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단편]뉴스 앵커가 한 말

개마두리 2012. 12. 29. 20:24

 

 

- 시리아의 여성 작가인 ‘갈리아 카바니 (Ghalia Kabbani)' 의 단편소설

 

갑자기 조용해졌다. 마치 승객이 전혀 타지 않고 운전기사도 없이 차가 저절로 굴러가고 있는 것 같았다. 한 사람 목소리만 들렸다. 그는 화난 교사가 말을 잘 안 듣는 학생들을 향해 말하는 것처럼 단정적인 목소리로 말했다.

 

불쑥 그 목소리가 들리자 그동안 조용히 소곤거리던 대화가 뚝 끊겼다. 그 목소리는 고민, 즉 개인적인 고민을 고백하는 것처럼 들렸다.

 

“이 방송은 …에서 하는 겁니다.”

 

그리고 뉴스를 요약했다. 함께 탄 다섯 명 모두에게 주목하라고 명령하는 목소리였다. 서로 모르는 다섯 명은 불안해져서 잔뜩 겁을 먹고 그 목소리에 집중해 자세히 뉴스를 들었다.

 

이런 공포가 덮치기 10분 전에는 이랬다. 쇼핑 지구의 한 거리에서 젊은 여자 둘을 태우기 위해 택시가 멈추었다. 그 여자들은 뒤쪽 오른편 문을 열고 차 안으로 들어왔다. 그 여자들은 지쳐서 금방이라도 쓰러질 지경이었다.

 

막 택시가 떠나려는데 승객이 한 명 더 끼어들었다.

 

“……로 가나요?”

 

택시기사는 젊은 여자들을 향해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합승(合乘. 함께 탐 - 옮긴이)해도 괜찮으시겠어요?”

 

젊은 여성 중 하나가 운전사 옆에 앉은 승객에게 대답했다.

 

“더 이상 택시라고 할 수도 없겠네요. 이제 목적지가 세 군데나 되니.”

 

그 젊은이는 그들의 동정심에 호소했다.

 

“전 꼬박 한 시간이나 기다렸어요. 혼자 탈 수 있는 택시가 한 대도 없어요.”라고 그가 말했다.

 

그 두 여자가 동시에 말했다.

 

“타세요.”

 

그는 문을 열고 젊은 여자들과 그들의 물건 옆에 억지로 끼여 앉았다. 택시가 떠났다. 승객들은 모두 시내에서 택시잡기가 얼마나 힘든지에 대해 이야기한 다음 각자 대화를 이어갔다. 운전기사와 앞자리 승객은 차 이야기를 하다가 이어서 차 고장 이야기를 했다.

 

차가 끝없이 고장이 난다며 수리비가 얼마나 드는지에 대해 말했다. 뒷자리의 젊은이가 가끔씩 그 이야기에 끼어들었다. 젊은 여자들은 서로 속삭였다. 한 여자가 개인적인 고민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어쨌든 아무도 그 대화에 끼어들지 않았다.

 

그러나 승객 다섯 명 모두 다른 사람 말이 거슬리지 않았다. 그리고 라디오에서 들리는 가수 움 쿨툼의 노래가 적절한 배경 음악이 되어 웅얼거리는 대화를 감싸는 방음벽 역할을 했다.

 

이것은 모두 뉴스 앵커의 목소리가 끼어들기 전의 상황이었다. 앵커는 바로 자신들의 나라에서 그동안 일어난 주요 사건을 보도했다.

 

“정치적인 문제로 광범위한 구속이 있었습니다. …… 국제 엠네스티는 재판을 거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수년간 구금한 데 대해 항의했습니다. …… 그리고 …….”

 

이 침묵은 설명할 길이 없어 보였다. 외국 방송의 앵커 목소리가 사라지고 지역 뉴스로 옮아갔는데도 승객과 운전기사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자 그럼, 이제 이 침묵을 그럴싸하게 설명해 보도록 하자. 그 운전기사는 라디오 주파수를 바꾸려 들지 않았다. 지난 몇 년간 그는 미래에 책임져야 할 일을 전혀 해본 적이 없었다.

 

이 순간 그가 무엇을 해야 했을까? 지금 앵커가 한 말은 모두 거짓말이고 꾸며낸 말이라고 욕설을 퍼부어가며 상황을 역전시켜야 했을까? 하지만 그는 이 외국인 뉴스 앵커가 비록 간접적이긴 하지만 진실을 말하고 있다는 것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아니면 라디오를 그대로 틀어 두어야 했을까? 그랬다면 승객 중 한 명이 국가에 대한 비방이 퍼져나가는데 공모했다며 그를 당국에 고발했을 것이다.

 

네 명의 승객은 창밖을 내다보았다.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어딘가로 도망쳐버릴 수 있기를, 즉 이 어색한 상황에서 멀리 떨어진 어딘가로 사라져버릴 수 있기를 바랐다. 어떤 반응을 보여도 택시 안에서는 운전기사의 거울에 비춰지거나 다른 승객의 눈에 띠이게 되어 있었다.

 

두 여자마저도 더 이상 개인적인 고민을 주고받지 않았다. 그들은 눈빛 속에 자기 마음이 드러날까 봐 서로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두 여자는 상대방의 마음속 깊이 있는 생각까지 모조리 읽어내는 데 익숙했기 때문이다.

 

뒷자리의 젊은이는 여러 해 전에 실종된 형을 기억했다. 긴장을 풀기 위해 그는 호주머니에 손을 넣고 호주머니 속의 물건을 만지작거렸다.

 

자, 그러면 이 사건이 단편소설의 주제로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나요? 내 말은, 택시 안에 다섯 명이 타고 있는데 갑자기 침묵 속에서 서로를 비난하게 된 상황 말입니다. 이들은 다른 사람이 배신해서 비밀경찰에 자신을 고발할 거라고 서로를 의심하죠. 아무 근거 없이 단지 공포심 때문에요. 그리고 외국 뉴스 앵커가 그들의 영혼을 꿰뚫고, 일상적인 관심을 얼어붙게 하고, 공포와 도피의식을 불러일으키는 바람에 이런 상황이 된 거죠.

 

이건 어떤 특수한 정권을 비난하는 정치기사에 더 적합한 사건이 아닐까요? 승객 네 명과 운전기사 한 명, 도합 다섯 명이 함께 탄 택시 안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으며, 그들 모두 개인적인 신념을 포기하고, 뉴스 앵커의 목소리에서 뿜어져 나오는 서치라이트(조명등에서 나오는 빛 - 옮긴이)를 피하기 위해 마음속 깊이 은밀한 곳으로 도피했다고 말한 다음 계속 소설을 써내려 갈 수 있을까요?

 

그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심장 한 모퉁이가 쿵쾅대며 두근거리는 소리에 모두들 화들짝 놀라 있었다.

 

- 조애리 (카이스트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옮김

 

* 출처 :『아랍 여성 단편소설선』(샤무엘 시몽 엮음, 라일라 알 - 오트만 외 지음, 조애리 외 옮김, 글누림 펴냄, 서기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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