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선조 때의 벼슬아치인 이항복 대감은 보통 ‘오성’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그리고 이항복 대감의 벗이었던 이덕형 대감은 ‘한음’이라는 별명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 옮긴이).
오성이 어릴 적에, 오성의 아버지(조선 명종 시절, 이조판서를 지낸 이몽량 대감 - 옮긴이)가 지붕을 고치려고 우선 디새(:기와를 일컫는 순우리말 - 옮긴이)의 골을 세어보고 있었다. 기왓골을 세면 디새가 몇 장인지를 대략 알 수 있으리라 여겼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기왓골은 많고 꽤 길어서 세고 또 세어도 올바른 숫자를 알아낼 수 없었다.
마침 오성이 그 옆을 지나다가 아버지께 여쭈었다.
“아버지, 무엇을 그렇게 세고 계시옵니까?”
“디새의 골을 세어보고 있느니라.”
“어지러워서 힘들지 않으신지요?”
“그래도 어떻게 하겠느냐? 달리 방법이 없지 않는걸.”
오성은 고개를 갸우뚱거리며 서 있다가 좋은 생각이 나서 빙그레 웃었다.
“아버지, 좋은 방법이 있습니다.”
“어떤 방법이냐?”
이몽량 대감은 오성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며 물었다.
“낙숫물 자국을 세어보시면 되지 않사옵니까.”
이 대감은 무릎을 치며 아들의 똑똑함에 감탄했다.
- 고은 시인이 엮으신 책 『세상에서 가장 슬기로운 이야기』(동쪽나라 펴냄)에서 퍼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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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의 말 : 비록 ‘사실’이나 ‘진실’을 알아내는 일이 힘들더라도, 아주 불가능하진 않다. 흔적을 따라가면 - 발자국을 따라가면 사람이나 짐승을 만날 수 있듯이 - 흔적을 남긴 존재를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포기하지 않고 끈질기게 ‘단서’를 찾는 당신은 반드시 답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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