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 메이지 유신 최대의 흑막 두 번째, 바꿔치기한 메이지 왕 (5)

개마두리 2023. 11. 3. 18:46

총리를 2명이나 배출한 조선인 부락, 다부세초

 

이제 이 미스터리(수수께끼 옮긴이)의 마지막, 하이라이트(highlight : 가장 흥미로운 부분 옮긴이) 부분을 파헤쳐볼 때가 되었다.

 

그것은 이 흑막(黑幕. ‘검은 장막드러나지 않은 음흉한 내막 : 옮긴이)의 시작 장소, 다부세초에 대한 것이다.

 

앞에서 여러 차례 다부세초가 조선계 부락이라는 사실이 언급되었다. 그러면 메이지 왕이 되었던 오무로도 조선인(근세조선 백성 옮긴이)의 후예라고 볼 수도 있지 않은가!

 

일본 천황(일왕[日王]. 좀 더 정확한 명칭은 '왜왕[倭王]' - 옮긴이)들 거의가 백제의 직접 후손이거나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덧붙이자면, 초기의 왜왕[倭王]들은 가야계/임나계고, 서기 4세기 말 이후의 왜왕들은 백제계며, 중간에 계림국이나 고구리[高句麗] 계통인 왜왕들이 두세 명 정도 즉위했고, 그 다음 백제계가 다시 자리를 차지했다가, 서기 7세기부터는 백제의 후신[後身]인 남부여계가 즉위했고, 서기 7세기 말에는 고구리계 일왕이 한 번 즉위했고, 그 뒤 다시 백제계가 일왕 자리를 되찾았다가, 서기 8세기에는 신라 출신인 일왕이 즉위했고, 나중에 백제계가 일왕 자리를 다시 빼앗았다 옮긴이).

 

일본 왕실의 계보가 한 번도 끊어지지 않고 존속되었다고 주장하는 의미로 만세일계(萬世一系)’라는 말이 있지만, 이는 사실상 불가능한 일로 날조된 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메이지 왕도 조선계 부락 출신이라면, 지금(서기 2018옮긴이)의 아키히토(명인[明仁]. 서기 1933~ ) 왕 역시 조선인 후손이라는 말이 된다. 물론 오무로가 조선계 부락 출신이라고 해서 완벽히 조선인이라고 단정하기는 어렵지만 말이다.

 

그런데 한 가지 흥미로운 사실은, 이토 히로부미가 오무로가 태어난 다부세초 오코존의 생가로부터 걸어서 두 시간 정도의 거리에 있는 쓰가리존(束荷村[속하촌])’에서 태어났다는 점이다. 쓰가리존 역시 하층민 마을이었고, 오무로 집에 이토가 자주 놀러왔다는 얘긴 위에서 했다.

 

또 흥미로운 것은 오코존이나 쓰가리존이나 모두 뒤의 촌()무라라고 읽지 않고, 한국어와 발음이 비슷한 으로 읽는다는 사실이다. 조선계 부락이라서 오코존으로 읽혔다면, 쓰가리존 역시 비슷한 이유(까닭 옮긴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그러니 이토 히로부미 역시 조선계 부락 출신일 가능성이 상존한다(‘가능성이 높다.’는 말을 써야 한다 옮긴이).

 

이토 히로부미뿐만 아니다. 요시다 쇼인도 그렇다. 그는 쇼카손주쿠의 기록(松下村塾記[송하촌숙기]) 에서

 

내가 마쓰시타 읍(松下邑[송하읍]) 타이라 씨(平氏[평씨]. “타이라[]” 성을 갖는 씨족의 총칭. “겐지[: ]”/“후지와라[藤原 : 등원]”/“타치바나[: ]”와 함께 일본 4대 성씨[四姓]의 하나로 오랜 역사를 지닌다. 11~12세기 미나모토씨[源氏(원씨)]와 타이라씨[平氏(평씨)]간의 결전은, 한반도 출신 세력 집단 간의 대결로 겐페이노 갓센[源平(원평의 합)]”이라 하는데, 이것이 편 가르기 즉, “겐페이의 어원이 됐다 지은이의 주석)의 유민들이 일찍이 은닉한(몸을 감춘 옮긴이) 곳이다. 그 동북쪽의 도진야마는 조선 포로가 도자기를 만든 곳이다. 이 지역의 큰 인물들은 마쓰시타 읍부터 시작되는 것인가.’

 

라고 쓰고 있다.

 

(중략) 요시다 쇼인이 태어난 하기모리 데루모토영주가 (6년 전쟁 때 근세조선의 도공인 옮긴이) 이작광과 이경 형제를 납치해 도자기를 만들게 하고 일군 곳이다. 이들이 도자기를 구운 곳이 도진야마였고, 그 도자기를 마쓰시타야키(松下燒[송하소]. “마쓰시타 읍에서 구운 것마쓰시타 읍에서 [불로 구워서] 만든 도자기라는 뜻이다 : 옮긴이)라 했다.

 

그러니 요시다 쇼인이 스스로 자신이 태어난 곳이라 밝힌 마쓰시타는 조선인 부락(6년 전쟁 때 근세조선에서 왜군에게 붙잡혀 왜국으로 끌려온 포로들과 그 후손들이 모여 살던 동네. ‘부락은 왜국에서는 천민들이 살던 동네라는 뜻이었으므로, 근세조선의 포로들 가운데 많은 수가 천민 취급을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옮긴이)일 가능성이 높으며, 그 자신도 조선 부락민이라는 사실을 암시한다.

