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개인의 역사]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특별한 인문학 공부법 11가지

개마두리 2024. 11. 17. 20:48

(전략) 서양 천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평범한 우리에게 큰 위안이 되는 인물(사람 옮긴이 개마두리. 아래 옮긴이’)이다. 그는 서른여섯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인문학 공부를, 그것도 당시에 인문학 학교에 막 입학한 10대 초반의 아이들이 했던 라틴어 어형 변화부터 시작했다. 이는 오늘날로 치면 그가 일흔 또는 여든 살에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다는 의미다(뜻이다 옮긴이). 그것도 초등학생을 위한 인문학 교육과정을 말이다.

 

그가 이처럼 뒤늦게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던 이유는(까닭은 옮긴이), 서자 출신으로 어릴 적부터 직업교육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는 여섯 살부터 열 살까지 기술 예비학교에 다녔고, 열한 살부터 열세 살까지 상인예비학교에 다녔고, 열네 살 때부터 스무 살까지 피렌체의 금세공사이자 미술가였던 베로키오의 작업실에서 교육을 받았다. 즉 그는 오늘날로 치면 나이 마흔이 될 때까지 인문학이 뭔지조차 몰랐다고 할 수 있다.

 

한편으로 그는 인문고전 독서를 매우 힘겨워했고, 사고 수준을 인문고전 저자의 사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과정을 심히 고통스러워했다. 그리고 당시 인문학의 기본 언어였던 라틴어를 정복하고 싶어서 라틴어 문법책을 여섯 권이나 소장하고, 수천 개에 이르는 라틴어 단어를(낱말을 옮긴이)를 공책에 적어서 외우고, 라틴어 교과서 한 권을 통째로 베껴 쓰기까지 했지만, 죽을 때까지 그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한마디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오늘날의 우리와 처지가 비슷했다. 그도 우리처럼 학교(순수한 배달말/새로운 배달말로는 갈터’ - 옮긴이)에서 인문학을 배우지 못했고, 사회에 나와서는 먹고살기 바빠서 인문학을 하지 못했다. 그러다가 뒤늦게 중요성을 깨닫고, 인문학 공부를 시작했지만 쉽지 않았다. 특히 인문고전을 원어(原語. 번역하거나 고친 말의 본디 말/밑말 : 옮긴이)로 읽는 일은 좌절에 좌절을 거듭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불구하고는 빼야 한국어 문법/어법에 맞는 문장이 된다 옮긴이) 그는 자신만의 특별한 인문학 공부법으로 사고의 혁명을 일으켰고, 인문고전을 집필한 천재들을 뛰어넘는 인문학적 Thinking 시스템을 만들었으며, 이를 통해 당시 밀라노에 널리고 널린 중간급 장인(匠人. 기술자 옮긴이)에서 우리가 알고 있는(‘우리가 아는’ - 옮긴이) 그 위대한 천재, 레오나르도 다빈치로 거듭났다.

 

, 그럼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특별한 인문학 공부법에 대해서 알아보자. 그에게는 다음 열한 가지 공부법이 있었다.

 

첫째, 자기암시를 하라.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문학을 공부하면서(배우면서 옮긴이)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그렇다 보니 인문학이고 뭐고 다 포기하고, 편안하게 살고 싶은 욕구에 사로잡히곤 했다. 사실 그에게는 인문학을 공부하지 않아도 되는 충분한 이유가(까닭이 옮긴이) 수십(몇십 옮긴이) 가지는 있었다.

 

대표적으로 그의 본업은 미술이었다, 냉정하게 생각한다면 라틴어를 외우고, 인문고전을 뒤적일 시간에 미술에 집중해야 했다. 또 그는 너무 바빴다. 자신이 벌인 프로젝트는 물론이고(말할 것도 없고 옮긴이) 외부에서 의뢰받은 프로젝트까지 하려면 정말이지 11초가 아쉬웠다. 또 그가 인문학을 포기한다고 해서 뭐라 할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하지만 그는 그 모든 부정적인 이유를 단 하나의 긍정적인 이유로 덮었다. 그것은 나 자신을 계발해서 세상에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는 것이었다. 즉 그의 인문학은 자기계발의 기본 정신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를 위한 것이었다. 그는 노트에 이런 기록을 남겼다.

