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이야기

방이설화(旁㐌說話)

개마두리 2023. 11. 2. 22:42

방이는 가난하지만, 아우는 부자였다. 아우는 방이가 누에 종자와 곡식 종자를 좀 달라고 부탁하자, 주자니 아깝고 그렇다고 안 줄 수도 없는 노릇이고 해서 종자를 몽땅 쪄서 주었다.

 

방이는 비록 찐 종자일지언정 혹시나 하는 마음에 정성껏 보살폈다. 그러자 마침내 누에 종자에서 누에 한 마리가 기적처럼 생겼다. 더구나 그 크기가 유달리 커서, 방이는 기뻐 어쩔 줄을 몰랐다.

 

이 소식은 아우에게 전해졌다. 이 아우가 어떤 아우인가? 샘 많은 아우는 소식을 듣자마자 배가 아파 자리에 눕고 말았다. 그러다가 결국에는 몰래 방이 집에 가서는 그만 누에를 죽여 버리고 말았다. 방이의 낙심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며칠이 지나자 난데없이 나타난 수 많은 누에들이 방이의 집으로 기어 들어오는 것이 아닌가! 방이는 그 누에들을 잘 키워 많은 고치를 거두었고, 동네 사람 모두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기까지 했다.

 

또한 방이는 아우한테서 받아온 찐 곡식 종자를 정성껏 심어 가꾸었다. 곡식 종자에서도 누에 종자처럼 종자 하나가 싹을 틔웠다. 싹은 무럭무럭 자랐고, 자란 높이가 한 자(요즘 단위로는, 30.3 센티미터. 그러나 한 자는 서기 4세기 백제에서는 25 센티미터였고, 한 자가 30.3 센티미터가 된 건 대한제국 때였으므로, 이 이야기에 나온 식물의 높이는 25센티미터나 그보다 조금 더 높은 수치일 가능성이 크다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나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자기 새 한 마리가 날아와서 그 곡식을 꺾어 물고는 달아나 버렸다. 놀란 방이는 그 새를 놓칠세라 따라갔다. 계속 날아가던 새는 갑자기 어느 바위틈으로 들어가더니, 사라져 버렸다.

 

힘들게 뒤쫓아온 방이는 바위 구석구석을 뒤지며 새를 찾으려고 했지만, 찾을 수가 없었다. 이미 날도 저물었다.

 

방이는 할 수 없이 바위 옆에서 아침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한데 바로 그때였다. 어디선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 방이는 바위 사이로 몸을 숨겼다. 붉은 옷을 입은 어린아이들이었다. 도대체 어디서 나타났는지, 아이들이 몰려와서는 금방망이를 꺼내 두드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글쎄, 아이들이 요구하는 대로 술이며 떡이며 고기가 방망이에서 마구 쏟아지는 것이 아닌가!

 

아이들은 한참 동안을 이렇게 먹고 놀다가, 금방망이를 돌 틈에 끼워 놓고는 가버렸다.

 

방이는 아이들이 두고 간 금방망이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가 옮긴이) 아이들이 한 것처럼 방망이를 두드리니, 금은보화가 쏟아졌다. 방이는 부자가 된 것이다. 방이는 보물을 아우한테도 나누어주었다.

 

하루아침에 부자가 된 방이를 보고 놀란 아우는 이상하게 생각하여 방이에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끈질기게 물어보았고, 결국 방이는 금방망이 이야기를 아우에게 들려주었다.

 

그러자 아우도 그 금방망이를 갖고 싶어 방이가 한 일들을 흉내 냈지만, 아이들한테 붙잡혀 금방망이를 훔쳐간 도적으로 몰렸고, 그들 때문에 코가 열 자(요즘 단위로는 2미터 50센티미터 옮긴이)나 늘어난 채 달아나야 했다.

 

- 제 2 () 왕조(무주[武周]왕조를 세운 무조[武照. 시호 측천무후’]가 죽은 뒤, 정권이 이[]씨들에게로 되돌아와 세워진 당 왕조. []나라로 치면 후한[동한]’이다)의 학자인 단성식(段成式. 서기 803 ~ 863)이 쓴 책인 유양잡조(酉陽雜俎) 에 실린 신라의 옛날이야기.

 

이 이야기는 국문(國文)으로 옮겨져서 조선 공화국(수도 평양)에서 펴낸 책인 조선전사 에 실렸고, 한국인인 김종대국립민속박물관 전시운영과 과장(서기 2000년 현재)이 그 글을 자신의 책인 『 저기 도깨비가 간다 』 ( ‘도서출판 다른세상’ 펴냄, 서기 2000년 )에 인용했다( [옮긴이 개마두리]는 몇몇 낱말을 순수한 배달말로 바꾸고, 옮김[‘번역’]이 어색한 부분은 고쳤으나, 이야기의 내용 자체를 바꾸지는 않았음을 밝힌다 ).

 

이 이야기는 도깨비 방망이 얻기이야기와 아주 비슷하며, 김 과장 은 이 이야기가 “‘도깨비 방망이 얻기의 원조일지도 모른다고 추정 하고, 이 이야기에 나오는 붉은 옷을 입은 어린아이들도깨비로 생각하면 된다고 풀이한다(나도 김 과장과 같은 생각임을 밝힌다).