 

이토 히로부미와 함께 메이지 정부를 주도하며 총리대신을 지낸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縣 有朋[산현 유붕])’ 역시(또한 옮긴이) 하급무사보다도 더 못한 신분의 조선 부락민이었다. 물론 그들이 조선인 부락 출신이라고 해서, 그들이 조선인이라고 단언할 수는 없지만 말이다.

 

또한 이들의 배경에는 뿌리 깊은 신분 차별의 위화감이 있다. 야마구치 현의 주오(周防[주방])’나가토(長門[장문])’1551모리씨에 의해 점령당하기 전까지 오우치(大內[대내])’씨가 세력을 구축하고 있던 거점이었다.

 

오우치씨는 백제 임성태자(琳聖太子)의 후예를 자처했던 일족으로, 무로마치 중기 이후 명나라와 조선, 류큐(유구[琉球]. 올바른 현지 발음은 루추. 오늘날의 오키나와에 있던 독립 왕국이다 옮긴이) 등 동아시아 무역으로 국내(왜국 안 옮긴이) 최고의 경제 기초를 닦았다. 포르투갈 예수회 신부 프란치스코 하비에르가 체류할 당시(근세인 전국시대 옮긴이)는 기독교(예수교. 정확히는 천주교 옮긴이) 포교도 허용하는 등 독특한 문화권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모리씨에 의해 멸망될 때, 이 지역의 많은 오우치씨 무사들은 그들을 점령한 모리 가문의 하인이나 하층 주민이 되었고, 조슈 번에서 차별을 받으며 생계를 이었다.

 

그리하여 그들의 불만을 이용한 것이 요시다 쇼인이며, 그들에게 남조 정통론을 기반으로 한 존왕양이 사상(“임금을 받들고, ‘오랑캐[다른 나라. 여기서는 서양 여러 나라를 일컫는 말로 쓰였다]’를 물리치자.”고 주장한 사상. 에도시대 말기 ~ 메이지 시대 초기에 왜국 안에서 유행했다 옮긴이)을 부추겨 사족(士族. 무사의 집안이나 그 자손 옮긴이)으로 끌어올리고자 다가스키 신사쿠는 기병대를 만들었다고 하는 시각이 있다.

 

어쨌든 그렇게 조선인 부락에서 요시다 쇼인에게서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이 메이지 유신의 주역들이 됐다. 그들이 오랜 핍박에서 벗어나 신분 해방을 꿈꾸면서 쇼인의 사상을 따라간 것은 당연했다.

 

바로 그래서 오니즈카 히데아키는 일본의 가장 추악한 날 에서 지금 일본 국가의 진상은 조슈 번 다부세 일당이 메이지 유신으로 국가를 점령한 것(日本 國家眞相, 明治維新長州藩 田布施 一味國家られたという ことである ことが )’이라 규정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단 메이지 왕(大室寅之祐[대실인지우])을 비롯해 이토 히로부미와 야마가타 아리토모를 이어 기시 노부스케사토 에이사쿠까지 다수세초에서 총리들(수상들 옮긴이)이 줄줄이 나왔으니, 그런 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곳은 일본 전역에서 다부세초 말고는 없다.

 

또한 오무로의 생가 근처에는 기시 노부스케 일족의 생가가 있고, 이 땅에서 중의원 구니미쓰 고로(國光 五郎[국광 오랑. 서기 1880~ 1951])’, ‘난바 사쿠노스케(難波 作之助[난파 작지조])’도 나온다. 종전 내각의 마지막 내무대신 아베 겐키(安倍 源基[안배 원기. 서기 1894~ 1989])’ 역시 오무라(오무로 옮긴이) 생가 근처 출신이며, 전 외상(外相. 외무성의 우두머리. 한국으로 치면 외교부 장관 옮긴이) 마쓰오카 요스케(松岡 洋右[송강 양우])’도 기시 노부스케의 일족이다.

 

아베 겐키와 아베 신조 현 총리(이 글은 아베가 물러나기 전에 쓰였다 옮긴이)의 정확한 관계는 불분명하지만, 가문은 같다.

 

(아베 겐키 옮긴이)는 내무대신 이전에 경찰 권력을 한손에 쥔 남자로 경시총감을 지내며 특고경찰(特高警察)에서 군림했다. 특고경찰은 비밀경찰로, 현재 CIAKGB와 같은 조직이다. 그러니 권력자에게 너무 중요한 자리인데, 이 역시 다부세 출신이 맡은 것이다.

 

영국에서는 이처럼 일본의 피차별부락(被差別部落 : ‘차별당하는 천민들의 동네라는 뜻이다 - 옮긴이), 즉 조선인 마을 출신들이 정권의 핵심으로 등장하는 것에 대해 일찍부터 주목을 하고 이를 조사했다고 한다.

 

오니즈카 히데아키는 그의 책에서, 영국 공사 해리 파크스가 일본의 약점을 찾기 위해 외교관 어니스트 사토우에게 피차별부락에 대한 조사를 시켰다고 말하고 있다.

 

( 6편으로 이어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