 

나는 세상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기 위해 끝없이 노력할 것이다. 나는 어떤 고된 노동에도 지치지 않을 것이다. 타인(他人. ‘다른[] 사람[]’ : 옮긴이)들을 위한 봉사도 마찬가지다. 절대로 지치지 않을 것이다. 이게 바로 나의 축제 같은 삶을 위한 모토다.”

 

이를 위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선택한(고른 옮긴이) 자기계발 기법은 자기암시였다. 그는 스스로에게(자신에게 옮긴이) 이런 주문을 걸었다. “만능인(萬能人)이 되는 것은 쉽다.”/“위대한 존재로 선택받은 인간은 자신의 결심을 절대 바꾸지 않는다. 나는 그 어떤 방해물 앞에서도 결심을 바꾸지 않을 것이다.”/“나는 그 어떤 장애물도 고된 노력으로 극복한다.”

 

그러니까 그는 자기 자신에게 나는 위대한 존재이다.’, ‘내가 인문학 분야에서 뛰어난 존재가 되는 것은 쉬운 일이다.’, ‘나는 그 어떤 좌절이 닥쳐와도 인문학을 공부하기로 한 결심을 바꾸지 않는다. 그리고 그 상황을 고된 노력으로 극복한다.’는 암시를 걸었다.

 

뇌과학계의 주장에 따르면 자기암시는 뇌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뇌의 능력을 변화시킨다. 만일 내가 만능인이 되는 것은 쉽다.’는 암시에 걸리면, 당신의 뇌는 그동안 자신에게 걸려 있던 다른 암시, 내가 만능인이 되는 것은 불가능하다.’를 깨뜨리고 능력을 발휘하기 시작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뇌의 이런 비밀에 대해서 알고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그는 인문학을 공부할(배울 옮긴이) 때 스스로에게(자신에게 옮긴이) 최고의 자기암시를 걸었고, 그 효과를 톡톡히 봤다.

 

둘째, 원전(原典. 원서 옮긴이)을 읽어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문고전을 원전으로 읽었다. 이를 위해서 라틴어를 따로 공부했다는 사실은 앞에서 밝혔다.

 

셋째, 원전을 필사하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문고전 원전을 필사했다. 참고로 그는 라틴어 문법책과 수학, 과학 관련 책들도 손수 베껴 썼다. 필사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기본적인 독서법이었다.

 

넷째, 홀로 사색하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말했다. 자신이 연구하고 공부한 내용은 온 정신을 집중해서 되새겨야 하는데, 이때 홀로 있어야 한다. 그러면 내가 나 자신의 주인, 즉 사색의 주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만일 친구(순수한 배달말로는 동무’ - 옮긴이)가 곁에 있으면, 나는 반쪽만 사색하게 된다. 그러면서 이렇게 조언한다. 때로 가족(식구 옮긴이)과 친구들을 뒤로하고 도시를 떠나 산과 계곡이 있는 자연으로 향하라고. 그리고 작열하는 태양의 열기에 자신을 내맡기라고. 그렇게 홀로 자연을 경험하면(겪으면 옮긴이) 영혼 가득 충만해지는 사색과 깨달음의 시간이 온다고.

 

다섯째, 잠들기 전 사색하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매일(날마다 옮긴이) 공부하고 연구한 것을 잠들기 전 침대에 누워서 다시 한번 정밀하게 생각해보는 습관(버릇 옮긴이)이 있었다. 우리가 잠자리에 들 때, 현재 의식은 잠들어도 잠재의식은 잠들지 않는다. 오히려 활발하게 활동한다. 그런데 잠재의식은 전체 의식의 8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천재성과 깊은 연관이 있다. 즉 세상의 모든 천재들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잠재의식을 일깨운 사람들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방식은 잠들기 전의 작은 사색이었다.

 

여섯째, 인문학 공부노트를 써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문학을 공부하면 반드시 노트를 썼다. 그는 보통 다음 세 가지를 기록했다(적었다 옮긴이).

 

1. 새롭게 알게 된 인문학적 지식

 

2.이를 토대로 사색한 내용

 

3. 지식과 사색의 적용, 즉 관찰하고 실험한 내용

 

그의 인문학 공부노트는 지식 사색 적용이라는 3단계 원칙에 의거해서(원칙을 바탕으로 옮긴이) 쓰였다. 한편으로 그는 노트를 쓸 때 풍부한 그림을 곁들였다. 즉 그의 노트는 단순한 노트가 아니었다. 좌뇌(문자[글자 옮긴이])와 우뇌(그림) 모두를 단련하는 전뇌(全腦) 학습의 도구였다.

