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장례식을 이익을 추구하는 장소로 여긴 아들들을 꾸짖은 조현명 정승

개마두리 2023. 11. 12. 15:56

정승 조현명(趙顯命. 서기 1690 ~ 1752년. 근세조선의 문신 –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의 아내가 세상을 떴다. 영문(營門. <‘감영[監營]’의 문 → 감영>을 일컫는 말. 감영은 근세조선 때, 감찰사가 일을 하던 관아를 일컫던 말이다 – 옮긴이)과 외방(外方. 서울이 아닌 모든 지방 – 옮긴이)에서 부의(賻儀. 초상이 난 집에 보낸 돈이나 물건 – 옮긴이)가 답지(遝至. ‘[많은 것들이 한 군데에] 이르러서[至] 뒤얽힘[遝]’ → 한군데로 몰려듦 : 옮긴이)했다. 

장례가 끝난 뒤, 집사가 (조현명에게 – 옮긴이) 말했다. 

“(재물로 – 옮긴이) 부의가 많이 들어왔습니다. (그러니 그것들을 – 옮긴이) 돈으로 바꿔 땅을 사 두시지요.”

조현명은 집사에게 물었다.

(우리 집의 – 옮긴이) 큰 아이는 뭐라던가?”

집사가 대답했다.

“맏상주(그러니까, 조현명의 맏아들이자, 조현명 아내의 장례를 주관한 상주 – 옮긴이)께서도 그게 좋겠다고 하십니다.”

(그 말을 들은 – 옮긴이) 조현명이 술을 취하도록 마시고, 여러 아들을 불러 꿇어 앉혔다.

“못난 놈들! 부의로 들어온 재물로 토지를 사려 하다니, 어버이의 상(喪 : 죽음 – 옮긴이)을 이익으로 아는 게로구나. 내가 명색이 정승인데, 땅을 못 사 굶어 죽기야 하겠느냐? 내가 죽으면 제사 지낼 놈도 없겠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아들들에게 – 옮긴이) 매를 몹시 때리고 통곡했다.

이튿날, (조현명은 – 옮긴이) 부의로 들어온 재물을 궁한(窮한 → 어려움을 겪는 : 옮긴이) 일가(一家. 한 집안. 여기서는 일가친척 – 옮긴이)와 가난한 벗들에게 고르게 나눠 주었다. 

― 『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

( 『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 : ‘박재형[朴在馨]’ 선생이 근세조선 후기이자, 고종 21년인 서기 1884년에 쓴 책. 

‘해동’은 우리나라를 일컫는 말이기도 했고, ‘소학’은 중세시대부터 근대 초까지 소년들이 유교를 배우는 교과서였던 책의 이름이니, ‘해동속소학’은 ‘우리나라에서 [주자의 제자인 “유자징”의 『 소학 』 에 덧붙이는 식으로] 다시 쓴, 우리나라 소년들을 위한 교과서’라는 뜻이다. 

이 책은 ‘본보기’인 남송의 책 『 소학 』 과는 달리 후기 고리[高麗] 이래의 이름난 유학자/옳은 일을 한 사람/어진 신하/명성과 인망이 높으면서도 숨어 사는 사람/여관[女官]의 본받을 만한 좋은 말이나 착한 일을 여러 책에서 뽑아 한데 묶은 책이며, 『 소학 』 보다 실존 인물의 말과 행동들을 더 많이 실었다. 

박 선생은 근세조선 어린이/소년에게 윤리를 가르치려고 이 책을 썼다. 

이 책이 참고한 책들 가운데에는 『 삼국사기 』 도 있으며, 박 선생은 실학사상에 입각하여 철저히 우리나라 사람들의 일화와 말과 행동만 모아 책을 만들었다. 박 선생은 이 책으로 “고전을 대중의 현실에 맞추어 새롭게 창조[네이버 회원인 ‘락이망우’ 선생의 평가]”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

― ‘허섭’ 선생의 글인 「 난득호도(難得湖塗) - 바보 되기 어려워라! 」 에 인용된 『 해동속소학(海東續小學) 』 의 글을 다시 인용하다

▶ 옮긴이(개마두리)의 말 :

장례식을 ‘이익을 탐내는 행사’로 만들지 않으려 하고, 탐욕스러운 마음을 품었던 아들들을 엄하게 혼내며, 부의로 들어온 재물들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준 조 정승의 깨끗한 마음이 존경스러울 따름이다. 우리가 정말로 이어받아야 할 ‘근세조선의 전통’은 ( 『 논어 』 나 『 맹자 』 나 『 불경 』 에도 없는 ) ‘음식을 잔뜩 차려, 그것들을 만드는 여성들이 “일하는 종”이 되도록 강요하는 설날/한가위 문화’가 아니라, 바로 조 정승의 정신과, 행동과, 말이 아닐까?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믿는다. 

― 단기 4356년 음력 9월 29일에, 조 정승 같은 깨끗한 벼슬아치가 너무나도 그리운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