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한 - 중 FTA, 한국산업 경쟁력 ‘중장기적붕괴’ 가능성“

개마두리 2012. 3. 17. 15:37

 

- 중소기업연 보고서 공개

 

- 정부 용역보고서론 처음

 

1980년대만 해도 국내에선 예식용 면장갑을 제작하는 회사가 많았다. 하지만 300여개의 국내 기업만으로는 공급이 턱없이 부족했다. 품질이 떨어지는 중국산이 수입됐다. 가격이 워낙 싸니까 풀어놓으면 금세 동이 났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난 뒤 예식용 면장갑을 만드는 국내 기업은 찾아볼 수 없게 됐다. 중국산이 국내 시장을 완전히 잠식했기 때문이다.

 

1981년부터 면장갑을 생산/유통해 온 송학장갑 최현규(60세) 사장은 한 - 중 자유무역협정(FTA)이 추진되는 것을 보면서 1990년대 예식용 면장갑을 떠올렸다. 그는 “작업용 면장갑의 경우 지금도 중국산이 켤레당 30~40원 저렴한데 관세 8%까지 없어지면 아무리 국내산의 품질이 좋아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 - 중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되면 중국으로부터의 수입이 급증해 노동집약적 저부가가치 산업의 구조조정이 본격화될 것이라는 정부기관의 용역 연구보고서가 공개됐다. 중국의 빠른 기술 발전 추세를 고려하면 한 - 중 자유무역협정이 국내 산업경쟁력 기반을 중장기적으로 붕괴시킬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한겨레>가 입수한 중소기업청 산하 중소기업연구원의 ‘한 - 중 자유무역협정 체결이 국내 중소기업에 미치는 영향 분석과 대응과제 연구’ 보고서를 보면, “중국의 수입관세율(9.69%)은 미국(3.5%)과 유럽연합(5.6%)보다 높아 관세 인하에 따른 기대이익이 예상된다.”면서도 “노동집약적 경공업 품목 및 생활용품 등에서 수입이 급증해 업종별로 피해가 우려된다.”고 분석했다. 한 - 중 자유무역협정과 관련한 정부의 용역보고서가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정부는 한 - 중 협정과 관련한 용역 보고서를 대외비로 분류해 일체 공개하지 않아왔다.

 

업종별로 보면, 섬유/의류 산업은 관세 철폐로 중국산 섬유의 수입이 더욱 늘어나 국내 업체가 매우 줄어들고 고용 인력도 감소해 국내 산업의 공동화가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섬유산업은 이미 지난해 대중 무역적자가 35억달러에 이를 만큼 어려운 상황이다. 산업연구원의 한 - 중 자유무역협정 연구 결과를 보면 섬유와 관련한 관세를 전면 철폐할 경우 무역적자액은 4억달러가량 증가할 전망이다.

 

반대로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대중 흑자 품목인 전기/전자 산업은 관세가 폐지돼도 수출 증대 효과가 미미할 것으로 분석됐다.

 

정보통신제품은 정보기술협정으로 이미 무관세가 적용되고, 현재 우리나라가 우위에 있는 휴대전화, 엘시디(LCD), 반도체 등 3대 주력 품목도 중국의 기술 추격으로 2~3년이면 동등해질 전망이기 때문이다.

 

또 자동차 산업의 높은 관세장벽이 없어지면 현대/기아자동차 등 완성차 업체는 이익을 보겠지만, 일부 자동차부품업체에는 피해가 발생할 것으로 예측됐다.

 

예컨대 타이어나 자동차 애프터서비스(A/S) 산업은 가격경쟁력이 있는 중국산의 수입이 증가할 것으로 예상됐다. 또한 그 결과로 국내 부품업체들의 구조조정이 발생할 수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일반기계 산업에서도 중국이 기술력을 향상시키는 동안 우리나라가 일본을 따라잡지 못하면 되레 우리의 산업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고 보고서는 밝혔다.

 

-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한겨레』서기 2012년 3월 12일자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