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보론 – 동양 사회에서 경제라는 말의 의미

개마두리 2023. 10. 14. 22:32

현재(서기 2001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동양(동아시아 옮긴이) 3(한국과 제하[諸夏 : 수도 북경(北京)]와 왜국[倭國] 옮긴이)에서 쓰이고 있는 경제라는 말(사실은, 대만[臺灣]에서도 쓰인다 옮긴이)경세제민(經世濟民 옮긴이)이라는 말에서 나왔다. 이 말을 일본인(왜인[倭人] - 옮긴이)들이 economy(영어로 경제라는 뜻 옮긴이)의 역어(譯語. 번역할 때 쓰인 말 옮긴이)로 쓰게 되면서 오늘날의 뜻을 가지게 된 것이다.

 

하지만 경세제민이란 천하를 경영하고(꾸려나가고 옮긴이) 민중들을 구제한다.’는 뜻이니, 좁은 의미의 economy보다는 오히려 정치경제(정치와 경제가 합쳐진 것 옮긴이)의 뜻을 더 강하게 지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서기 옮긴이) 1729(그러니까, 일본의 에도시대 옮긴이)경제록(經濟錄) 이라는 책을 낸 (일본인인 옮긴이) 다자이 슌다이(太宰 春臺[태재 춘대] - 옮긴이)순경제라는 말을 일을 관장하여 잘 끝맺는 것이라고 풀이한다. 이는 앞에서 본 economy의 옛 용법 중(가운데 옮긴이) 하나인 관리/경영과 닮아 있다.

 

그의 저서에서도 경제란 여타(餘他. 그 밖의 다른 것 옮긴이)의 사회적 활동의 맥락 속에서 규정되는 것으로 다뤄지고 있어서 범죄와 처벌, 지리, 교육 등의 문제와 함께 논의되고 있다.

 

당시의 지도적인 경제 조언가였던 (일본인 옮긴이) 아라이 하쿠세키(新井 白石[신정 백석] - 옮긴이)<화폐 개혁이나 교역 정책에 대한 연구와 쇼군(將軍[장군]. 중세 ~ 근세의 일본에서, 이 직책은 다른 한자 문화권 나라들의 그것과는 달리, 단순한 군대의 장교가 아니라 재상이나 승상에 가까운 직책이었다 옮긴이)의 비명(碑銘. 비석[]에 새긴 글[] - 옮긴이)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하는 옮긴이) 문제>를 다른 종류의 문제로 생각하지 않았다고 한다.

 

동양의 전통적인 경제사상도 나라 전체의 살림살이라는 정치 행정학의 일부였음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쉽게 말해, 근대 이전에 살았던 동아시아 사람들은 정치와 경제를 따로 나눠서 다루지 않았다 옮긴이).

 

중국(제하[諸夏] - 옮긴이)의 어떤 학자는 그런 이유에서(까닭으로 옮긴이) 일본인들이 경제라고 하는 것은 정치경제에나 해당하는 말이며, economy에 해당하는 말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옮긴이) 대신 주역 십익(十翼) 에 나오는 인간들이 모여 살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라고 한다. 부를 경영하고, 법을 정하고, 사람들이 그릇된 일을 하지 못하게 하는 것을 정의라고 한다.”는 구절을 들어, ‘부의 경영economy에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그도 지적하고 있듯이, 여기에서도 경제의 문제가 함께 모여 사회를 이루고, 윤리를 바로잡는 등의(것 같은 옮긴이) 문제의 일부로 다뤄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결국 두 경우(다자이/아라이가 쓴, 경제를 설명한 글이나, 제하의 한족[漢族]’학자가 한 주장 옮긴이) 모두에서 현대 경제학적인 경제의 정의는 발견되지 않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동양 사상에서 경제의 문제는 (공업혁명 이전, 그러니까 서기 18세기 이전에 있었던 옮긴이) 서양의 가정 경제나 정치경제의 용법처럼 윤리, 정치 등의 일부분으로서만 다뤄져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역사적으로(갈마[‘역사’]를 살펴보면, - 옮긴이) 경제적 연구라 할 만한 것은 항상(옮긴이) 토지제도나 조세제도를 어떻게 할 것인가?’의 틀로 논의되어왔는데, 이는 주()나라[서주(西周) 왕조 옮긴이] 때의 정전법(井田法. 한 땅을 우물 정[]자 모양으로 선을 그어 아홉 구역으로 나누고, 한가운데에 있는 구역을 뺀 나머지는 한 구역 당 한 집안씩 나눠주되, 한가운데에 있는 구역은 여덟 집안이 함께 일구어, 그 구역에서 난 곡식이나 푸성귀를 나라에 바치게 한 토지 제도 옮긴이)에서도 드러나듯이 윤리적/정치적 제도의 핵심이기도 했다.

