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의 글자 : 한국식 한자발음(예 : ‘야마구치 에이노스케(山口 銳之助[산구 예지조]’에서, “산구 예지조”가 한국식 한자발음임)
‘미우라 요시마사(三浦 芳聖[삼포 방성])’라는 인물이 있다. (서기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 1904년에 태어나 1971년에 사망했다(그러니까, 러일전쟁이 일어난 해에 태어나서, 일곱 살이던 해에 대한제국의 멸망 소식을 전해 듣고, 요시히토[연호 ‘다이쇼’] 왜왕이 다스리던 서기 1920년대에 청년기를 보내고, 중년일 때 2차 세계대전을 겪고, 냉전이 시작된 지 스물네 해가 지난 뒤에 세상을 떠난 일본인인 셈이다 – 옮긴이).
그는 죽기 일 년 전인 1970년(서기 1970년대는 미시마 유키오가 자위대에게 “<천황폐하의 군대>답게 들고 일어나라!”고 부추긴 때이기도 하다 – 옮긴이)에 『 철저하게 일본의 오류를 바로잡는다(徹底的に日本歷史の誤謬を 糺す. [내가 직접 번역해본 바에 따르면, 이 책의 정확한 이름은 『 철저하게 일본 역사의 오류를 (조사해서) 밝혀 내다 』 다 – 옮긴이] 』 라는 책을 출간했다.
쇼와(昭和[소화]. 서기 1926년부터 서기 1989년까지 왜국을 다스린 왜왕 히로히토가 쓰던 연호다 – 옮긴이) 4년(서기 1929년) (양력 – 옮긴이) 12월, 미우라는 궁중고문관 ‘야마구치 에이노스케(山口 銳之助[산구 예지조]. 1862 ~ 1945)’에게 미우라 가문 가계도의 감정을 의뢰했다(그러니까, 미우라 선생은 스물여섯 살 청년이던 때에, 왜국 궁중의 벼슬아치인 야마구치에게 자기 집안의 가계도를 감정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 옮긴이).
야마구치 에이노스케는 교토 제국대학 이공과 대학교수로 학습원 원장을 지냈다가 궁내성에 들어가 왕실 장서를 관리하는 책임자인 즈쇼노카미(図書頭[도서두])와 왕실 묘지를 관리하는 책임자인 쇼료노카미(諸陵頭[제릉두])를 거쳐 고문관이 된 사람이다.
( → 2편으로 이어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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