 

일곱째, 작가와 함께하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위대한 작가를 존경하고 사랑하고 숭배했다. 그는 처음엔 마치 오늘날의 10대 아이들이 연예인에게 그러하듯이 작가에게 빠져들었다.

 

그는 특히 자기 시대(문예부흥[‘르네상스’] 시대 옮긴이)의 유명 작가였던 레온 바티스타 알베르티의 책을 미친 듯이 읽었고, 알베르티처럼 쓰기 위해 노력했고, 알베르티처럼 살고자 애를 썼다. 이후 그는 작가(알베르티 옮긴이)를 직접 찾아가서 조언을 듣는 단계를 거쳐 토론을 하는 단계까지 올라가고, 나중에는 (작가의 옮긴이) 친구가 되어 그에게 애정어린 지도를 받고, 함께 책을 쓰는 경지까지 이른다.

 

책만 보아서는 알 수 없는 지식(옮긴이)과 지혜(슬기 옮긴이)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작가들과 교류하면서 전수받아 폭발적으로 성장했는데, 여기에 사색과 깨달음을 더하면서 마침내는 당대의 모든 작가를 뛰어넘게 되었다.

 

여덟째, 도서관을 사랑하라.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서른아홉 살 때의 일이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에 위치한(자리한 옮긴이) ‘파비아(Pavia)’에서 대성당 건축 작업에 참여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운명처럼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도서관 중(가운데 옮긴이) 하나였던 비스콘티가()’의 도서관을 만나게 되었다.

 

얼마 뒤 그가 맡은 작업이 끝났다. 하지만 그는 밀라노로 돌아가지 않았다. 대신 비스콘티가의 도서관으로 들어갔다. 이때 그는 막 경제적 안정기에 들어서던 차였다. 밀라노의 작업장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어렵게 이룬 경제적 기반이 무너질 염려가 있었다. 하지만 그는 돈 대신 도서관을 선택했다(골랐다 옮긴이).

 

그는 무려 6개월 넘게 도서관에서 살면서, 도서관의 모든 지식을 빨아들였다. 그렇게 그는 머릿속에 도서관을 가진 사람이 되었다. 참고로 그는 도서관 생활을 마치고 밀라노에 돌아가자마자 치열하게 노트 작업을 했다. 그가 비스콘티가의 도서관에서 얻은 지식과 지혜는 그렇게 두 권의 노트에 기록되었다.

 

또 그는 이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유클리드의 기하학 을 만났는데, 이는 후일(後日. 뒷날 옮긴이) 8년에 걸친 유클리드 기하학 완독 프로젝트로 이어졌다.

 

아홉째, 인문학 서재를 만들어라. 인문학을 진지하게 공부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나만의 인문학 서재를 꾸미게 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도 마찬가지였다.

 

본래 그는 단 한 권의 책도 소장하고 있지 않았다. 하지만 인문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자연스럽게 책을 소장하게 되었고, 서재까지 꾸미게 되었다. 처음에 그는 고작 5권의 책을 소장했지만 약 8년 뒤인 (서기 옮긴이) 1490년에는 40권을 소장했고, (그로부터 열다섯 해 뒤인 옮긴이) 1505년 무렵에는 116권을 소장했다. 그리고 나중에는 200여 권 넘는 책을 갖추게 되었다. 이는 당시 유럽 최고 수준의 인문학자들도 갖추기 힘든 분량이었다. 즉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오늘날로 치면 개인 서재에 아이비리그 대학의 인문학부 교수들보다 더 많은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서재를 보면 그의 다방면에 걸친 창조성의 원천은 책이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신학/문학/역사(歷史. 순수한 배달말로는 갈마’ - 옮긴이)/철학/과학/수학/의학/해부학/건축학/군사학/지리학/지질학/천문학 등 다방면의 책을 소장하고 있었다. 즉 그는 독서를 통해 창조적인 Thinking을 했고 이를 다방면에 걸친 작업을 통해 구체화했다. 다음은 당신의 인문학 공부에 도움이 될 만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독서목록이다.

