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세조선의 사대부들과 근대 왜국[倭國]의 식민사학자들과 현대 한국 ‘강단사학자’들이 만든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종래의 체계대로라면, 한민족(배달민족 – 옮긴이)은 단군조선 말기(실제로는, 원[原]부여 시대 – 옮긴이)에 衛滿(위만 – 옮긴이)에게 정권을 빼앗겨 중국(제하[諸夏]. 정확히는 전한[前漢] - 옮긴이) 망명객의 통치를 받아야 했고, 衛滿朝鮮(위만조선 – 옮긴이) 멸망 후에는 漢四郡(한사군 – 옮긴이)이 설치되어 한반도(코리아[Corea]반도 – 옮긴이)가 완전히 중국의 영토에 편입되어 나라를 잃었다는 것이 된다. 衛滿이 西漢(서한. 전한[前漢]의 다른 이름. 나라의 도읍이 ‘서쪽 도시’인 장안[長安]에 있어서 이렇게 불렀다 – 옮긴이)으로부터 망명을 온 해가 서기전 195년이고, 衛滿朝鮮이 멸망하고 漢四郡이 설치된 것이 서기전 108년이며, 漢四郡 가운데 가장 늦게 樂浪郡(낙랑군 – 옮긴이)이 축출된 것이 서기 313년 경이므로, 한민족은 무려 500여년 동안 중국인들(‘한족[漢族]’들 – 옮긴이)의 통치(사실은, 지배 – 옮긴이)를 받았다는 것이 된다.
역사(歷史. 순수한 배달말로는 ‘갈마’ - 옮긴이)는 사실대로 복원되어야 하므로,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대로 서술되어야 한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앞에서 말한 바와 같이, 衛滿朝鮮의 건국과 멸망, 漢四郡의 설치 등은 고조선(원 부여 – 옮긴이)의 서부 변경이었던 지금의 遼西(요서 – 옮긴이) 지역에서 일어난 사건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사건들로 인하여 고조선의 서부 영토가 일부 줄어들기는 했지만, 고조선이 그 중심부를 잃었거나 붕괴되지는 않았던 것이다(그리고 열국시대에는 고구리[高句麗]가 한[漢]나라를 여러 번 치고, 위[魏]나라 군사를 낙랑에서 물러나게 함으로써, 이 일에 확실하게 반격을 했다 – 옮긴이).
고조선(이른바 ‘단군조선’인 아사달/전[前]조선 – 옮긴이)은 衛滿朝鮮에 의하여 계승되었던 것이 아니라, 고조선의 거수국(渠帥國. 제하[諸夏]로 치면 ‘제후국[諸侯國]’. 이는 서양에서는 ‘영주’로 불리는 사람들이 일본에서는 ‘번주[藩主]’인 것과 같다 – 옮긴이)들이었던 扶餘(부여 – 옮긴이)/高句麗/挹婁(읍루 – 옮긴이)/沃沮(옥저 – 옮긴이)/崔氏樂浪國(최씨낙랑국. 올바른 이름은 ‘낙랑국’이나 ‘낙랑 왕국’. 군현이 아니라 독립국가였다. 서기 1세기 전반에는 고구리의 지배를 받았고, 서기 4세기에는 유민들이 옛 사로국 땅인 경상북도로 망명했다 – 옮긴이)/東濊(동예 – 옮긴이)/한(韓. 흔히 ‘삼한[ 三韓 ]’으로 불리나, 『 후한서 』 와 정사[正史] 『 삼국지 』 에는 ‘한[ 韓 ]’이라는 항목으로 소개되었으며, 서진[ 西晉 ]과 동진[ 東晉 ]의 갈마를 다룬 역사책인 『 진서[晉書] 』 에는 ‘마한’과 ‘진한’만 나온다 – 옮긴이) 등에 의해서 계승되었던 것이다.
(좀 더 정확히는, 전조선은 서기전 1285년에 – 후기 신라나 후한 왕조처럼 - 안에서부터 저절로 해체되었고, 그로부터 온 예순네 해[‘164년’] 뒤인 서기전 1121년에 세워진 후[後]조선이 전조선을 이어받았으며, 그로부터 696년 뒤인 서기전 425년에 후조선의 뒤를 원[原]부여가 이어받았고, 서기전 57년부터는 서나벌을 비롯한 여러 거수국이 원 부여로부터 갈라져 나와 원 부여의 뒤를 이었다 – 옮긴이)
이들이 각각 독립하여 여러나라 시대(한자로는, ‘열국시대[列國時代]’. 서기전 57년 서나벌의 건국으로부터 시작되어, 서기 297년 사로국의 멸망과 삼한백제의 코리아반도 통일로 끝난다 – 옮긴이)가 시작되었던 것이다.”
― 윤내현, 『 고조선 연구 』, 16쪽
→ 이상 『 고조선 연구 』 ( ‘윤내현’ 지음, ‘일지사[ 一志社 ]’ 펴냄, 서기 1994년 )에서 퍼옴
― 단기 4356년 음력 8월 24일에, 원래는 개천절에 올렸어야 할 글을 닷새 뒤인 오늘에야 올려, 부끄럽고 죄스러운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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