 

춘추전국시대에 지어진 (옮긴이) 관자(管子) 내외편(內外編) 에는 순수경제 이론이라 할 만한, (물건의 옮긴이) 가격(옮긴이)과 화폐가치의 현상에 대한 논의가 발견된다.

 

하지만 관자 를 지었다는 관중(管仲. ‘관자[管子]’는 그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책의 이름이자, 그에게 붙인 존칭이기도 하다 옮긴이)이라는 인물(사람 옮긴이)이 제나라 환공(桓公)의 재상이었으며, (제하[諸夏]의 삼국시대에 살았던 옮긴이) 제갈공명(본명 제갈량’. ‘공명은 그의 자[]옮긴이)이 항상 벤치마킹(Benchmarking. 좀 더 나아지기 위해 남에게서 배우고, 그 배운 것을 바탕으로 좀 더 낫거나 좋은 것을 만드는 일 옮긴이) 대상으로 삼았던 중국 역사상 최고의 행정가였음을 기억해볼 때, 독일(도이칠란트 옮긴이)의 국가학과 마찬가지로 그 논의( 관중 본인이 제나라의 경제를 다룬 논의와, 관자 를 썼던 사람의, 경제에 대한 논의 옮긴이 ) 또한 국가 경영의 일부로서 다뤄지고 있음에 주의해야 할 것이다.

 

홍기빈,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 53 ~ 55

 

→ 『 아리스토텔레스, 경제를 말하다 ( ‘홍기빈지음, ‘책세상펴냄, 서기 2001년 초판 인쇄, 서기 2020년 개정판 1판 인쇄 )에서

 

옮긴이(개마두리)의 말 :

 

그러니까 서기 19세기 이전에는 동아시아의 한자 문화권에서 경제가 하나의 독립된 요소가 아니라, 정치나 행정이나 윤리나 도덕과 얽혀 있는 요소였다는 이야기다. ‘정치 따로, 경제 따로, 도덕 따로라는 생각은 서기 19세기 후반이 되어서야 동아시아에 나타난 것이다.

 

그렇다면,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동아시아야 그렇다 치더라도, 불교나 시크교나 자이나교나 힌두교가 꽃피었던 남아시아와 동남아시아의 전통 사회에서는 어떤 경제 관념이 있었을까? 그들은 경제를 무엇이라고 여겼을까?불경 이나 시크교의 경전이나 자이나교의 경전이나 힌두교 사회를 다룬 기록을 보면 그 답을 알 수 있을까?

 

의문은 또 생긴다. 예수교/이슬람교/유대교/조로아스터교가 태어난 땅인 서(西)아시아와, 그 서아시아와 많은 영향을 주고받은 북아프리카의 경제관념은 어떤 것이었을까? 키엔기르(‘수메르의 바른 이름)나 바빌로니아나 에블라 왕국이나 우라르투나 히타이트나 케메트(‘이집트의 첫 이름이자 바른 이름)나 가나안(헬라스 사람들이 페니키아로 부른 땅의 바른 이름)이나 카르타고의 경제도 정치/윤리/행정과 뒤섞인 것이었을까? 중세/근세의 서아시아/중앙아시아/북아프리카 이슬람 사회의 경제도 그랬을까? 이 의문에 대해서도 나름대로 고찰이 필요하지 않나 싶다.

 

끝으로 한마디만 더 덧붙인다면, 나는 거북섬(‘아메리카의 바른 이름)과 오세아니아와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의 원주민 사회들에서도 그리고 북극에 살던 수렵민족들이나, 시베리아 원주민들이나, 몽골초원/아라비아 사막의 유목민들에게도 - 경제가 어떻게 여겨졌는지 알고 싶어진다.

 

부디 앞으로는 내가 지금까지 죽 늘어놓은 의문들에 대답을 해 줄 한국인 학자(또는 제 3 세계 학자)의 경제학 서적이 나오기를 빈다.

 

단기 4356년 음력 830일에, ‘어쩌면, 오늘날 사람들은 경제에서 정치와 도덕을 빼 버렸기 때문에, 그러니까 공업혁명 때의 고삐 풀린 경제학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타락한 것인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는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