 

1. 성서

2.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 : 탈레스/아낙시만드로스/아낙시메네스/피타고라스/크세노파네스/헤라클레이토스/파르메니데스/제논/엠페도클레스/아낙사고라스/레우키포스/데모크리토스 등

3. 히포크라테스 : 선서 /신성한 질병에 관하여 /전통의학에 관하여

4. 크세노폰 : 소크라테스 회상 /아나바시스 /키로파이디아 /헬레니카

5. 플라톤 : 소크라테스의 변명 /파이돈 /국가 /필레보스 /정치가 /티마이오스 /소피스트 /법률

6. 아리스토텔레스 : 범주론 /명제론 /시학 /정치학 /형이상학 /자연학 /영혼에 관하여 /니코마코스 윤리학

7. 유클리드 : 기하학 원론

8. 아르키메데스 : 평면의 균형에 관하여 /구와 원기둥에 관하여 /소용돌이선에 관하여

9. 루크레티우스 :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

10. 베르길리우스 : 전원시 /농경시 /아이네이스

11. 호라티우스 : 송가 /서간집 /시론 /플로루스에게 보내는 편지 /세기의 찬가

12. 티투스 리비우스 : 로마사

13. 오비디우스 : 로마의 축제들 /변신 이야기 /사랑의 기술 /사랑의 노래 /슬픔의 노래

14. 이솝(올바른 이름은 아이소포스’ - 옮긴이) : 우화

15. () 플리니우스 : 박물지

16. 퀀틸리아누스 : 변론가의 교육 /수사학의 몰락 원인에 대하여

17. 플루타르코스 : 전기 /영웅전 /윤리론집

18.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명상록

19. 로저 베이컨 : 철학개론 /자연철학의 일반원리 /수학의 일반원리 /실험과학의 본질

20. 토마스 아퀴나스 : 신학대전 /세상의 영원성에 관하여 /존재와 본질에 관하여 /자연의 원리들에 관하여

21. 단테 : 제정론 /향연 /신곡

22. 페트라르카 : 나의 비밀 /칸초니에레 /승리

 

열째, (만약 인문고전을 다 읽었다면, 두 번째로 그것을 읽을 때부터는 옮긴이) 인문고전을 극복하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문고전을 읽을 때 보통 다음 세 단계를 거쳤다.

 

1. 무조건적으로 받아들이기

 

2. 저자의 생각 시스템을 파악하고, 자신에게 적용하기(써먹기 옮긴이)

 

3. 저자의 생각 시스템을 뛰어넘는 (자신의 옮긴이) 생각 시스템 만들기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문고전을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이는 그가 인문고전의 저자들보다 자기 자신을 더 소중히 여겼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인문고전 저자들의 생각은 마치 어둠 속의 별들처럼 찬란하다. 인문학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그 빛에 눈이 멀어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고 만다. 인문고전 저자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람이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인문학은 그 저자가 아닌 나 자신을 위하여 하는 것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이 사실을 잘 알았다.

 

그는 어둠 속에서 찬란하게 빛나는 별들의 존재를 인정했지만, 지상에서 빛나고 있는 자신의 존재도 인정했다. 그리고 언젠가는 자신도 하늘로 올라가서 그들처럼 세상을 비출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제아무리 위대한 저자의 책이라도 반드시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들과 인간 세상과 자연계에 적용해보았다. 그래서 옳다.’ 또는 도움이 된다.’고 판단한 내용은 적극적으로 취하고, ‘옳지 않다..’라거나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한 내용은 과감하게 버렸다. 그렇게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인문고전을 극복하면서(이겨내면서 옮긴이) 자기 자신 또한 극복했다(이겨냈다 옮긴이).

 

열한째, 자주 휴식하라.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휴식의 중요성을 잘 알았다. 그는 자주 몸과 마음에 충분한 여유를 누렸다. 그래야 휴식없이 독서하고 일하는 것보다 훨씬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았기 때문이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게 있어서(‘있어서는 빼야 한국의 문법/어법에 맞는 문장이 된다 옮긴이) 휴식은 단순한 쉼이 아니라 또다른 인문학 공부였다.

 

- 이지성, 생각하는 인문학 , 245 ~ 254

 

- 생각하는 인문학 (작은 제목 5000년 역사를 만든 동서양 천재들의 사색공부법 . ‘이지성지음, ‘()문학동네펴냄, 서기 2015)에서 발췌

 

- 단기 4357년 음력 1017일에, 개마두리가 올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