고조선의 뒤를 이어 등장하는 扶餘(부여 옮긴이)/高句麗/挹婁(읍루 옮긴이)/東沃沮(동옥저 옮긴이)/東濊(동예 옮긴이)/崔氏樂浪國(최씨낙랑국. 그러니까 낙랑 왕국이나 낙랑국옮긴이)/(. 흔히 삼한[三韓]’으로 불리나, 후한서 와 정사[正史] 삼국지 에는 이라는 이름으로 나오며, 서진[西晉]/동진[東晉]의 갈마를 다룬 역사책인 진서[晉書] 에는 마한진한만 나온다 옮긴이) 등은 모두가 고조선의 거수국이었던 세력들이 독립하여 세운 나라들이었기 때문이다(이는 제하[諸夏 : 수도 북경(北京)]의 삼국시대에 있었던 나라들인 위//오가 후한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들인 사실과 같고, 동로마제국과 서로마제국이 로마제국이라는 한 나라에서 갈라져 나온 것과 같으며, 중세 후기 서아시아/북아프리카/남부 이베리아의 여러 왕국이 압바스 제국에서 갈라져 나온 나라들인 사실과도 같다 옮긴이).”

 

윤내현, 고조선 연구 , 14 ~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