 

단 선생은 어디서 이 이야기를 듣고 글로 적었을까? 내가 볼 때는,

그 후보가 다음과 같다.

 

1. 오늘날의 절강성(浙江省) 바닷가에 살던 신라인들

 

2. 오늘날의 복건성(福建省) 내륙 산간지대에 살던 신라인들(원래 절강성이나 장강[長江]일대에 살다가, 서진의 무제[武帝]사마염[사마의의 손자]’ 때문에 강제로 복건성 내륙으로 끌려간 사람들)

 

3. 코리아(Corea)반도에 살다가 유학이나 장사 때문에 제 2 당 왕조로 건너온 후기신라 사람들

 

이 세 부류 가운데 누가 전해주었는지는 사학자들이 고증/고찰해서 밝혀낼 과제로 남는다.

 

한 마디만 더 하자. 이 이야기는 언제 만들어졌을까? 내가 과감히 추측하자면, 배달민족이, 좀 더 정확히는 신라인이 금()을 중요하게 여기게 된 때와 관련이 있다. 이야기 속에 금방망이가 나오기 때문이다.

 

고고학자들이 밝혀낸 바에 따르면, 코리아 반도에서 금이나 금동으로 만든 화려한 유물들이 나오기 시작한 시기는 서기 4세기 중후반이고, 신라도 예외는 아니니, 이 이야기는 서기 4세기 이후에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크다(마립간 시대 이전, 그러니까 계림국[鷄林國]이 세워지기 전부터 있었던 마한[馬韓]은 구슬[한자로는 옥()]은 귀하게 여겼지만, 금은은 그다지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고, 변한/진한도 쇠는 덩이쇠로 만들어서 돈으로 썼지만, 금은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게 전부는 아니다. 이 이야기에는 기마민족/유목민족이 좋아하는 금뿐 아니라, “누에 종자곡식 종자도 나오기 때문이다. 곡식은 여름지이(‘농사’/‘농경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를 하는 여름지기(‘농부’/‘농업인을 일컫는 순수한 배달말 낱말)에게 중요하고, 누에는 그 고치를 삶아서 비단을 짜는 데 쓰기 때문에[전근대사회에서, 옷감은 옷이나 이불을 만드는 데 쓰는 재료였을 뿐 아니라, 그 자체가 일종의 돈이기도 했다. 한 예로, 근세조선 때 병역을 면하려는 사람은 대신 군보포(軍保布)’라는 삼베나 무명을 내야 했는데, 이는 그 옷감들이 돈으로 쓰였기 때문이었다], 역시 여름지이를 하는 집안의 여성들에게 중요하다(그 때문에, 여름지이를 바탕으로 삼은 동아시아의 전근대사회는 백성들에게 남자는 논밭을 갈고, 여자는 길쌈을 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계림국을 세운 유목민족이 원주민인 진한인/6부 사람들/박씨족/석씨족에게 어느 정도 동화해서 농경문화를 받아들이고, 그것에 익숙해진 뒤에 나타났다고 짚어볼 수 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가 만들어진 시기는 유목민족의 관습인 순장을 없애고, 유목민족들이 몰고 온 소들을 논밭을 가는 데 쓰라고 명령한 지증마립간 대, 그러니까 서기 6세기 초나, 그의 증손자인 진평왕이 사냥(이것도 유목민족이 즐기던 놀이다!)을 그만둔 서기 7세기 초일 가능성이 있다(아니면 이른바 삼국 통일 전쟁과 신/당 전쟁이 끝난 지 한 세기가 흐른 뒤이자, 걸걸중상[다른 이름은 대중상’]이 세운 중기 고리[高麗]와도 큰 전쟁은 하지 않게 된 때인 서기 8세기에 이 이야기가 만들어졌을 가능성도 있다. 이야기 안에 전기 고리[高麗]/중기 고리나 남부여/백제나 후기 가야가 나오지 않기 때문이며, 전쟁도 언급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림 동화 신데렐라 같은 이야기들이 언제 만들어졌고, 왜 만들어졌으며, 그 이야기들의 바탕이 되는 실화나 전승이나 전설이 무엇이었는가를 밝히는 게 뜻 있는 일이라면, < 방이 설화 >가 만들어진 때를 정확하게 밝히는 일도, 그 안에 들어있는 신라 사람들의 속마음도, 그리고 단 선생이 그 이야기를 전해들은 경로를 추적하는 것도 똑같이 뜻이 있는 일이라고 말하고 싶다.

 

부디 이런 내 글(< 방이 설화 >에 대한 보충설명이자 고찰)이 여러분에게 도움이 되기를(그리고 후학이 이 글을 바탕으로 좀 더 정확한 논문을 쓰고 연구를 할 수 있기를) 빈다.

 

- 단기 4356년 음력 919일에, ‘우리는 근세조선 이전의 갈마(“역사”)와 전통과 문화를 좀 더 정확하게 알아야 하며, 그것을 널리 알리기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그리고 근세조선의 전통만이 우리의 참된 전통이라고 여기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제안하는) 개마두리가 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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