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마(역사)

▩ 반크 운영자가 만난 팔레스타인 사람의 이야기

개마두리 2012. 11. 2. 18:06

미국에서 만난 팔레스타인 글로벌(국제적인 - 옮긴이) 리더(지도자 - 옮긴이)에게 꿈이 무엇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그러자 그는 갑자기 가방을 열더니 ‘국제 방문자 리더십 프로그램’ 일정표를 나에게 보여 주었다. 나는 그가 질문을 잘못 이해했다고 생각했다.

 

“네 개인적인 꿈이 뭐냐고 물은 거야.”

 

하지만 그는 내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일정표 맨 앞에 정리된 글로벌 리더들의 프로필([자기]소개 - 옮긴이)을 가리켰다.

 

“내 프로필을 잘 봐.”

 

어리둥절해진 나는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부분을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역시나 거기에는 그의 이력만 몇 가지 적혀 있을 뿐이었다.

 

“이건 네 프로필이잖아. 네가 뭘 하고 싶은지는 적혀 있지 않다고.”

 

답답해진 나는 다시 한 번 되물었다.

 

“팔레스타인.”

 

그는 자신의 이름 위에 쓰인 나라 이름을 읽었다.

 

“이게 뭐?”

 

“테러토리(Territory. 분쟁 중인) 팔레스타인.”

 

그제야 나는 무언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다른 나라의 글로벌 리더들은 나라 이름 앞에 다른 수식어가 붙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나라 이름은 그냥 ‘팔레스타인’이 아니라 ‘테러토리 팔레스타인’이었다.

 

“우리나라는 국가로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야.”

 

그는 ‘테러토리’라는 단어(낱말 - 옮긴이)를 지우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순간 당황했고, 미안했다. 프로그램에 참가한 글로벌 리더들의 프로필을 모조리 보았지만 그가 그렇게까지 자세히 설명하기 전까지는 팔레스타인이라는 나라 이름 옆에 붙어있는 ‘테러토리’라는 단어를 전혀 인식하지(알아채지 - 옮긴이)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 그건 국가(國家. 나라 - 옮긴이)의 꿈이지 네 개인의 꿈이 아니지 않아?”

 

국가가 없는 국민에게 개인적인 꿈은 없어. 내가 꿈을 꿀 수 있는 순간은 이 ‘테러토리’라는 단어가 사라지는 순간부터일 거야.”

 

그는 자신이 하고 있는 팔레스타인 평화 운동을 비롯해 그가 꿈꾸는 이스라엘(시온주의자들의 괴뢰정권 - 옮긴이)과 팔레스타인의 평화, 그리고 자신의 조국인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가슴 아픈 일들에 대해 나와 한국인들의 관심을 부탁했다.

 

(한국 정부는 지금도 팔레스타인 아랍인들이 세운 정부를 공식적으로 인정하지 않으며, 철저하게 시온주의자[시오니스트]들을 지지하는 외교노선을 고집한다. 물론 광신적이고 수구적인 한국인 개신교도들도 시온주의자들을 지지하거나 묵인한다. 이 문제를 잘 모르는 한국 시민들은 이 전쟁이 믿음[종교]이 달라서 일어났다고 생각한다[실제로는 ‘땅’과 ‘물’을 둘러싼 싸움인데도!]. - 옮긴이)

 

이 팔레스타인 친구는 이스라엘에서 온 글로벌 리더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며 진지하게 토론하고 대화하며 함께 식사했다. 그들은 서로의 고민과 아픔, 그리고 각자가 생각하는 평화에 대해 끊임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정말 인상 깊은 장면이었다.

 

그는 자신에게 발표할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팔레스타인 가자 지역의 상황을 이야기하고, 팔레스타인이 처한 상황에 관심 가져 줄 것을 호소했다.

 

문득 그에게서 그 옛날 고종의 밀명을 받고 멀리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 만국회의에 참석해 일제 강점(强占. ‘강제로 점령함’을 줄인 말 - 옮긴이)의 부당함을 전 세계인(실제로는 유럽 여러 나라와 러시아와 미국 - 옮긴이)에게 호소하며 대한민국(실제로는 대한제국大韓帝國. 대한민국과 대한제국은 둘 다 ‘한국韓國’이라고 줄여서 부를 수 있다 - 옮긴이)의 독립을 외쳤던 이준 열사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청년 반크, 세계를 품다』(박기태 지음, 랜덤하우스 펴냄, 서기 2011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